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8화 (48/450)

이보다 더 아늑한 곳이 없는데.

"담배도 펴요?"

"담배 아니야. 시가야."

"나 담배 피는 사람 너무 싫은데."

"……."

7평 남짓한 자취방.

마치 집에 엄마라도 온 것처럼 둘러보기 시작한다

벽 곳곳을 세심하게 말이다.

나를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쳐다본다.

"폐인이에요? 왜 이렇게 살아요?"

"……원래 인간이 엥겔 지수는 줄일 수 없어."

"네?"

그런 게 있다.

다음화 보기

수현과의 관계.

의외로 평범하게 이루어졌다.

"오빠 거기."

"엉?"

"거기 쓰레기."

"아 미안."

"무슨 쓰레기를 만드는 기계도 아니고."

"……."

자취방에 자주 찾아오게 되었다.

처음에는 주식을 배운다는 핑계였지만.

'뭔가 엄마 같은 느낌이네.'

어느샌가 내 방 청소를 하고 있다.

집안 더러운 꼬라지를 못 보는 모양이다.

시시콜콜 참견도 해온다.

무뚝뚝한 줄 알았더니 의외로 말이 많은 타입이었다.

"다 치웠어요."

"잘했어."

"저기."

"응?"

"오늘은 뭐 해줄 거에요?"

그것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

말투가 녹아버린 버터처럼 흐물흐물해졌다.

치이익……!

고기를 굽는다.

청소를 해준 대가로 이렇게 밥을 만들어주곤 한다.

'그렇게 비싼 고기는 아닌데.'

100g에 2000원이 안되는 미국산 부챗살이다.

둘마트에서 사왔다.

가격 대비 가치는 높다.

저렴한 고기 중에서 가장 스테이크에 알맞다.

단점은 고기 중간에 있는 힘줄.

미리 칼질을 통해 잘라 놓으면.

"맛있겠다."

"이대로는 맛이 없지."

"또 뭔가 해야 돼요?"

그럭저럭 먹을 만하다.

하지만 가격에서 비롯되는 품질은 어쩔 수가 없다.

'마블링이 적고, 육향이 강해서.'

자칫 퍽퍽하고 싸구려틱한 맛이 날 수 있다.

싸게 사먹을 수 있는 이유일 것이다.

샤앗!

조리로 단점을 잡아준다.

흐물흐물해지기를 넘어 액체가 된 버터를 고깃덩이에 끼얹는다.

'이걸 반복하면.'

빠져나간 육즙, 기름기.

스테이크에 다시 스며들며 식감을 쥬시하고 부드럽게 해준다.

함께 넣은 허브는 잡향을 잡아준다.

베이스팅이라고 부르는 조리법이다.

"별 걸 다 아네요."

"이 정도는 기본이지."

"개똥도 쓸 데가 있네요."

"……."

뜨거운 기름.

위에서 자꾸 부어주기 때문에 스테이크가 골고루 익어 마이야르 반응을 활성화하는 효과도 있다.

'추억이네.'

월가의 트레이더가 알 만한 지식은 아니다.

하지만 경제인으로서는 이야기가 다르다.

사모펀드.

글자 그대로 사적인 투자 자금을 모아 운용하는 펀드의 일종이다.

쉽게 말하면 부자들의 돈을 굴리는 곳이다.

큰 자금을 모으기 위해서 말이다.

"다 구워진 거 같은데."

"아직이야."

"왜요?"

"레스팅."

나도 첫 펀드를 사모펀드로 시작했다.

금융 새내기에게 돈을 빌려줄 곳은 많지 않았다.

'굉장히 힘들었지.'

남의 돈.

그것도 소수의 부자가 생색을 내는 돈.

그렇다 보니 운용하는데 많은 제약사항이 따른다.

너무 위험한 짓 하지 마라.

돈 빌려줬으니 째깍째깍 수익 내라.

감 놔라 배 놔라 자꾸 훈수를 두는 것이다.

하이리스크 자산에 투자하려고 하면 투자자들이 기겁을 해댄다.

조금만 내려가도 돈을 빼려고 든다.

서걱!

안정적이면서 높은 수익률을 보장해줘야 한다.

그 까다롭기 그지없는 조건을 충족시키다 보니.

'배우는 것도 많았지.'

물건의 가치를 알아보는 눈을 길렀다.

그리고 그것을 활용하는 방법 또한.

레스팅.

고기를 5~10분 정도 재워두는 행위를 거친 후에 칼로 썬다.

"와……."

"이렇게 육즙을 안에 가둬 둘 수 있지."

"개맛있겠다."

"버릇 없게."

제대로 된 조리 과정을 거치면 고기의 가치를 끌어올릴 수 있다.

싸구려 고기가 육즙이 뚝뚝 떨어지는 스테이크로 변모한다.

자신도 모르게 손으로 집어 먹고 싶어질 만큼.

고기 한 점을 입에 가져간 수현이 엄지를 척! 치켜 든다.

'이런 걸 자주 했지.'

실제 사모펀드의 대표적인 업무 중 하나다.

외식업 프랜차이즈를 인수하는 것은 말이다.

음식점은 잘 벌릴 때는 엄청 잘 벌리지만, 안될 때는 그냥 짐덩어리다.

가지고 있는 것만으로도 돈이 나간다.

장사가 안되는 업체.

파격적인 가격으로 시장에 나온다.

사모펀드는 그것을 인수한 후 정상화시켜서 되파는 작업을 한다.

『외식기업 사모펀드 M&A 현황』

1. 버○킹

2. B○C

3. 할○스

4. K○C

5. 공○

6. 큰○할매순대국

7. 아○백스테이크하우스

유명 프랜차이즈 중에서도 숱하게 찾아볼 수 있다.

우리가 평소 이용하는 음식점 중에도 널렸다.

'그것을 나쁘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지.'

사모펀드를 아는 사람일수록 경기를 일으킨다.

사모펀드가 인수했다고?

나 그 식당 안 갈래!

원가율 때문이다.

이익을 내는 가장 손 쉬운 방법이 음식 메뉴를 창렬화시키는 것이다.

심한 곳은 창렬이형이 배우기도 하고, 협업하기도 한다.

그렇게 나쁜 이미지도 있지만.

"식당 가서 먹는 것보다 훨씬 맛있어요."

"싸구려 고긴데?"

"맛있으면 됐음."

그런 건 눈앞의 이익에 급급한 하수들.

크게 수익을 내는 곳은, 나 같은 경우는 퀄리티에도 신경 쓴다.

'진짜로 비싸게 팔려면 소비자랑 Win−Win을 해야 돼.'

사는 사람도 바보가 아니다.

오래 못 갈 기업을 사고 싶어하는 경영자는 없다.

지속 가능한 수익 구조.

조리법을 개선하고, 경영 효율성을 높여 이윤을 극대화한다.

우물우물!

지금 이 스테이크처럼 말이다.

싼 재료로도 높은 수준의 맛을 낼 수 있다.

'여기에 데코레이션 좀 하고, 그럴 듯한 이름 붙이면 불티나게 나가지.'

사모펀드에서 일했던 경험.

나라는 투자자를 한 단계 성장시켜줬다.

여자를 꼬시는 데도 쏠쏠하다.

요리를 만들어주는 남자는 점수가 높다.

꼴꼴꼴~

그리고 술.

바늘 가는데 실 따라가듯 스테이크에 와인이 없으면 섭하다.

"오 와인."

"마실래?"

"마셔보고 싶었어요."

분위기 만들기에도 좋다.

고급진 술만큼 직빵인 아이템이 없다.

'실패하기 쉬운 방법이기도 하지.'

와인은 알면 알수록 어려운 술이다.

초보자가 감으로 대충 고르면 대개 실패.

특히 레드 와인은 호불호를 많이 탄다.

막연한 이미지와는 맛이 많이 다르다.

"어때?"

"생각했던 것처럼 달진 않은데……."

"별로야?"

"그래도 괜찮은 듯?"

떫고, 쓰고, 시고 무슨 맛인지 모르겠다.

설사 좋은 와인이라고 해도 마찬가지다.

'와인 소믈리에 같은 직업이 괜히 있는 게 아니지.'

최소 년단위의 시간을 두고 맛을 알아가야 한다.

굉장히 귀찮은 술이다.

꿀꺽!

하지만 모든 와인이 그런 건 아니다.

초심자도 즐길 수 있는 부류가 있다.

건조 와인.

포도를 자연 건조시켜 쓰는 공법이다.

당도가 응축된다.

'잔당감이 있어서.'

결과물인 와인에도 약간의 당분이 남는다.

느끼기 힘든 미약한 수준이지만.

"자세히 음미해 보니까 과실향도 펑펑 터지고 맛있는데요?"

"건포도 맛 나지?"

"맞다. 건포도!"

편하게 마시는데 도움을 준다.

와인 경험이 없는 초심자도 꿀떡꿀떡 넘긴다.

'커피 못 마시는 사람도 시럽 조금 타면 잘 마시는 것처럼.'

맛도 직관적이다.

누가 마셔도 포도맛이 난다는 사실을 느낄 수 있다.

꿀꺽!

분위기와 맛.

고작 두 마리의 토끼를 잡으려고 이런 대준비를 했을 리 없다.

'그렇게 마시다간 취할 텐데.'

발효주는 과일, 곡물의 당분을 발효시켜 만든다.

즉, 당도가 높을수록 도수도 높다.

일반 와인은 12도 가량.

건조 와인은 그보다 높은 14도부터 시작을 하고.

꿀꺽! 꿀꺽!

약간의 당분이 도수를 잊게 만든다.

일종의 앉은뱅이 술이라고도 할 수 있다.

"한 잔 더!"

"혹시 더 맛있게 먹는 방법 있는 거 알아?"

"?"

"고기랑 같이 입안에서 씹어봐."

부채살은 육향이 진하다.

베이스팅과 레스팅으로 육즙을 가뒀으니 더 그럴 것이다.

그 진함에서 꿀리지 않는다.

와인과 함께 씹으면 새로운 맛의 지평선이 열린다.

우물우물!

꿀꺽!

수현이 스테이크 한 점을 입에 가져간다.

그리고 와인과 함께 입안에서 음미한다.

"진짜네?"

"그치? 그게 마리아주라는 거야."

"오~ 들어본 적 있음!"

단순히 잘 넘어가는 술이라면 여러가지 있다.

칵테일, 포트 와인 기타 등등.

그런 것들은 물린다.

맛이 달고, 자기 주장이 강해서 음식과 안 어울린다.

'와인이 괜히 여자 꼬시는 술이 아니지.'

아주 자연스럽게 먹이는 게 가능하다.

거의 소주에 근접하는 독한 술을 말이다.

수현의 뺨이 발그스름하다.

와인잔을 바라보는 눈동자도 어딘가 초점이 흐릿하다.

"좀 취한 거 아니야?"

"아직 괜찮은뎅. 으응?"

바닥에 펴는 간이 식탁에 앉아있었다.

일어난 수현이 휘청거린다.

스스로도 놀란 모양.

이 정도로 취했을 거라고 생각을 하지 못한 것이다.

털썩!

부축해서 침대 위에 앉힌다.

취하게 하려다가 진짜 곯아떨어지면.

'본말전도잖아.'

눈이 반쯤 풀려있다.

하지만 의식은 있는 듯 나를 똑바로 쳐다본다.

"졸려?"

"그 정도로 취한 건 아닌데……."

"그럼 앉아서 이야기 좀 할까?"

안색을 봐주는 척 볼을 매만진다.

살짝 땀이 난 듯 촉촉하다.

'미끈미끈하네.'

혜리와 달리 젖살이 없다.

날카로운 턱선이 손끝을 타고 느껴진다.

"와인 맛있었어?"

"네. 고기도……."

"가장 맛있게 먹는 방법에 대해 말을 안 해준 거 같은데."

"?"

여자.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