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6화 (16/450)

조금이라도 더 건져보겠다고 시장가로 주식을 던진다.

'그렇게 관성의 법칙으로.'

10만 매수벽.

거대한 둑이 무너지자 봇물 터지듯 물량이 쏟아져 내려온다.

─매, 매, 매수 주문이 체결되었습니다!

동시에 올리는 알림.

매도벽의 3틱 아래에 걸어두었다.

아슬아슬하게 내 물량까지 체결이 됐고.

─이말올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올릴 거면 왜 내리냐고 ㅅㅂ

─이말올 센세 등판!

─철강주 섹스 랠리 출발이냐?

거짓말처럼 다시 올라간다.

아니 왜?

난 손해 봤는데?

본전 심리가 발동돼 매수하는 사람들이 생긴다.

'사람 마음이라는 게 참 묘해서.'

손절을 생각하고 있던 사람도 혹한다.

당장의 주가에 따라 생각이 휙휙 바뀐다.

그렇게 유혹에 넘어간다.

기관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 꿈에도 모른 채 말이다.

─매도 주문이 체결되었습니다!

과매도 후의 급격한 상승.

그것을 이용해 공매도를 치는 것이 진짜 목적이다.

'공매도는 시장가보다 한 틱 비싼 가격으로만 올릴 수 있으니까.'

이를 '업틱룰'이라고 부른다.

매수세가 있어야만 개미가 공매도 물량을 사준다.

10만 주를 한 번에 던진 것?

기존 매물의 차익을 실현하고 공매도을 치기 위함이다.

─떨어진다 꽉 잡아!!!!!!!

─섹스는 니밐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동해 주포 무빙 개악질인데?

─짜장면 주는 거였누

기관의 목적은 주가를 더 내리는데 있다.

그래야만 공매도로 보는 이득이 많아지게 된다.

'한 번 더 하따 칠 타이밍이 나올 것 같은데.'

방금과 비슷한 방법.

적어도 2~3번은 반복하지 않을까 하는 게 내 예상이다.

하지만 낙폭이 과도하긴 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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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 종목』

포스크 265,000원 −2.0%

미래제철 59,800원 −1.9%

동해철강 15,350원 −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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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종 업계의 주식들보다 2배 이상 내려갔다.

포스크와 미래제철을 거래하던 주주들은.

─동해철강 아가리 쩌억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15층 받아먹기 성공

└ㅅㅂ 이게 오네

└키 맞추기 할 듯

└다신 안 올 저점이다…… 무적권 존버해라

글쓴이− 딱 봐도 18층에 물렸을 것 같은 넘이 훈수는 ㅋㄷ

동해철강이 맛있어 보인다.

더 안 내려갈 것 같은데?

개미들이 몰려오지만.

'이걸 일봉으로 보면.'

이야기가 조금 달라진다.

근 한 달간 가장 가파르게 오른 건 동해철강이다.

즉, 거품이 끼어있다.

개미들도 바글바글 매달려서 공매도를 치기가 딱 좋고.

─개미가 당했습니다!

적 더블 킬!

적 트리플 킬!

적 쿼드라 킬!

적 펜타 킬……!

조금씩 올리자 매수벽이 두꺼워진다.

개미들의 꿈과 희망을 한순간에 무너뜨리며 폭락.

12,000원의 두꺼운 매수벽마저 뚫린다.

마치 겹쳐진 기왓장을 격파하듯이.

─돔 황 챠!

─아가리 쩌억 하던 놈들 아가리 찢김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니 시발 동해철강 회사 망했냐?

─ 만주 2만주 이런 식으로 벽 뚫는 애들은 뭐야??

누구나 그럴싸한 계획을 갖고 있다.

한 대 처맞기 전까지는 말이다.

'이런 게 찐공포지.'

이러한 공매도를 하루이틀 쳐왔을 기관이 아니다.

개미 겁주는 방법은 누구보다 잘 안다.

─매수 주문이 체결되었습니다!

비슷한 입장.

나도 한창 때에는 국장에서 공매도 깨나 치던 몸이다.

'……어?'

그런 나라고 해도 100% 맞출 수는 없다.

그것이 시장이라는 녀석이니까.

조금 더 내려간다.

공포에 떠는 건 개미만이 아니다.

기관들도 자신의 물량을 던지기 시작한다.

−0.5%

−1.2%

−1.7%

점점 더.

나로서는 심히 유감스러운 상황이다.

'좆됐네. 물론 내 인생 말고.'

레버리지.

정확히 말하면 신용거래.

주식 시가의 70%를 담보로 맡기고 주식을 매입하는 행위다.

기대 이득이 큰 만큼 손실도 크다.

판단 한 번 잘못하면 정말로 간이든 신장이든 조금씩 부족해질 수 있다.

'다행히 오피만 뛰어도 충분히 갚을 수 있을 텐데.'

그쪽 재능은 내가 보장한다.

하지만 이대로 잃으면 후배 볼 낯이 없어지는 것도 사실이다.

후배 인생 걱정해주는 착한 선배.

혹시 이럴까 봐 한 가지 수단을 준비하고 있었다.

─매수 주문이 체결되었습니다!

미수.

개미들을 위해 증권사가 돈을 빌려준다.

지금처럼 시드가 부족한 상황에서 요긴하게 써먹을 수 있다.

신용은 2.5배.

미수는 3.5배.

둘이 합쳐 쓰면 '신용미수'라는 인생 막차 탄 개미들의 필살기가 된다.

"가즈아~!"

일단 내 인생은 아니다.

* * *

쏴아아아아─!

샤워.

일주일만에 맞는 따듯한 물은 정신을 차리게 만들기 충분했다.

'…….'

하지만 그것이 꼭 좋은 일만은 아니다.

그동안 멈춰있었던 머리가 돌아가기 시작한다.

270만 원에 달하는 손실.

아니, 지금 이 순간에도 늘어나고 있을지도 모른다.

'제발.'

금일 거래를 준비하고 있었다.

갑작스러운 사태로 하지 못하게 됐다.

현재 시간 오전 9시 30분.

화장실에 들어온지가 벌써 30분이 넘게 지났다.

'빨리 씻고 나가야 하는데.'

원래라면 그러려고 했다.

마음 같아서는 느긋하게 목욕이라도 하고 싶지만 여유가 없다.

1분 1초도 사치.

조금이라도 시드를 복구해야 한다.

지금이라도 밖에 나가야 한다는 걸 알지만.

쏴아아아아─!

발이 떨어지지 않는다.

머리와 몸이 따로 움직인다.

아무리 명령을 보내도 샤워 호스 앞에서 꿈쩍을 안 한다.

씻기 위해서라고 스스로를 속이는 것도 더 이상 불가능하다.

샤워는 진작에 끝났다.

'그냥 죽을까.'

모든 걸 잊고 샤워 물을 맞고 있는 것이 오히려 행복할지 모른다.

그도 그럴게.

꽈앙!

'저 또라이 같은 인간이 소문이라도 내면.'

학교를 다니는 것이 몹시 괴로워질 것이다.

자신도 모르게 오른손에 힘이 들어간다.

화장실 벽을 내리쳤다는 걸 깨닫는다.

상상만 해도 정말 안 빡칠 수가 없는 인간.

아득!

하지만 사실이다.

자신이 투자를 실패한 것도, 그 인간과의 내기에서 져버린 것도 말이다.

'내가, 내가 왜…….'

샤워를 하도 오래해서 바닥에는 물이 고여있다.

발로 참방참방 차며 스트레스를 푼다.

그런다고 현실은 변하지 않는다.

뜨거운 물을 맞을수록 다른 생각도 떠오른다.

《맞잖아 도박꾼! 고스톱 대신에 주식 치는 거지 뭐 다를 게 있나.》

정신 나간 선배의 말.

지금 생각해보면 다소 과한 감은 있어도 틀린 말은 아니었다.

멋대로 움직이는 주가를 보면 그런 생각이 안 들 수가 없다.

기업의 가치를 평가하는 게 맞나?

'분명 올라갈 주식이 맞는데.'

갈라진 입술을 깨물자 비릿한 쇠맛이 느껴진다.

그런 것보다 더 우선시된다.

기관들은 대체 무슨 생각을 가지고 주식을 매수하고, 매도하는 걸까?

그렇게 거래하면 손해 보지 않나?

상식적으로 이해가 가지 않는다.

높은 가격에 사서 낮은 가격에 판다.

자신이 모르는 비밀이 있기라도 한 건지.

뚝! 뚝뚝!

젖은 머리에서 흘러내린 물이 볼을 타고 떨어진다.

자신의 목표인, 꿈인 트레이더들이 하는 행위.

그들의 생각을 모르겠다.

지금의 자신은 알 수가 없다.

아니, 이해할 수 있는 날이 올까?

'…….'

자신이 없다.

실전.

실제 돈을 가지고 거래를 해보니 알겠다.

숫자의 움직임을 좇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시드가 깎일 때마다 심장이 도려지는 기분이다.

고작 수백만 원 정도로 이런데?

증권사의 트레이더들이 얼마나 한 액수를 만드는지 소라는 알고 있다.

목표로 하는 직업인 만큼 당연히 조사를 한다.

자신도 언젠가 그렇게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끼익!

생각을 하는 것도 사치.

뜨거운 물이 나오는 밸브를 잠근다.

몸을 씻은 덕엔 조금은 냉정해졌다.

지금이라도 계좌를 정리해야 한다.

만약 올랐다면 손절매를 하고, 다음에 더 준비를 해서 도전한다.

한 번 실패한 정도로 포기할 만큼 쉽게 생각한 트레이더의 꿈이 아니다.

하지만 만약 내렸다면?

'제발.'

긴 머리를 수건으로 꾹꾹 눌러 물기를 짜낸다.

샤워 가운을 몸에 걸치고 화장실 문을 연다.

손잡이를 돌리는 것.

소라의 마음을 머뭇거리게 만든다.

손실이 난 계좌를 들여다볼 용기가 없다.

'토독, 톡!

그래서 두들기는 스마트폰.

컴퓨터뿐만 아니라 폰으로도 자신의 계좌를 체크할 수 있다.

'아…….'

역시나 손실.

주가가 내려가 있다.

그것도 아주 큰 폭으로 말이다.

눈을 질끈 감는다.

벽에 기대듯 몸을 의지하고 용기를 내 눈을 다시 뜬다.

'그래, 지금이라도 어?'

하지만 샤워를 하면서 정신을 가다듬었다.

울 것 같은 감정을 억지로 억누른다.

투자 실패.

자신의 무능과 현실을 인정하고 더 이상의 손실을 방지하려고 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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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수금액│47,706,892원

평가손익│−3,130,204원

동해철강│3269주│−0.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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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0……. 아니, 4800만원?!'

계좌가  조금 이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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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버리지.

장점도 많이 있지만 단점도 당연히 있을 수밖에 없다.

'별건 아닌데.'

전화가 온다.

아니, 개인 투자자한테는 톡으로 온다.

주가가 조금 더 내려가면 청산을 당할 수 있다고 친절하게 알려준다.

그전에 어떻게든 하면 된다.

매사에 부정적이기 보다는 항상 긍정적인 생각을 하는 것이 몸과 마음에도 이로운데.

"야!!"

그러지 못한 사람도 있었다.

부끄러움도 모르는지 알몸으로 쿵쿵! 거리며 뛰어온다.

"니 주식 쩔더라."

"미, 미, 미, 미쳤어요 지금?!!"

샤워 가운 차림.

느슨하게 조인 허리 매듭 위로 보일 듯 말 듯한 살덩이가 출렁거린다.

화장실 문이 열리며 넘어온 습기에는 좋은 냄새가 배어있다.

아직 물기가 마르지 않은 손으로 내 어깨를 감싸더니.

"시발놈아!"

"꽥! 꽤액!"

"나와. 안 나와!?"

목을 졸라온다.

어찌나 세게 조르는지 경동맥을 타고 흐르는 피까지 막히는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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