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4화 (34/450)

'끝났다.'

판도라.

원전 폭발을 주제로 한 재난 영화다.

그것을 대통령이 관람했다는 건 많은 의미를 내포한다.

상징성을 가진다.

친환경을 실행하겠다는 확고한 의지를 보여준 것이다.

이러면 개미들의 심리도 이제.

─큰손님이 미쳐 날뛰고 있습니다!

확신을 가지고 들어온다.

그것도 자잘한 개미가 아닌 큰손이 말이다.

'…….'

1억원이 시장가로 긁힌다.

5천만원이 추가로 긁히며 매수벽이 완전히 무너졌다.

눈치를 보던 개미들도 늦을 새라 추격 매수.

급격한 주가 상승이 이루어지게 된다.

'이런 개#^#@#[email protected]!'

가지고 있던 물량을 모두 털었다.

주가를 내리기 위해 빌려오기까지 했다.

공매도.

그동안 위젠에너지를 가지고 놀았던 만큼 자신이 있었다.

─매수 주문이 체결되었습니다!

역으로 가지고 놀아지게 생겼다.

공매도는 양날의 검.

만약 주가가 내려가지 않는다면.

'물량 내놔. 안 내놔?'

웃돈을 주고 사는 수밖에 없다.

하지만 폭등하고 있는 주식을 팔아줄 사람은.

─개미들이 미쳐 날뛰고 있습니다!

없다.

호가창에 쌓인 건 소량.

그마저도 누군가 게눈 감추듯 빠르게 먹어버린다.

'시발 설마 상이라도 치면…….'

수십 억을 움직이는 세력도 물린 순간만큼은 공포에 떨 수밖에 없다.

고민의 고민을 거듭한 김민구는 판단을 내린다.

숏스퀴즈.

더 이상의 손실을 막기 위해 손실을 감수하고 빠르게 주식을 되사는 행위다.

---------------------------------------------+

『위젠에너지』

2960 ▲430 (+17.01%)

+---------------------------------------------

그 결과.

−20%까지 꽂혔던 주가는 양전을 넘어 +17%까지 솟구친다.

아니, 더 오를 거란 사실을 안다.

'시부레 것.'

이 정도 선에서 회수를 한 게 다행일 정도.

전고점 회복은 물론 그 이상까지도 갈지 모른다.

한숨 돌린 셈이다.

하지만 당장의 위기에서 벗어났을 뿐 판단 착오로 인한 실책은 뼈아플 수밖에 없다.

작전을 쳐서 번 돈을 고스란히 뱉었다.

이번 달도 인센티브는 커녕 기본급이라도 받으면 다행이다.

'어떤 새끼야. 시장가로 긁어버린 새끼들이.'

일반 개미가 할 수 있는 판단이 아니다.

이미 꼴아버린 민구가 할 수 있는 건 욕을 내뱉는 것 뿐이었다.

* * *

리스크와 리턴.

비례할 수밖에 없는 건 주식 세계의 이치라고 할 수 있다.

"휴……."

"봐봐 오르잖아. 말좆양봉섹스출발 컄!"

주가의 흐름을 바뀌었다.

비실비실하던 매수세가 단박에 역전된다.

소라 덕분이다.

도움을 주고, 돈도 벌은 소라가 어째선지 가슴을 쓸어 내린다.

"다 된 거죠? 그럼 전 이제 팔래요."

"아니, 왜? 최소 내일까지는 상 칠 느낌인데."

너무 커서 그런가?

달고 있기 버거워서 그런 걸지도 모른다.

---------------------------------------------+

『윤소라님의 총 자산』

27,520,211원

+19,129,697원(+227.99%)

+---------------------------------------------

신용미수.

인생 막차 탄 개미의 필살기는 높은 리스크만큼 리턴도 어마어마하다.

"2천을 먹었는데 표정이 왜 그래?"

"제 실력으로 벌은 게 아니기 때문에 큰 의미는 없다고 생각해요."

"음."

"왜요."

"좋은 마인드야."

그러다 보니 유혹에 시달리기 쉽다.

손해를 본 걸 메꾸기 위해 레버리지를 사용한다.

'깡통 차는 개미들 십중팔구가 그래서고.'

그 위험성.

돈을 벌어도 주체할 수 있을 만큼 알고 있다면 왜 빌려줬는지 도리어 궁금하다.

"선배가 다급해 보이니까."

"내 보증도 서줄래?"

"빚이 있다고 생각해서 그런 거거든요!"

버럭 성을 낸다.

기특한 짓을 하고 그러니 오히려 귀여워 보인다.

기분 탓인지 평소와 다르다.

붉으스레 상기돼있는 뺨이 요염하다.

"감기냐?"

"아닌데요."

"흥분했냐?"

"아니거든요! 그냥 그……, 가슴이 벌렁벌렁대서."

자세히 보니 전체적으로 달아 올라있다.

발정긴가?

그런 이유가 아니었다.

"선배는 이런 짓 자주 하겠지만 저는 처음이란 말이에요."

"니가 처음이 아닌 게 뭐가 있겠냐."

"급등주 말하는 거거든요!"

투자.

실제 돈이 움직인다.

걸린 것의 무게가 게임과는 비교할 수 없다.

하물며 레버리지를 썼다.

따서 망정이지 만약 잃었다면 정말로 룸빵 신세를 져야 할지도 모른다.

'이런 걸 경험해야지.'

적당한 선의 고난은 적당한 선의 경험치밖에 얻지 못한다.

언젠가는 다 해봐야 하는 일이다.

그것을 조금 일찍 알았다.

지금의 소라에게는 일렀다.

꿈인지 생시인지 파악이 안되는 묘한 기분일 것이다.

"정말 화를 내야 할지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왜?"

"그래도……, 번 건 맞으니까."

자신의 핸드폰.

힐끗 보더니 입꼬리가 조금 올라간다.

아마 MTS의 계좌를 봤겠지.

수익 보고 기분 안 좋은 투자자가 어딨겠어.'

열심히 표정 관리를 해보지만 결국 실패한다.

고개를 돌리고 이쪽을 안 보는 게 고작.

그러다 눈이 마주치고 웃음이 쏟아진다.

본인도 상황이 웃기기는 한 모양이다.

"어떡하죠?"

"뭐가."

"이 돈 제가 써도 돼요?"

"니 돈인데 니가 써야지."

"이렇게 큰 돈 만져보는 거 처음인데."

처음인 것도 많다.

하지만 막 스무 살의 대학교 신입생에게 무거운 수익인 것도 사실이다.

돈은 버는 것만큼 쓰는 것도 중요하다.

의미 없이 쌓아두기만 하면 일본 노인네들처럼밖에 안된다.

"뭐에요? 웬 선글라스?"

"가자."

"어딜요?"

"돈을 벌었으면 사치를 누려야지."

Flex를 할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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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자.

가장 좋은 점은 주말을 푹 쉴 수 있다는 것이다.

'보통 큰 돈 오가는 일들이 엄청 바쁘거든.'

특히 뉴욕.

세상에서 가장 바쁜 사람들이 사는 도시다.

한 마디로 워라밸은 개나 줬다.

한국식 출퇴근 문화라고 야근 많고, 집에 가서도 일하고, 까톡이 수시로 오는 건 사실 미국이 원조다.

한국은 미국의 영향을 다이렉트로 받은 나라다.

"너는 꾸밀 줄은 모르냐? 옷걸이가 음란하다고, 아니."

"야."

우월하다고 자신감이 넘치는 건가?

토요일 오전, 쌀쌀한 바람 앞에 더 쌀쌀한 여자가 나타났다.

같이 여행을 가기로 한 사람이다.

주말에 푹 쉬는 투자자는 이렇게 놀러 다닐 수 있다.

'그래, 옷걸이는 마네킹 저리 가란데.'

쫙 달라붙는 티셔츠.

하늘색의 밝은 상의와 어두운 톤의 바지가 대조를 이룬다.

밋밋한 의상이지만 그것만으로도 족하다.

몸매 라인이 고스란히 드러나니까.

"너 은근히 라인 강조되는 거 입는다. 의외로 고순데?"

"아니거든요!"

"뭐가 아닌데?"

"그건 어쩔 수가 없는 거거든요."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

어쩔 수 없었다는 건 정말인 듯 애꿎은 상의 조금 당겼다가 놓는다.

평범한 티셔츠다.

혜리나 수현이 입었다면 말이다.

주인이 소라인 탓에 음란 셔츠가 되고 말았다.

'이래서 관상은 틀리지 않지.'

본체가 경험만 쌓이면 타고난 포텐셜을 드러낼 것이다.

아직은 어려서 그런지 청순함이 있지만.

"진짜 한 번만 안아보면 안되냐?"

"미침?!"

"아니, 주식으로 그렇게 벌었는데 투자자로서 같이 기쁨을 만끽하자고."

떠오른다.

통장에 찍힌 단위 수가 다른 돈.

마지못하다는 듯 두 팔을 소심하게 펼친다.

'이게 되네.'

밀어붙이자 약한 면모를 보인다.

역시 연하는 연상이 리드해야 한다.

확 끌어안아 버린다.

얇은 셔츠 너머의 부드럽고 탄탄한 피부가 느껴진다.

브라는 두꺼운 걸 착용한 듯 가슴팍의 압박이 대단하다.

아주 묵직하다.

"으~!"

"좋아?"

"그야 좋죠. 안 좋겠어요?"

소라도 적극적이다.

진심으로 기쁜 듯 감정을 마음껏 표출하고 있다.

두 팔로 나를 꼬옥 안는다.

질 새라 같이 안자 가슴이 엄청나게 비벼진다.

'씨발 섰다.'

탱탱하다.

부드럽고 물컹한 타입은 아니라는 것은 확실히 알았다.

체온도 예상대로 높다.

따듯하길 넘어 뜨끈해서 난로가 따로 없다.

코를 간지럽히는 긴 머리카락과 목덜미의 생살.

하반신에 피가 쏠린다.

"키스도 함 하까?"

"그건 선 넘었죠."

"그런가?"

하하하!

농담도 받아줄 만큼 화기애애하다.

분위기로 몰고 가려고 했는데 실패했다.

'뭐, 괜찮아.'

오늘은 아직 끝나지 않았으니 말이다.

어깨에 손을 두르고 에스코트한다.

본인도 싫지 않은 듯 따라온다.

이 날을 위해 준비한 게 있다.

"차 샀어요? 비싼 거 같은데."

"그래, 벤츠 한 대 뽑았다."

"그렇게 벌었어요?!"

"렌트."

하도 진지해서 길게는 못 치겠다.

조수석 문을 열어주자 다소곳이 앉는다.

'진짜 풋풋한 반응이네.'

20대 시절.

주식으로 큰 돈을 벌고, 좋은 차를 사서 다닌 적이 있다.

여자 꼬시는데 차만한 것이 없다.

작업을 치다 보면 대충 케이스가 정리된다.

1. 좀 타본 애

2. 선망하는 애

3. 관심이 없는 애

타본 애들은 여러 차들을 비교한다.

벤츠는 이렇고, BMW는 저렇고, 아우디는 어떻다는 둥.

람보르기니 타본 년들은 또 얼마나 꼿꼿한지 모른다.

더 좋은 차에 탈 때마다 레벨업한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정작 자기는 자차는 커녕 통장에 돈도 없는 주제에.'

선망하는 애들은 말을 잘 들어서 좋다.

마음만 먹으면 원나잇은 따놓은 당상이다.

"탑승 소감이 어때?"

"뭐가요?"

"금수저라 벤츠 정도는 아무렇지도 않나?"

"아빠 차는 국산인데요."

그리고 3번.

의외로 가장 쉽다.

관심 없는 척하는 거지, 진짜로 관심이 없는 게 아니다.

'데리고 돌아다니면서 술 좀 먹이고, 무드 좀 만들어주면 알아서 벌리는 거지.'

여자들 치고 차에, 사치에 관심 없는 애는 없다.

하지만 아주 간혹 있다.

대화가 이어지지 않는다.

창밖의 풍경에 더 눈이 가는 듯 턱을 괴고 본다.

'뭐, 이건 아니지만.'

새끼 손가락.

그래도 나름 기분은 낸다.

여행에는 여자를 끼고 가야 한다.

"근데 어디 가는 거에요?"

"말 안 했어?"

"놀러 간다고만 들었는데……."

갈 길이 멀 때는 특히.

고추끼리 가는 것과 암컷이 있는 것은 공기부터가 다르다.

'달달하잖아.'

칙칙하던 렌트카 안이 공기 정화가 된 것 같다.

가는 길 내내 심심하지 않기도 한다.

"광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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