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3화 (43/450)

─매수 주문이 체결되었습니다!

야스를 산다.

야스를 산다고 하니 조건이나 스폰 같은 느낌도 들지만 그런 건 아니다.

"너 정말……."

"왜요? 사란 대로 샀는데."

"야스는 무조건 69, 74, 892개 단위로 사는 거야."

"왜요?"

소라 성격에 야스가 무엇인지 몰랐을 것이다.

어디서 알았는지는 짐작이 간다.

추천해준 커뮤니티 사이트에서 봤겠지.

하지만 정작 중요한 건 모르고 있다.

'장난으로 하는 소리가 아니야.'

불교에서는 번뇌를 끊기 위해 108번의 절을 올린다.

기독교에는 12명의 사도가 있다.

연필 한 다스는 12개, 담배 1보루는 10갑, 달걀 1판은 30개.

마찬가지로 야스도.

─매수 주문이 체결되었습니다!

로망.

하고 싶은 행위.

염원을 담아서 빌다 보면 그 뜻이 하늘에는 안 닿아도.

─개미가 적을 처치했습니다!

개미가 미쳐 날뛰고 있습니다!

매수자들에게는 닿을 수 있다.

이름도 나이도 모르는 어느 누군가들이 호응을 한다.

'We are the world!'

싱싱한 거유 여대생이 샀으니 그럴 만하다.

물론 그걸 알고 사진 않았겠지만.

"와, 와 막 올라요!"

"빨리 팔아. 단기 급등이잖아."

"오케이 매도."

주가가 오르는 건 사실.

아주 엄청난 수익은 아니어도 그럭저럭 짭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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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소라님의 계좌』

야스│243주│+1.57%

평가 손익: +61,2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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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과 1분만에 일어난 일 치고 말이다.

시장가로 매도했으니 약 5만 원의 수익을 거둔다.

'1분만에 5만원. 시급으로 따지면 300만원.'

물론 그렇게 단순 계산할 수 있는 게 아니지만 기분은 확실히 좋다.

돈이 복사가 되네?

야스로 따면 기분이 배로 좋다.

기분이 꿀꿀한 일이 있을 때마다 나는 야스를 산다.

"예!"

"예아!"

"예아는 뭐야?

"그런 게 있어요."

"이 맛에 야스 하는 거야. 알겠어?"

야스의 참맛을 깨달은 소라가 자신도 모르게 소리를 지른다.

처음 맛보는 쾌감.

민감한 몸 구석구석에 울릴 것이다.

그렇게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다 보니.

"크흠!"

교수님이 헛기침을 내뱉는다.

나이가 나이라 호흡 기관에 문제가 있으신 모양이다.

아니, 명백히 우리를 의식했다.

나는 몰라도 소라는 모범생이라는 이미지가 있으니까.

"야스?"

"설마……."

"수업 시간에 야동이라도 봤나."

한국 학생들은 수업의 흐름을 끊은 학생에게 눈치를 주는 이상한 습관이 있다.

시선이 쏟아진다.

대체 무슨 상황인지.

뒤늦게 이해를 한 소라의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른다.

"소라의 야스에 관심이 있는 학생들이 많나 보네."

"무슨 소리 하는 거에요!"

"무슨 소리긴. 너 방금까지 야스 봤잖아."

":#@^#!"

간만에 신선한 반응을 보인다

역시 소라는 아직 꽉 막혀있는 쪽이다.

'여하튼.'

대학 생활.

최근 들어 즐길 만해졌다.

소라 놀리는 재미도 있고, 동아리도 나름의 수확이 있다.

아직은 약소 동아리지만 키워나가면 될 일이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 * *

대학교.

학과 내에서 일어나는 소란은 뭐든지 부풀려지기 마련이다.

"그거 들었어?"

"그거라고 하면 아냐……."

"소라 있잖아 소라. 윤소라!"

유명인에 대한 것이라면 더더욱.

신입생 수석으로 들어온 소라를 모르는 학과생은 없다.

뛰어난 성적.

눈에 띄는 외모.

자신의 목표에 대한 당찬 포부까지.

가히 모범생의 표본과도 같다.

그랬던 그녀가 조금 변했다?

"수업 시간에 야동 봤다더라."

"소라가……?"

"에이, 설마."

"진짜야. 들은 애들이 한둘이 아니야!"

학과생들의 가십거리가 될 만도 하다.

평소 그녀의 이미지를 생각한다면 있을 수 없는 일.

하지만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날 리 없다.

직접 목격한 사람이 있는 사건이거니와.

"그 선배가 꼬드겼겠지."

"빼박."

"소라 요즘 왜 이상한 선배랑 노는 거야?"

전조는 있었다.

최근 그녀의 교우 관계에 극적인 변화가 생긴 것이다.

이찬욱.

경제학과 교수들을 뒤집어 놓았다.

일부 추종하는 학생들이 있기는 하지만.

"주식은 잘하잖아?"

"진짜 잘하는지 아닌지 어떻게 알아."

"맞아. 입으로만 떠드는 허당일 수도 있어."

"뺀질거리게 생겨 가지고."

절대 다수의 학생들은 좋은 감정을 가질 수가 없다.

한국 사회는 보수적이다.

상하 관계가 확실하고, 집단 내 위계 질서가 있다.

그러한 원칙을 보란 듯이 무시한다.

능력이 있다고 하더라도 배척 당한다.

찬욱의 평판이 개차반인 것은 필연이었다.

"둘이 사귀는 걸 수도 있지."

"말도 안돼."

"왜 말이 안돼? 그럼 사귀지도 않는데 같이 야동 보나?"

그런 찬욱과 가까이 지내는 소라의 이미지에도 악영향을 미친다.

그 기회를 놓칠 주하가 아니었다.

'나보다 이쁜 년들은 다 죽으라지.'

혜리처럼 나대지는 않는다.

성격도 쿨하고, 남자한테 꼬리 치는 것도 아니고.

하지만 그 자체만으로도 싫다.

한겨울.

새하얗게 내린 예쁜 눈밭처럼.

"소문은 소문이잖아."

"나 같은 강의 들어."

"정말?"

"바로 옆자리."

"그럼 그때 상황도 다 보고 있었겠네?!"

밟아주고 싶다.

흠집을 만들어 자신과 같은 위치로 끌어내리고 싶다.

얄팍한 시샘.

스스로도 모르지 않지만 공부도 잘하고 외모까지 타고난 그녀가 인기 있는 것은 거슬린다.

'사실 대각선 위치라 보이진 않았는데.'

이미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다른 애들도 속으로는 같은 생각을 할 것이다.

누가 먼저 이야기를 꺼낼지 눈치 보고 있었을 뿐.

자신이 스타트를 끊어준다.

"야스가 무슨 뜻인지 알잖아?"

"무슨 뜻인데?"

"나도 몰라."

"아 모르는 애들도 있구나. 그게 무슨 뜻이냐면."

성적인 제스처.

엄지와 검지로 만든 고리 안에 손가락을 쑥! 넣다 뺏는 행위는 무엇을 의미하는지 뻔하다.

아니나 다를까 뒤집어지는 반응.

회심의 미소를 지은 주하는 자연스럽게 뒷담을 이어나간다.

"모를 줄 알고 둘이 몰래 속닥거렸나 봐."

"그런가 보네!"

"진짜 사귀나 보다."

"별일이야. 소라 그런 애인 줄 몰랐는데."

"원래 안 할 거 같은 애들이 뒤에서 더 하고 다니더라고~."

성공.

그것이 사실이던 아니던 상관은 없다.

애초에 이런 뒷담은 자신의 편을 확인하기 위해 하는 것이다.

'지수, 다은, 채은 확인 완료.'

충분한 수확이 있었다.

편이 확인된 애들을 중심으로 소문을 부풀려나가면 된다.

'한심한 년들.'

그런 주하의 그룹.

어찌나 목소리가 시끄러운지 강의실 가장 앞자리에 앉은 수현의 귀에도 들린다.

좋아하는 교양을 고르다 보니 본의치 않게 같은 강의를 수강하게 되었다.

그들의 뒷담은 항상 거슬린다.

타닥, 탁!

노트북.

네이버에 검색만 해봐도 나온다.

'야스'를 치고 엔터키를 한 번 누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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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스』

19,050 ▼250 (−1.31%)

+---------------------------------------------

19금 사이트는 커녕 회사가 하나 나온다.

주식 회사.

소라는 주식 이야기를 했던 것 뿐이다.

'회사명이 좀 묘하긴 하네.'

학교에서 떠들 만한 이름은 아니다.

평소의 소라라면 절대 하지 않을 만한 짓이다.

찬욱과 어울리고 난 후부터 달라졌다.

그것이 좋은 방향인지, 나쁜 방향인지는 모르겠지만.

'주식이 그렇게 재밌나?'

쿨한 성격인 소라가 초등학생처럼 기뻐하는 모습은 처음 보았다.

공부 말고는 관심이 없다.

심심하기 짝이 없는 인생을 살고 있던 소라가 말이다.

같은 고민을 하는 동류라고 생각을 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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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들이 쉬어 가는 쉼터.

"후우……"

벤치에 앉은 소라가 깊은 한숨을 쉰다.

외모가 외모인 덕인지.

'빵꾸똥꾸한테 구박 당한 신세경처럼도 보이는데.'

외모는 외모일 뿐.

사실은 별 생각이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렇다고 무시하기도 뭣하다.

착한 선배로서 걱정하는 척을 해준다.

"이번엔 어디에 물렸니?"

"아니거든요!"

"그럼 안 물렸어?"

"그거랑은……,  상관없거든요."

물렸네.

어디 또 이상한 회사에서 가치 투자를 즐기고 있는 모양이다.

'참 언제쯤이 돼서야 다리가 나고, 팔이 날는지."

올챙이 시절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런 소라도 최근 하나 이득을 본 주식이 있었다.

"선배 때문이에요."

"나?"

"진짜 선배랑 얽히고 나서 되는 일이 없어요."

"없긴. 야스를 그렇게 즐겨 놓고."

"@#$%@#%!"

인생 첫 야스.

평생 잊지 못할 추억을 얼마 전 경험했다.

'첫경험도, 첫 야스도 내가 개통 시켜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

조금은 어른이 되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본인은 불만이 있는 모양이다.

"야스, 야스! 그런 말하지 말라니까요?"

"그럼 야스를 야스라고 하지 뭐라고 하는데. 여기서 무슨 조선시대야? 호부호형 못해?"

"아 하지 말라고요!!"

눈썹을 찡그린 채 나를 뚫어져라 쳐다본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찔릴 일은 없다.

'누가 보면 나랑 야스라도 한 줄 알겠네.'

주식 이야기.

회사 이름이 '야스'다.

야스를 매수해서 차익을 봤을 뿐이다.

"애들이 뭐라고 하는 줄 알아요?"

"알겠냐?"

"하……, 선배 친구 없죠?"

"친구를 만들면 인간 강도가 낮아진다."

일반인이 듣기에는 거북할 수 있다.

소라와 강의실에서 질펀하게 야스했을 때.

'오해를 한 학생들이 있나 봐.'

한국인 특!

남 일에 관심이 많다.

남이 야스를 사던 하던 뭔 상관이야?

"내가 뭐 해명이라도 해줬으면 좋겠어?"

"몰라요."

"모르는데 왜 화를 내?"

"선배가 해명해봤자 일만 더 복잡해지잖아요!"

사실 소라 정도면 궁금할 만하다.

대체 어떤 남자랑 질펀하게 야스를 조졌는지.

'딱 봐도 섹스머신처럼 생겼으니까.'

남자쪽이 오히려 쥐어 짜인다.

내가 피골이 상접한지만 체크해도 진위 여부를 알 수 있을 텐데.

"그냥 가만히 좀 있어요."

"왜 또 한숨이야."

"힘들어서 그래요."

"무거워서?"

가슴에 삼다수 두 통이나 달고 다닌다.

나 같아도 무거울 것이다.

소라가 정말 힘들어하는 부분은 다른데 있었다.

또 한숨을 내쉰다.

"할머니가 많이 힘드신가 봐요."

"혹시 할머니도……. 아,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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