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문대 명문학과.
그런 만큼 재미있는 일은 잘 일어나지 않는다.
소소한 일도 아주 빠르게 퍼져나간다.
최근 화제가 되고 있는 사건은.
"유광 선배!"
"어, 혜리야! 안 그래도 니 이야기하고 있었는데."
"무슨 얘기요? 우~ 흉 보고 있던 건 아니죠?"
그 당사자.
언제나와 같은 귀여운 모습에 학과 선배들도 심쿵해버린다.
'진짜 존나 귀엽네.'
'내가 5년만 대학을 늦게 왔어도!'
'솔직히 4살 차이면 해 볼만 하지 않나? 궁합도 안 본다는데.'
인기가 매우 많다.
그 정도를 넘어 전폭적인 지지를 보낸다.
그도 그럴게 복학생들.
특히 남자 3, 4학년 무리는 언제나 외롭다.
"그럴 리가."
"그, 그 동아리 만든다며! 소식 들었는데."
"맞아요. 선배들 혹시 가입하고 있는 동아리 있어요~?"
'있던 것도 탈퇴하고 들어가야지.'
'혹시 내 인생에도 드디어 봄이 찾아오나?'
'제발.'
같은 학생들임에도 자신들은 어른으로 취급 받는다.
우리도 학생인데?
외로운 자신들에게 말을 걸어주는 착한 후배.
귀엽고 깜찍하기까지 하다.
도움을 주는 건 어렵지 않다.
할 수 있는 것이라면 뭐든지 부탁해 달라.
'존나 쉬움.'
혜리는 동아리를 창설했다.
정식 등록을 위해서는 동아리원이 필수 불가결.
자신의 인맥을 활용해 쉽게 해결하고 있다.
한가해 보이는 선배가 많다.
"여기 사인! 해주실 거죠?"
"아~ 나 동아리 같은 거 안 들어가는데."
"아아앙~! 선배 쪼잔해."
"아라따따!"
조금만 애교를 부리면 간단하게 넘어온다.
동아리 창설의 최소 인원수는 채웠다.
"혜리야!"
"응?"
"너 동아리 개설한다며."
"알고 있네. 가입할 생각 있어?"
"내가 얼마나 기다렸는데!"
동기들 중에도 있다.
교우 관계가 좋은 만큼 어렵지 않을 거라고 생각을 했지만.
'욱오빠도 은근히 인망이 있네?'
생각 이상으로 반응이 좋다.
최근 '주식'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애들이 많아졌다.
찬욱의 영향.
당장 자신만 해도 그러하다.
간접이 아닌 직접적으로 따르는 추종자들도 있었다.
"그 오빠가 정신이 좀 나가있긴 해도……."
"그건 확실하지."
"주식 관련해서는 틀린 말 안 하긴 해."
일반 학생들 사이에서도 평판이 나쁘지 않다.
물론 주식에 한정된 이야기다.
'욱오빠의 매력을 모르네. 나야 좋지만.'
그런 친구들을 보며 회심의 미소를 짓는다.
사실 자신도 다르지 않았다.
꼬질꼬질한 복학생.
옷도 못 입고, 얼굴도 평범해서 인기와는 거리가 있다.
《알았지? 남자는 능력이랑 잤잤이야!》
하지만 남자는 얼굴이 다가 아니다.
여자 선배들이 하던 가스라이팅.
자신이 존잘남을 채가는 걸 견제하려고 그런다.
당시에는 그렇게 생각했다.
"근데 그 선배가 회장이면 으음~."
"아니야. 회장은 나야."
"혜리가?"
"회장 하면 대박 바쁠 것 같은데. 학업에 지장 가는 거 아니야?"
이제야 이해가 간다.
남자에게 진짜 중요한 게 뭔지 몸으로, 침대에서 깨달았다.
얼빠인 친구들은 절대 모를 것이다.
경쟁자가 줄어드는 셈이니 혜리로서는 좋다.
'소라만 어떻게 하면 될 것 같은데.'
신경 쓰이는 것은 소라.
둘 사이의 달라진 기류를 눈치채지 못할 만큼 바보가 아니다.
이쁘다.
몸매는 무슨 연예인급이다.
남자에게 인기가 없을 수가 없다.
실제로 관심을 가지고 있는 선배들이 많다.
소라 좀 소개시켜 달라며 난리도 아니다.
'여자에 환장하는 선배 몇 명 붙여주면……. 음~~~~! 사이만 안 좋았어도 질렀을 텐데 까비.'
술자리에 데리고 가면 된다.
처음에는 마지못해 가지만, 나중에는 자기가 좋아서 가게 돼있다.
그러다 사고 한 번 치면 게임 끝.
하지만 절친이다 보니 실행에 옮기는 건 고민이 된다.
"어, 오빠?"
찬욱에게서 전화가 온다.
혜리는 핸드폰에 대고 반가운 목소리를 속삭인다.
<어때? 잘돼가?>
"네, 너무 잘돼서 신기할 정도에요. 동아리원들도 많이 모았고, 아! 교수님이 뭐라고 한 줄 아세요?"
동아리를 만든 것.
다름 아닌 찬욱 오빠의 부탁이다.
<뭐라고 했는데?>
"그게요~ 오빠 들으면 깜짝 놀랄 텐데."
<뭔데.>
"사실 저도 큰 기대 안 하고 갔거든요?"
하지만 쉬운 일이 아니다.
동아리원은 어찌저찌 모을 수 있지만, 동아리를 운영하는 건 별개의 일이다.
시간이 좀 지나면 유령 부원 천지.
소규모의 친목 모임 정도로 유지되는 경우가 오히려 대다수다.
"최명철 교수님 알죠?"
<기억력 안 키워.>
"키우는 게 좋을 것 같은데……, 아무튼 미시경제학 교수님 있잖아요. 오빠도 듣는 거."
<미시경제학이 뭐냐? 미시 아줌마는 안다.>
과동아리가 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동아리 활동이 전공 수업과 연결되는 경우가 있다.
학과에서 활동비를 배정해주기도 한다.
그런 만큼 잘 허가를 내주지 않는데.
<그 교수님이?>
"오빠도 양심이라는 게 있군요."
<양심이 뭐냐? 등심은 안다.>
의외로 흔쾌히 허락해주셨다.
최근 학생들의 투자 열풍을 긍정적으로 지켜보고 있다.
한국대 주식 동아리.
한국 금융 역사를 뒤바꾸는 시발점은 그렇게 탄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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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뉴욕 월스트리트.
'와……, 여기가 그 유명한 월가구나.'
처음 미국에 온 명수는 그 어마어마함 존재감에 압도되고 있다.
산처럼 높은 빌딩들이 빼곡하게 서있다.
이런 고층 빌딩.
당연히 서울에도 있고, 부산에도 있다.
요즘은 세종시도 개발이 한창이라고 한다.
하지만 의미가 다르다.
한 명의 금융인으로서 감회가 새로울 수밖에 없다.
'세계 금융의 중심지라.'
월가, 월스트리트는 '금융' 하면 떠오르는 장소다.
미국의 증시를 선도하기 때문이다.
미국이 세계 증시에서 차지하는 크기.
무려 70%로 단순 비율만 따져도 중요도가 실감된다.
막말로 다른 증시는 곁다리다.
전세계의 돈이 이곳 미국의 월스트리트에 몰리고 있다.
꿀꺽!
그리고 자신은 그 돈을 만지는 트레이더 중 하나.
명수는 월스트리트의 한 펀드에서 일을 하게 되었다.
꿈만 같다.
금융인으로서 선망하고 있었다.
월가에서 일을 한다는 건 트레이더로서 최고의 명예다.
'울프 오브 월스트리트도, 빅쇼트도 진짜 5번은 본 거 같은데.'
이곳을 배경으로 한 영화도 한둘이 아니다.
하나하나가 명작이고, 인생의 길라잡이가 되었다.
트레이더를 목표로 하게 된 이유 중 하나.
어쩌면 자신은 엑스트라 중 하나일지도 모르지만.
『CW 증권』
그것만으로도 족한다.
아니, 족하게 되었다.
자신이 일하게 된 회사는 다름 아닌 한국 회사다.
'진짜 크다 건물! 우리나라 회사가 월스트리트 한복판에 있다니.'
세계에서 가장 땅값이 비싼 지역 중 하나다.
연봉을 2억 받아도 월세가 1억 나가기로 유명하다.
그런 월스트리트에 대형 빌딩.
이 회사가 얼마나 잘 나가는지, 얼마나 성공을 했는지 방증한다.
무려 한국인이 CEO로 있다.
한국 직원들도 다수 있으며 자본도 한국계 자본으로 이루어졌다.
'캬아~! 이래서 주모를 찾는구나!'
국뽕.
부끄러워서 멀리하던 감정을 느끼게 된다.
트레이더이기 때문에, 금융인이기 때문에 그 대단함을 안다.
이곳에서 일을 하며 한국의 위상을 올릴 것이다.
한국인으로서 자긍심이 생기며 가슴이 뿌듯해지고 있었는데.
"아무튼 NTR해서 존나 따먹으면 되지."
"아니~ 어차피 3개월밖에 못 빌리잖아. 그동안 따먹어도 조교가 안된다니까?"
그 실상은 상상과는 매우 다른 것이었다.
회사에 출근하자마자 믿을 수 없는 대화가 들려온다.
'회사에서 저런 잡담을……, 해도 되는 거야?'
좋게 봐도 잡담.
이성적으로 보면 음담패설이다.
어디 가서 당당하게 떠들 만한 이야기는 아니다.
그것이 맞다.
세상 어디를 가도 그럴 것이다.
아무리 미국이라 하더라도 상식이 크게 다르지는 않을 텐데.
"거봐. NTR이 답이지?"
"하아……."
"빌린 동안 존나 따먹으면 되지. 정신 못 차리게 따먹으면 알아서 벌리게 되어있는 걸 몰라?"
업무가 시작돼도 분위기가 변하지 않는다.
다시 한 번 둘러봐도 이곳은 월스트리트고, 자신은 CW 증권의 사무실에 있다.
'미국이라 그런가? 원래 이렇게 분위기가 자유로운……, 건가?'
CW 증권은 본사와 지사가 존재한다.
명수는 한국에 있는 지사에서 근무를 했고, 실적을 인정 받아 본사에 오게 되었다.
당연히 환상이 있다.
본사 사원은 엘리트 중의 엘리트.
월가에서 근무하는 것부터 범인은 아니다.
CW 증권은 실적도 굉장하다.
그 월가에서조차 내로라하는 엄청난 사람들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 진짜 수급 존나 안 붙네."
"그러게 한 번 따먹었으면 버려야지."
"순정이야."
"개뿔이 이미 걸레짝 다 된 년인데."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자신이 잘못된 게 아니다.
근무 시간에 계속 음담패설을, 여자 이야기를 하고 있다.
깊어지는 고민.
명수가 자신들을 흘금흘금 쳐다 보며 눈치를 보자 당사자들도 시선을 깨닫는다.
"뭐야, 새로 왔어?"
"네……, 박명수라고 합니다. 지사에서 발령 받았습니다."
"말을 하지~! 아무튼 반갑다야."
딱히 부끄러운 것도 없는 모양이다.
자연스럽게 선배 행세를 해댄다.
자신은 인턴인 셈.
한동안 회사에 적응하며 바뀐 업무를 배워 나가야 한다.
"여기는 그냥 실적이 다야. 실적 못 내면 ○켓몬 트레이너 되는 거야."
"네? ○켓몬이요?"
"○켓몬 몰라?"
"아뇨, ○켓몬은 아는데……."
적응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다.
한국인.
지구 반대편 미국이지만, 업무 환경은 한국과 비슷하다.
이해가 안되는 건 오직 그 음담패설뿐이다.
아무리 자유의 나라 미국이라 하더라도 상식이라는 게 있지 않은지.
"아~~!"
"뭔가 한국에 있을 때랑은 너무 달라서……."
"아냐! 아냐! 아냐! 니 말이 맞아."
"우리끼리는 그냥 평소대로 대화한 건데."
"미국은 성생활도 자유롭게 이야기할 만큼 오픈 마인드라 그런 건가요?"
"아니야! 업무 이야기야."
자신의 상식은 틀리지 않았다.
회사에서, 그것도 업무 시간에 사적인 성생활을 이야기하지는 않는 법이다.
'설마.'
하지만 업무 이야기라면?
명수도 들어보았다.
트레이더들 사이에서 쓰는 은밀한 표현이 있다고.
"그게 그건가요?"
"그래."
"그런 셈이지."
"히토미에 나올 것 같은 말들이 들리던데."
""…….""
도저히 믿기가 힘들다.
하지만 당사자들이, 자랑스러운 선배들이 그렇다는데 아니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래서 그렇구나.'
짐작 가는 바는 있다.
한국대 주식 동아리 출신.
증권 업계에서 악명이 자자하다.
말씨가 험하다.
그에 비례한 엄청난 실력을 가지고 있다고도 말이다.
"그냥 이해하기 쉬운 군대식 비유 같은 거라고 생각하면 돼. 군대 나왔지?"
"아, 네……."
"일종의 암호로서의 효과도 있어!"
"암호요?"
"그래, 금융인이면 알겠지만 보안이 중요하잖아? 실시간으로 거래되는 정보가 만에 하나라도 새어 나가면 큰일 나니까."
CW 증권은 신생 헤지 펀드다.
여느 업계가 그러하듯 굴러온 돌을 박힌 돌들이 견제하려고 한다.
그러한 풍파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하지만 안 그래도 알아 듣기 어려운 한국어로 속어까지 쓰니.
"그런 일이 있었군요."
"그래, 여기 월가는 눈 뜨고 코 베여간다는 건 속담으로 만들 필요도 없는 일상이야."
"근데……."
"응?"
"어쩌다가 저속한 표현이 스탠다드가 된 거에요? 명색이 금융인이."
""…….""
물론 흔한 일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