소설리스트

53화 (53/450)

상대 평가다.

더 나은 음식점이 있다면 발길을 바꾸는 것이 소비자.

그것을 알면서도 받아들이기가 힘들다.

앳된 학생들의 입장에서는 말이다.

"어휴……."

"우리 스테이크도 맛있는데."

"쟤 우리 학교 학생 아니야? 삐끼짓 하네."

주식 동아리.

내부 협의한 대로 스테이크를 팔고 있다.

보다 난이도가 낮고, 참고할 대상도 있는 큐브 스테이크다.

천종원의 푸드트럭을 3번이나 돌려본 한 선배의 지도 아래 꽤 괜찮게 구색을 갖췄다.

원가율도 약간 포기해서 싸게 내놨는데.

『파전&막걸리&큐브 스테이크♡』

해물파전 5,000냥

치즈김치전 5,000냥

큐브 스테이크 5,000냥

참이슬 4,000냥

막걸리 4,000냥

캔맥주 4,000냥

바로 옆 점포에서 훨씬 싸게 팔고 있다.

파전 종류만 파는 걸로 알았던 ETSD에서 말이다.

"쟤네가 왜 큐브 스테이크를 파는 거야……."

"삐끼짓도 그렇고."

"이런 생각하면 안되는  거 알지만 일부러 그러는 거 아니야?"

같은 메뉴.

더 싼 가격.

게다가 바람잡이짓까지.

의심이 안 들래야 안 들 수가 없다.

가만히 보고 있던 소라도 미간이 찌푸려진다.

"내가 갔다 올게!"

"소라가?"

"그래, 한 마디 해주고 와!"

짐작 가는 바도 있다.

ETSD에는 주하가 소속돼있다.

자신과 그녀는 사이가 썩 좋지 않다.

'거기서도 싸가지 없게 군다고 이야기는 들었는데.'

성격 때문이다.

가까이 두고 싶지 않은 사람.

아니나 다를까 ETSD에 들어가서도 그런 모양이다.

자신의 뒷담을 깐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지금까지는 뭘 하던 하고 싶은 대로 하게 두었지만.

"저기요!"

동아리에 피해를 끼친다면 이야기가 다르다.

소라는 ETSD의 부스에 성큼 걸음으로 들어간다.

"어, 무슨 일로……."

"동아리 부장님 누구에요? 어디 있어요?"

"그게 그 지금 잠깐 나갔는데. 혹시 전할 말 있으면 저한테 하시면 되는데."

안에 있는 건 대부분 선배들.

신입생들은 홀로 나가 일을 하고, 짬 찬 2, 3학년은 주방에 있고, 그보다 더 아득한 선배들은 노가리를 깐다.

최소 3학번은 높은 그들이지만 쩔쩔맬 수밖에 없다.

그만한 기세와 어마어마한 존재감을 가지고 있다.

'와 소문으론 들었는데.'

'진짜 뒤지게 크다.'

'얘가 소라구나. 이 시야를 사진으로 남겨둘 수 없나?'

여자 선배들은 축제를 즐기러 갔다.

후배들 관리 겸해서 남은 남자 선배들만 곤란을 겪는다.

"저희랑 그쪽 메뉴가 겹치고 있는데요."

"그, 그러네. 그렇게 됐네."

"이게 우연으로 있을 수 있는 일인가요? 하고 많은 메뉴 중에서."

대화의 주제가 논란이라는 게 아쉬운 상황.

보기 드문 에쁜 후배에게 밉보이고 싶지 않다.

"사실 이야기를 들었거든."

"야, 잠깐!"

"가만히 계세요. 뭐라고요?"

"너희 큐브 스테이크 한다길래 우리도 메뉴 추가를 할까 하는 이야기가 나왔어. 어, 그렇게 됐어."

이실직고한 측면도 있다.

그녀의 눈동자를 바라보고 있으면 빨개 벗겨친 채 서있는 것 같다.

"그럼 저희 메뉴 베낀 건 인정하시는 거죠?"

"으, 응."

"같은 메뉴를 판다면 저희 쪽에 피해가 갈 수 있다는 걸 알고도 하셨다는 거죠?"

"그, 그건 좀……."

주도권을 완전히 뺏긴다.

찍소리도 할 수 없다.

그런 일촉즉발의 상황에서.

"어디 잡상인이 왔나 했는데 소라 아니야?"

주하가 나타난다.

홀에서 일하고 있던 그녀는 동기에게 소라가 찾아왔다는 소식을 들었다.

일단 신입생이기 때문에 일하는 시늉은 해야 한다.

같은 동기들 부리는 재미도 있고 말이다.

"이야기는 다 들었어."

"그래?"

"길게 얘기 안 할 게. 너희들도 재료 준비했을 테니 이제 와서 버리기도 힘들잖아? 메뉴를 조금 다르게 바꾸거나 그게 안되면 가격을 같은 수준으로 맞춰줘."

오직 소라만이 자신의 눈에 거슬린다.

아니나 다를까 선배들만이 있는 이곳에서 또박또박 자기 주장을 해댄다.

까득!

대가리를 숙일 때는 숙여야 하는데 어쩜 저리 뻣뻣한지 모르겠다.

하지만 여기서만큼은.

"왜?"

"원가를 고려했을 때 5천원은 파격적인 가격 설정이잖아. 의도가 있다고밖에 생각되지 않는데?"

"흐응~ 의도? 무슨 의도?"

이 동아리에서만큼은 다르다.

니년이 나댈 수 있는 장소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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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오해가 있나 본데!"

ETSD 동아리의 부장 차유준.

얼마간의 시간 차를 두고 나타난 그에 의해 상황은 급반전된다.

"이미 이쪽 선배분들한테 확인 다 받았는데요."

"그러니까 그게 오해라는 거야!"

"설명을 하세요."

"너희가 큐브 스테이크를 한다는 얘기를 들은 건 맞는데……."

소라와의 대치.

다른 선배들은 쩔쩔맸다.

하지만 유준은 동아리 부장으로서 사건·사고에는 이골이 나있거니와.

'적당히 말 돌리는 건 내 특기지 후후.'

여자친구가 있다.

그 여자친구가 소라를 싫어한다는 사실도 안다.

"우리도 봤거든."

"뭘요?"

"푸드트럭! 천종원이 하는 거. 우리도 전부터 할 생각이 있었어."

소라를 몰아낸다면 좋아할 것이다.

상대가 탓하지 못할 상황을 만든다.

"그럼 가격이라도 고쳐줘요. 우리 동아리에 피해 가는 거 안 보여요?"

"그건 힘들겠는데?"

"……이유가 뭐죠?"

"아까부터 말했잖아 오해가 있다고. 우리가 너희랑 같은 메뉴를 하는 건 맞지만."

다년간의 경험.

소라에게는 없는 것이다.

적당히 끼워 맞춰서 속일 수 있다.

"그렇게 싸게 샀다고요?"

"그래, 우리는 쓰는 양이 많잖아? 싸게 사는 데도 알고 있고. 그리고 또."

"그리고 뭐요?"

"안주는 헐값에 주고 술에서 마진 챙기는 식이야."

대량 구매로 싸게 떼온 것은 맞다.

하지만 1인분 5000원에 맞추는 것은 아무래도 무리다.

'신입생이 그걸 알겠어?'

정보 격차.

자신도 신입생 때는 묵묵히 선배들 하라는 것만 따랐다.

제법 총기가 있어 보인다.

학과 수석으로 들어왔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그렇다 하더라도 신입생은 신입생이다.

아직 사회의 풍파를 모른다.

"……."

골똘히 고민하는 듯한 모습이다.

자신의 말에 어딘가 허점이 없는지.

경제학과생으로 분석하는 것이다.

고민을 해봤자 도출되는 결론은 하나.

"저희 점포 앞에 그쪽 바람잡이 같은 사람이 있었어요."

"그건 내가 사과할게!"

"지금 인정하시는 거죠?"

"아, 이게~~ 축제 장사가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전쟁이거든. 내 친구 하나가 우리 장사 잘되라고 선 넘는 짓을 했나 봐. 다시는 그런 일 없도록 주의 줄게."

구멍이 없는 것은 아니다.

모르쇠로 일관할 수 있다.

오히려 인정하는 것이 낫다는 판단.

거짓 속에 진실을 섞는다.

상대는 스스로의 생각도 의심하게 되며 결국 자신의 의도대로 따라간다.

'이렇게 속이는 게 미안하긴 한데.'

마음 같아서는 친하게 지내고 싶다.

그런 욕구가 일어날 수밖에 없는 외모의 소유자.

동아리 부원들이 얼타고 있었던 것도 무리가 아니다.

자신도 그랬을지 모른다.

꼬집!

여자친구가 있다.

주하가 자신의 팔뚝을 꼬집어온다.

언감생심.

절대 따지 못할 감을 노리느니 당장 자신의 곁에 있는 여친의 점수를 따는 게 낫다.

"흠! 흠! 아무튼 오해는 이쯤에서 마무리하면 좋겠고."

"오해라고요?"

"아까 설명한 대로 우리는 술로 마진을 남기거든. 너희는 그럼 술을 싸게 팔면 되겠다. 그래, 그러면 되겠네!"

대화를 끌고 나간다.

소라는 무언가 분해 보이지만 반박하지 못한다.

반박할 말을 찾을 수 없었겠지.

예쁜 입술만 애꿎게 잘근 깨물고 있다.

"아니면 뭐 다른 이의 있나?"

"없네요. 실례했습니다!"

부스 밖으로 나간다.

그제서야 안도의 한숨이 여기저기서 들려온다.

일촉즉발.

만약 화를 낸다면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선배들로서도 심히 난감했다.

'두고 봐. 반드시 이겨줄 테니까.'

소라로서도 압박을 안 받을 수 없었다.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선배들이 즐비했으니까.

적진이나 다름없던 장소다.

방울방울 맺힌 눈물을 손등으로 쓱 닦으며 돌아간다.

"……그렇게 됐어."

"와!!"

"너무한 거 아니야?"

"쳐들어가자!"

""죽이자! 죽이자! 죽이자!""

주식 동아리 남자 선배들의 화를 돋울만도 하다.

이 동아리에 들어온 이유가 무엇인데.

"그러면 안돼요."

하지만 현실적으로 이길 수 없다.

쪽수도, 학번도, 명분도 그 어느 것도.

아득!

분하지만 반박할 수 없었다.

상대의 논리에서 허점을 찾지 못했다.

남은 수단은 하나.

결연한 각오를 다지고 정정당당하게 싸워 이기는 것이다.

"상대가 비겁한 짓을 한다고 우리까지 비겁한 짓을 하면 안돼요."

"그럼……."

"솔직히 가격으로 승부 보긴 힘든데."

물론 쉽지 않다.

한 동아리원의 말대로 상대는 헐값에 팔고 있다.

자신들은 무리를 해도 6000원이 고작이다.

가격으로 경쟁하는 것은.

'제 살 깎아 먹기겠지.'

ETSD 부장의 말대로 술을 싸게 파는 방법도 있다.

그것도 맥락은 같다.

안주에서도 술에서도 이윤을 내지 못한다?

원재료를 반품하는 것이 나은 수준이다.

"그럼 야채 비율을 늘리면 어때?"

"오 그거 좋다."

"근데 그러면 손이 좀 많이 감."

"우리 주방 인원들이 힘내볼게!"

하지만 경제학과.

어떻게든 기지를 발휘해본다.

동아리원들의 열의도 대단하다.

꽈악!

자신도 손 놓고 있을 수 없다.

주먹을 불끈 쥔 소라는 힘을 보태기로 결심한다.

"나도 그럼 손님들 많이 끌어와 볼게."

"소라가?

"소라가 해주면 무조건 많이 오지!"

"근데 괜찮겠어?"

혜리가 걱정스럽다는 듯 묻는다.

지금까지는 혜리와 몇몇 여자 부원들 담당이었다.

외모를 이용하는 일이 싫기 때문이다.

하지만 혜리라고 그런 것을 좋아할 리 없다.

'해야지. 무슨 짓을 해서라도 이겨야지.'

그 빌어먹을 인간이라면 그렇게 말할 것이다.

그러니까 씹어먹을 소리도 했겠지.

유흥업소.

그런 짓은 추호도 할 생각은 없지만 이용할 수 있는 것이라면 전부 하겠다.

"그러고 보니 찬욱 선배가 안 보이네."

"진짜 도박하고 있는 거 아니야?"

"그 인간이면 그러고도 남지."

달리 방법이 없다.

언제나처럼 신기한 해법을 제시해주는 찬욱이 보이지도 않는다.

'방해만 되지.'

접객을 시키면 손님한테 시비를 틀겠지.

호객을 시키면 여길 이상한 업소로 홍보하겠지.

가만히 있어주는 게 제일 도움이 된다.

하지만 지금 당장은 고사리손이라도 필요하다.

"내가 찾아올까?"

"짐작 가는 곳 있어?"

"응."

"그럼 부탁할게."

잡일이라도 시키면 조금은 도움이 될 것이다.

자신의 스트레스에도.

'또 어디 박혀있는 거야 정말.'

찬욱을 찾기 위해 혜리가 간다.

사라지는 그녀의 뒷모습을 보며 동아리원들은 단결한다.

장사 경력은 상대가 우위.

재료도, 어쩌면 실력도 어느 것 하나 유리한 부분이 없다.

"이길 수 없을지도 모르지만……, 절대로 만만하게 당하지 말자. 최선을 다해서 매상을 올리는 거야."

그럼에도 맞선다.

분전한다면 매상에 타격 정도는 줄 수 있을지 모른다.

""아자! 아자! 화이팅!""

* * *

츄릅!

대학교 축제.

나로서는 인연이 없는 장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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