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6화 (26/450)

주식.

투자를 통해 돈을 버는 행위.

하지만 제3자의 입장에서는 그렇게 보이지 않는다.

편하게 돈을 복사한다.

'능력'이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불로소득을 누린다.

이해가 되지 않는다.

대체 뭐가 잘났는데?

겉으로는 고개를 끄덕여줘야 한다.

주위에서 그렇게 말하니까.

그리고 자신은 할 자신이 없으니까.

그 현실을 인정하고 살았다.

'왜, 왜, 왜!'

사람마다 잘하는 게 다른 법이다.

단정한 외모와 어른들에게 귀여움 받는 성격을 타고 났다.

공부도 잘한다.

한국대 내에서라면 외모 탑급의 여신으로 스포트라이트 받을 수 있었는데.

파박!

기다린 건 평범한 현실.

혜리는 손에 잡혀있는 마우스를 기분 내키는 대로 잡아 던진다.

화장품대에 부딪히면 요란한 소리를 낸다.

단 하나밖에 없는 마우스지만 주우러 가지 않는다.

'왜 나만 갖고 그래? 하루쯤 오를 수 있는 거잖아!!'

어차피 쓸 일이 없으니까.

모니터 화면에 떠올라 있는 자신의 계좌는 바라보기도 싫다.

---------------------------------------------+

『남혜리님의 총 자산』

4,220,892원

−5,396,974(−56.11%)

+---------------------------------------------

주식.

하고 싶다는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그런 귀찮은 걸 내가 왜?

계기는 소라였다.

그녀가 추천한 주식을 사고, 주가가 내려간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소라가 픽해준 종목은 기다리기만 하면 무조건 오르더라.》

하지만 결과는 수익.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해야만 했다.

학과 내 소라의 입지만 넓혀준 꼴이 되었다.

'대체 내가 그년 보다 못한 게 뭔데?'

너만 잘난 줄 알고?

혜리는 남들에게 비밀로 2번째 계좌를 개설해 주식을 샀다.

소라의 추천이 아닌 자신의 의지로 말이다.

똑같이 수익을 낸다면, 아니 더 많이 낸다면.

'걔 꺼는 기다리면 오르잖아? 내 꺼는 언제까지 기다려야 돼!!'

기다린 건 잔혹한 현실이다.

수익은 커녕 손실.

쌓여갈수록 마음은 더 조급해진다.

만회하기 위해 리스크 높은 투자에 손을 댄다.

그리고 결과는 더 큰 손실로 돌아오며 악순환이 되풀이된다.

'…….'

분명 오르기만 하던 주가.

자신이 사고 난 후부터 귀신 같이 하락을 하더니 복구는 커녕 점점 더 먼 곳으로 떠나간다.

할 수 있는 건 물을 타는 것 뿐이다.

아르바이트비, 용돈, 생활비 등 넣을 수 있는 건 다 넣었다.

〔아빠♡〕

「생활비 당겨 달라고?」

「준지 얼마 안된 것 같은데 돈 쓸 일이 많니?」

−그럴 일이 있었어요 ㅠ

−안될까용?

「엄마한테는 비밀이야」

−아빠 사랑해요♡

그것도 슬슬 한계.

복구가 되었다면, 그 근처라도 갔다면 이러고 있지 않을 것이다.

눈덩이처럼 불어나기만 한다.

'짜증 나!!'

사실은 알고 있다.

자신은 주식에 재능이 없다.

잘 알지도 못하는 회사를 산 것도 잘못이다.

그렇게 어리광을 부려도 되는 인생을 살아왔다.

대학교에서도 그렇게 될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하지만 소라의 존재.

신입생 환영회에 참석한 순간부터 주인공은 자신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고.

《저는 학교에 공부하러 왔습니다.》

그녀의 발언으로 그나마 있던 아이덴티티도 빼앗기게 되었다.

그녀도 가만히 있는데 자신이 튈 수는 없다.

드드득!

선을 당기듯 뽑아내자 마우스가 딸려 올라온다.

부딪히며 넘어졌던 화장품 꾸러미도 모습을 드러낸다.

'…….'

외모.

어렸을 때부터 관심이 있었다.

아니, 그것이 자신에게는 당연했다.

어딜 가도 이쁘고, 귀엽다는 소리를 듣는다.

장점을 더 살리고 싶은 것이 사람 마음이다.

그러면서도 차별화를 원한다.

남들과 달리 신경을 쓰지 않아도 원래 이쁘게 태어났다.

진짜 그런 사람이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연예인은 연예인이니까, 라며 넘겨왔지만.

'화장도 씻어야 하고, 피부 관리도 해야 하고 할 일 드럽게 많은데.'

같은 여자이기 때문에 안다.

화장 없이도 빛이 나는 찐미인이다.

소라와 만나고 자존감이 꺾였다.

잘 하지도 않던 두꺼운 화장을 매일 하고 있다.

열등감.

질투.

온갖 부정적인 감정.

대학교에 들어가고부터 자신은 불행해졌다.

띵동~♪

* * *

혜리에게 받은 까톡.

〔혜리 A급〕

「오빠 주식 잘하죠?」

−주식이 뭐냐? 난 빵보다 밥파다

「에이 장난 치지 말고용」

「삐진 이모티콘.jpg」

그 내용은 다름이 아니었다.

그도 그럴게 평소에 자주 받는다.

'주식을 전파하고 다니니까.'

일부 사건들이 주목 받으며 신뢰도 쌓였다.

신자가 생겼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꼭 오르는 종목 있을까요?」

「일주일 내에!」

−종목이 뭐냐? 등목은 안다

「아앙~」

「자꾸 틀딱 농담 하지 마시구용!」

「화난 이모티콘.jpg」

개인적으로 접촉해오는 사람도 있다.

평소에는 관심 없는 척하면서.

'원래 돈에 관심 없다는 애들이 더 밝히는 법이지.'

아니, 꽁돈 싫어하는 사람 없는 법이다.

특히 주식은 '불로소득' 취급을 받는다.

일 안 하고 버는 돈.

적어도 주식을 잘 모르는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한다.

내가 가장 싫어하는 부류다.

일하지 않는 자에게 물고기를 잡아다 줄 이유가 없다.

띵동~♪

하지만 혜리.

나와 친분이 있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살갑게 다가왔다.

'크흠! A급이기도 하고.'

소라에게 가려져서 그렇지.

일반인 중에서는 제법이 수준이 높은 편이다.

주식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면 가르쳐주지 않을 이유는 없다.

그런 것이 아니었다.

"왔어요?"

분위기.

솔직히 파악 못하는 편이다.

눈치가 없다는 소리도 자주 듣는다.

하지만 주식에 한해서는 달라진다.

굳이 내 전문 분야가 아니더라도.

"생리야?"

"하고 많은 말 중에 생리가 뭐에요. 그러니까 여자 애들이 싫어하지."

"그게 아니면 주식 꼴은 것밖에 없으니까."

"그쪽이 맞아요."

밝고 핑크핑크한 여자 사람방.

그와 대조되는 목소리 톤에 이상을 못 느낄 수가 없다.

'평소와도 다르고.'

나와 사이가 좋은 게 아니다.

학과 내 모두와 가깝게 지낸다는 표현이 옳다.

분위기 메이커.

어느 집단이든 한 명씩은 있는 교우 관계가 좋은 인간상이다.

"넌 주식 같은 거 관심 없는 줄 알았는데."

"맞아요. 관심 없어요."

"주식으로 돈을 버는 자신에게는 관심이 있었던 건가?"

정곡이었던 듯 고개를 홱 하고 돌린다.

한국 사회에서는 그렇게 드문 일도 아니다.

'남들이 잘 나가면 괜시리 조급해지거든.'

타인의 시선을 신경 쓰는 사회.

자신도 하지 않으면 뒤처진다는 느낌을 받는다.

준비도 없이 무작정 뛰어든다.

사회 전반적인 문제지만, 투자 분야도 예외는 아니다.

"그래도 누구처럼 거지 꼴은 안 하고 있네."

"네?"

"아니야. 혼잣말이야. 그래서 원하는 게 뭔데?"

미사일 오고 가는 전쟁터에 딱총 하나 들고 뛰어든 꼴.

결과가 좋다면 그게 더 이상하다.

'그래도 이런 장이면 크게 잃지는 않았을 텐데.'

상승장.

코스피 전체 지수가 올라간다.

프로그램 매수에 의한 낙수 효과가 존재한다.

소라 같은 케이스가 특이 케이스다.

트레이더라는 근거 없는 자심을 가지고 위험한 방식의 매매를 했다.

"음……."

"어때요?"

"뭐긴 뭐야 좆된 거지."

"와~."

"니 계좌야."

영향을 받은 것 같다면 기분 탓일까?

아니, 소라 이상으로 위험한 매매를 저질렀다.

'이 똘빡년아!'

혜리의 계좌.

앞자리 수부터가 심상치 않다.

아무리 투자를 실패해도 반토막은 웬만하면 없다.

주식은 위험 자산 중에서 리스크가 낮은 편에 속한다.

하루아침에 빚이 60억이 생겨서 오징어 게임에 끌려가는 선물에 비하면 말이다.

"쌍부랄? 뭐야, 이 개잡주는."

"왜요? 나쁜 주식이에요?"

"무슨 주식인지도 모르고 산 거야?"

쌍부랄.

회귀 직후에 매매했던 주식이다.

안면이 있다 보니 상황 파악은 바로 된다.

---------------------------------------------+

『쌍부랄 재무제표』

[대충 럼블 궁 깔린 상황.jpg]

+---------------------------------------------

"봐봐."

"이게 뭐에요?"

"재무제표. 이 회사가 얼마를 벌고, 얼마를 쓰는지 분기별로 올리는 보고서."

"빨갛네요."

전형적인 개잡주다.

돈도 못 벌고, 그나마 버는 것도 회사 운영비로 나가서 적자만 본다.

'역설적으로 그래서 작전을 치기엔 좋아.'

회사 망할 것 같은데?

정상적인 사람은 사지 않는다.

세력 입장에선 매집을 할 때 방해가 없어서 좋다.

흉기차를 인수한다고 찌라시를 뿌리며 주가를 펌핑했다.

그 이후에도 몇 번 핑계를 대서 올렸던 모양이다.

"그래도 4천원까지 갔던 주식인데……."

"과거가 무슨 상관이야. 주식은 미래를 보고 사는 거지."

현재 가치는 주당 천원대.

반에 반토막 수준으로 주가가 살벌하게 떨어졌다.

'확실히 소라랑은 다르네.'

초보 투자자들이 흔하게 저지르는 실수다.

○○원까지 갔던 주식이니 다시 올라가지 않을까?

우량주라면 그나마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작전주는 대부분의 경우 그럴 일이 없다.

"차트를 좀 봐주자면 1700원 선에 매물대가 쌓여있거든?"

"매물대가 뭐에요?"

"이걸 돌파하려면 그만한 재료가 있어야 하는데 당장 얼마 전에 끝난 작전주에 다시 불이 붙는 건 웬만한 재료로는 힘들어 보여."

"작전은 또 뭐에요?"

한 번도 올라간 적이 없는 주식.

물린 사람이 없으니 쉽게 쉽게 가격을 올릴 수 있다.

그렇게 한 번 쏘고 내려오면 매물대가 생긴다.

다시 돌파하기 힘드니 버려지는 주식들이 많다.

'아이고야.'

소라는 경제학과 학생으로서, 트레이더 지망생으로서 기본 이상은 알고 있다.

자잘한 건 설명을 하지 않아도 될 정도다.

실수도 납득이 가는 실수.

하지만 로또, 복권을 긁듯이 무지성으로 매매한 것은 도와준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다.

"그냥 개한테 물린 셈 치고 손절하지?"

"손절이요?'

"설마 손절도 몰라?"

"알아요. 근데……, 오를 수도 있는 거잖아요."

이해 자체를 못하니까.

물고기도 잡을 생각이 있는 사람한테나 잡는 법을 가르쳐줄 수 있다.

정말 일반인이 주식을 한 느낌.

펀드 매니저로서 상담을 해보면 대부분 대책이 없다.

'왜 주식을 하는 건지 모를 만큼.'

펀드 입장에서는 예탁금이 생기면 좋다.

그래서 고개 끄덕끄덕 해주며 돈을 받는다.

"선배 주식 잘하잖아요."

"음."

"그러니까 어떻게든 해주시면 안돼요?"

"내가?"

하지만 지인.

도와줬다가는 괜히 귀찮은 일만 생기고, 욕은 욕대로 먹는다.

'그런 비생산적인 일을 내가 왜 해.'

소라를 도와준 건 어디까지나 싹이 보였기 때문이다.

그 나이에 트레이더를 꿈꾸는 젊은 인재는 드물다.

등 떠민 것도 미안했고.

혜리한테는 미안한 일도 없고, 트레이더로서도 별 기대가 되지 않는다.

"내가 오늘 좀 바빠서……."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