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에 와서 그 학생에게 남은 감정은 고맙다는 것 뿐이다.
당연히 화가 안 나는 건 아니다.
하지만 사람 마음이라는 게, 그리고 나이가 들면 돈이 전부다.
그 돈을 지켜줬다.
어쩌면 눈을 감을 마지막 날까지 마누라에게 구박 받을 수 있었던 팔자까지 말이다.
'대체 어떻게.'
그렇기에 더 궁금하다.
미래차를 사기로 한 결정.
자신도 하루이틀 고민해서 내린 것이 아니다.
기업의 펀더멘탈.
소비자의 구매심리.
지표상으로는 분명 사는 게 맞았다.
'차트도 오랫동안 눌려있었고.'
하지만 결과는 모든 것을 말한다.
주가는 폭락했고, 바닥이 어디인지 짐작조차 가지 않는다.
그것을 맞췄다.
심지어 과정까지.
방아쇠를 당긴 건 다름 아닌 트럼프였다.
'경제적 사고와 정치적 발상의 결합이라니.'
평생을 경제학에 쏟은 자신에게는 불가능한 것이다.
한국 정치도 아니고 미국 정치.
어떻게 그런 걸 바로 떠올릴 수 있지?
마치 당연하다는 듯이 열변을 토했다.
소름이 돋는 일이다.
미래를 알고 있기라도 한 것 같다.
명철은 자신의 학생에게 존경심에 가까운 감정을 품게 되었다.
'그의 머릿속에서 주식은 어떻게 움직이는 걸까.'
미래를 꿰뚫어보는 통찰력에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가 없다.
한 사람의 학자로서 말이다.
경제는 세상에서 가장 복잡하며 실용적인 학문.
그 원리를 연구하는데 일생을 바쳤다.
그의 관점을 알고 싶다.
같은 시점으로 세계를 바라보고 싶다.
명철은 찬욱의 능력을 시험해보기로 했다.
* * *
"주식은 창녀를 고르듯이 해라."
최근의 일상.
대학생인 이상 크게 변하는 부분은 없다.
"차, 창녀요?"
"섹스!"
"갑자기 그건 좀……."
"아니, 돈 많이 벌면 오피든 호빠든 한 번 가야 될 거 아니야."
단 한 가지를 빼놓고 말이다.
친한 척 들러붙는 학생들이 많아졌다.
'일종의 추종자지.'
주식으로 이름을 날리면 반드시 따라붙게 된다.
돈을 쉽게 벌고픈 인간들.
내가 앉은 자리에 모여들고 있다.
배움을 구걸하는 불쌍한 중생들에게.
"사진을 보고 고르면 예쁠까?"
"아뇨."
"합성 쩐다던데!"
"실장한테 추천을 받으면?"
"그, 글쎄요?"
"알아서 잘 해주려나……."
강의를 해준다.
어떻게 해야 호구처럼 주식에 안 물릴 수 있는지.
'실장이 잘 나가는 애들 붙여주겠어? 안 나가는 애들 팔아 먹으려고 하지.'
20대 초 꼬맹이들 아니랄까 봐 순진하다.
누군가 쉬운 길을 제시하면 의심부터 해야 한다.
"겉보기 화려한 종목과 애널리스트가 강력 추천하는 종목만 걸러도 중간은 간다는 게지."
""오오!""
주식에도 적용이 된다.
만류귀종이라고 주식도 결국 사람 사는 세상이다.
'사람의 심리가 부딪히는 전장이야.'
이름값만 높은 것.
주가 상승이 예견된 것.
그런 주식들은 대부분 고점이다.
실제 주식 시장에서 통용되는 논리다.
유명한 이야기로 '구두닦이 소년 신호 (shoeshine boy signal)'라는 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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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F 케네디 대통령의 아버지이자 월 스트리트의 유명한 투자자였던 조 케네디는 어느 날 구두를 닦으러 갔습니다.
그런데 구두닦이 소년이 그에게 주식 투자에 대해 조언하는 것이었습니다.
"구두닦이 소년마저 주식에 손을 댈 정도면 시장이 과열된 게 아닐까?"
조 케네디는 갖고 있던 주식을 모두 처분했고, 덕분에 1929년의 미국 대공황을 모면할 수 있었습니다.
그로부터 30년 뒤 그의 아들이 대통령이 되는데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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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아는 정보는 더 이상 정보로서 가치를 잃는다.
모든 투자자는 자신이 '구두닦이'가 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방금 한 이야기도 같은 맥락.
초보 투자자의 귀에 들어올 정도면 이미 끝났다.
어디 가서 돈 주고도 못 들을 실전 압축 지식인데.
"저기요!"
그게 불만인 사람도 있는 모양이다.
한 처자가 부끄럼도 없이 성큼성큼 다가온다.
"신성한 학교에서 뭐 하는 짓이에요!"
"뭐야 여기 종교 집단이었어?"
"네?"
"응?"
○켓몬 트레이너.
가슴만 뒤지게 큰 년.
하지만 신성력에 대한 이야기는 신빙성이 있을지도 모른다.
내 주위에 모여있던 추종자들.
슬금슬금 발걸음을 물리더니 각자 자신의 자리로 돌아간다.
'저 큰 가슴으로 밀어붙이는데.'
위압감이 들지 않을 남자는 없을 것이다.
슴풍당당이라는 사자성어가 이해가 간다.
"아무튼 곧 수업 시작하니까 그만하세요."
"내가 왜?"
"자꾸 이상한 소리 하고 있잖아요!"
"무슨 이상한 소리?"
"그, 그…… 성 관련한 이야기라던가."
그런 몸과는 다르다.
마치 수줍기라도 한 듯 말끝을 흐리며 눈길까지 피한다.
'생긴 건 섹스머신처럼 생겨 가지고.'
내숭은 왜 떠는지 모르겠다.
아니, 순진했던 건 나일지도 모른다.
"맞아, 맞아!"
"한국댈 어떻게 들어왔대……."
"여기 선배님만 있는 곳 아니거든요? 신경 좀 쓰세요."
선동이 되고 있다.
여학생들은 물론 일부 남학생들까지 동조하려는 기색을 보인다.
"말이 좀 심하긴 했지."
"남자들끼리만 있는 자리면 몰라도 민감해 하는 사람들도 있어. 그런 거."
'이런 요망한 것을 봤나.'
방금 그 어울리지 않는 리액션.
남자들을 홀리기 위함이었다.
어린 나이에 요물이다 요물.
"알아 들으셨죠? 앞으로는 주의 좀 하세요."
"싫은데?"
"……네?"
"그러지 말고 너도 배우는 게 어때? ○켓몬 트레이너의 꿈에 한 걸음 다가갈지도 모르잖아."
하지만 물러설 수 없다.
추종자들 앞에서 가오를 세워야 하거니와.
'친하게 지내면 서로 좋잖아.'
싱싱한 여대생과 행복한 캠퍼스 라이프를 보내고 싶다는 작은 소망이 있다.
학과 내 유일한 S급.
장래희망도 트레이더라고 한다.
업계 선배로서 가르침을 주면서 적당히 사심도 챙기고 싶은데.
"흥! 필요 없거든요?"
"정말?"
"저는 이미 잘하고 있어요. 이번 달에만 20%의 수익률을 기록하고 있으니까요."
나름의 성과를 거두고 있는 모양이다.
증거를 보여주겠다는 듯 핸드폰을 톡톡 두들긴다.
'뭐, 아주 바보는 아닌가 보네.'
한 달에 20%면 자랑할 만하다.
리스크를 감수하면 하루만에도 가능하지만, 일반적인 투자법으로는 말이다.
관심이 없을 만도 한 일.
아쉽다.
나도 시간이 썩어 나는 게 아니니 물러나 주려고 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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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소라님의 총 자산』
120,010,892원
+20,010,892(+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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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억? 학생이 어떻게 1억이 있어? 뭐 원교라도 했나?"
"모, 모의투자거든요?!"
"아 모투."
회귀하고 들어본 소리 중 최고로 웃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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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자는 매일 뭘 먹을지 고민한다."
한국대.
이제 막 자라나는 새싹들.
대한민국의 차세대 엘리트라고 할 수 있다.
"부자는 매일 누굴 먹을지 고민한다."
"오오~!!"
하지만 어리다.
세상 돌아가는 이치를 하나도 모르고 있다.
'알면 좋아 죽어.'
금융.
세상에서 가장 빠르게, 그리고 많은 돈을 긁어 모을 수 있는 방법이다.
일부 금융인들은 일신의 안위를 위해 쓰기도 한다.
직설적으로 말하면 사치.
"어때. 부자 되고 싶지?"
"네!"
"부자 되고 싶어요! 어떻게 해야 돼요??"
이런 햇병아리들을 상대로?
대중들의 흥미를 끌기에 돈만한 게 없다.
돈맛을 알게 해준다.
자본주의 과실의 감미로움을 미끼로 꼬드기고 있는데.
"나 살 찐 거 같애."
"맞아. 너 좀 찐 듯!"
"아아 안 빨고 프라푸치노 빨고 있을 때 알아봤지~."
정작 원하는 목표는 이루지 못하고 있다.
건너편.
여학생들이 떠들고 있다.
'내 것도 좀 빨아주지. 제로 칼로리인데.'
실제로 중요한 부분이다.
이름만 들으면 알 법한 월가 레전드들이 한 목소리로 말한다.
「젊을 때 더 많은 섹스를 했으면 좋겠다.」− 켄 피셔(Kenneth Fisher)
'나이 먹으면 하고 싶어도 못해.'
돈이 썩어 나는 수준이 아니라 나라를 하나 살 정도의 거부들도 인생에 미련이라는 게 남는다.
섹스!
왜 많이 안 했을까?
그것이 월가 레전드들의 솔직한 심정이다.
차세대의 한 축을 담당했던 나도 업계 선배들의 의견에 동조하는 바이다.
'시발년이 그러니까 여캠이나 할 것이지!'
그 깊은 뜻을 전혀 모르고 있다.
가슴녀가 째릿 하고 눈을 흘긴다.
그에 호응을 하듯 나머지 애들도 나를 째려본다.
왕따를 당하는 느낌.
그렇다.
얼마 전부터 학과 내 분위기가 이렇게 되었다.
"형."
"뭐 질문 있어?"
"그래서 오르는 종목이 뭐에요?"
"……."
쓸데없는 애들만 붙고 있다.
주식으로 용돈 벌이라도 하고 싶은 하이에나들.
'꼬추 새끼들만 꼬여 가지고.'
수준도 낮다.
뇌세포를 아주 조금만 돌려봐도 나오지 않을 질문을 던져오고 있다.
투자.
마우스 한 번 딸깍이는 것만으로 수백, 수천 억을 벌 수 있는 행위.
얼핏 쉬워 보일 수도 있다.
사놓고 기다리기만 하면 돈이 벌리네?
그 한 번을 딸깍이기 위해 얼마나 큰 노력을 쏟아붓는지 의외로 생각하지 않는다.
'그냥 상식적으로만 생각해봐도.'
한 명의 학생이 의사가 되는데 최소 11년이 걸린다.
변호사는 9.6년이 든다고 한다.
건축사는 8년.
메이플 만렙은 3년 8개월.
그 외에도 대부분의 직업이 긴 시간을 필요로 한다.
그렇다면 투자자는?
소위 말하는 '사'자 들어가는 직업보다 결코 꿀리는 직업이 아니다.
아니, 저런 인간들 수십만을 합쳐도 못 버는 돈을 벌 수 있다.
그럼 그에 상응하는 노력도.
'당연히 필요할 거 아니야.'
나는 조금만 벌고 싶은데?
그 조금을 버는 것 자체가 통계적으로도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개미의 95%는 손실을 본 채 시장을 퇴장한다.
즉, 돈을 벌기 위해서는 상위 5%에 속해야 한다.
직업이 되기 위해서는 0.1%.
하지만 5%만 해도 충분히 어렵고, 경험과 노력 없이는 이룰 수 없다.
"나도 주식으로 돈 벌고 싶다."
"소라가 추천해주는 거 사."
"그럼 벌어?"
"히히, 내가 저번에 산 거 볼래?"
그야말로 가시밭길이다.
선배로서 도움을 주며 겸사겸사 사리사욕도 챙기고 싶은데.
'쟤 때문에 먹을 것도 못 먹어!'
여학생들의 중심.
수석으로 들어왔기도 하거니와 외모도 눈에 띈다.
나와 말싸움을 하는 걸 보고 걸크러쉬를 느낀 빡대가리년들도 있었던 모양이다.
결정적으로.
"와, 진짜네? 5%나 올랐어!"
"후후, 난 듣자마자 샀지."
"소라가 픽해준 종목은 기다리기만 하면 무조건 오르더라."
트레이더를 한다고 괜히 나댄 건 아니었다.
여학생들에게 주식 상담을 해주며 인기를 모으고 있다.
'저게 내 역할이었어야 했는데 시발.'
경제학과.
학과생들 대부분이 주식을 한다.
유튜브 사건으로 인해 더 촉발된 측면도 있다.
알짜배기를 빼앗겼다.
꽃밭에서 뒹굴지 못하고 꼬추 새끼들한테 둘러 쌓여 시간 낭비나 해야 한다니.
"형 저희 뭐 사요?"
"2배 오르는 걸로."
"전 3배!"
"솔로몬 저축은행 가서 적금이나 들어 이 새끼들아!"
딱히 인재도 없고 말이다.
전세계에서 인재들이 몰려오는 월가에도 쓸만한 녀석은 손에 꼽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