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까지 급등했던 주가.
5%대로 내려앉는데 걸린 시간은 불과 20초 남짓이었다.
동해철강의 주가는 1조 1천억이다.
단 20초만에 500억이 넘게 날아간 것이다.
'이러는데 어떻게 멘탈이 안 흔들려.'
단타꾼들도 손절하기 시작한다.
주가는 후룸라이드가 아닌 T 익스프레스를 타버린다.
─기관님이 외국인님의 개미 학살을 종결시켰습니다!
믿을 것은 오직 기관.
기술적 반등을 만들어낼 공매도 세력 말이다.
저가 매수세만 서서히 들어온다.
주가가 이 정도로 내려가면 살 만한데?
'그렇다고 올리기는 또 싫지.'
기관들은 최대한 낮은 가격에 사고 싶다.
이래서 나는 한국 기관이 싫다.
항상 손해 보지 않는 매매만 하려고 든다.
주도적으로 움직이려 하지 않는다.
'자아가 없어. 자아가.'
맹수는 사냥을 할 때 진가를 발휘한다.
날카로운 발톱, 예리한 송곳니도 그를 위해 있다.
하지 못한다면 장식품일 뿐.
동물원 우리에 갇혀 그럴 듯한 자태만 뽐내는 맹수 호소인에 불과하다.
한국 기관들이 딱 그 꼴이다.
꼴에 증권사다 뭐다 하지만 솔직하게 경쟁 상대로 취급한 적이 없다.
'그거지 그거. 사육된 짐승.'
수수료만 떼먹으면 만족.
진짜 큰 고기는 뜯을 엄두도 안 낸다.
외국 기관이 늑대, 살쾡이라면 한국 기관은 개, 고양이다.
기관에게 바리바리 특권을 준 한국 증시에서나 근근이 먹고 사는 놈들이다.
내 시야에는 애초에 경쟁 상대로 들지도 못한다.
'슬슬 머리를 뜯고 있지 않을까?'
6억원 정도는 시장가로 매도할 수 있다.
하지만 기관 트레이더가 굴리는 단위 수가 다른 돈은 받아줄 사람이 없다.
처분하려면 피똥 좀 쌀 것이다.
* * *
'씨발!'
노리고 있던 주식의 상승.
동해철강의 주가가 올랐음에도 김덕수는 웃음을 지을 수 없다.
─매도 주문이 체결되었습니다!
물량을 처분해야 하기 때문이다.
개미들은 수 틀리면 바로 손절하면 되지만.
'이걸 어느 세월에 처분하냐…….'
기관은 사정이 다르다.
가지고 있는 주식의 양이 단위가 다르기 때문이다.
강에 돌을 던지면 물방울이 조금 튕긴다.
하지만 만약 바위를 던지면?
─외국인님이 개미님을 처치했습니다!
더블 킬!
'외국인 씹새끼들!'
물방울이 튕기는 정도로 안 끝난다.
작은 쓰나미가 밀려와도 이상하지 않다.
덕수는 눈앞이 쓰나미다.
1만 주를 덜어내자 외국인들이 주가를 더 끌어내린다.
─매수 주문이 체결되었습니다!
어쩔 수 없이 허매수를 넣는다.
자신의 물량을 되사며 개미들을 꼬이게 만드는 것이다.
'처분에만 최소 3일은 걸리겠는데.'
이게 다 그 불개미 때문이다.
주가가 잘 올라가던 와중에 초를 쳐버렸다.
5만 6천 주를 순매도.
어마어마한 크기의 바위는 강의 물길을 바꿀 만하다.
콰앙!
적재적소에 떨어뜨리기만 하면 말이다.
덕수는 자신도 모르게 오른손에 힘을 준다.
책상에 주먹질.
내려쳤다는 사실을 주위의 시선이 꽂히고 나서야 알아차린다.
"무슨 일이야!"
"아, 아니 그…… 죄송합니다."
"아무리 거래가 안 풀려도 그렇지. 쯔쯧. 알 만한 사람이 왜 그래?"
대체 무슨 일인지.
트레이딩 관련 업무를 맡는 자산 운용 부서이기 때문에 다들 알고 있다.
그래서 더 쪽팔릴 수밖에 없다.
'제기랄.'
쟤 돈 꼴았구나.
감정 조절이 안될 정도로 손실을 봤다는 사실을 간접적으로 인증한 것이다.
실적이 전부.
트레이더는 그런 직업이다.
급여도 실적에 비례해 가져간다.
학력?
인맥?
전부 필요 없다.
능력만 있으면 돈을 복사할 수 있다.
'개미 따위가 어떻게 나를…….'
그 능력이 있기에 이 자리에 올랐다.
트레이더로서 스스로의 능력에 자부심이 넘친다.
그것이 박살 나버린 느낌.
하지만 대상이 다를 뿐 처음 느껴보는 감정은 아니다.
아득!
이 꼬라지가 된 시발점이기도 하다.
가끔씩 있다.
미친 듯이 잘하는 트레이더.
방향성을 확신할 수밖에 없게 만들어 놓고 갑자기 틀어버린다.
예상은 커녕 상상치도 못한 시점에 말이다.
신들린 핸들링은 당해봐야 정신을 차린다.
세상은 넓고, 자신은 이 시장에서 작은 존재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런 놈들은 외국에나 있지…….'
하지만 드물다.
신흥국 시장으로 분류되는 한국에서, 그것도 밤낮이 다른 코스피에 그런 고급 인력이 일할 리 없다.
세계 금융의 중심지 월가에서 피 튀기게 싸우고 있을 것이다.
하물며 기껏해야 개미 따위가.
'내가 시발 이대로 개미 따위한테 당할 줄 알아?'
트레이더들은 개미를 이렇게 부른다.
유동성 공급자.
그건 시장 조성자의 역할 아니냐고 개미들은 생각할 것이다.
진정한 의미에서의 LP는 그들이다.
시장에서 돈을 계속 잃어주는 고마운 존재니까.
─매도 주문이 체결되었습니다!
잃는 사람이 있어야 버는 사람도 있는 법이다.
지금도 자신의 물량을 대신 받아주고 있다.
'그래, 이게 개미지.'
조금 올리는 척하면 덥석 따라 사는 놈들.
사실은 자신의 물량을 되샀을 뿐인데 말이다.
이런 낚시를 연거푸 반복한다.
이 짓을 하면 크게 손해 보지 않는 선에서 물량을 처분할 수 있다.
'후우…….'
하지만 시간이 든다.
기회 비용이 날아가는 것만으로도 기관 트레이더에게는 큰 손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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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수체결│이찬욱│ 야스 │892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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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얄미운 녀석은 다른 주식을 매수하고 있다.
방금 전까지의 일은 해프닝이었다는 듯이.
'조금만 기다려라. 내가 현금만 마련되면…….'
자존심.
이성적으로는 알고 있다.
그냥 똥 밟은 셈 치고 넘어가면 된다는 걸.
하지만 자신은 트레이더다.
그것도 개미들 꼭대기에 있는 기관 트레이더라는 입장이다.
사냥감한테 휘둘리는 포식자는 없다.
자존심에 난 스크래치를 메우지 않으면 어떻게 될 것 같다.
─매도 주문이 체결되었습니다!
패배감.
비록 외국 트레이더들에게는 휘둘리는 자신이지만, 한국에서는 먹어준다는 자부심이 있다.
고작 개미에게 같은 기분을 느끼다니.
그 굴욕감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
내가 이번 달 좆되는 수가 있어도 너 하나는 반드시 조진다.'
* * *
기관과의 싸움.
솔직하게 불리할 수밖에 없는 게 사실이다.
'어떻게 한 방을 먹여줄 수는 있어도.'
기본적인 맷집 차이가 난다.
다윗이 골리앗을 상대로 승리한다.
하지만 철권처럼 라운드 1, 2, 3 계속 되면 결국 이기는 건 골리앗이다.
마찬가지.
─기관님이 학살 중입니다!
더블 킬!
트리플 킬!
새로 매수하고 있는 주식.
호가창의 움직임을 보니 또다시 들어온 모양이다.
'잔잔한 호수에 왜 파도가 치냐고.'
그 위화감을 눈치 못 챌 내가 아니다.
누군가 의도적으로 시장을 흔들고 있다.
아마 그 녀석이다.
이전과 차이점이 있다면 상당히 적극적으로 나선다는 것.
─기관님이 매수벽을 파괴했습니다!
허매수와 허매도.
그리고 공매도 등 기관 특권을 총동원하고 있다.
자신의 손실을 헷지하면서 주가를 내리는 방법이다.
그 의도를 전부 알고 있어도.
'뭐, 할 수 있는 게 있나.'
개미가 쓸 수 있는 무기는 지극히 제한적이다.
돌팔매 한 방이 전부.
저렇게 대놓고 맷집과 무기를 활용하면 방법이 없다.
글자 그대로 어떻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하다 못해 미장이면.'
나스닥에서는 못할 짓이다.
개미도 숏을 칠 수 있고, 다른 기관들도 눈 뜨고 봐주지 않는다.
시장 참여자가 많기 때문.
주가를 억지로 찍어 누르다가는 저가 매수 세력에게 잡아먹힌다.
한국은 시장 참여자가 적다.
법도, 제도도 형평성이 완전히 무너져 있다.
─기관님이 기관님을 처치했습니다!
기관이 생지랄발광을 한다는 걸 알고 있어도 속수무책이다.
애초에 기울어진 운동장.
하지만 딱 하나 앞서는 게 있다.
오직 개미만이 쓸 수 있는 전략이 존재한다.
'존버나 하꽈~~~~~~?'
개미의 필살기를 시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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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버.
존나게 버로우 탄다의 줄임말.
주식을 안 하는 사람도 무조건 알 것이다.
'모르면 관등성명 대게 해야지. 북한식으로.'
그만큼 유명한 투자법(?)이다.
하지만 의외로 기관에서는 쓰지 못하는 전략이다.
왜?
글자 그대로의 의미다.
존버를 한다는 건 돈을 움직이지 않는다는 소리니까.
'기회 비용 문제가 있거든.'
죽이 되든 밥이 되든 굴려야 한다.
죽이 된 애들은 잘려나가는 곳이 증권 업계다.
트레이더의 수명이 짧은 이유.
나를 저격한 녀석은 얼마나 오래 일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물론 내 돈도 묶인다.
개인 트레이더에게도 기회 비용은 중요하다.
하지만 내 직업은.
"음."
"뭘 그렇게 뚫어져라 쳐다봐요."
"가끔은 이 짓도 할 만하다 싶어서."
"?"
학생이다.
이래 봬도 수업에는 꼬박꼬박 출석하고 있다.
'전혀 듣지는 않지만.'
주식 거래의 시간으로 사용하고 있다.
전공 수업이 9시에 시작한다.
딱 장이 열리는 시간.
일찍 강의실에 들어와 노트북을 켜고 매매를 하는 식이다.
교수들이 완전히 노터치다 보니 가능하다.
주식으로 번 돈으로 노트북도 구입했다.
"방금 뭐 샀어요?"
"야스."
"뭐에요 그게. 그거 성희롱 아니에요?"
"……."
소라가 되도 않는 오해를 해댄다.
날카로운 눈초리로 나를 째려본다.
나의 평소 언행.
아직 경험이 미숙한 소라로서는 불편할 만하지만.
'이번만큼은 아니야.'
실제로 존재하는 주식이다.
그것도 코스닥에 상장이 돼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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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스』
19,100 ▼200 (−1.04%)
+---------------------------------------------
"남자의 주식 야스! 야스를 몰라?"
"흥국이라면 아는데요."
제대로 된 회사다.
상장을 통과했다는 것 자체가 아주 별 볼 일 없는 회사는 아니라는 이야기다.
'물론 그래서 매수한 건 아니지.'
누구에게나 잘 맞는 주식이라는 게 있다.
이 주식을 샀을 때 이득 본 기억이 많아.
그것이 나에게는 야스다.
징크스라고도 할 수 있고, 해당 회사를 잘 안다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OLED 관련주네요? 증착 장비를 생산한다고 하는데……."
"너는 정말 꽉 막혔다."
"네?"
"야스는 그냥 느낌이야. 느낌으로 하는 거야."
야스할 때 직업, 소득, 배경 다 따져보고 하겠냐고.
그런 건 퐁퐁남한테나 따지지.
'실제로 꽉 막혀있기도 하고.'
딱 봐도 경험이 없어 보인다.
소라는 야스의 진가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한 번 사봐."
"제가 왜요."
"백문이 불여일견!"
"아, 알았어요. 그럼 조금만 사볼게요 조금만.'
야스는 해봐야 안다.
해보기 전까지는 온갖 상상의 나래만 펼친다.
'불결하다느니 뭔.'
피임은 어쩌고저쩌고.
내 경험상 그런 년들이 꼭 질질 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