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5화 (25/450)

"아니, 왜 이렇게 진지를 빨아."

'저……, 진짜 힘들었단 말이에요."

"당연히 힘들지. 주식으로 돈 꼻고 안 힘든 사람이 어딨어."

"선배가 도와줘서 정말 고마워요. 지금도 고맙게 생각해요."

'크흠!'

립밤밖에 안 발랐는데 탱글탱글하고 생기 있는 입술.

빛에 살짝 반사가 되자 그렇게 탐스러울 수가 없다.

그린라이트인가?

인생의 전환점이 오는 건가?

까톡!

잠깐 낭만에 젖어있던 찰나.

"어, 혜리다."

"……."

"선배, 혜리한테 까톡 왔어요."

"걔는 갑자기 왜!"

"몰라요? 내일 과제 발표일이잖아요."

학생은 학교에 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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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시경제학 수업.

"저희 조는 석유와 석탄에 대해 조사했습니다! 최근 나스닥과 코스피를 비롯한 전세계 주가가 올라가고 있잖아요? 그래서 수요가 늘어나지 않을까 해서 헤헤."

껄렁껄렁한 차림의 남학생이 강단에서 발표를 한다.

조별 과제가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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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

최근 국제 원자재 가격이 상승하고 있습니다.

그에 따라 주가 상승이 예상되는 수혜 섹터와 반대로 하락이 예상되는 피해 섹터를 조사하고, 그 이유에 대해 조사해오세요.

※ 해당 섹터의 주가가 3개월 후 실제로 상승했다면 그 상승분만큼 1학기 평가에 반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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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자재.

석유, 금, 은 등 기본적인 것부터 시작해서 산업 전반에 쓰이는 재료들을 통칭한다.

가격의 등락은 실물 경기에도 영향을 미친다.

학생의 발표를 들은 교수가 인자한 미소를 짓는다.

<제 강의를 열심히 들어준 모양이군요?>

"네, 교수님!>

<맞습니다. 공급과 수요의 법칙만큼 가격 상승을 설명하는 명료한 논리가 없죠.>

최명철 교수가 원했던 방향이다.

경제학이라는 건 정말 어렵고, 이를 현실과 연관 지어 생각하는 건 더더욱 난해하다.

하지만 원자재라는 매개체를 근거로 생각한다면 이해가 한결 편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내준 과제인데.

"D조 조장 혜리입니다. 저희 조는 조금 특별한? 원자재에 대해 조사하게 됐어요. 네, 그렇게 되었습니다."

""하하하하!""

신경 쓰이는 조도 있다.

물론 교수로서 아끼는 학생도 있고, 기대가 되는 학생도 있다.

둘 중 어느 부류도 아니어서 문제다.

"농산물 원자재를 조사해왔는데요. 발표 진행해도 될까요 교수님?"

<문제 없습니다. 오히려 그쪽은 조사한 학생이 없나 하던 참이었어요.>

원자재는 광물만이 있는 게 아니다.

주식으로 삼는 쌀, 밀, 콩 등도 해당한다.

그리고 흔하지는 않지만.

"최근 캘리포니아에서 오렌지 전염병이 돌고 있거든요. 그래서……, 네! 오렌지 주스 가격이 오를 것 같다고 하십니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주제.

강의실에 앉아있는 학생들이 술렁일 만도 하다.

"오렌지 주스는 뭐야?"

"오렌지 주스가 왜 나와!"

"실화냐."

"설마 마트 오렌지 주스 가격 조사해온 거야?"

혜리도 얼굴이 새빨개진다.

가능한 정상적인 주제를 선정해 달라고 간곡히 부탁을 했건만.

'난 몰라!'

설명이 그럴 듯하다.

그래서 납득을 했지만, 막상 발표하려고 하니 입이 떼지지 않는다.

오렌지 주스는 양반.

다음 주제는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할지 벌써부터 막막할 지경이다.

"그리고 연어 가격에 숏을 치셨습니다."

"숏?"

"숏이 뭔가요?"

"네, 숏은 가격이 내려가는데 베팅한다는 뜻입니다. 해당 조원의 의견에 의하면 노르웨이가 2015년 중국 주도의 IMF라 할 수 있는 AIIB에 가입한 것이 선물 가격의 상승을 주도해왔지만, 기대감으로 급증했던 생산량이 2017년부터 출하가 되면서 가격 하락을 견인한다고 하는데 요즘 비싸서 못 먹는 연어로 무슨 소리하는지 모르겠다는 조장 의견도 첨부하겠습니다."

""하하하하!!""

준비해온 대본을 속사포처럼 읽으며 간신히 흘러 넘긴다.

오렌지 주스는 납득이라도 됐지만 연어라니?

조장인 자신도 잘 모르겠다.

곁눈질로 교수님의 표정을 살핀 혜리는 침을 꿀꺽! 삼킨다.

교수님의 얼굴이 완전히 굳어있다.

역시나 발표의 내용이 마음에 안 든 것이다.

"정상적인 것도 있습니다! 철광석에 대해서인데요……."

그 정도는 예상했다.

엘리트 팀원이 있기 때문에 적어도 낮은 점수는 받지 않겠지.

"와……, 쟤네 조사 너무 잘해왔다."

"우리도 철광석 하지 않았어?"

"지금부터 수정하자!"

"나 철광석 한 번 투자해볼까?"

예상대로 반응이 좋다.

다름 아닌 소라가 정리를 한 주제이니 그럴 수밖에 없다.

'그래, 누구 발표 내용인데 당연히 반응이 좋겠지~.'

적어도 A 이상의 점수는 나올 것 같다.

강의실 이곳저곳에서 들리는 소리에 안심을 했지만.

<발표 수고했어요. 흥미로운 내용이었어요.>

"감사합니다 교수님!"

"저기."

<발표자에게 질문이 남았나요?>

"아뇨, 교수님께 여쭤보고 싶은 게 있는데요. 오렌지 주스랑 연어 같은 것도 원자재라고 할 수 있어요? 원자재가 아니지 않아요?"

가슴이 철렁한다.

소라만큼 크진 않아도 어디 가서 꿀린다는 생각은 든 적이 없다.

'저년 일부러 우리 맥이려고 하는 거 맞지?'

사이가 썩 좋지 않은 여자 동기.

가장 신경 쓰고 있던 부분을 굳이 캐묻는다.

발표는 잘했지만 주제 자체가 탈락이면 말짱 도루묵이다.

교수님 표정도 분명 안 좋아 보였는데.

<오렌지 주스와 연어도, 연어는 저도 방금 전에 확인을 했지만 둘 다 원자재가 맞습니다.>

"그래요……?"

"그럼 오징어도 원자재인가요 교수님!"

""하하하!""

<어? 아니에요! 이참에 설명을 좀 하자면…….>

전세계에서 소비량이 많고, 생산량이 예측이 되는 것에 한한다.

즉, 양식이 안되는 오징어는 원자재에 속할 수 없다.

밥상에 올라오는 연어는 대부분 양식.

산업적인 측면에서 봤을 때 연어는 공장에서 찍어내는 것이나 다름없다.

'성장에 2년이 걸리는.'

차이점이 있다면 생산 시간이다.

생물인 만큼 크는데 당연히 시간이 걸린다.

수요 예측에 실패했다?

그 말이 사실이라면 공급과 수요의 법칙에 따라 가격이 하락할 수 있다.

<연어라는 특수한 원자재, 그리고 숏에 베팅했다는 점은 채점에서 긍정적으로 참고하겠습니다."

"오오~~!!"

여타 원자재와 다르지 않다.

오히려 독특한 발상을 했다는 점이 높은 평가를 받는다.

"나도 저런 거 할 걸!"

"특이한 거 해야 점수 많이 받는구나……."

"D조는 대박이네."

"연어 말고 또 다른 거 없어?"

강의실이 소란스러워질 만도 하다.

똑같이 조사를 해도 더 높은 평가를 받을 수 있네.

'그런 게 아닌데.'

학생들의 반응을 보며 씁쓸한 표정을 짓는다.

결코 꽁으로 점수를 더 주는 게 아니다.

섹터가 특수한 만큼 자료도 더 적다.

그리고 시장 구조를 파악하는 것이 어렵다.

무엇보다 발상.

노르웨이와 중국의 관계 회복이라는 방아쇠를 역으로 이용했다.

'요즘 애들은 모를 수도 있어.'

노벨평화상을 주는 기구는 노르웨이에 있다.

2010년 중국의 민주화 운동가 류샤오보가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노벨평화상 왜 줌?

중국 공산당은 꼬투리를 잡았고, 노르웨이의 연어 수출을 통제하며 사실상의 경제 보복을 감행했다.

그런데 다시 중국과 가까워졌다.

그렇다면 연어 가격도 오를 것이다.

여기까지는 명철도 떠올릴 수 있었지만.

"정말이네? 요즘 연어 가격 내리나 봐!"

"어디서 봤어?"

"구글에 연어 선물 쳐봤어."

"저 선배 허당은 아니라니까?"

"우리 동네 초밥집은 가격 인상했는데 이상하네……."

현실은 다르게 움직인다.

원자재는 미래 가격을 예상하는 '선물 시장'이라는 게 열린다.

'다 반영이 됐던 거구나.'

자신이 떠올렸던 것.

시장은 이미 알고 있었다.

그리고 다음 미래를 반영하려 한다.

미래의 미래를 읽어버린 것이다.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는 분석력이다.

자신의 착각이 아니었다.

찬욱은 범상치 않은 재능을 가지고 있다.

가끔씩 이상한 발언을 쏟아낸다.

사람들을 당혹스럽게 만들긴 해도.

"선배 짱이다."

"미시경제학 좀 가르쳐주시면 안돼요?"

"미시경제학이 뭐냐? 미시 아줌마는 안다."

사실은 천재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을 뿐일지도 모른다.

발상이 너무나 기발해서 말이다.

"동탄에서 많이 볼 수 있는 여성상이지."

""오오!""

"주로 저런 몸매를 가지고 있다.."

""오오~!""

"선배 맞을래요?"

'그렇……, 겠지?'

너무 기발한 나머지 분란을 일으키기도 한다.

지금도 1학년 수석과 싸우고 있다.

'후우…….'

그런 소라와 찬욱을 보며 혜리는 한숨을 내뱉는다.

발표를 하는 자신은 죽을 맛이었다.

다행히 잘 풀렸다.

평가도 최소 나쁘지는 않을 예정.

아니, 선배가 한 것까지 잘 풀렸다면.

"좋겠다~."

"응?"

"너희 조는 다 잘하잖아~ 난 조장인데 조사까지 하고 힘들어 죽겠는데."

"그러게 버스 타네."

아까 맥이려고 했던 년.

혜리는 밝은 미소를 지으며 주하의 말에 맞장구를 쳐준다.

그것이 자신에게 어울린다.

발랄한 성격을 가진 학과의 분위기 메이커 말이다.

'다들 개성이 너무 강해서, 잘나셔서 나는 존재감이 없나 봐.'

남몰래 고민을 삭힌다.

* * *

"어떻게 연어를 떠올렸어요?"

하교길.

이전과는 달라진 점이 있다.

'얘는 연애세포가 없나 봐.'

관상학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만든다.

소라가 또 주식 질문을 던져온다.

"연어가 상대적으로 예측하기 쉬우니까."

"그렇게 특수한 원자재가요?"

"뭐가 특수해!"

원자재는 종류가 한두 가지가 아니다.

그렇게 종류가 많다는데 의의가 있다.

'투자는 전문 지식을 가지는 것도 중요하지만.'

수비 범위가 넓은 것도 능력이다.

적재적소에 상황을 이용하는 능력 말이다.

"연어가 자라는데 얼마 걸려?"

"먹는 방법은 잘 아는데."

"2년. 그러면 2년 전 생산량을 보면 올해 출하량을 추측해볼 수 있겠지?"

2015년은 연어가 가장 많이 키워진 시기.

따라서 올해는 연어가 많이 출하가 될 뿐더러.

'경기랑도 밀접한 연관이 있어서.'

고급까지는 아니어도 나름대로 가격대가 있는 식재료다.

따라서 경기가 좋아야 잘 팔린다.

"작년부터 경기가 좋았잖아."

"네. 주식도 많이 올랐어요."

"작년에도 생산량이 많았을 거란 거지. 앞으로도 쭉 많을 예정이고."

즉, 한동안은 가격이 싸질 것이다.

이렇게 시기마다 해먹기 좋은 원자재가 존재한다.

"너 광어 좋아해?"

"굳이 따지면 좋아하는 쪽인데요."

"요즘 가격 어때?"

"비싸요."

"앞으로 한 1년 지나면 싸질 거야."

광어.

1년+α의 성장 시간이 필요하다.

우리나라에서만 많이 소비돼서 선물 시장이 열려있진 않지만, 양식이 되기 때문에 가격 예측은 가능하다.

'제대로 예측을 하려면 유료 정보를 사서 분석해야 하는데.'

사실 원자재 시장은 전형적인 글로벌 큰손들의 놀이터다.

정보력이 곧 무기이기 때문에 개미들에게는 기울어진 운동장.

위아래로 완곡도 많이 준다.

소위 말하는 개미털이 말이다.

아무리 나라도 예측에는 한계가 있다.

기본적인 싸이클 예측만 한 것이다.

평가 시기가 2개월 후이니 길게 본다면 십중팔구 맞는다.

"광어 먹고 싶다."

"지금요?"

"광어만큼 맛있는 생선이 없어. 대량 양식을 하니까 싸진 거지, 옛날에는 고급 어종 중 하나였거든. 지금도 일본에서는 비싸."

꿀꺽! 침 넘어가는 소리가 들린다.

소라도 광어를 좋아하는 모양이다.

'사실 광어는 초장 맛이지.'

꼬들꼬들한 식감.

초장을 찍어 먹을 때 가장 어울리는 생선이라는 말은 이견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투자자로서도 좋은 기회다.

광어의 가치를 알려주며 식데도 해볼까 생각했는데.

까톡!

"누구에요?"

"몰라 시발 까까오 광고톡이겠지. 어? 혜리인데."

"혜리요? 나한테는 안 왔는데?"

까톡이 온다.

친근한 편이긴 하지만 용건도 없이 연락을 할 만큼 절친한 사이는 또 아니다.

'그럼 그렇지.'

"뭐래요?'

"몰라도 돼."

"아 왜요! 내 친구인데."

"글쎄, 우정이라는 게 보기보다 얄팍한 거라서."

"?"

'광어는 아니지만.'

다른 걸 먹어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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