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8화 (38/450)

* * *

창밖으로 들어오는 밝은 햇살.

검고 윤기 있는 긴 머릿결에 부딪혀 산산이 흩어진다.

한 폭의 그림과도 같은 풍경이 연출된다.

그 장본인은 신경도 안 쓰고 있지만.

'하아…….'

당장의 고민이 시급하다.

소라는 트레이더라는 확고한 목표를 가지고 있다.

한국대 경제학과에 입학한 이유.

열심히 공부하면 꿈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좋은 대학 들어가서 좋은 성적으로 졸업하면 돼!》

아빠가 한 말이기도 하다.

증권사 이사로 재직하는 아빠는 소라의 자랑이다.

'정말 그런다고 될까?'

그렇지 않다는 현실을 경험했다.

상식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세계가 펼쳐져 있다.

학교에서 공부하면 알 수 있다는 막연한 기대감은 완전히 사라졌다.

대체 어떻게 해야 하지?

'일단 하란 대론 해봤는데.'

소라가 의지한 건 학교의 선배였다.

이상한 선배.

미친놈.

또라이.

처음에는 혐오의 대상이었다.

하지만 알면 알수록 다른 생각도 인다.

'여기서 대체 뭘 배우라는 거야?'

선배가 자신을 무시한 건 정말로 몰랐기 때문이다.

모의 투자를 하며 자신감만 가득 찼다.

진짜 주식을 하며 깨달았다.

세상은 넓고, 알아야 할 건 많다.

자존심을 굽히고 조언을 구한 까닭이다.

선배는 말했다.

디시.

그곳에서 자신이 원하는 해답을 찾을 수 있을 거라고 말이다.

〔한국 주식 갤러리〕

─컄ㅋㅋ 코스피 죽엌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나라 시마이 이 새끼얔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직도 곱버스를 안 사? 뷰지야?

─다시는 한국 주식을 사지 않겠습니다 ㅠㅠ

 정신병자들은 많이 찾았다.

아무리 봐도 정상적인 커뮤니티는 아니다.

'주가가 떨어지고 있는데 왜 웃고 있지?'

소문으로는 들어봤다.

절대로 해서는 안되는 이상한 사이트라고.

선입견과 100% 일치한다.

도저히 정상인이 썼다고 보기 힘들다.

─다시는 한국 주식을 사지 않겠습니다 ㅠㅠ

살려줘 이 새꺜ㅋㅋㅋㅋㅋㅋㅋㅋ

└감히 한국 주식을 사?

└시즌 14124호 나라 시마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씹스캠 증시 투자자 죽어 큐ㅠㅠㅠㅠㅠㅠㅠ

└에~~~한강이나~~~갈꽈~~~~~~~~~~~

머리가 어지러울 지경.

쓰는 표현도 저속하고, 이야기에도 공감이 안 간다.

'한국 주식 갤러리인데 한국 주식을 사지 말라는 건 뭐야.'

선배 같은 애들이 한가득이다.

이런 곳에서 배울 건 아무리 봐도 없다.

타닥, 탁!

그렇게 결론을 내린 소라는 다른 방법을 찾는다.

평소 종종 보는 곳.

〔종목토론실− 동해철강〕

─철강을 미쳤다고 사냐?

─15층에 물려있는데 탈출할 수 있을까요?

─3달 동안 내리기만 하는 개쓰레기 기업

─아직도 안 팔고 여기서 징징대고 있나? ㅋㅋㅋㅋㅋ

 그리고 매매했던 주식.

네이버에는 각 주식별로 이렇게 종목토론실이 있다.

해당 주식에 대해서만 이야기하기 때문에 정보를 얻어가기 좋다.

그래서 가끔씩 보는데.

'역시나 다들 울상이네.'

이전과는 분위기가 다르다.

주가가 주구장창 내려가고 있기 때문이다.

30% 이상 급락.

반등할 기미도 보이지 않다 보니 주주들은 울상이다.

─아직도 안 팔고 여기서 징징대고 있나? ㅋㅋㅋㅋㅋ

니들이 선택한 주식인데 어쩌냐?

악깡버해야지

형은 8층에서 아가리 쭈압하고 있을게

ㅅㄱ

└확 아가리를 찢어불라!!

└야 니 사장이 알바비 안 줘? 술값 좀 줄까 형이? 주말에 장도 안 여는데 한 잔 하면서 쉬어야지^^

└8층은 씨부럴 니 제삿날 전에는 안 온다

└진짜 거기까지 갈까 무섭네요

어디에나 미꾸라지는 있다.

소라는 악플러의 글을 보며 인상을 찌푸린다.

'물려서 힘들어하는 사람들한테 저러고 싶을까?'

직접 주식을 매매해봐서 안다.

물렸을 때의 심정은 이루어 말하기 힘들 정도다.

안 그래도 힘든 사람들을 약 올리다니.

대신해서 화를 내주고 싶은 심정이다.

꿀꺽!

자신도 찬욱이 아니었다면 같은 신세였을지 모른다.

소라는 가슴을 쓸어 내린다.

'그래, 어쩔 수 없지.'

주식 투자.

최근에는 흔한 화젯거리다.

주변 친구들만 해도 하는 사람이 한둘이 아니다.

하지만 '아는 사람'은 의외로 없다.

자신이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소라는 최근 여러가지 경험을 하며 통감했다.

우물 안 개구리다.

주식은 교과서에 있지 않다.

학교에서 배우는 지식으로는 발전하지 못한다.

띵동~♪

다시 한 번 찬욱의 집에 찾아간다.

아빠는 맨날 안된다고만 하니 달리 물어볼 사람이 없다.

'안 나와?'

열리지 않는 문.

하지만 처음 경험하는 상황은 아니다.

혹시나 하고 돌려본 문고리는.

달칵!

열려있다.

소라는 조심스레 안으로 들어간다.

찬욱이 있는 걸 확인했기 때문이다.

타닥, 타다닥!

자신이 들어온 것도 모르고 키보드만 두들기고 있다.

타자 소리가 끊이지 않는 걸로 미루어봐.

'뭐라도 쓰고 있나?'

집중하고 있다.

방해하고 싶지 않다.

하지만 뭘 하는지는 알고 싶다.

소라는 몰래 찬욱의 뒤로 접근한다.

고개 너머로 모니터 화면을 보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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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작성 中』

똥해 팔라고 해쓰 안 해쓰 ㅋㅋㅋㅋㅋㅋ

형이 8층까지 간다고 했는데 처물린 흑우 없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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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딴 쓰레기 주식으로 고통 받느니 나 같으면……."

"지금 뭐 하고 있는 거에요!"

'아 깜짝이야!!"

악플을 쓰고 있다.

아이디를 확인해보니 아까 자신이 화를 냈던 글 작성자와 동일 인물이다.

"지금 악플 남기고 있는 거에요? 종목토론실에?"

"너 뭐야. 언제 왔어."

"아니, 그건…… 둘째 치고요."

무단 침입.

따지고 보면 그런 셈이지만 지금 그건 중요하지 않다.

찬욱의 행각이 어처구니가 없다.

물려서 힘들어하는 주주들을 놀리고 있다니.

'원래부터 개차반이라고 생각은 했는데.'

인정을 한 건 실력뿐.

아무리 그렇다 해도 이렇게 패악질을 부리고 다니는 건 별개의 일이다.

"보면 몰라? 투자를 하고 있잖아."

"투……, 자요?"

"그래, 동해철강 투자자들의 가슴에 쇠못을 하나하나 박아주는 작업이지."

"네?"

일반인의 사고방식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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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적 반등.

국장에서 노릴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투자법이다.

'기관들이 하도 공매도를 치니까.'

폭락하는 주식들이 있다.

계속 내려가다 보면 어느샌가 투심이 메마른다.

내려가기만 하는 주식을 사고 싶어하는 사람은 없는 법이다.

그렇게 과매도 구간에 오면.

"주주분들 힘들어하는 거 안 보여요? 선배는 사람의 감정이라는 게 없어요?"

"없진 않지."

"기왕 글을 쓸 거면 힘이 나는 소리를 해주세요."

"힘이 나는 소리를 해주면 개인들이 손절을 안 하잖아."

"네?"

저가 매수와 숏커버링이 들어온다.

그렇게 저점에서 큰 폭으로 상승하는 걸 '기술적 반등'이라고 부른다.

'근데 그런 기회가 쉽게 오겠냐고.'

개미들이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면 기관도 올려줄 이유가 없다.

내가 왜?

무료 봉사를 할 이유가 있겠냐는 것이다.

특정 상황이 만족되어야만 한다.

"이런 글들을 써야 주주들이 힘들어서 손절을 할 거 아니야."

"……."

"일종의 투자법이라고도 볼 수 있는 게지."

종토방.

정식 명칭은 종목토론실이지만 대개 종토방이라고 부른다.

해당 주식을 산 개인들이 많이 본다.

즉, 심리를 조종하기가 편하다.

'8층 온다고 계속 부르짖으면 불안하거든.'

정말로 주식이 떨어지고 있다면 더더욱.

그전에 탈출하겠다고 결심하는 사람들이 생긴다.

그 작업이 열매를 맺고 있다.

종토방에서 찬티들이 슬슬 사라지며 불안 심리가 퍼지고 있는데.

뚝! 뚝!

닭똥 같은 눈물이 흘러넘친다

소라가 난데없이 즙을 짜고 있다.

"얼마나 힘든지 아세요?"

"갑자기?"

"주식 물리면 밥도 안 넘어가고, 사는 게 사는 것 같지가 않고……."

경험담.

철강주에 물렸을 때 힘들었던 모양이다.

대충 어떤 느낌인지는 아주 잘 알고 있다.

'그 힘든 거 나는 경험 안 해봤을까 봐?'

인싸들 특!

친구 관계로 힘들어하는데 친구 없는 사람 심정은 이해 못함.

주식 가지고 힘들면 옵션은 어떻게 해.

옵션 만기일에 강제 청산 당해봐야 정신을 차리지.

"뚝!"

"우……."

'명심해라. 사슴의 심정을 헤아려주는 사자는 없다."

"사슴의 심정이요?"

사슴처럼 큰 눈망울을 가졌다 보니 초식 동물 빙의한 모양이다.

하지만 주식 시장은 약육강식이다.

'사자가 아플까 봐 살살 깨물어주겠냐고.'

약하면 잡아먹힌다.

무슨 불법을 저지른 것도 아닌데 양심의 가책을 느낄 이유가 없다.

"그래도 악플까지 남길 필요는 없는 거잖아요."

"사냥할 능력도 없는 것들이 괜히 어슬렁거리다가 사냥감 도망가게 하는 것보단 낫지. 모든 주식은 개미가 내려야 출발하거든."

"……."

이해를 못하시나 본데 당신들 내려야 출발한다고!!

지금은 살아 계신다.

'아무튼.'

투자의 세계에서는 별일이 아니다.

아니, 투자자의 일상이라고 할 수 있다.

전문 투자자가 된다면 더더욱.

글로벌 투기 세력들은 공격하는 것이 주된 업무다.

"투자자의 일은 기본적으로 남 벗겨 먹는 거야."

"선배."

"왜 정색해."

"말이 좀 심하잖아요."

"그럼 니가 주식으로 버는 만큼 다른 사람은 돈 꼴는다곤 생각 안 해?"

"……."

멀리 갈 것도 없다

우리나라도 대표적인 희생양 중 하나였다

IMF.

1997 아시아 금융 위기는 투기 세력이 태국의 외환 시장을 공격한 게 시발점이었다.

'마음 약하면 이런 짓 못하지.'

나 때문에 수백만 명이 일자리를 잃고, 자살률까치 치솟는구나.

쟤네 나라 망해서 어떡해.

과연 그런 생각을 했을까?

아니면 쪼개면서 '너네 나라 시마이 ㅋㅋㅋ' 라고 생각을 했을까?

"원래 투자를 하다 보면 나라 몇 개 정도는 말아 먹을 수 있는 거지."

"설마 해봤어요?"

"……."

그렇게까지는 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손속을 두지는 않는다는 이야기다.

'긍정적인 부분도 있어.'

버블 경제.

제때 터트리지 않으면 나중에 더 큰 후폭풍을 불러일으킨다.

우리나라도 IMF가 터진 게 전화위복이었다.

좀비 기업들이 사라지고, 고용 구조가 개선되었다.

만약 터지지 않았다면 21세기에 이만한 발전을 이룰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럴 린 없겠죠."

"크흠!"

"그건 그렇다 치고 말할 게 있어서 왔는데요."

"뭘?"

"선배가 추천해준 사이트 역시 이상해요."

"……."

눈물을 손등으로 쓱쓱 닦더니 할 말은 한다.

추천해준 사이트를 계속 해보고 있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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