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1화 (31/450)

'친환경 정책은 시간을 두고 천천히 이루어야 할 인류의 목표인 거지.'

단기간에 실현 가능한 '공약'은 아니다.

과학 기술이 아직 받쳐주지 않는 것이다.

게다가 한국은 원전 기술력이 탑티어급.

즉, 원전의 부작용이 터질 가능성도 거의 없다.

안전으로 따져도, 돈으로 따져도, 환경으로 따져도 답은 일목요연하다.

그런데 설마 탈원전을?

<탈원전은 거스를 수 없는 시대의 흐름이다! 대통령님의 연설이었습니다.>

진짜로 할 거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겠냐고.'

돈이 한두 푼도 아니고 수십 조가 들어간다.

원전 기술의 정체로 잠재적 피해까지 생긴다.

검토 단계에서 정책이 축소 혹은 폐지될 것이다.

이성적이고, 합리적으로는 그렇게 도출된다.

'그걸 가능하게 하는 게 정치의 힘이지.'

국가 정책이라는 건 때로는 효율이나 합리성을 무시하고 진행된다.

그리고 그것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

대표적인 선례가 두 가지.

박 대통령의 8차선 고속도로와 김 대통령의 전국 초고속 인터넷망이다.

후진국에 8차선 도로?

IMF 직후라 돈 없는데?

당시의 상식으로 보면 의아할 만하다.

실제로 엄청난 반대에 부딪혔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서 어떤 평가를 받는지 한국인이라면 모두가 알고 있다.

현 정부의 친환경 정책도 그렇게 되었다면 좋았을 것이다.

어떻게 될지 나는 미래의 답안을 보고 왔다.

─매수 주문이 체결되었습니다!

밀어붙인다.

성공의 유무를 떠나 쏟아부은 수십 조의 돈은 주식 시장에 흘러들었다.

그 눈 먼 돈을 내가 먹는다.

그럴 수 있는 환경도 갖춰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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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출금 통장』

02120−10−697482

계좌잔액: 6,103,892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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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알.

당장의 생활비를 걱정하던 과거와는 이별했다.

여유 자금이 충분하다.

신용과 미수로 계왕권을 쓴다면 더더욱이다.

'수상해 보이는 주식도 찾았고.'

한국은 전세계에서 가장 개잡주가 많은 나라다.

어떤 종목이 언제 쐈는지.

20년 전의 과거를 일일이 기억하는 건 불가능하다.

하지만 내 능력이 있다.

재료.

그리고 차트.

역산을 하면 대략적인 흐름이 보인다.

최고의 작전주를 찾아낸다.

* * *

크라운 캐피탈.

'슬슬 하나 터트려야 하는데.'

김민구 차장은 최근 심정이 착잡하다.

인센티브가 크게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작전주의 수익에 비례한다.

노리고 있던 작전 하나가 붕괴해버린 여파다.

'통신주 지금 쐈으면 딱 좋았는데. 매집할 시기는 지나가 버렸고 어쩔 수 없지.'

오메가 정보통신.

5G 사업 관련주로 묶어서 슈팅을 줄 생각이었다.

정책이라는 훌륭한 재료를 토대로 말이다.

나라에서 하는 사업은 통이 크다.

관심도 크게 받는다.

못해도 다섯 배 이상 충분히 먹을 수 있는 종목이었다.

'뭐, 괜찮아.'

하지만 정책은 하나가 아니다.

이미 놓친 물고기를 아쉬워할 필요가 없다.

다음 작전주.

최근 TV에서 숱하게 나오고 있는 친환경 정책에 관련된 것이다.

무려 대통령이 밀고 있다.

섹터 자체도 몇 년 동안 주목 받지 못했다.

'후쿠시마 사태 때였나? 어처구니없는 이유로 존나 올랐지.'

2011년 동일본 대지진.

원자력 발전소에서 사고가 터지며 방사능이 노출되었다.

원자력 발전 이거 문제 있는 거 아닌가?

대체 에너지로 한동안 태양광이 주목 받았다.

하지만 사업 현실성이 없다.

태양광 발전의 전기 생산 능력이 너무나도 미약했던 것이다.

'지금도 사실은 별 차이 없지.'

이래 봬도 증권 브로커 나부랭이다.

작전도 아무나 치는 게 아니다.

전문가의 반토막 수준은 안다.

약간의 기술적 발전을 이뤘을 뿐.

여전히 단가는 높고, 특히 한국 땅은 발전 효율이 낮다.

국가 규모의 대규모 사업을 벌릴 만한 일이 아니다.

그것을 감안해도 해볼 만하다.

'한 번 쪽~ 빨아 먹고 물량 떠넘기면 되는 거지.'

주식은 '기대 심리'로 움직인다.

기술이 발전한 줄 알고 착각하는 개미들이 분명 생긴다.

이런 병신 같은 사업.

진짜로 할 일은 없다.

적당한 선에서 이슈만 빨아 먹으면 된다.

매스컴들이 알아서 띄워줄 것이다.

김민구는 태양광 관련주를 매집하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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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원전 정책.

그중에서도 노릴 만한 섹터는 태양광부터다.

'해상 풍력은 아무래도.'

주식은 회사의 가치, 그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결국 살 사람이 있어야 한다.

잘 알려지지 않은 것은 관심도 낮다.

태양광?

주택 지붕에 달려있는 걸 못 본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에 반해 해상 풍력이 뭔지 알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래서 보통 세력들의 심리가.'

개미들의 수급이 쏠릴 만한 섹터부터 노린다.

그렇게 한 번 띄우고 나면 세간의 관심이 집중된다.

나는 못 먹었는데?

아쉬워하는 개미들이 생긴다.

그 다음 2차로 해상 풍력을 띄우는 식이다.

─매수 주문이 체결되었습니다

지금은 일단 태양광.

이미 대형주들은 단기적인 수급이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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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광 테마』

하놔솔루션 27,150원 +5.0%

미래에너지솔루션 23,200원 +3.9%

OCI 89,000원 +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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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국가 정책이라는 큰 바람을 맞은 배 치고 엄청난 것은 아니다.

이제 시작이다.

'개잡주, 아니 소형주들의 매집도.'

대형주는 많이 먹어야 2배.

소형주는 소위 말하는 인생 역전이 가능한 상승률을 보인다.

줄을 잘 잡는다면 말이다.

온갖 지표를 총동원해 최고의 소형주를 찾아내고 있는데.

띵동~♪

초인종이 울린다.

혜리가 다시 돌아온 모양이다.

뭔가 놓고 간 물건이라도 있나?

'내가 좀 매력이 뚝뚝 떨어지긴 하지.'

여운이 가지 않은 걸지도 모른다.

피식 새어 나오는 웃음을 억누르고 문을 열었는데.

"뭐에요."

"……."

"왜 기분 나쁘게 헤벌쭉 웃고 있어요."

소라가 어이 없다는 표정으로 서있다.

혜리에게 맞춘 눈높이에는 가슴밖에 없다.

'가슴만 뒤지게 커가지고.'

반대로 소라는 연락이 뜸했다.

동아리에는 나오고 있지만, 사적인 대화는 한 적이 없다.

"방에서 이상한 냄새 안 나요? 불쾌한 냄새."

"냄새가 뭐냐? 냄비는 안다."

"꼭 할 말 없으면 그런 소리하더라."

'어차피 지도 다 나중에 알게 될 냄샌데.'

인상을 찌푸리며 들어오면 내가 나쁜 짓이라도 한 것 같잖아.

후배와 친목을 다졌을 뿐이다.

끼익−!

멋대로 창문을 열어젖힌다.

환기를 시키더니 그제서야 만족스러운 듯 이쪽을 돌아본다.

"선배 저 상담하고 싶은 게 있는데요."

"뭔데. 바쁘니까 3글자로 요약해라."

"3글자는 너무 짧잖아요."

베이지색 폴라티.

무미건조한 단색이지만 옷걸이가 예술이다.

큰 가슴에서 시작하는 라인이 전체적인 굴곡을 강조한다.

'진짜 한 번만 움켜쥐고 싶다.'

한 손으로 얇은 허리를 잡고 그와 대조되는 가슴을 꾹 뭉개듯 쥐면 그것만으로도 쌀지도 모른다.

"선배?"

"아 그래서 뭔데!"

"굳이 요약한다면 그……, 첫사랑인데요."

'결국 또 한 명의 여자를 울리고 말았구나.'

그 기회가 와버린 걸지도 모른다.

소라의 시선이 나를 떠나가지 않는다.

매력.

위스키처럼 숙성되고, 와인처럼 시간이 지나며 맛이 열리는 사람도 있다.

딱 나란 남자가 그러하다.

나란 남자 그런 남자.

인기 절정의 시기가 도래했다고 자축을 울렸는데.

"그래, 내가 너의 첫사랑으로서 책임이 있기는 하지."

"뭔 개소리에요. 주식 이야기인데."

"……."

조금 잘못 짚었다.

하지만 큰 틀에서의 결과는 같을 것이다.

'으므튼.'

소라가 딸딸이를 그만두고 처음 매수한 주식.

손실에서는 벗어났지만, PTSD에서는 그러지 못했다.

이후로도 계속 생각을 해본 모양이다.

자신이 잘못한 것이 뭔지, 그리고 어떻게 대응해야 옳았을지.

"제가 너무 긍정적인 소식만 듣고 고점에 매수를 했던 것 같아요."

"그래, 손절을 해야만 보이는 게 있는 게지."

"실수를 상기하면서 다시 매매를 하고 있는데요."

답이 나올 리는 없다.

한 번 경험을 했다고 쉽게 쉽게 레벨업을 할 수 있는 세계가 아니다.

'많이 굴러봐야지.'

혜리가 남친이 있었음에도 새삥이나 다름없던 것처럼 말이다.

첫사랑을 겪은 건 시작에 불과하다.

"썩 성적이……."

"에휴, 또 꼴았구나.

"별로 안 꼴았거든요! 저는 지금 배운다는 마인드로 하고 있으니까."

새로운 합리화 논리가 등장한 모양이다.

허무하게 아다 따이고 이 남자, 저 남자 전전하는 거지.

'그렇게 생각하면 꼴리긴 하는데.'

주식의 세계에서는 나쁜 선택은 아니다.

경험은 모든 성장에서 우선시되는 전제다.

"음……."

"어때요? 이 정도면 괜찮은 구간에 산 거 아니에요?"

"너는 아직도 아무것도 모르는구나."

"우씨!"

그 경험이 없다.

순진한 반응을 보이는 소라를 컴퓨터 앞에 앉힌다.

그녀의 HTS를 켠다.

최근에 매수한 주식 꼬라지를 한 번 살펴본다.

"이런 개잡주들을 왜 사."

"시총 5조가 넘어가는 대기업들인데요."

"근데 뭐 어쩌라고 요즘 누가 이런 주식 사는데."

아니나 다를까.

시가 총액이 높고 인지도가 있는 대형주 위주의 매매를 하고 있다.

'그럴 수 있지.'

그리고 그것이 틀렸다는 건 아니다.

대형주는 무겁긴 해도 그만큼 안전하다.

비양심적인 회사.

그 부분만 계산에 넣을 줄 알면 크게 실패할 일은 없다.

"그래도 펀더멘탈 대비 저평가 구간이라 살 만한 것 같은데."

"그놈의 펀더멘탈은."

"네네~ 펀더멘탈은 몰라도 헤비메탈은 아시겠죠."

"그거 마음에 드네."

하지만 고작 그 정도로 된다면 세상 모든 사람들이 주식으로 떼부자가 되었을 것이다.

가장 골 때리는 부분이 남아있다.

"억울해요."

"뭐가?"

"선배는 돈도 못 버는 이상한 개잡주만 사는데, 저는 돈 잘 버는 저평가주 사고도 수익이 안 나오잖아요."

소라가 입술을 삐죽 내밀 만도 하다.

상식적인 선에서 잘 이해가 가지 않는다.

그 상식.

어디까지나 일반인의 상식이다.

주식 시장의 생리를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여자들 생리날 파악 못하면 좆되는 거잖아.'

주식도 마찬가지.

아무리 좋은 주식이라도 주가가 오르지 않는 데는 이유가 따른다.

"예를 들어서 떼씹할 때."

"뭐라고요?"

"아니, 동네에 음식점이 많다고 생각해봐."

소라가 인상을 팍 구긴다.

알기 쉽게 비유를 들어주려고 해도 거부를 해댄다.

'아, 내가 왜 말을 걸러야 하냐고!'

무슨 채식주의자 식단마냥 건전해지게 생겼다.

몸매는 학교에서 제일 음란한 주제에.

"각각의 음식점에 들어가는 손님의 수가 전부 비슷할까?"

"아닐 것 같아요."

"왜?"

"맛있고, 인테리어 예쁘고, 합리적인 가격의 식당에 몰리지 않을까요? 저 같아도 그럴 것 같아요."

정답이다.

자본주의의 원리.

그런 머리 아픈 생각 안 해도 당연한 일이다.

"그럼 나머지 식당은 어떻게 될까?"

"그야 도태되겠죠. 식당 주인분이 더 노력을 하지 않는 이상."

"그래, 그런 거야."

"네?"

주식 시장도 다르지 않다.

세상 돌아가는 이치가 똑같이 적용된다.

'한국에는 회사가 많으니까.'

독일, 스위스의 5~10배.

그렇게 수많은 음식점, 아니 주식을 일일이 알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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