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5화 (45/450)

"……."

"그래."

고개를 가볍게 끄덕인다.

처음에는 무시하는 줄 알았다.

학과 내에서 익숙한 취급이니까.

알고 보니 원래 그런 성격이다.

친한 혜리나 소라 빼고는 학과생들과도 데면데면하게 지낸다.

'남친도 있고.'

저런 성격에 어떻게 남친을 사귀었을까?

남의 사생활까지 궁금해 할 정도로 나도 한가한 사람이 아닌데.

"왜? 뭐 할 말 있어?"

"……."

"오빠가 커피라도 사줄까?"

"……."

"그건 싫어?"

이런 성격이다.

골키퍼 있다고 골 안 들어가는 게 아니듯 시도는 해보았지만 영 성과가 없다.

'예쁘긴 예뻐서.'

타입이 다르다.

혜리가 귀여운 후배 타입이라면, 수현은 선배가 어울리는 느낌.

키도 더 크고 슬렌더하다.

외관으로는 더 미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니, 왜? 나 꺼지라고?"

"……."

"나 갈 데 없어. 할 말 있으면 여기 앉아."

하지만 여자는 외모가 전부가 아니다.

관계를 할 때 반응과 떡감이 좋아야 한다.

'혜리는 그런 면에서 참 좋지.'

젖살도 채 빠지지 않았다.

뜨겁게 달아오르면 무슨 마시멜로를 안고 있는 것 같다.

조그마한 몸.

꽉 안고 있을 때 정복감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떡감이 쥑여준다.

슬렌더한 애들은 침대에서는 다소 아쉽다.

하지만 그런 체형의 여자들이 성욕이 범상찮다.

'흐응……."

"왜. 무슨 고민 있니?"

"안 만져요?"

"뭘?"

"소라는 만지던데."

"……."

눈치도.

혹시 무언가 알아서는 안되는 사실을 알게 된 걸지도 모른다.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는 걸~.'

"저쪽."

"어?"

"창문에서 다 보임."

"……."

재미를 보고 있던 것.

관전자가 있었던 모양이다.

'초대녀는 처음이라.'

심히 당황스럽다.

그래도 당사자가 거부 반응을 내비치지 않았다.

"브라 만졌죠?"

"아니, 무거울까 봐……."

"살은 엄청 부드러운데. 손가락이 막 파묻혀서."

"만져봤어?!"

세상 모든 일은 안 들키면 그만이다.

한국 증권사들만 해도 금융 범죄를 밥 먹듯이 저지르는데 기사 하나 뜨지 않는다.

'내가 그 정도로 심각한 짓을 한 것도 아니고.'

기브&테이크.

가는 것이 있으니 오는 것을 받은 것이다.

잘 안 줘서 조금 강제로 받은 느낌은 있지만.

"브라가 딱딱해서 못 느끼는 거지 안쪽은 민감함."

"오."

"조금만 만지면 야한 신음을 내는데……."

"그리고?"

"만진 거 맞네요."

"크흠!"

아주 켕길 만한 짓은 아니다.

소라도 성희롱 당하는 거 알면서 엮여 오고 있으니까.

'가슴이 뒤지게 커서 둔감한 줄 알았지.'

직접 만지는 건 아웃인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나도 안 들키는 선에서 하고 있었다.

"흐응……."

"왜? 설마 이르게?"

"노노, 그냥."

"그냥?"

"사짜 느낌 나서."

"……."

본인이 알면 뭐라 뭐라 짜증을 내긴 할 것이다.

그리고 가드가 올라가겠지.

'재미 보기 힘들어지잖아.'

나로서는 바라지 않는 상황.

수현도 딱히 고자질에 목적이 있는 건 아니었다.

"가짜로 알려주면서 꼬시는 거 아님?"

"야!"

"?"

"다른 건 몰라도 실력은 진짜야."

"왜 솔직함."

주식.

관심 있는 사람은 많다.

의외로 학생들 중에도 적지 않게 있다.

'불로소득이라고 생각하는 애들이 있어서.'

이해도 된다.

청년층은 정상적으로 일해서는 내 집 마련을 할 수 없는 세대다.

즉, 소득+α가 필요.

투자만큼 현실적인 해결책이 없다.

'라고 생각하는 건 비약이긴 하지.'

그 정도로 깊은 생각을 하는 스무 살이 있을까?

수현이라면 할지도 모른다.

동기 애들보다 어른스러운 면이 있다.

말을 걸어온 이유일 것이다.

"사짜 같은데."

"아니라니까!"

"성희롱하는 전문가가 어딨음."

"있어! 니가 이 바닥을 몰라서 그래."

접점이 없었다.

주식에 영 관심이 없어.

아니, 무슨 생각을 하는지도 모르겠다.

약간 신비주의.

그런 수현과 가깝게 지낼 수 있다면 환영하는 바이다.

「새로운 고객 확보는 바에서 여자를 꼬시는 것과 같다.」− 켄 피셔(Kenneth Fisher)

실제로 중요한 부분이다.

월가의 레전드 켄 피셔가 강조하는 이유가 있다.

"왜 있음?"

"일종의 관행 같은 거야. 설명을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관록이 묻어 나온 거지."

"말만 들어서는 미친 업계 같은데……."

"그건 니가 잘못된 선입견으로 오해를 하는 거야."

그 깊은 뜻을 모르고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세계 금융의 안정화를 위해 힘 쓰는 월가인들을 무시하는 처사다.

「여자의 가랑이에 손을 넣었다면 고객 확보에 성공한 것.」− 켄 피셔(Kenneth Fisher)

나도 한 명의 증권인으로서 항상 스스로를 채찍질한다.

더 나은 투자 능력과 성희롱을 할 수 있도록 말이다.

이성과 가까워지는 것.

업계인의 상식에서 비추어봤을 때 지극히 일상적인 업무의 일환이다.

'너무 개씹소리긴 하지.'

내가 말하고도 어이가 없지만 일정 부분은 사실이다.

그만큼 여자와 주식은 뗄래야 뗄 수가 없다.

긴장되는 기류.

막 스무 살인 떼 타지 않은 여대생이 이해해줄까 싶은데.

"하하하!"

"한 명의 투자 전문가로서 고객 응대에 최선을 다했을 뿐이야."

"그게 뭐임 진짜."

박장대소를 하며 웃는다.

수현이 웃는 모습.

그러고 보면 미소 짓는 것조차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무뚝뚝이 패시브라.'

한참을 웃어 재낀다.

나의 임기응변도 보람이 없지는 않았던 것 같다.

"재밌었으니 봐줌."

"정말?"

"한 가지."

"어?"

"주식이 뭔지 알려주면."

설득과는 별개.

자신의 절친에 대한 일이니 엄격한 기준을 가질 수 있다.

그런 일이 아니었다.

순수한 의문에 가깝다.

'충분히 생길 수 있는 궁금증이지.'

수현은 소라와 친하다.

하지만 소라의 꿈을 긍정한 적은 없다.

트레이더.

아니, 주식.

대체 뭐 하는 건지 모르겠어.

"주식 그거."

"응?"

"본질적으로 그냥 도박 아님?"

"……."

굉장히 옳은 소리다.

경제 이론이 어쩌고저쩌고 하지만, 경제학자들이 깡통이나 차고 있는 것 보면.

'무슨 소용이 있냐는 거지.'

합리적인 결론이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하지만 틀렸다.

"주식을 왜 하는지도 모르겠고, 뭐가 그리 재밌는지도 모르겠음."

"음……."

"아님?"

"도박성이 있는 건 맞아. 하지만 재미가 없다는 건 동의 못해."

주식의 재미.

여러가지가 있다.

나 같은 경우 가장 재미있는 부분은.

'남들이 다 No라고 할 때, Yes를 외칠 수 있는 부분이지.'

만약 다른 직업이었다면 그 자체만으로도 폐급 인증이다.

집단의 움직임을 방해할 수 있다.

롤로 따지면 한타.

지금 싸우면 안되는데?

아무리 그 말이 옳아도 나머지 4명이 이니시를 걸면 해야 한다.

주식에서는 오히려 좋다.

다수가 확신을 가지고 베팅 해줄수록 역베도 크게 터지기 때문이다.

그때의 쾌감은 이루어 형용하기 힘들다

마약 이상의 도파민이 뇌를 짜릿하게 자극한다.

'입으로만 떠드는 전문가들 엿 맥이는 재미도 쏠쏠하고.'

롤로 따지면 와디×, 좁× 이런 애들.

분석이랍시고, 예측이랍시고 하는데 맞는 꼬라지를 본 적이 없다.

이 팀은 이래서 안되고 저 팀은 저래서 안된다는 등.

매 시즌마다 논란만 일으키지 알맹이는 없다.

'그래서 맞았냐고? 틀릴 때마다 손가락 하나씩 걸 수 있냐고?'

전문가라면 그 정도의 리스크는 짊어져야 한다.

짝귀가 괜히 도박 업계에서 이름을 날리는 게 아니다.

증권가에서도 흔한 일.

대표적인 저점 신호로 애널리스트가 총 맞고 뒤지는 사건이 있다.

농담이 아니라 정말 신뢰도가 높다.

베어마켓 랠리의 저점마다 한 명씩 죽어나간다.

「명성을 쌓는 데는 20년이란 세월이 걸리며, 명성을 무너뜨리는 데는 채 5분도 걸리지 않는다.」− 워렌 버핏(Warren Buffett)

죽지 않더라도 명성은 잃는다.

예측 한 번 잘못하면 평생 먹을 욕을 다 먹게 된다.

하지만 다른 업계는 유도리가 적용되어 전문가가 틀려도 봐준다.

클템은 클펠레 컨셉이기도 하다.

'증권가는 얄짤없어.'

그렇게 전설들을 무너뜨리며 유명해지는 재미.

수현이 말하는 재미는 어느 쪽도 아닐 것이다.

"돈이 벌리는데?

"돈이 벌리면 재미는 있겠지만 꼭 주식으로 벌 필요는 없음."

"맞아. 노동도 신성한 거지."

"그리고 잃을 수도 있음."

TV 프로그램으로 따지면 예능과 다큐.

예능은 정줄을 놓고 봐도 순수하게 즐겁다.

다큐는 이해를 해가며 봐야 한다.

어렵고, 난해하며 잃을 가능성까지 있는 주식은.

'삶에서 반드시 필요한 요소는 아니지.'

세상에 재밌는 일이 주식만 있는 것도 아니고 말이다.

하지만 역시 틀렸다.

"돈 때문이면 이해함."

"그건 아니야. 세상에 돈을 벌 수 있는 일은 많지."

"그럼?"

"하지만 세상을 이해할 수 있는 일은 주식 뿐이야."

조금 진지한 이야기가 되었다.

그렇다면 나도 받아주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업계인으로서는 그 편이 기뻐.'

주식을 돈으로만 접근하면 스트레스도 더 받고, 배우기도 쉽지 않다.

학문이랑 마찬가지.

노력하는 자는 즐기는 자를 이길 수 없다.

주식 자체가 일상 생활에 스며들어야 한다.

내가 돼지열병으로 사료주를 떠올린 것처럼 말이다.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즐기면.

"어느새 주식도 잘해지게 되는 거지."

"그럼?"

"그렇지."

"하루종일 뉴스 보고 신문 보면 노잼 아님?"

"……."

그것이 꼭 골치 아픈 시사에 관심을 가지라는 뜻은 아니다.

멀리 갈 것도 없이.

'길거리만 돌아다녀도 그게 곧 세상이잖아.'

주식의 가장 재밌는 점.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영능력자가 바라보는 세상에는 귀신이 있다.

주식 투자자의 눈에는 이 세계의 진실이 보인다.

"역시 사짜……."

"진짜라니까? 내기 할래?"

"콜."

"알았어. 내가 이 세계의 진실을 보여줄게."

일말의 과장도 없는 사실이다.

주식 투자자가 되면 하루하루를 질릴 틈도 없이 보낼 수 있다.

항상 무뚝뚝하기만 하던 수현.

처음으로 내 이야기에 관심을 가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걸 어디서 볼 수 있는데요?"

"밖에 나가면 보이지."

"지구 밖?"

"……아니, 시내."

인식.

그 하나만으로도 많은 것이 바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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