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8화 (18/450)

'미친놈 아니야 진짜!'

하지만 악감정이 남는다.

찬욱에 대한 혐오가 Max로 차오른 소라는 좋은 쪽으로 생각할 수가 없다.

방금 있었던 일은 다 우연이다.

좋은 주식을 이미 떨어진 가격으로 샀으니 상승했을 뿐이다.

타닥, 탁!

거래 내역.

찬욱이 어떻게 매매했는지 살펴본다.

'와 여기서 신용 쓴 거야? 내 걸로??'

어처구니가 없다.

신용.

그리고 미수.

남의 돈으로 도박이나 다름없는 짓을 한 것이다.

만약 실패했다면 보통 큰일로 끝나지 않는데.

'…….'

하지만 결과는 모든 것을 증명한다.

찬욱의 매매는 성공적이었다.

반대로 자신의 매매.

분명 안전하고 확실한 투자라고 여겼지만.

위이잉~!

머릿속 사고가 정지한다.

소라는 갑자기 울린 핸드폰 진동에 정신을 차린다.

"아빠?"

<어, 소라야! 저번에 물어봤던 거 때문에 전화했는데…….>

아빠로부터였다.

증권 회사의 상무이사.

트레이더 경력을 가지고 계신다.

그래서 물어봤다.

딱히 치사한 짓을 한다기 보다는 투자에 확신을 더하기 위함이었는데.

<약간 좀 어려운 이야기인데 괜찮겠니?>

"네. 뭔데요?"

<철강주가 경기에 선행하는 측면이 있거든. 앞으로 경기가 좋아지면 철강 수요가 높아질 테니 철강주도 힘을 받는다는 뜻으로…….>

그때는 분명 좋다고 했다.

큰 욕심만 안 부리면 불안해 할만한 섹터는 아니다.

'…….'

이야기가 달라졌다고 한다.

글로벌 정세가 기존의 예측에서 벗어나고 있다.

<미국 금리 인상이 생각보다 가파를 거라는데 투기꾼들의 베팅이 올라가고 있어. 그에 따라 신흥국 경기 둔화 시점이 빨라질 수 있다는 전망이……. 아, 설명이 좀 어려웠지?>

"아니에요 아빠. 고마워요."

아직은 전부 이해할 수 없다.

그렇게 어려운 세계에서 일하시는 아빠가 자랑스러운 이유.

'그런 일이 있었구나.'

자신이 모르는 정보들이 있었다.

주가가 내려가는 데에는 그럴 만한 사정이 있었던 것이다.

<이래서 주식이라는 게 쉽지 않아. 특히 한국 증시는 대외적인 영향을 많이 받아서. 혹시 주식 사거나 하진 않았지?>

"……."

그것을 알지 못했다.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를 몰랐다.

자신의 시야.

너무나도 얕고 보잘것없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괜찮아요 저. 관심만 가지고 있었던 거니까."

<휴~ 다행이다. 아빠랑 약속했지? 졸업 전까지는 주식 안 하기로.>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입기 전에 말이다.

소라는 씁쓸한 웃음을 지으며 이야기를 돌린다.

"아빠."

<응?>

"저는 아니고……. 아는 사람이 했던 매매 기록인데요."

자존심.

찬욱이 했던 매매가 단순한 운에 의한 것이라면.

'……많이 고마워하진 않아도 되겠지.'

리스크를 짊어진 건 자신이니 말이다.

부정적인 대답이 들려오길 기대했는데.

<모투 아니야?>

"모투는……, 아닌 걸로 알아요."

<그래? 아니라면 대단한데. 타점을 제대로 잡았어.>

전화기 너머로도 감정이 전해진다.

놀라움.

그의 매매는 요행으로 가능한 게 아니었다.

<무슨 세력도 아니고 이렇게 정확하게 잡을 수 있나?>

"세력이 뭐에요?"

<어, 그게……. 비공인 투자 그룹 같은 거야. 아직은 몰라도 돼. 알았지?>

"네."

바로 뒤에서 지켜봤으니 안다.

주가가 내려가는 시점과 올라가는 시점을 정확하게 포착했다.

들으면 들을수록 극찬.

한 번도 아니고 세 번씩이나 성공했으니 우연인 것이 더 이상하다.

<익절을 한 타이밍도 기가 막혔어. 전문 스캘퍼의 솜씨야.>

"……."

<이름이 있으신 분 같은데 어떻게 알게 됐어?>

"아;; 그게요……."

알고 있었다.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이렇게까지 들어버리면.

톡!

소라는 횡설수설 말을 흐리고 아빠와의 통화를 끊는다.

딸내미 계좌라고는 죽어도 말할 수 없으니까.

《종목과 사랑에 빠지지 마라.》

그 인간의 목소리가 떠오른다.

방금 전 있었던 어처구니없는 일도 말이다.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무례하다.

예의와 상식이라는 게 없는 것 같은 인간.

'…….'

하지만 틀린 말은 하지 않는다.

확증 편향에 빠져있던 건 자신이었다.

"철강주 또 떨어졌네."

"소라, 너 철강주 샀다고 하지 않았어?"

"헐 미안!"

"어, 그랬지."

다음 날 아침.

오랜만에 강의실에 가자 친구들이 반갑게 맞이해준다.

그동안 결석을 했다.

그 이유가 무엇인지.

친구들도 짐작을 하지 않은 게 아니었다.

토독, 톡!

걱정하는 친구들을 위해 보여준다.

지난 열흘간 변한 자신의 계좌.

---------------------------------------------+

『윤소라님의 총 자산』

8,712,892원

+212,892원(+2.45%)

+---------------------------------------------

"와! 벌었네?"

"하락장에서 어떻게 수익을 냈지?"

"역시 미래의 트레이더!"

"응……, 좀 고생하긴 했어."

'사실 내가 한 게 아닌데…….'

양심이 찔리지만 곧이곧대로 말하기도 뭣하다.

물려 가지고 방구석에 박혀있었다고.

그리고 그걸 구해준 사람.

자신이 그토록 혐오하던 철천지원수 찬욱 선배라는 사실도 말이다.

"근데 찬욱 선배는?"

"어?"

"너 선배라고 부르는 거 처음 봐."

"그, 그러게."

계속 존버를 했다면?

탈출 기회조차 나오지 않았을지 모른다.

친구들에게 쪽은 커녕 당장 밥도 안 넘어갔을 것이다.

〔종목토론실− 동해철강〕

─염차장 '비중 확대' 적극 추천 ㅋㅋㅋ

─염차장이 자신 있게 말해서 샀더니

─염블리라고 하지 말고 염라대왕이라 해라

─전세금 빼서 산 건데 어떡하죠 ㅠ

종토방에 있는 사람들처럼 신세 한탄만 하고 있겠지.

수백만 원이 걸린 일이라 생각하면.

꿀꺽!

소름이 돋을 수밖에 없다.

소라는 자신의 핸드폰 화면을 떨떠름하게 쳐다만 보고 있다.

"그래도 과제는 해왔어!"

"그래?"

"뭐……, 그 오빠 너무 대충이라 완성은 내가 했지만."

"실망."

모르긴 몰라도 자신의 탓도 있을 것이다.

도와주다가 그날 오전을 꼬박 날렸으니까.

'……뺨도 때렸고.'

어처구니가 없었다.

난생 처음 겪는 일이다.

머릿속을 뜯어보고 싶을 지경.

처음 봤을 때 느꼈던 것이 맞다.

또라이.

세상에 또라이도 저런 또라이가 없다.

"어, 찬욱 선배다!"

"혼밥충."

"아……, 소라가 싫어하지. 미안."

학교 식당.

혼자 점심을 먹고 있다.

친구들이 자신의 눈치를 본다.

사이가 안 좋기 때문이다.

확실히 그렇다.

만나면 한 대 더 때려주고 싶었다.

'알고 싶어.'

하지만 궁금증이 더 앞선다.

저 또라이 같은 인간이라면 알지도 모른다.

자신이 어떤 실수를 한 건지.

어떻게 하면 그 세계에 가까워질 수 있을지.

"어!"

"No. No."

성큼성큼 걸어가는 소라를 본 친구들이 깜짝 놀란다.

수현이 말리려던 혜리의 손목을 잡는다.

딱히 한 소리 하려는 게 아니다.

도저히 인정할 수 없지만, 여전히 짜증 나는 인간이지만.

"왜 밥 혼자 먹어요? 말하면 같이 먹어줄 수도 있는데."

이상하다고만 생각했던 선배의 등이 조금 달라 보이기 시작한다.

* * *

실수.

하지만 어쩔 수 없었던 것도 사실이다.

'꽁씹 하긴 좀 그래서 돈 낸다고 한 건데 너무 싸게 불렀나?'

싱싱한 여대생은 비싸다.

블랙 마켓에서 사려면 최소 억단위로 불러야 한다.

심지어 신입생.

수준도 높다.

유흥 업계에서 구른 경험도 없어 보인다.

큰손들의 입찰 상황에 따라 다르지만 프리미엄이 깨나 붙을 것이다.

백, 이백으로는 턱도 없다.

'어떻게 시세를 알았지?'

안타깝게도 지금의 나로서는 지불하기 힘들다.

고심하고 있던 그때.

"왜 밥 혼자 먹어요? 말하면 같이 먹어줄 수도 있는데."

○켓몬 트레이너가 다가온다.

거래 실패.

가격에 만족하지 못하고 다른 매수자를 찾아 떠난 줄 알았는데.

'아직 흥정의 여지가 있는 건가?'

눈길이 쏠리게 되는 긴 다리.

빵빵하게 차오른 힙.

상급 매물이라는 사실을 과시한다.

지난번처럼 민낯도 아니다.

한 듯 안 한 듯 옅게 칠한 화장은 내츄럴해서 오히려 좋다.

"왜."

"착각하지 마세요. 그냥 불쌍해서 온 거거든요."

"그러니까 왜!"

원하는 가격을 부르라고.

아무리 최종 유통 가격이 비싸도 현지에서는 싸게 해줘야지.

K팝 등 한류가 뜨다 보니 한국 여자들이 비싸다.

수요 대비 공급이 부족하다.

'한국인의 정이라는 게 있잖아.'

재래시장마냥 싸게 해주는 척하면서 받을 거 다 받으면 어떡해.

그녀의 용건은 그런 게 아니었다.

얼굴이 달아오른다.

자세히 보니 볼도 살짝 부풀렸다.

무슨 애새끼도 아니고.

'아, 애새끼 맞지.'

하도 섹스 머신 같아서 잊고 있었다.

스무 살.

아직 뗄 것도, 배울 것도 많은 나이다.

"싸운다! 싸운다!"

"싸우는 거 아니거든."

"싸웠네."

"둘이 뭔 일 있었어요? 아, 설마!"

혜리와 수현도 있었다.

학식 먹을 나이.

밥 먹으러 온 모양이다.

'학식 맛있잖아.'

우리 학교가 제법 잘 나오는 편이다.

2020년 이후로 창렬이 되었다는 이야기도 들었지만 적어도 현재 시점에서는 그러하다.

"고백?"

"그거네."

"아니거든?"

"아 들켰네."

""꺄아~!""

학생들이 많다.

우리 테이블의 이야기를 엿듣고 있는 사람이 제법 있어 보인다.

'유명하겠지.'

머신 같은 애가 걸어 다니는데 눈에 안 띌 수가 없다.

모르긴 몰라도 선배들은 다 알고 있겠지.

"없는 말 지어내지 마요!"

"지어낸 적 없는데?"

"아니……, 그런 얘기 아니었잖아요."

"맞잖아. 첫사랑."

"아!"

이런 년은 대체 누가 먹을까?

남자라면 궁금할 수밖에 없는 이야기다.

여자들도 뒷담 까기 좋아하는 애들이 있을 것이다.

"사랑?"

"소라가?"

"내가 상담 좀 해줬지 상담."

"구라삘."

"진짜로."

주위의 시선이 집중된다.

혜리와 수현도 어지간히 관심이 있는 듯 재촉하고 있다.

"무슨 상담이었는데요?"

"아, 이거 말해도 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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