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6화 (46/450)

일반인이 아닌 투자자의 시점으로 세계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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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계의 진실.

시내를 한 바퀴 돌아다니기만 해도 알 수 있는 사실이다.

"여기는 빵집이야. 밀가루 시세 조작을 위한 점조직의 일부지."

"……."

첫 번째로 도착한 장소.

동네에 하나씩은 있는 파리에서 유래된 유명 빵집이다.

'여기가 얼마나 무서운 장소인지 알고 이용하는 사람은 많지 않지.'

파리에는 없으면서 한국에는 왜 이렇게 많은 걸까?

그렇게 드글대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는 것이다.

그 실상은 굉장히 잔인하다.

우리나라 빵값을 올리고, 밀가루의 가격까지 마음대로 쥐락펴락한다.

"여기는 치킨집이야. 전 국민을 대상으로 닭 가격은 원래 비싼 거라고 세뇌하는 곳이지."

"……."

두 번째는 종교 시설이다.

힌두교는 소, 무슬림은 돼지, 한국인은 닭으로 난리인 데에도 이유가 따른다.

'치느님, 치느님 거리면서 신으로 모시는 것도 일종의 사이비라고 봐야지.'

이 전 국민적인 세뇌 작업은 실로 역사가 깊으며 오늘날까지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전국 각지에 5만여 개의 점포가 협조한다.

"여기는 카페야. 오피녀는 반드시 비싼 커피를 마셔야 된다고 가스라이팅해서 김치녀를 육성하는 업소지."

"님아."

"잠깐 여기서 말하는 오피녀는 오피방이 아니라 Office Lady의 준말로."

"농담 들으려고 온 거 아닌데."

대학가 주변을 돌아다니고 있다.

어디서 배울 수 없는 귀한 지식을 가르쳐주고 있는데.

"진짜 사짜임?"

"대체 뭐가!"

"아까부터 이상한 농담만 하고 있잖아요."

"이보다 어떻게 더 뭘?"

수현이 나의 설명에 불평을 부린다.

내가 농담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지.'

이래 봬도 친절하게 알려주고 있다.

아주 간략하게 핵심만 추려서 말이다.

"알았어. 밥이라도 먹으러 가자. 내가 부처의 마음을 가지고 천천히 해설해줄게."

"오키."

"뭐 먹고 싶은데?"

"음……, 파스타?"

골똘히 고민하는 척하더니 흔해 빠진 대답을 내놓는다.

역시 여대생다운 선택이다.

'오히려 좋아.'

안 그래도 하고 싶은 말이 있었다.

미오지오(Miozio).

가까운 이탈리안 레스토랑에 들어간다.

"일단은 제가 물어본 거니까 제가 살게요."

"당연하지."

"아, 네."

딱히 입맛에 맞진 않는다.

현지에서 먹어도 맛없는 걸 굳이 한국까지 와서 먹어야 돼?

'본인이 산다는데 뭐 어떡해.'

하지만 가르침을 주기에는 좋다.

메뉴판에서 적당히 음식을 시킨다.

『메뉴판』

까르보나라 9.0

로제 빠네 감베로니 13.5

체다 볼로네제 파스타 11.5

아마트리치아나 9.0

닭고기 버섯 크림 리조또 9.5

로제 해산물 리조또 11.0

"리조또도 먹고 싶은데."

"난 파스타."

"반반 하실?"

"그래. 난 그 아마테라스인지 아마트리치아나인지 뭔지 시킬게."

이름도 드럽게 어려워.

한국에서 한국어도 아니고, 영어도 아닌 걸 대체 왜 쓰는지.

'거기에는 당연히 이유가 있다는 거지.'

이윽고 음식이 나온다.

별거 없는 토마토 파스타다.

음식도 나왔으니 슬슬 강의를 시작한다.

"여기는 이탈리안 레스토랑이야. 골 빈 년들을 타겟팅한 고급화 마케팅으로 폭리를 취하는 음식점이지."

"……."

산 지식을 알려준다.

무심코 지나칠 수 있는 이 세계의 진실 말해줬을 뿐인데.

"이런 말 안 하려고 했는데."

"그럼 하지 마."

"얻어먹으면서 밥맛 떨어지는 소리하니까 죽탱이 치고 싶음."

"다행이다 옆자리가 아니어서. 팔 안 닿지?"

뭐 씹은 표정으로 쳐다본다.

안 그래도 무뚝뚝한 녀석이 한기를 풀풀 풍기니 무섭다.

진심으로 화가 난 듯 심각한 분위기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광경.

"왜 쳐다 봄."

"멍청하기 그지없다는 생각이 들어서."

"……진심 맞을래요?"

"숟가락은 아픈데."

요즘 애들 생각은 참 알 수가 없다.

들고 있는 숟가락을 부들부들 떤다.

거꾸로 잡는 게 불안하던 차.

"저는 오빠한테 진지하게 물어봤던 거거든요."

"그런데?"

"소라한테 했던 것처럼 사짜짓만 하려는 거죠?"

"나도 최선을 다하고 있어. 일반인의 빈약한 머리에 어떻게 하면 이해를 시킬지."

"!!"

미국에서 오래 살다 보니 한국 사람들과 대화할 때 가끔씩 의사소통이 맞지 않을 때가 있다.

'사실 미국에서도 그러긴 했는데.'

오직 진실만을 말하는 나의 화법이 마음에 안 든다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

실로 안타까운 일이다.

"됐어요. 저 그만 먹을래요."

"대체 왜 화를 내는 거야. 밥맛 떨어지게."

"밥맛 떨어지는 소리 한 건 그쪽이거든요?"

가벼운 말투만 사용하다가 갑자기 신명조로 말을 한다.

자기 딴에는 나름 심각한 모양이다.

'일반인에 맞춘 해설은 귀찮은데.'

이래서 다르다는 것이다.

일반인과 투자자.

수현의 오해를 바로잡아줘야 할 듯싶다.

"너 오늘 한가하냐?"

"방금 전까진 한가했는데 지금은 모르겠네요."

"시간 썩어나면 따라와."

"어딜요."

"우리집."

내가, 이 내가 강의를 해주는 것은 흔한 일이 아니다.

만약 한다면 월가에서도 줄을 선다.

재능 기부.

그것도 어느 정도여야 하는데 오랜만에 몸까지 움직여야 하다니.

"오빠 집이요……?"

"그럼 뭐 본가까지 갈래? 2시간 거리인데?"

"뭐, 잠깐 정도면."

현실을 재료까지 보여준다.

* * *

치이익……!

리조또.

이탈리아식 볶음밥이다.

조리법이 매우 간단한 만큼 재료의 질에 크게 좌우된다.

"음식 만들어 먹어요?"

"이 정도는 기본이지."

"그래도 맛은……, 아까 그 음식점이 나을 것 같은데."

직접 만들고 있다.

뒤에서 지켜보는 수현의 지적이 일리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맛은 그렇겠지.'

요리는 요리사의 솜씨가 전부가 아니다.

길고 짧은 것은 대봐야 아는 것이다.

팬에 올리브유를 두르고 마늘과 양파를 볶는다.

노란색으로 변할랑 말랑 할 즈음에.

치이익……!

버터.

충분히 녹아 맑고 투명하게 변하면 그 위로 쌀을 투하한다.

'부숴지지 않게 조심히.'

녹인 버터에 적시듯 빠져들게 만든다.

미리 강불로 올려두어 높은 온도다.

쌀알을 살살 저어 코팅하듯 볶는다.

그리고 물.

아니, 와인을 넣는 편이 맛있다.

"술 넣는 거임?"

"어."

"포도주 넣으면 너무 달지 않음?"

"와인이 달다고……?"

'소주가 달다는 것 이후 역대급 홈런이구만.'

인생이 쓰면 소주가 달 수도 있지.

근데 인생이 쓰다고 와인까지 달진 않아.

누가 스무 살 여대생 아니랄까 봐 모르는 것도 많다.

수현도 아직 애다.

꼴꼴꼴~

피노 그리 품종.

바디감이 있고, 산미가 높은 녀석을 쓴다.

겨우 리조또용으로 쓰기에는 아까운 녀석이지만.

'교육용이라 쳐야지.'

우려낸다.

주걱으로 휘휘 저어서 쌀알의 전분을 뽑는다.

맛있는 리조또가 만들어지는 과정이다.

이걸로 끝내긴 아쉬우니 한 가지.

또르르~

화이트 발사믹 식초를 숨은 맛으로 입힌다.

조금 더 젓자 리조또가 완성된다.

탁! 탁!

접시 위에 담는다.

두 번째 프라이팬에서 노르스름하게 볶은 버섯과 냉동 새우도 얹는다.

파마산 치즈와 파슬리로 마무리.

눈이 내리듯 전체에 걸쳐 균등하게 뿌리는 게 포인트다.

"잡숴봐."

"오……, 외관은 그럴 듯함."

"중요한 건 맛이지."

"그걸 댁이 말함?"

보기 좋은 떡이 치기도 좋은 법이다.

토핑이라고 할 수 있는 버섯과 새우를 가장자리에 올렸다.

심미적인 효과도 분명히 있다.

겨우 그것을 노리고 귀찮은 수작업을 거친 건 아니다.

리조토를 한 입 물은 수현의 눈이 큼지막하게 떠진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임팩트는 분명 있을 것이다.

'리조또는 결국 쌀알에 맛이 얼마나 잘 배어들게 만드냐가 관건인 요리라.'

이탈리아식 볶음밥.

당연하게도 한국식 볶음밥과는 만드는 과정도, 지향하는 바도 다르다.

"와 이거 맛이."

"맛있지?"

"별거 없는 거 같은데."

"……."

"씹었을 때 맛이 뭔가 펑펑 터진달까?"

잘못 만든 리조또는 무슨 죽처럼 되어있다.

하지만 잘 만든 리조또는.

'식감과 깊은 맛 두 가지를 한 번에 잡지.'

쌀알이 입안에서 부숴질 때마다 흘러나온다.

와인과 식초가 만드는 고급스러운 산미.

따로 볶은 버섯과 새우는 진한 맛을 더해준다.

취향대로 얹어서 먹으면 된다.

와구와구!

기분이 나빠서 밥을 못 먹겠다는 처자가 배는 고픈가 보다.

열심히 입에 쑤셔 넣는다.

자신이 게걸스럽게 먹고 있었다는 걸 뒤늦게 눈치챈 듯 이쪽을 본다.

눈빛에는 패배감이 서려있다.

"먹을 만함."

"두 번 먹을 만하면 접시까지 먹겠네."

"누구 때문에 점심을 못 먹어서 그렇거든요?"

절반을 넘게 먹고 나서야 먹는 속도를 조절한다.

음미할 가치가 있는 음식이다.

"저기요."

"뭐."

"요리사 자격증이라도 있어요?"

"아니."

"근데……, 왜 이렇게 잘 만듦?"

어떤 해상 레스토랑의 요리사라면 '빌어먹게 맛있지?' 하고 끝낼 것이다.

하지만 나는 요리사도 아니거니와.

'중요한 건 왜지 왜.'

자존심 센 손님을 납득시킬 만한 실력.

내가 무슨 소년 만화 주인공도 아니고 그런 걸 가지고 있을 리가 없다.

"조금 특별한 쌀을 썼지."

"비싼 거에요?"

"아니, 사료용으로 파는 묵은 쌀 있어. kg당 200원짜리."

"……."

굉장히 오래된 쌀.

쩍쩍 갈라지고 퀴퀴한 냄새까지 난다.

사람들이 햅쌀을 고집해서 먹는 이유가 있다.

'근데 그게 리조또에서는 이야기가 다르다는 거지.'

쩍쩍 갈라진 틈새로 맛이 배어든다.

굳이 열심히 젓지 않아도 전분이 자연스럽게 빠져 나온다.

"이탈리아에서는 이렇게 묵은 쌀을 리조또용 쌀이라면서 더 비싸게 팔아먹지."

"아, 그래요."

"이걸 듣고도 느끼는 바가 없지?"

"?"

투자자의 시야가 어째서 일반인과 다른지.

사료 좀 먹였다고 똥 씹은 표정으로 있을 때가 아니다.

'어떤 곳에서는 사료고, 어떤 곳에서는 프리미엄 쌀로 대우 받고 있잖아.'

그 어처구니없는 현실.

방금 전 시내를 돌면서 보여줬다.

아니, 레스토랑 가서 먹기까지 했다.

"우리가 먹은 파스타 원가율이 얼마나 될 것 같애?"

"생각해본 적 없는데……. 한 30%?"

"10%도 안돼. 싸게 만들면 5%까지도 내려가지."

"근데 왜 그렇게 비쌈?"

평소에는 신경 안 쓰던 것.

알고 나면 사기 당한 기분이다.

수현의 목청이 높아진다.

그럴 듯한 이름.

그럴 듯한 분위기.

외국 거라고 적당히 씨부리면 소비자들이 끄덕여주기 때문이다.

"너 같은 애들이 사주니까."

"……."

"아휴, 멍청한 년들~ 세상 돈 벌기 쉬운 거지."

어떻게 보면 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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