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4화 (44/450)

유전적 다양성이 있을 수도 있다.

그런 부분에 있어서 문제가 생겼다.

"할머니가 시골에서 돼지 키우시고 계시거든요."

"암퇘지?"

"암퇘지도 있죠. 무슨 병 같은 게 돌아서 돼지들이 많이 아픈가 봐요. 할머니랑 통화하는데 속상하다고 하셔서……."

거유 여대생이 암퇘지를 이야기하는 광경.

평소라면 그것만으로도 한 발 뺄 것이다.

하지만 표정이 진지하다.

그냥 하는 소리가 아닌 듯 말 끝마다 작은 한숨을 푹푹 쉰다.

'그렇다면 나도 진지하게 받아주는 게 인지상정이겠지.'

가축에게 병이 돌고 있다.

얼핏 들어봐도 작은 사태가 아니다.

"듣고 있어요?"

"듣고 있지. 빨리 말해봐."

"저도 할머니댁 갈 때마다 돼지들이랑 노는데 이제 못 보게 돼서 슬프고, 할머니 건강도 편찮으신데 악화될까 봐 걱정되고."

"그래서!"

"네?"

"어디가 어떻게 아픈 건데?"

"할머니가요?"

"아니, 돼지가!!"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머릿속에 팍! 하고 떠오르는 게 있었다.

'돼지열병?!'

소라의 말대로 심각한 일이다.

적재적시에 칼 같은 대응을 할 필요성이 있다.

─매수 주문이 체결되었습니다!

"선배 방금 뭐 했어요?"

"어? 잠깐 좀……."

"저랑 이야기하면서 주식 산 거에요?"

"아, 아니. 그게 아니고."

또 눈썹을 찡그리면서 나를 째려본다.

소라의 반응을 보고 판단해야 한다.

'진짠가?'

물론 믿는다.

친애하는 후배를 의심할 만큼 내가 성격이 모나진 않았다.

하지만 돈이 걸려있다.

얼마만큼의 신뢰를 가져도 될지 계산을 해봐야 한다.

"돼지열병이면 굉장히 큰 일이거든."

"그래서 지금 심각하게 말하고 있잖아요."

"전염병이 한 번 돌면 수혜주들이 생기는데……."

'뭐라고요?"

어이가 없다는 듯 노려본다.

경멸의 눈초리.

온몸의 소름이 쫙 돋는 오싹함에서 진심을 보았다.

─매수 주문이 체결되었습니다!

소라의 진심을 받아들여야 한다.

다시 한 번 해당 주식의 매수량을 늘린다.

"선배 진짜 미친 새끼에요?!"

"아니, 잠깐 오해하지 마."

"뭐가 오핸데."

"내가 너를 신뢰하기 때문에 이런 선택을 할 수 있는 거야."

현금으로 사는 게 아니다.

물려있는 주식이 있기 때문이다.

'신용 매수는 신중하게 해야 한단 말이야.'

주식을 담보로 잡는다.

만약 소라가 아니었다면 신용까지 쓰진 않았을 것이다.

"그러니까……, 돼지들이 병 걸렸다는 말을 듣고 주식을 매수했다는 거에요?"

"그래."

"사람이 심각하게 얘기하는데 주식 생각하고 있어요? 진짜 정신병원 안 가고 뭐 해요?"

"진심으로 하는 소리야?"

"농담으로 보이냐?"

가족이 얽힌 일이면 누구라도 민감해진다.

그것이 추측이 아닌 실제 상황이라면 더더욱.

─매수 주문이 체결되었습니다!

항상 이성적이기만 하던 소라다.

저 정도로 발광을 한다면 조금 더 베팅을 해도 될 것 같다.

"야."

"너의 신뢰도가 올라갔어."

"너 진짜 또라이구나? 너 일부러 이러지?"

"하아……."

신용은 2.5배까지 가능하다.

그렇다고 그걸 다 쓸 수는 없는 노릇이다.

내가 신용 매수를 자주 하긴 하지만 그건 몇 날 며칠에 걸쳐 확률을 올린 후다.

지금처럼 당장?

차트와 호가창을 확인할 틈도 없다.

오직 정보 제공자의 신뢰성에 달려있다.

'다 박을까? 근데 돼지열병이 아니라 감기인데 쟤가 생리 부리는 걸 수도 있잖아.'

상황을 파악할 시간이 부족하다.

보고서는 커녕 구두로 들은 정보라니.

혹시 모른다는 생각에 5천만 원만 때려 박았다.

더 사도 될지 고민이 들던 찰나.

─세력님이 기관님을 처치했습니다!

더블 킬!

트리플 킬!

쿼드라 킬!

펜타 킬!

엄청난 속도로 주가가 올라간다.

아니나 다를까 기사가 하나둘 게시되고 있다.

팩트뉴스− 「강원 홍천 돼지농장서 올해 첫 아프리카돼지열병 발생」

한국신문− 「홍천 농장서 아프리카돼지열병 발생…1175마리 살처분」

"아니, 진짜잖아!!"

"뭐요?"

"멱살이라도 잡지 그랬어. 싸대기라도 때리던가! 그럼 내가 풀매수 했지!"

"진짜 또라이……."

"봐봐!"

사회적으로는 큰 문제다.

하지만 증시에서는 일종의 '이벤트'로 분류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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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료』

2,295 ▲215 (+1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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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수혜주들이 있다

대표적으로 사료주들의 주가가 급등한다.

"너 덕분에 500만원 벌었어."

"아이 씨……."

"신용미수 다 박았으면 1억도 넘게 벌었을 거란 말이야!"

"제 기분은 생각도 안 해요?"

"니 기분이 뭔 상관이야!!"

나도 모르게 본심이 나왔다.

하지만 원래 경제라는 것은 피도 눈물도 없다.

'전쟁터에서 총칼이 민간인은 빗겨나가겠냐고.'

마찬가지의 이야기.

경제 이벤트도 우리들의 일상 생활에 영향을 미친다.

"돼지열병이 발생하면……, 사료가 잘 팔린다는 거에요?"

"아니."

"네?"

"몰라."

아닐 수도 있고.

사료주가 오르는 이유는 사람 잔반을 먹이로 준 게 발병의 원인으로 지목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잔반 대신 사료를 줘야 하니 사료 수요가 올라갈 거라는 기대감으로 상승하는 건데.'

실제로 사료 매출이 올라간 적은 없다.

어차피 대부분의 농가가 사료를 쓰고 있다.

잔반을 쓰는 곳은 극소수.

그들이 사료로 바꿔봤자 매출 상승량은 미미하다.

"그럼 왜 오르는 건데요."

"모른다고."

"네?"

"그냥 그렇게 약속이 돼있으니까!"

발렌타인 데이, 화이트 데이, 빼빼로 데이.

사실 다 상술이라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팔린다는 것은 확실하지.'

돼지열병도 같은 맥락이다.

돼지열병이 발생하면 사료주가 상승하게 되어있다.

한국 주식 시장의 불문율 같은 것이다.

각 이벤트마다 오르는 주식들이 존재한다.

"……."

"K−증시 원투 타임 해? 왜 이딴 걸로 놀라?"

"코스피도 놀랍고, 사람이 심각한 이야기하는데 주식 생각하는 선배도 놀랍네요."

"하아~ 증말."

"아 왜요."

"너는 언제쯤 돼야 올챙이를 벗어날래?"

주식은 주식!

현실은 현실!

감성적인 생각에 젖어있으면 땡전 한 푼 벌 수 없다.

'젖어도 되는 것은 가랑이 뿐이야.'

그러한 사실을 모르고 있다.

아직 경험도 없고, 주식 시장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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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b 발신]

이*욱님, 5,000,000원 정상 이체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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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소라에게 가르쳐준다.

돈은, 자본주의는 꼭 나쁜 것만이 아니라고.

"뭐, 뭐에요?"

"할머니 힘드신데 보태 써."

"저 이런 큰 돈 받을 수 없는데……."

"할머니 덕분에 번 돈이잖아. 이 정도는 하는 게 사람 도리지."

"정말 받아도 돼요?"

"너는 선배를 돈에 미친 속물로 만들려는 거냐?"

"아니었구나."

실제로 그러하다.

기부를 해야 합니다!

떠드는 사람만 많지 정작 큰 돈을 넣는 사람은 대부분 경제인들이다.

'나도 소싯적 기부 많이 했지.'

여러가지 이해 관계가 얽혀있기는 해도 한 것은 사실이다.

특히 불교계는 내가 먹여 살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도 살래."

"뭐?"

"나도 산다고. 돈 벌어서 할머니 도와드릴 거야."

"기특한 손녀네."

삐진 소라.

눈도 안 마주친 채 말을 뱉는다.

방금 전까지 화를 내고 있었으니 무안할 만하다.

'약간 불속성 효자 같은 느낌도 있긴 한데.'

세상 일은 결과만 좋으면 만사 오케이다.

할머니가 일종의 헷징을 걸어 놨다고 봐도 되겠지.

"사료주 근데……, 너무 올랐는데."

"그럴 땐 다른 걸 사야지."

"또 무슨 이상한 거."

"이건 정상적인 거야."

실제로 헤지 펀드의 상품도 그런 식으로 연결돼있다.

돼지열병으로 손해를 보면 반대쪽에서.

'이득을 챙겨 원금을 보존시키는 식.'

돼지가 살처분된다.

돼지고기 가격이 오른다.

그렇게 되면 이득을 보는 경쟁 업체들이 생긴다.

"대체육주가 수혜를 보는 거지."

"아……, 구체적으로는요?"

"닭고기라던가, 소고기라던가 뭐 많잖아."

이 경우는 실제로 매출에 영향을 미친다.

소비자들이 돼지고기가 비싸지면 닭고기를 사는 것이다.

'하림, 마니커, 우리손에프앤지 등.'

손흥민 관련주로 산 적이 있지만, 사실은 육류를 취급하는 회사다.

현실 투자를 가르쳐준다.

* * *

"왜 내 것만 안 올라요. 다른 거 다 오르는데."

"너 손흥민 못 믿어?"

"아, 믿긴 믿는데 주가가 올라야지!"

한국경제관 뒤편.

우거진 나무와 잔잔한 호수가 매력적인 공간에 남녀 둘이 앉아있다.

한 폭의 그림과도 같다.

여성쪽이 풀버프를 해준 덕이다.

하지만 둘 사이에 오고 가는 대화는.

"와, 와! 올라요! 올라요! 어떡하죠?"

"어떡하긴 외쳐!"

"뭐라고요?"

"우리손!!"

시트콤.

소란스럽다는 사실을 자기들만 모르고 있다.

지나가던 행인들이 키득키득대며 쳐다보고 간다.

'울다가 웃다가 정신이 없네…….'

수현도 그중 하나.

꽤 오랜 시간 지켜보고 있다.

근처 건물의 창문에서 내려다보고 있다.

어느샌가 강의보다 두 사람의 대화가 신경 쓰인다.

주식 이야기라니?

딱 봐도 지루하고 따분할 것 같다.

하지만 소라의 반응은 그와 정반대였다.

""우리손~~!!!""

뭐가 그리 좋은지 손흥민 선수를 응원하고 있다.

어떻게 보면 웃긴 광경이지만.

'느그 손은 엄한데 가있네.'

행인들에게는 안 보일 것이다.

건물 위에서 내려다보는 수현의 눈은 피할 수 없다.

은근슬쩍 잡고 있는 허리.

그 위의 둔턱까지 살살 만지작거리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워낙 크다.

같은 여자이기 때문에 안다.

브라가 두꺼워서 느끼지 못하는 거겠지.

'흐응~ 꼰지를까? 아니면…….'

수현은 찬욱이 알려주는 주식에 관심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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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식 교육.

사실 내 입장에서는 별로 이득 볼 것은 없지만.

'이게 소위 말하는 아조씨랑 비밀친구 한다는 거겠지.'

소소하게 재미 보는 부분은 있다.

가르쳐주면서 자연스럽게 스킨십을 한다.

철벽인 소라도 주식 얘기를 할 때만큼은 무방비가 된다.

최근 즐기고 있는 일상인데.

'음?'

경제관 안에서 누군가 나온다.

지나가는 행인이라고 생각하기엔 낯이 익다.

수현.

나를 향해 걸어오고 있다.

눈이 마주치자 가볍게 손을 위로 흔든다.

'뭐.'

콩고물에 매료된 동아리 애들을 제외하면 유일하게 친분이 있는 학과생이다.

조별 과제 이후로 말이다.

얼굴도 반반하다.

학과 내 몇 안되는 A급.

하지만 딱히 친하다고는 보기 힘들다.

"밥 먹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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