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2화 (52/450)

불현듯 들려온 괴성은 낯이 익다.

"축제할 시간이 어딨어. 도박 해야지."

"그러지 말고 오빠도 참가해요."

"축제보다 도박이 더 재밌는데……."

찬욱.

손을 달달달 떠는 모습은 영락없는 도박 중독자다.

'에휴.'

저런 인간한테 배우려고 했다니.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사는지 모르겠다.

"혹시 축제에 슬롯 머신 있나? 바카라도 좋고."

"대학 축제에 그런 게 어딨어요!"

"미췬놈."

저 인간의 머릿속에서는 주식=도박일 수도 있다.

정말 알다가도 모를 인간이다.

'대가리 때려주고 싶다.'

어떤 때는 전문가인 것 같으면서도, 어떤 때는 그냥 한량이다.

머릿속을 뜯어보고 싶을 지경.

"있습니다 선배님."

"봐봐 있대잖아!"

"호텔경영학과 과동아리 중에 카지노 동아리도 있거든요. 강원랜드도 그렇고, 파라다이스도 그렇고 요즘 호텔들 다 카지노 있잖아요? 제 친구가 그쪽 학과라 들은 게 있어요."

'왜 있음?'

항상 머리 아파지는 건 자신.

스스로의 상식을 의심하는 지경에 이른다.

동아리원 한 명이 쓸데없는 정보를 유포한다.

다행히 미수에 그친다.

"그럼 우리도 카지노 하자!"

"안될 걸요."

"주식 동아리잖아요."

"주식이나 도박이나 뭐가 다른데!"

혜리가 나눠준 팜플랫.

각 동아리별로 부스를 차린다는 내용이 있다.

'우리 동아리도 해야 되겠지.'

카지노 동아리가 카지노를 하듯이 말이다.

하지만 주식 동아리는.

"특기 없는 동아리는 음식점 한대요."

"음식점? 그딴 걸 왜!"

"매출 잘 나오면 활동비 많이 준다고……."

"그것부터 말해야지."

딱히 할 수 있는 게 없다.

무슨 펀드를 만들어 팔 수도 없는 노릇이다.

'음식점이라…….'

평범하기 짝이 없다.

하지만 그런 것도 해보고 싶다.

좋은 추억이 될 것이다.

동아리원들과 힘을 모아.

"그럼 유흥업소 느낌으로 하나 차리자. 저기 가슴 뒤지게 큰 년 있잖아."

"하겠냐."

빠큐.

평범을 원한다.

최근의 지쳐버린 일상을 달래고 싶다.

'저 인간도 축제 기간만큼은 사고를 못 치겠지.'

주특기인 주식을 할 수 없으니 말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축제에 대한 열의가 사무친다.

"아니, 룸빵 가면 5만원짜리 술도 30만원에 판단 말이야. 원가율 뒤지게 빨아낼 수 있다고……."

"니 좆이나 빨아."

"소라야."

"미안, 내가 미쳤나 봐."

즐겁게 지낼 수 있을 것만 같다.

저 빌어먹을 자식이 입 닥치고 있는 것만 봐도 속이 시원할 것이다.

'나도 저 인간의 영향을 받은 건가…….'

자신도 모르게 나쁜 말이 튀어나온다.

축제 기간 동안 몸도 마음도 깨끗하게 리셋한다.

아빠도 주식은 멘탈이 중요하다고 하셨다.

헝클어진 정신으로는 될 일도 안된다.

"매출 잘 나오면 활동비도 넉넉히 나오는 거지?"

"의욕이 샘솟네."

"혹시 시드 잃은 거 동아리 차원에서 지원 해줄 수 있나요?"

"제발!"

동아리원들도 꽤나 의욕적이다.

그 인간만이 구석에 박혀서 궁상을 부린다.

『제1회 주식 동아리 축제 메뉴 투표』

1. 막걸리&파전

2. 떡볶이 등 분식

3. 붕어빵, 크레페 등 디저트류

4., 의견 제시해!!!

어떤 음식을 팔지 토의를 한다.

1학년만 있는 게 아니다 보니.

"막걸리&파전이 왕도긴 한데……."

"너무 흔할 거 같지?"

"그거 매년 하는 동아리가 최소 다섯 곳은 있어."

제법 현실적인 조언들도 나온다.

신생 동아리지만 늙은 사람들도 있는 것이다.

"무엇보다 ETSD에서 팔아서……."

"음, 그렇지."

"우리 학과 동아리 아니에요?"

"어. 같은 학과라 바로 옆 부스라고. 같은 아이템 팔면 불 보듯 뻔하지."

ETSD.

권유를 받았던 소라도 알고 있다.

동아리 활동 내용이 마음에 안 들어서 가진 않았지만.

'나 같아도 대장주 사지. 장사 안되는 개잡주 사진 않을 것 같아.'

주식 동아리는 이제 막 만들어졌다.

인지도랄 것이 아예 없는 환경이다.

그에 반해 대형 동아리.

아는 사람도 많고, 대학 축제 이력도 훨씬 길 것이다.

"그럼 우리 큐브 스테이크 해볼까?"

"스테이크요? 원가 비쌀 것 같은데."

"아냐, 아냐 생각보다 괜찮아. 내가 천종원의 푸드트럭 애청자거든!"

부딪히지 않는 게 최선.

동아리 선배들의 조언은 일리가 있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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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부의 최대 동아리

인싸 모임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끼익−!

동아리원 한 명이 문을 열고 들어온다.

예쁘게 한껏 꾸민 신입생.

그런데 어딘가 기죽어 보인다.

기분 탓일 수도 있는 일이지만.

"나 왔는데……."

"빨리 안 오고 뭐해?"

"어, 미안."

그럴 수밖에 없다.

158cm의 여학생에게 학과 최대 동아리의 부실은 너무 크다.

선배들도 많다.

오래된 동아리다 보니 복학생 혹은 몇 년 꿇은 선배들도 흔하다.

"알아오라는 거 알아냈어?"

"응! 일단은."

"일단은이 아니고 말을 해야지~ 답답하게 굴래?"

"어, 미안."

여학생이 가장 눈치를 보는 대상은 따로 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같은 신입생인 동기.

'성격 배배 꼬여 가지고…….'

속으로만 분을 삭힌다.

동아리 부장과 사귄 이후로 완전히 여왕님 행세를 하려 든다.

호가호위.

하지만 선배들 눈치를 안 볼 수가 없는 신입생 입장에서 어쩔 수가 없다.

"주식 동아리에 있는 친구한테 물어봤는데."

"그래서?"

"……막걸리&파전 하려다가 우리 동아리에 안될 것 같아서 큐브 스테이크로 선회했대. 그 알잖아? 요즘 TV에도 나오는 거."

동아리를 탈퇴할 수도 없다.

과동아리에서 활동을 못하면 곧바로 아싸행이다.

꾹 참고 들은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천종원의 푸드트럭.

한창 유행을 끌고 있는 인기 예능이다.

큐브 스테이크편이 최근에 방영되었다.

'아 그거?'

주하도 들어는 보았다.

동시간대에 하는 '너 혼자 산다'의 애청자이긴 하지만.

"큐브 스테이크!"

"나 그 편 재밌게 봤는데."

"소고기 원가 좀 비싸지 않아?"

주위에서 하도 떠든다.

'너 혼자 산다' 시청률을 뺏어간다.

신경이 안 쓰일 수가 없는 대상이다.

'뭐.'

천종원.

모르는 사람이 없기도 하다.

음식 장사에서 둘째 가면 서러워 할 프로페셔널이다.

자신의 비법을 방송 프로그램에서 푼다.

선배들 중에도 흥미 있게 본 사람이 많은 모양이다.

"우리도 메뉴 바꿀까?"

"맨날 파전만 부치고……."

"팔뚝에 기름 튀는 거 진짜 아파. 나 아직도 여기 화상 자국 남아있잖아."

"그건 고기도 마찬가지고."

번뜩 떠오르는 생각.

주하는 사람 좋은 미소를 짓는다.

이 동아리에서 가장 예쁜 자신이 그러는데.

"그럼요."

"응?"

"주하 할 말 있어?"

"네, 저희도 파전 말고 요즘 트렌디한 음식 해보는 건 어때요?

밀어붙이는데.

안 들어줄 선배는 없다.

그럼에도 일어나는 다소의 불만은.

"우리 동아리 전통이 해물파전인데……."

"나 유튜브도 해물파전만 봄."

"전통이 어딨어! 매상 1등이 제일 중요하지!"

권력.

동아리 부장이 나서는데 말꼬리를 잡을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물론 불화가 생겨서는 안된다.

주하는 적절한 중재안을 내놓는 척을 한다.

"그럼 이럼 어때요~?"

"어, 어떤?"

"원래대로 파전 팔고, 큐브 스테이크도 파는 거죠. 워낙 잘하시니까 메뉴 하나쯤 추가하는 건 문제 없을 거 아니에요?"

"그, 그렇지."

"주하가 천재네!"

그리고 자신의 의견을 끼어 넣는다.

큐브 스테이크.

처음부터 그것이 목적이었다.

"근데 그러면 메뉴 겹치는 거 아니야? 다른 동아리랑?"

"제가 푸드트럭 너무 재밌게 봐서요. 안될까요?"

"재밌게 봤으면 어쩔 수 없지."

"우리 주하 하고 싶은 거 다 해!"

바로 옆에서 같은 메뉴를 판다.

주식 동아리의 매상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것이다.

회심의 미소를 짓는다.

동아리의 활동비는 대학 축제 기간 매출에 비례한다.

그년들이 자신의 앞에서 만만한 얼굴을 할 수 있는 건 지금뿐이다.

절대로.

* * *

한국대 축제.

<제69회 한국대학교 대동제를 지금부터! 여러분의 뜨거운 환호! 함성과 함께 시자아아아아아아악~~~ 하겠습니다!!>

진행자의 우렁찬 외침과 함께 막을 올린다.

교내 이곳저곳은 이미 발 디딜 틈 없이 북적거린다.

<거짓말, 거짓말, 거짓말~!>

공연 부스.

음악 관련 동아리들이 콘서트를 펼친다.

밤에 올 초청 가수들의 기대하며 아마추어들의 노래를 듣는다.

와아아아아~!!

스포츠 부스.

인조 잔디가 깔린 운동장에서는 축구 리그가 진행 중이다.

축제 기간인 3일에 걸쳐 치러진다.

우승팀에게는 소정의 상품이 증정된다.

"이즈한테 일단 궁 썼어."

"죽여! 죽여 이 간나 새끼!"

e스포츠 부스.

마찬가지로 대회가 진행되고 있다.

게임의 특성상 격한 소리도 들리고 있다.

유서 깊은 대학교답게 성대하며 퀄리티도 높다.

한국대의 넓은 부지를 한 바퀴 돌아보는 것만으로도 이틀은 잡아야 한다.

"아들은 저런 게임 하면 안돼?."

"롤이 왜요!"

"성격 나빠져. 방금 형들 욕하는 거 봤지?"

"에이, 무슨 프로게이머가 욕을 한 것도 아니고 과민반응이에요."

근처 주민들도 매년 놀러 온다.

가족 단위의 방문객도 흔하게 찾아볼 수 있다.

어디를 가도 평타는 친다.

그런 평가를 받고 있는 한국대 대동제이지만.

치이익……!

가장 관심이 쏠리는 장소는 있는 법이다.

올해는 푸드코트로 정해졌다.

"와! 스테이크도 파나 봐."

"어디? 어디?"

"저기!"

방송 효과.

최근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핫하다.

'푸드트럭'이라는 것이 하나의 핫플레이스가 되고 있다.

이를 주제로 한 방송 때문이다.

'천종원의 푸드트럭'은 기존과는 다른 컨셉의 요리 방송을 선보였고.

"대학생들이 제대로 만들 수 있을까?"

"불조절 중요한데. 마이야르 반응!"

일반 소비자들의 수준을 크게 높이는데 기여했다.

어중간한 음식에는 돈을 쓰지 않는다.

상인들도 자극을 받는다.

가격에 합당한 수준의 음식을 내놓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와구!

그 기준에 맞출 수 있을지.

대학교 축제의 푸드코트는 학생들이 운영한다.

일부 허가를 받은 자영업자도 오지만, 대부분은 학생일 수밖에 없다.

한 입 시식한 방문객은.

"오~."

"맛있어?"

"나쁘진 않아. 간 짭짤하게 배어있는 것 보니까 고운 소금 쓴 듯?"

고개를 끄덕끄덕거린다.

얼마 전 천종원의 해설을 들은 기억이 있기 때문이다.

<오래 굽는 스테이크는 굵은 소금을 써유. 근데 이렇게 빨리 빨리 볶는 큐브 스테이크는 고운 소금 써야 간이 배유.>

그리고 맛.

대략적인 맛 평가는 못할 것이 없다.

나름의 기준점에서 봤을 때 합격점이지만.

"저기 가세요 저기."

"네?"

"큐브 스테이크 먹을 거면 저쪽이 더 맛있고 싸다고요. 바로 옆."

"아, 그래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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