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S가 보이는 걸로 미루어봐 오늘도 매매를 할 생각이었나 보다.
"봐봐. 얼마나 물려있는데."
"……댁한테 보여주기 싫어요."
"놀리려고 그러는 거 아니니까 보여주기나 해."
"아!"
직접 보면 그만이다.
황급히 내민 손은 나를 잡지 못하고 허공을 스친다.
일어날 힘도 없는지 금방 다시 주저앉는다.
모르긴 몰라도 상당히 많이 꼻은 모양.
'뭐 별거 아니네.'
종말물의 히로인마냥 세상 다 산 표정이길래 잔뜩 기대하고 있었는데.
딱히 절망적인 상황도 아니었다.
"괜찮네. 그렇게 나쁜 상황은 아니네."
"저, 정말요?"
"정말이지."
"기다리면……, 다시 오를까요?"
"그건 나도 모르지."
"……."
업계 기준으로는 말이다.
회복할 수 없는 빚 정도는 생겨야 딱하구나 하는 소리가 나온다.
'선물 만지다 ○징어 게임 참가 정도는 해야 아~ 좆됐구나 하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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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소라님의 총 자산』
5,767,548원
−2,732,452원(−3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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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정도로 무슨 엄살이야.
게다가 여자는 남자랑 달리 한 번쯤 깡통을 차도 복구할 수 있는 수단이 있다.
"남자들은 간이나 신장 팔아야 되는데 여자들은 몸 팔면 되잖아. 그렇게 나쁜 상황은 아닌 거지."
"서, 섬뜩한 소리하지 마세요!"
"내가 농담하는 걸로 보여?"
월스트리트의 일상.
깡통을 차고, 마지막 밑천을 걸고, 그조차 안돼서 중력을 나쁜 쪽으로 이용하는 인간들이 매주 나온다.
영화로 나오는 이야기에 밑바탕된 실화가 있음은 말해봤자 입만 아프다.
그런 인간들을 보다 보면 차라리.
'처음부터 몸이나 팔지. 그런 생각이 안 들 수가 없거든.'
내가 이 빡대가리한테 섹드립을 한 건 답답했기 때문이다.
어설프게 트레이더 흉내나 내고 있는 인간이.
"그러지 마요. 저 정말 심각하단 말이에요."
"당연히 심각하지. 주식 하다 잃으면 게임 머니처럼 다음날 복구라도 될 줄 알았어?"
"……."
어떻게 될지는 너무 많이 봐왔다.
이상과 현실.
그 괴리감이 가장 큰 업계가 바로.
'에혀.'
평소였으면 말 대답 따박따박했을 년이 잔뜩 기가 죽어있다.
이런 느낌이다.
가짜가 아닌 진짜.
실제로 투자를 해보면 세상이 만만한지, 안 만만한지는 바로 와 닿는다.
내버려두면 알아서 알맞은 진로를 선택할 것이다.
학력은 좋으니 금융쪽 일을 해도 되겠지.
"투자 싸움한 건 내가 이겼네? 참고로 난 양전이다?"
"……."
"아니, 뭐라고 대꾸 좀 해봐!"
"……."
본인으로서는 나름 심각한가 보다.
일찌감치 재능의 미천함을 깨닫고 꿈을 접는 것도 괜찮은 길인데.
'이러면 내 꿈자리가 뒤숭숭해지잖아.'
누가 보면 내가 업계 후배 괴롭히는 줄 알겠네.
어디까지나 본인의 선택으로 투자에 실패한 것이다.
주식 방송 보면 나오잖아?
투자 정보는 참고만 하고, 그로 인한 판단과 책임은 니가 지라고.
뚝! 뚝!
그것이 조금 무겁게 느껴질 수 있는 나이다.
270만원.
아직 스무 살이라는 걸 감안하면 작다고 할 수 없는 금액이다.
"부모님이 저 공부 열심히 하라고 주신 돈인데."
"사연 있는 돈도, 쉽게 번 돈도 주식 시장에선 다 똑같은 돈이야."
"저……, 어떡하죠?"
큰 금액도 아니지만.
그 정도 잃는다고 인생이 끝나지 않는다.
장본인으로서는 매우 심각 진지한 모양이다.
"몸이라도 팔아서 메꿀까요."
"어?"
"오빠가 저 사줄래요?"
아무렇게나 막 풀린 머리.
멀리서 보면 처녀귀신인 줄 알겠다.
가까이서 보자 관능적인 퇴폐미를 풍긴다.
갸웃거리며 쳐다보는 시선은 유혹하는 듯하다.
갈라진 입술을 적셔주고 싶은 욕망이.
"사, 산……."
"농담이에요. 그래도 어떻게든 갚아야겠죠."
"크흠! 그래, 그래야겠지."
후배의 불행을 이용할 만큼 삐뚤어지진 않았다.
아무리 사이가 나빠도 돈을 잃었을 때는 놀리지 않는 게 투자자들간의 암묵적인 룰이다
'진짜 칼 맞고 뒤질 수가 있거든.'
그럴 여력도 없어 보인다.
어깨는 축 쳐져 있고, 눈동자에는 생기가 전혀 담겨있지 않다.
손가락 하나 까딱하기 어려울 것이다.
"야."
"……왜요."
"너 냄새나."
"무슨 실례되는 소리에요!"
"진짜로 냄새 난다고."
그러니까 씻지도 않았겠지.
좁은 방 안에 둘이 있었더니 신경이 안 쓰일 수가 없다.
얼굴이 붉게 물들며 생기가 돈다.
신경이 쓰이는지 자기 팔과 어깨의 냄새를 맡아본다.
'그런다고 느껴질 리가 없지만.'
자기 냄새는 원래 자기가 못 느끼는 법이다.
적어도 의식하게 만드는 데엔 성공한다.
"저 씻을 건데."
"학교 가게?"
"선배도 빨리 가버려요. 어디든."
"그래, 곧 갈게."
갈아입을 옷을 주섬주섬 챙기더니 화장실로 들어간다.
모르긴 몰라도 부끄러울 것이다.
성적인 수치심보다 훨씬.
투자자가 자신의 손실을 알리는 것만큼 자존심 상하는 일이 없다.
'쥐구멍이든 뭐든 좋으니 숨고 싶겠지.'
엿보지 마요!
헛소리 내뱉을 정신은 있나 보다.
그녀가 멍하니 뜨거운 물을 맞고 있는 사이에.
타닥, 탁!
훔쳐본다.
화장실 안쪽 말고.
포켓몬 트레이너의 거래 내역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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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 종목』
포스크 270,500원
미래제철 60,950원
동해철강 16,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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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강주를 만지고 있었던 듯하다.
포스크, 미래제철, 동해철강은 철강주의 3대장.
순서대로 업계 1위, 2위, 3위에 해당한다.
'각각 수급은 다르지만.'
같은 철강주라고 비슷하게 움직이는 게 아니다.
얼핏 비슷해 보여도 그 안에 디테일이 있다.
그걸 모르고 매매하면 손해를 보기 십상.
아니나 다를까 계좌가 30%나 까인 이유가.
『2017년 4월 매매』
5일/매수/동해철강/500주/1.8만/기관과 외인이 관심을 가지는 종목인 듯함
6일/매도/동해철강/500주/1.7만/갑자기 팔기 시작…… 다행히 1.6이 되기 전에 손절
6일/매수/포스크/20주/30만/꾸준히 우상향하는 대장주
7일/매도/포스크/20주/28만/개미만 사는 중 ㅠㅠ +모회사 디스카운트
7일/매수/미래제철/100주/6.1만/PER이 낮음, 회사 펀더멘탈이 튼튼함. 철강주 중 가장 안전하다고 판단
.
.
.
이 종목, 저 종목 옮겨 다녔기 때문이다.
처음 주식 거래를 하면 한 번쯤은 하게 되는 실수다.
'전문 용어로 키 맞추기라고 하는데.'
어? 이거 덜 오른 거 같은데.
문제는 그런 개미들의 생각을 기관도 다 알고 있다.
흔들렸다는 건 개미들의 평균만큼은 생각할 줄 안다는 뜻이다.
부끄러워할 건 아니다.
'덕분에 대략적인 동황도 알 것 같고.'
열심히 쓴 매매일지.
모범생이 발을 동동 구르며 한 노력은 보람이 없지 않았다는 이야기다.
─도박사의 협곡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주식.
LoL과는 다르다.
대리를 해도 전혀 문제될 요소가 없다.
'전문 대리 업체로는 증권사, 은행, 보험사, 사모펀드 등이 있지.'
연기금이라고 나라에서 운용하는 곳도 있다.
내가 포켓몬 트레이너를 대신해도 될 것이다.
본인의 동의라는 사소한 절차는 남는다.
그 정도는 사태의 위급성을 고려해 과감하게 생략한다.
─외국인님이 기관님의 개미 학살을 종결시켰습니다!
도박장이 막을 올린다.
장이 시작하기 무섭게 변동성이 어마무시하다.
'아래위로 흔들면서.'
조금씩 올라간다.
어제와 같은 하락을 예상했던 개미들이 대량으로 털려나간다.
오늘은 오르나?
다시 매수하게 된다.
하지만 내가 선택하는 건.
─매도 주문이 체결되었습니다!
전량 매도.
매수세가 완곡해졌다.
호가창도 배열이 바뀌고 있다.
─개미가 당했습니다!
적 더블 킬!
적 트리플 킬!
적 쿼드라 킬!
당하는 입장에서는 뭐지?
조금 전까지 사더니 왜 갑자기 다 팔고 있지?
'롤로 따지면 그거지. 아 무빙 좆같이 하네.'
=상대 존나 잘하네.
티어가 높을수록 잘하는 사람일수록 무빙에 페이크를 친다.
주식 시장도 마찬가지다.
이유 없는 매수와 매도는 존재하지 않는다.
사는 사람이 있어야 파는 사람도 생긴다.
장 초반에 매수세가 있었던 건.
'기존 물량 털면서 공매도 치려는 거거든.'
개미 꼬시는 무빙.
코스피에서는 흔한 패턴이다.
여러가지 지표를 근거로 예측할 수 있고.
─종필모건님은 전설적입니다……!
중요한 건 이 다음이다.
정신 없이 흔들고 나면 한 번 더 완곡을 줄 것이다.
'이건 또 전문 용어로 하따 친다고 하지.'
폭락한 종목을 매수하여 반등을 노리는 행위.
개인 트레이더들의 주로 하는 매매 방식이다.
위의 세 종목 중에서 고른다.
보다 더 강한 반등이 나오고, 매수세가 붙을 만한 것을.
'그렇게 한다고 쳐도.'
그 정도론 부족하다.
손해 본 액수가 워낙 많다.
급등주를 타는 게 아닌 이상 하루이틀 단타 친다고 만회할 수 있는 양이 아니다.
−30%.
선배된 도리로 힘이 닿는 만큼은 복구해주고 싶다.
본인의 책임이라고 해도, 실전 투자의 길로 끌어들인 게 나니까.
타닥, 탁!
그러기 위해서는 사소한 동의가 필요하다.
사태가 사태인 만큼 마찬가지로 생략한다.
'니 인생 좀 걸게.'
레버리지를 사용한다.
#레버리지: 가진 바 자산을 담보로 빚을 내서 투자하는 행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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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매도.
수많은 개인 투자자들을 오열하게 만드는 악질적인 투자 기법이다.
'이론적으로는 필요한 게 맞는데.'
현재에 1만 원 가치인 주식을 빌린다.
미래에 더 낮은 가격에 사서 되갚는다.
한 마디로 가격이 떨어지면 돈을 버는 시스템이다.
공매도가 왜 필요해?
주가가 과도하게 오르는 투기 현상을 방지할 수 있다.
시장의 건전성을 위함이라고 홍보하지만.
─기관님이 학살 중입니다!
외국인님이 미쳐 날뛰고 있습니다!
코스피에서는 다르게 적용된다.
내가 괜히 도박장이라고 부르는 게 아니다.
'그거까지 감안해서 타점을 잡아야 하는 거지.'
코스피 투자자라면 필수로 깔고 들어가야 하는 지식이다.
이 공매도로 시장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한국 주식 갤러리]
─10만 매수벽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팔아봐 개관 새끼야
─종필모건 보면 살인충동 드는데 정상?
─아니 대체 물량이 얼마나 있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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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래할 종목은 동해철강.
철강주 중 거래량이 가장 활발하다.
커뮤니티에서도 실시간으로 언급되고 있지만.
'벽은 무너지라고 있는 거야.'
개미들과는 다른 생각을 가져야 한다.
피식자가 아닌, 포식자의 마인드.
만약 내가 기관이라면?
「진형을 무너뜨려라!」
데마시아의 장군처럼 한 번에 무너뜨릴 것이다.
눈치를 보던 개미들의 패닉셀을 유도한다.
─개미님이 손절했습니다.
개미님이 손절했습니다.
개미님이 손절했습니다.
무섭다.
여기서 설마 더 떨어져?
그동안 철강주를 흔들면서 개미들의 심리에 공포를 새겨뒀다.
매도 버튼에 손을 올려두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