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7화 (17/450)

'살……, 려……, 줘…….'

눈앞이 깜깜해진다.

뇌의 산소 밀도가 낮아지며 진짜 요단강을 건너려던 그때.

─매도 주문이 체결되었습니다!

드디어 올 것이 왔다.

세심하게 걸어둔 매도 주문이 체결되었다는 알림이다.

"뭐, 뭐야? 방금 뭐 했어?"

"대가리 좀 식히고 좀 쳐봐라!"

당황.

손이 느슨해진 틈을 노려 빠져나온다.

그리고 포켓몬 트레이너의 어깨를 감싸듯 잡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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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소라님의 총 자산』

6,919,758원

−1,580,342원(−18.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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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익창을 보여준다.

백문이 불여일견.

내가 무슨 일을 했는지 눈깔이 있으면 알 것이다.

"뭐, 뭐에요 이거?"

"돈 복사."

"아니, 어떻게 한 거냐고요. 저……, 손해 보고 있었는데."

110만 원에 달하는 수익.

이 녀석이 한가하게 샤워를 할 동안 벌어낸 것이다.

'아직 갈 길이 멀긴 하지만.'

시드가 적다.

어지간히 해드셨다.

하지만 희망이 보이기 시작한 것도 사실이다.

"어깨나 주물러봐."

"내, 내가 왜……."

"누구누구가 하도 목을 졸라 대서 힘드네. SM도 아니고 무슨."

"알았어요! 하면 될 거야 아니야 하면."

긍정적으로 생각을 해보니 그렇게 나쁜 건 또 아닌 것 같다.

태도가 바뀐 가슴녀가 어깨를 살살 어루만져 온다.

─개미가 당했습니다!

이러는 사이에도 시장은 돌아가고 있다.

잠깐 고개를 들었던 주가가 다시 처박는다.

"지금 사야 되는 거 아니에요?"

"어허."

"왜요?"

"안마가 하나도 시원하지가 않네."

매수 기회.

방금 전 반등하는 걸 본 개미들은 그런 생각을 할 수밖에 없다.

'공매도 치는 애들이 쉬운 무빙을 줄 리가 없어.'

비싸게 판다고 무조건 이득이 아니다.

나라와 증권사에 내는 증권 거래세와 수수료가 있다.

수수료는 무시해도 된다.

증권사에 따라 다르긴 해도 0.015% 안팎의 미미한 수준이지만.

"슬슬 사도 되지 않을까요?"

"왜?"

"올라갈 여력이 있는 주식이기도 하고……."

"종목과 사랑에 빠지지 마라."

"네?"

증권 거래세는 현행 기준 0.25%다.

5천만 원 어치를 팔면 12만 5천 원이 세금으로 날아가는 셈이다.

'겨우 몇만 원 먹으려고 리스크를 짊어질 필요가 없잖아.'

변동성이 매우 심한 건 9시 30분까지다.

지금부터는 거래량이 현저히 줄어든다.

작은 변동 안에서 수익을 내는 방법.

매수가를 최대한 세밀하게 잡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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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 종목』

포스크 263,500원 −2.5%

미래제철 59,600원 −2.3%

동해철강 15,000원 −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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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해철강의 주가.

1주당 가격이 15,050원으로 단타를 치기에 최적화돼있다.

'주식 가격이 1만원대면 1틱에 50원씩 움직이고, 그게 약  0.33%라서.'

몇 틱만 발라 먹어도 큰 수익을 낼 수 있다.

동해철강을 고른 건 변동성 때문도 있지만 가격대까지 고려한 결과다.

"내려가지?"

"아……."

"너는 이 주식이 텐버거라고 생각할지 몰라도 단기적인 시장의 움직임은 오직 대응에 있어."

11900원에서 매수한다.

이번에는 신용만 써서 약 2천만 원 어치의 주식을 담는다.

"어떻게 2천만 원을 사요?"

"신용거래라고 있어."

"시, 신용?! 내 건데?"

"내 인생도 아니고 뭐 어때."

'더 담을 걸 그랬나?'

사기가 무섭게 호가창이 움직인다.

그래도 혹시 나까지 데리고 갈 수 있으니.

─매수 주문이 체결되었습니다!

신용미수.

계왕권 8배로 간다.

5500만 원 어치의 주식이 장바구니에 담긴다.

"남의 돈이라고 너무 함부로 하는 거 아니에요?"

"하……."

"한숨은 제가 쉬고 싶거든요?!"

"야, 그게 바로 트레이더야."

다른 사람의 돈으로 거래하는 직업 말이다.

막차를 잘 탔다.

다행히 인생 막차는 아니었다.

〔코스피〕

─동해 찐바닥 찍었냐?

─15층만 가면 다시는 주식 안 할게요 ㅠㅠㅠㅠㅠ

─슬슬 외국인 매수세 들어오네

─동해철강 폭탄 세일 중 컄ㅋㅋㅋㅋㅋㅋㅋㅋㅋ

생각보다 반등이 괜찮다.

그 이유.

매수 기관 중에 외국 기관이 보이기 시작했다.

"외국인이 사고 있어요!"

"근데."

"외국 사람들이 관심을 가질 만큼 좋은 주식이라는 뜻 아니에요? 매수량도 엄청 많고."

"하아……."

실상은 별거 없다.

그냥 해외에 본사를 둔 기관이라는 뜻이다.

'다 검머외야. 검머외.'

진짜 외국인도 있긴 하지만 소수.

대부분 한국 부서가 따로 있다.

한국인이 거래하는 것이다.

차이점이 있다면 한국 기관보다 능력이 있다는 것 정도.

─매도 주문이 체결되었습니다!

호로구라상승일 확률이 매우 높다

의도적으로 매수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개미들을 꼬시기 위함.

그리고 뒤에서는 몰래 팔고 있을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떨어진다, 떨어진다!"

"호들갑 좀 그만 떨어."

"어떻게 가만히 있어요 꺄아~! 쟤네 다 물렸겠다!"

'가슴이 떨어지는데?'

고개를 숙이자 큰 살덩이가 뒤통수를 짓누른다.

묵직한 무게감에 목이 아프다.

생각보다 말랑말랑하다.

모양이 잡혀있어서 단단할 거라고 짐작했는데.

─기관님이 학살 중입니다!

외국인님이 미쳐 날뛰고 있습니다!

눈치 게임이 막을 올린다.

기관들이 서로 경쟁을 하듯이 물량을 쏟아내기 시작한다.

'아무래도 상관없지.'

이젠 내 주식도, 얘 주식도 아니다.

마지막으로 한탕 크게 먹고 나왔다.

"또, 또 할 거에요?"

"왜?"

"신용미수 쓰는 거 위험하잖아요……. 물론 선배 믿긴 하는데."

"안 해."

단타에는 룰이 있다.

확실하게 먹을 수 있는 기회는 많아야 3번 주어진다.

'3번 다 했잖아.'

그 이상은 욕심.

잠시 후 10시 15분부터 항셍 선물이 열린다.

코스피는 중국 증시 영향을 크게 받는다.

만약 중국장이 좋지 않다면.

"항셍 내려가고 있지? 가뜩이나 하락하는데 지수까지 떨어지면 더 처박는 거지."

"아……."

"설마 몰랐어?"

"……."

코스피도 내려간다.

주가가 내려갈 이유+1.

공매도 세력 입장에서는 신이 날 것이다.

초보 투자자라면 모를 만도 하다.

우물쭈물 입술을 잘근잘근 씹더니 이내 입을 뗀다.

"저 하나만 물어봐도 돼요?"

"뭐."

"아까 말씀하신 거 있잖아요."

"그러니까 뭐."

"그……, 사랑 어쩌고 하신 거."

격의 차이.

포켓몬 트레이너와 진짜 트레이더의 차이를 실감한 모양이다.

아주 공손해졌다.

그 정도 대답은 못해줄 것도 없다.

"니가 그 종목에 대해 조사할수록 올라간다는 확신을 하기 쉬워."

"그게 나쁜 거에요?"

"어?"

"해당 기업을 잘 알고 투자해야 하잖아요. 막무가내로 투자하는 것보단 안정적이어야 하는 게……."

설명이 조금 난해하다.

고추 새끼였으면 한 방에 이해시키기 씹가능인데.

'섹스하지 말고 딸만 치라고!'

풀어서 설명하려면 조금 길어진다.

주식 시장이라는 게 간단할 리 없다.

"너는 왜 오른다고 생각했는데?"

"어제 나스닥 철강도 올랐고, 철광석 가격도 오르고 있어서……."

"그래서 뭐 어쩌라고."

"네?"

"그거 오르면 주가도 오르는 거야? 그거 오르는 날에 전재산 레버리지로 몰빵 몇 번 치면 재산이 몇 곱절씩 늘어나겠네?"

"……."

물론 그런 시절도 있었다.

하지만 시장은 점점 복잡계로 가고 있고, 영향을 주는 요소는 산더미처럼 많다.

'그러니까 니가 포켓몬 트레이너지.'

주제를 모르고 시장에 도전한 후배.

그 한심한 생각을 고쳐주기 위해 설교를 할 작정이었는데.

뚝! 뚝!

선즙필승을 시전하고 있다.

다만, 그 울음의 의미가 먼젓번과는 달랐다.

"니가 시장에서 얼마나 무력한 존재인지 이번 기회에 깨닫고……."

"오빠 고마워요."

"어?"

"이 방 나가기 싫었는데."

나의 손을 꼭 붙잡아온다.

그리고 눈길이 살랑살랑거리는 게 무언가 범상치 않다.

'잠깐. 이거 혹시 각인가?'

분위기가 좋아 보인다.

그도 그럴게 소라의 입장에서 나는 구세주.

호감작이 제대로 되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한 번 시도해볼 만하다.

"험험! 일단 좀 앉아서 얘기할까?"

"그, 그럴까요? 의자가 하나뿐이라 여기 침대에라도……."

'침대 좋지!'

1인용의 작은 침대.

하지만 차고 넘친다.

충분히 두 사람도 쓸 수 있다.

그 위에 다소곳이 앉는다.

엉덩이가 닿는 가까운 거리에 나도.

"저 무서웠어요."

"그, 그래?"

"고마워요. 정말 고마워요 오빠."

30%가 넘어가던 손실.

그 악몽 같던 현실에서 벗어나자 긴장이 풀린 모양이다.

기대듯이 안겨온다.

내 가슴팍에서 한참 울음을 터트리기 시작한다.

'설거지를 한 보람이 있구만.'

이 맛에 퐁퐁남 하는 거겠지.

실의에 빠진 후배의 어깨를 토닥토닥 두들겨준다.

그 과정에서 닿게 되는 살결.

성격처럼 억셀 줄 알았더니 의외로 꽤 부드럽다.

"아이고~ 그랬구나."

"오빠가 저 도와줄 줄 몰랐어요. 평소에 심한 소리 해서 죄송해요……."

가슴까지 닿는다.

묵직한 살덩이가 기분 좋은 압박감을 선사하고 있다.

화장기 없는 밋밋한 얼굴이 다소 아쉽다.

그조차 이 나이대에서는 장점이다.

"소라가 많이 힘들었구나."

"네……."

"오빠가 더 도움을 줄 수 있을 것 같은데."

"네?"

여자는 나이가 깡패.

막 샤워를 마치고 촉촉해진 볼을 살살 쓰다듬는다.

작은 얼굴.

긴 속눈썹.

갈라지긴 했지만 선홍색의 두껍고 예쁜 입술.

'물빨하기 딱 좋네.'

뭐 바른 것도 없어서 어디든 핥을 수 있다.

웃돈을 주고도 사기 힘든 싱싱한 여대생을 드디어!

"백, 아니 이백이면 될까?"

"……네?"

"몸 팔 거면 처음은 오빠한테 하라고."

얼떨떨한지 얼굴에 물음표가 떠오른다.

진로 선택에 도움을 주고자 하는 선배의 깊은 뜻인데.

"아니, 다른 게 아니라 모르는 사람이랑 하는 것보다는 낫잖아."

"……."

"니가 전문직이 되는데 현장에 가서 실수하면 안되잖아. 이게 다 걱정이 돼서."

"뭐 이 새끼야?"

귀싸대기를 맞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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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에 달했던 손실.

단 1시간만에 거의 완벽에 가깝게 복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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