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차례 개미털이를 하고 다시 올라가는 것이 분명하다.
'외국인은 아네. 이 주식이 좋은 주식이라는 걸.'
이미 물려있는 소라는 행복회로를 돌릴 수밖에 없다.
그렇게 희망을 가지고.
─외국인님이 당했습니다!
그 희망이 분쇄되고.
─개미가 당했습니다!
적 더블 킬!
외국인님이 기관님의 개미 학살을 종결시켰습니다!
외국인님이 당했습니다!
−562,321원(−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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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절을 할 때마다 녹아내리는 계좌를 보면 그럴 수가 없다.
차라리 가만히 있는 게 손해를 덜 보는 길이 아닌지.
'죽고 싶다.'
트레이더.
투자를 하는 직업.
화이트 칼라 중에서도 최상위에 위치한다.
최소한의 노동으로 최대한의 돈을 번다.
기업의 미래 가치를 알아보는 눈 하나로 말이다.
'모르겠어.'
천국과 지옥은 종이 한 장 차이.
버는 사람이 있다면, 잃는 사람도 있기 마련이다.
자신이 잃는 쪽이 될 수 있다.
소라는 무릎을 끌어안은 채 어쩌면 당연했을 사실을 곱씹는다.
─개미가 당했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계좌가 녹아내리고 있다.
한순간 반짝 회복세를 띄기도 한다.
그래봤자 원금에는 한없이 멀다.
가슴 한 구석이 먹먹하다 못해 숨까지 막힌다.
꼬르륵~!
하지만 몸은 솔직하다.
아무리 불행해도, 기분이 나빠도 먹어야 사는 게 사람이다.
'컵라면이라도 먹을까.'
돈이 없다.
주제도 안된다.
주식으로 돈을 잃어 놓고 어딜 감히 기름칠을?
자숙의 의미로 택한 게 컵라면.
그렇다 해도 이렇게 수북하게 쌓이면.
'…….'
치울 시간도, 겨를도 없었다.
책상 한 켠에는 다 먹은 컵라면이 겹쳐진 상태로 있다.
화장실 앞에는 밀린 빨래.
싱크대에는 헹구지도 않은 설거지가 가득.
'아.'
그리고 거울에 비친 자신.
며칠이나 씻지 않아 꾀죄죄하다.
떡진 머리와 퀭한 눈은 다크서클까지 져있다.
한심하다.
무슨 폐인도 아니고, 히키코모리도 아니고 어질러진 방에서 이런 추한 몰골로 생활하고 있다니.
'나 진짜 뭐하고 있는 거지.'
그보다 더 충격적인 건 방금 전까지 알아채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그 정도로 정신이 없었다.
자신이 꿈꿔온 트레이더의 삶.
이렇게 옥상 위 난간을 걸어 다니듯 아슬아슬한 것이었는지.
'이번만, 이번만 어떻게 넘어가면…….'
조금 더 공부를, 조금 더 많은 준비를 하자.
트레이너는 역시 쉽지 않은 직업이다.
안 올라갈 기업에 투자를 한 것도 아니다.
한 번쯤은 탈출 기회를 줄 것이다.
그때부터 정신을 차리고 복구하면 된다.
희망회로.
그러나 현실은.
─전설의 JP모건님!
개미가 원하는 가격을 줄 만큼 만만하지 않다.
매수벽이 우르르 무너져 내린다.
꿀꺽!
하지만 아직 끝난 건 아니다.
추가 자금을 투입하면 반전을 노려볼 수 있을지 모른다.
'잃으면 절대 안되는 돈인데…….'
물론 리스크는 따른다.
지금까지 쓴 돈은 여유 자금이다.
세뱃돈, 알바로 모은 돈, 부모님이 주신 용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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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b 발신]
윤*라님, 4,700,000원 정상 이체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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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손 대는 건 다르다.
1학기 집세와 생활비로 받은 것을 미리 땡겨 쓴다.
'복구해서 메꾸면 돼. 복구해서.'
만약 잃으면?
당장의 생활에 지장이 생긴다.
부모님의 손을 빌려야 할지도 모른다.
두려움.
소라는 손을 달달 떨면서도 은행 계좌에서 증권 계좌로 돈을 옮긴다.
다시 메꾸면 되기 때문이다.
주식이라는 게 한없이 내려가기만 하지 않는다.
'이 정도면 과매도 구간이야. 물을 타서 올랐을 때 탈출하면 돼.'
'물 타기'.
주식이 지나치게 내려갔을 때 추가 매수를 해서 자신의 평단을 낮추는 투자법이다.
─매수 주문이 체결되었습니다!
요 며칠 계속 내려가기만 했다.
이제부터 다시 반등을 해주면 계좌를 회복할 수 있다.
본전까지도 필요 없다.
대충 근처까지만 와도 손절을 하고, 다시는 주식을 쳐다보지도 않을.
'트레이더……, 나 할 수 있을까.'
가지고 있던 확신.
수많은 자료를 모으고, 며칠씩 고민해가며 내린 판단.
하지만 맞는 판단을 한다고 주가가 올라가는 걸까?
지금은 도저히 모르겠다.
─개미가 당했습니다!
할 수 있는 건 하염없이 기다리는 것뿐이었다.
* * *
과제는 그럭저럭 잘 진행되고 있다.
'뭐, 이 정돈 껌이지.'
오히려 기대가 되는 건 3개월 후다.
교수님들에게 찍혀서 학점이 솔직히 좀 불안불안했다.
실력.
나의 특기로 평가 받을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다.
물로켓 교수한테도 한 방 먹여주고 싶은데.
"소라한테 연락이 끊겼다고?"
그 외의 일이 생겼다.
혜리가 화난 것 같은 얼굴로 나한테 따지듯 묻는다.
"요번 주 강의도 안 나왔어요."
"과제도 안 했어?"
"과제는 보냈죠. 근데 다른 연락을 안 받잖아요."
별일은 아니다.
'원래 여자가 화난 얼굴 하면 화난 게 아니야.'
개인 사정.
충분히 있을 수 있는 노릇이다.
하지만 친구 입장에서 걱정이 된다.
"오빠랑 엮이기 싫어서 안 나오는 듯?"
"……."
"하필 같은 조 돼서."
"너까지 그러기냐?"
온갖 탓을 할 수 있다.
여학우들의 뇌피셜에 의하면 나 때문에 학교에 나오지 않는 걸지도 모른다.
'화해를 바라는 것 같은 눈치이기도 하고.'
혜리와 수현.
조별 과제를 하며 그럭저럭 친해졌다.
나의 학문적 도움도 많이 받았고 말이다.
그런데 절친인 소라와 앙숙이다.
양쪽 다 친분이 있는 입장에서 가시방석인 것도 이해는 된다.
"그냥 남친 생겨서 그런 걸 수도 있지."
"남친!"
"소라가?"
"원래 대학에서 남친 처음 생기면 자취방에서 하루종일 원숭이처럼 해대거든."
""…….""
본인이 싫다는데 뭐 어떡해.
나에게 죄가 있다면 오직 진실만을 파헤친 것 뿐이다.
'한국 사회는 진실에 대한 거부감이 너무 커.'
내 말을 듣고 나니 못 가겠다.
내가 대신 소라한테 가서 안부를 물어보라며 짬처리를 당했다.
"계십니까?"
겸사겸사 화해도 하라는 것일 테다.
진짜 떡 치고 있으면 무안하기도 하고.
똑! 똑!
혜리가 적어준 주소에 도착한다.
혹시 가정집일까 봐 오는 길 내내 불안했는데.
'좋은데 사네.'
다행히 자취방인 것 같다.
투룸.
오피스텔은 아니지만 위치도 좋고, 깨끗한 건물이다.
'시발년아 나오라고!'
부모님이 잘 살아서 싸가지가 없나?
초인종을 누르고, 노크까지 해도 나오지를 않는다.
여자 사람 친구인 척하려고 일부러 완급 조절도 했는데.
나도 시간이 썩어나는 게 아니니 돌아가려던 찰나.
끼익−!
문이 아주 조심스럽게, 아니 무겁게 열린다.
밀고 있는 사람이 무슨 병자라도 되는 것처럼.
"누구세요……?"
"나다."
"어. 어?! 당신이 왜……."
못 볼 사람이라도 본 듯이 화들짝 놀라 문을 닫는다.
그럴 것 같아서 발을 대기해 놨다.
"열어."
"뭐, 뭐에요 갑자기!"
"어차피 열게 돼있어."
힘으로 남자를 이길 수 있을 리가.
그럴 줄 알았는데 가슴이 무슨 파워 엔진이라도 되나.
'어지간히 억세네.'
한 차례 힘을 뺀다.
그리고 방심했을 때 발과 손에 동시에 힘을 줘서 한 번에.
"꺄아!"
밀어붙인다.
그러니까 좋은 말로 할 때 열지.
나가떨어져서 현관 위에 뒹군다.
자업자득이다.
나는 분명 경고했으니 미안해 할 건 없을 것이다.
"개판이네?"
"드, 들어오지 말라니까. 경찰 부를 거에요!"
"정말 그래도 돼? 이 꼴인데?"
"……."
그럴 만한 일이 하나 더 있었다.
문을 열고 들여다본 집안 내부.
쓰레기장이 따로 없다.
집주인 본인도 그 위에서 댓바퀴 구른 듯 구질구질하다.
집에서는 좀 더럽게 지내나?
보통 사람이라면 딱 그 정도까지 생각하겠지만.
'그래, 인생은 실전이지 젖탱아.'
주식을 하는 사람이라면 충분히 짐작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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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그럴싸한 계획을 갖고 있다. 처맞기 전까지는”
"Everyone has a plan 'till they get punched in the mou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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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크 타이슨의 명언이 떠오르는 상황이다.
"시발년이 진짜……."
"놀라서 그랬죠. 왜 욕을 해요?"
"니 같으면 처맞았는데 욕이 안 나오냐?!"
한 대 맞았기 때문.
후배의 집에 좀 왔다고 귀싸대기가 날아올 줄은 몰랐다.
"때린 건 죄송하긴 한데."
"죄송할 짓을 왜 해?"
"갑자기 뭐에요. 연락도 없이. 온다는 소리 못 들었단 말이에요."
조금 막무가내로 들어간 감은 있다.
하지만 문을 닫으면 다시 열 방도가 없거니와.
'혹시 팬티만 입고 있을 수도 있잖아.'
가끔씩 있거든.
집에서는 천 걸치기 싫은 년들.
게다가 아침 시간이라 가능성을 볼만했다.
그게 아니더라도 볼만은 하다.
흰 티셔츠 차림은 상상력을 불러일으킨다.
돌핀팬츠가 아닌 점이 아쉽다.
"니가 결석하니까 그렇지."
"……."
"남친이랑 집에서 하루종일 원숭이처럼 떡 치고 있는 거 아닌가 해서 내가 온 거야."
"왜 이야기가 그렇게 돼요!"
타격이 있는 건 ○켓몬 트레이너도 마찬가지.
내가 찾아온 게 어지간히 당황스러운 모양이다.
'친구가 오면 3P가 될 수도 있잖아.'
존잘 알파남이면 말이다.
그래서 내가 대신 와줬다.
다른 의미의 3P도 환영하는데.
"그냥……, 집에 있었어요."
"질풍노도의 시기야?"
"저도 개인 사정이라는 게 있거든요!"
"개뿔. 주식 하다 물리기라도 했겠지."
"……."
안타깝게도 뜨뜻미지근한 인생을 보내고 있었다.
스무 살.
그 파릇파릇한 시기에 어떻게 남자를 안 만나.
'섹스 머신 같은 몸으로.'
내가 이 학교에서 인정한 유일한 재능이다.
어찌 된 영문인지 몸 관리가 영 말이 아니어 보인다.
"아니거든요……."
"계좌 까보던가."
"싫거든요."
"에혀~ 나 참."
떡이 진 긴 머리.
잘록했던 허리도 조금 뭉뚝해진 것처럼 느껴진다.
그 원인이 무엇인지.
고개를 돌릴 것도 없이 보인다.
너저분하게 늘어진 컴퓨터 책상 위에.
"하루종일 라면 처먹으면서 호가창 들여다봤겠지."
"……."
"근데 그런다고 없던 실력이 생기냐? 내리던 주가가 올라가나? 어설프게 만지다 손해만 더 보고."
아무래도 적중한 듯싶다..
고개를 휙 돌려 애꿎은 모니터와 눈싸움한다.
화면이 켜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