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화 (6/450)

<용지 값이 만약 올라가면 보완재인 프린터의 수요가 줄어들 수 있지 않겠느냐…….>

교수님의 강의.

귓구멍에 들어오지도 않는다.

애시당초 들을 가치도 없는 것이다.

'어느 분야든 가르치는 사람은 현직에서 나가리된 사람들이라.'

도망쳐 나온 사람에조차 미치지 못한다.

죽은 지식만 머릿속에 넣고 있는 산 송장 같은 이들.

<거기!>

"……."

<거기! 옆에 깨워.>

"제가……, 할까요?"

미적지근하고 물에 물 탄 듯한 이야기를 고장 난 라디오처럼 반복한다.

내 회사였으면 당장 잘랐지.

'아, 냄새 좋다.'

따스하고 부드러운 무언가가 느껴진다.

그리고 뺨이 간질거리는 게 머리카락이라도 스친 거 같다.

"저기요."

"어?"

"잠 깨요. 빨리."

하아.

얕은 한숨.

그리고 왠지 모르게 느껴지는 시선.

'정말 많이 오랜만이네.'

수업 시간에 깜빡 졸면 대충 이런 느낌이었던 것 같다.

그리우면서도 그립지 않은 상황이다.

"죄송합니다."

<죄송할 건 없고…….>

"교수님 강의가 너무 진부해서 자버렸어요. 신선했으면 안 잤을 텐데."

이런 말을 꼭 해주고 싶었다.

꼬우면 니가 강의를 재밌게 하던가.

'우리나라는 남이 자던 말던 관심이 너무 많아.'

남이 하는 일에 관심이 많은 사회다.

거시적인 관점에서도 좋은 교육이 아니다.

책임감.

강의 중에 자면 인생 좆되는 건 자신이라는 사실을 스스로 깨달아야 한다.

<……한 번만 더 자면 결석 처리할 테니 그리 알게.>

"네~."

난 좆돼도 상관없다.

한국대에서 쫓겨나면 월가에서 받아주겠지.

"이걸 참네."

"이걸 참아."

"진짜 싸이콘가 봐. 싸이코."

남 일에 뭐가 그리 관심이 많은지 모르겠다.

여기저기에서 뒤를 까는 목소리가 들린다.

"원래 싸이코였군요?"

"지극히 정상적인 반응인데? 교수도 뭐라 안 하잖아."

"어이가 없어서 그랬겠죠."

"강의 중에 떠들지 마."

"……."

강의 중에 자는 건 된다.

하지만 떠드는 건 안된다.

'요즘 애들은 상식이 부족하다니까.'

교육이 많이 잘못되었다.

머리만 똑똑한 바보들이 양산되는 이유일 것이다.

'요즘 애들이……, 몸은 잘 커.'

잘 수가 없다.

대신 학우들에게 관심을 가지기로 한다.

이름까지는 기억 못하더라도.

〔경제학과 학우〕

S급−

A급− 2명

B급− 5명

그 외− 뒤져

얼굴과 몸매는 확실하게 짚고 넘어간다.

내가 이래 봬도 정이 많은 타입이다.

'야동도 일반인물이 더 꼴리거든.'

예쁜 여자.

그리고 젊은 여자.

돈을 더 보탤수록 구할 수는 있다.

하지만 때 묻지 않은 순수함은 돈이 있어도 구하기 힘들다.

이번 생에서는 아쉬움을 남기고 싶지 않은데.

"왜 자꾸~."

"그냥."

"정말! 나도 찌를 거야."

'제길, 남친 있네.'

A급이 1명이 되었다.

옆에 앉은 남자 학우와 깨가 떨어진다.

펜으로 쿡쿡 찌른다.

그러면 뭐 안 보일 줄 아는데 다 보인다.

나 말고도 느끼고 있을 것이다.

둘이 이미 썸을 넘어 떡까지 쳤구나.

'나만 못 먹어 싱싱한 여대생!'

B급도 서서히 줄어든다.

아무리 자기들끼리 짝짓기를 해도 까치밥 하나는 남겨두지.

하아~

한숨을 푹 쉬고 숨을 들이쉬자 어디선가 은은한 좋은 냄새가 풍겨온다.

아니, 바로 옆.

사각! 사각!

필기를 하고 있다.

요즘 세상에 직접, 그것도 연필로 공책에 교수님의 말씀을 적고 있는 것이다.

정말 빡대가리 같은 짓.

하지만 비주얼이 되다 보니 한 폭의 그림 같기도 하다.

"필기 열심히 하네."

"……남이사요."

"나도 한때 그렇게 열심히 공부한 적이 있었는데."

"한 적 없을 것 같은데요."

그랬나?

근데 인생을 사는 것 자체가 공부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니 마찬가지다.

'아 냄새 좋다.'

좋은 여자들은 페로몬을 풍긴다.

향수로는 낼 수 없는 매혹적인 향기.

외모도 S급이라 친하게 지내고 싶다.

"노트북 없어? 왜 직접 써?"

"전 직접 쓰는 편이 암기가 잘돼요."

"저런 쓰잘데기 없는 걸 외우는데 뇌세포를 낭비하네."

"쓰잘……, 데기?"

증권사 트레이더 할 거라며?

포켓몬 트레이너 할 거면 상관이 없겠지만, 전자라면 크게 도움이 되는 지식은 아니다.

'니가 무슨 경제학과 박사가 될 게 아니잖아.'

저런 이론적인 지식들.

너무 매달리면 넓은 시야를 가지는데 방해만 된다.

주식을 잘하는 모범생은 없다.

"아주 입만 살았네요."

"자주 듣는 이야기지."

"네~ 말 걸지 마세요."

"싫은데?"

'세상 모든 일이 다 경험이 선행되는 건데.'

탁상공론.

지식부터 주입 받으면 선입견이 심해진다.

한국에 금융 인재가 더럽게 없는 이유일 것이다.

<소비자들의 소득이 증가하면 수요곡선이 P1에서 P2로 상승하는데 이것을 수요량의 변화라고 얘기하는 거죠.>

산 증인.

저 교수 새끼 봐라.

주식에서 돈 땄으면 입 아프게 저러고 있겠냐고.

"이름이 뭐야?"

"당신한테 가르쳐줄 이름은 없거든요."

"지우개에 써있네."

"……."

"윤소라? 이름 예쁘다. 동명의 배우 정말 좋아했는데."

아오이 소라라고 계신다.

일본이 배출한 불세출의 명배우.

'한국에도 팬이 많지.'

확실히 타고난 인재다.

진로만 잘 선택하면 앞으로의 인생이 탄탄대로일 텐데.

하암~

하품이 쏟아져 나온다.

한창 도박에 빠져야 할 젊은 청춘들이 낭비되고 있다니 참으로 아쉽다.

하암~

하암~

하품은 전염되기 마련이다.

강의실 이곳저곳에서 교수님의 지루한 강의를 참지 못하고 있다.

<여러분 졸려요?>

""네~!""

<그럼 잠깐 재밌는 이야기를 해볼까요? 최근 주식에 대해 관심을 가진 친구들이 많은 걸로 알고 있는데…….>

교수 기준으로 재미있는 이야기.

헛소리를 한다는 건 딴짓을 해도 된다는 뜻이니 나쁠 건 없다.

<오늘 배운 내용이 실제 주식 시장에 어떻게 적용되는지 알아볼까요? 거기 엎드려있는 학생!>

그렇게 감겨지는 눈.

또다시 따스하고 부드러운 무언가가 잠을 깨운다.

'난가?'

주위를 둘러본다.

한국대 경제학과에 자유로운 영혼은 나밖에 없었다.

어쩔 수 없이 대답한다.

대머리 교수가 벼르고 있었다는 듯 이니시를 걸어온다.

<오늘 배운 내용 기억하죠?>

"아, 당연히 기억하죠 교수님."

<그럼 간단한 질문 하나 할게요. 미국 국민들의 1인당 국민 소득이 크게 증가한다면 우리나라 자동차 수출 기업들의 주가는 앞으로 어떻게 될까요? 오늘 배운 내용과 연관 지어 대답해주세요.>

여기저기서 키득키득 웃는 소리도 들려온다.

내가 대답하지 못할 거라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이 정도는 껌이지.'

날 뭐로 보고.

빠르게 시뮬레이션을 돌려본다.

업계에서는 흔히 있는 일이라 답은 간단히 재고된다.

"그거야 뭐 망했죠."

<그래요. 가격이……, 네?>

"종필모건 같은 데서 공매도 한 100만 주 때려 박겠죠. 정신 나간 놈들이라 더 박을 수도 있고."

공매도를 치기 적절한 상황.

정보가 빠른 외국 기관들이 절대 놓치지 않을 것이다.

교과서적인 대답을 했다고 생각했는데.

"왜 가격이 내려? 올라야 하는 거 아니야?"

"그러게."

"맞아, 맞아! 이건 올라야지."

주위에서 엉뚱한 소리가 들려온다.

마치 내 대답이 틀렸다는 듯 헛소리를 하고 있다.

'아니 왜?'

내가 이상한 사람이 된 듯한 느낌.

학생은 물론 교수까지 나를 의아한 듯 쳐다본다.

<흠, 흠! 주가가 올라가겠죠. 소득이 증가했으니 구매 여력이 높아질 테고, 필수소비재가 아닌 자동차의 수요도 높아지게 됩니다.>

그리고 말도 안되는 답을 부른다.

학생들은 그렇다 쳐도, 교수까지 이런다고?

'내가 이러니까 우리나라 교수들이 싫은 거야!'

대학 교수들이 원래 이론적으로만 빠삭하긴 하다.

그 이론조차 턱없이 부족하다.

1+1=2 급의 단순무식한 생각.

시장이 그렇게 굴러가면 누가 주식으로 돈을 잃어.

"교수님."

<그러니까 앞으로는 졸지 말고 강의를…….>

"교수님이 물로켓 세대라 너무 안이하게 생각하신 거 같은데, 요즘 시장은 복잡계라 그렇게 1차원적으로 안 흘러가요."

화가 난다.

하지만 참아야 한다.

괜히 눈에 띄어봤자 좋을 거 없다.

신입생 환영회에서의 교훈을 상기한다.

나름대로 정중하게 말을 골랐다고 생각했는데.

"물로켓?"

"물로켓이 뭐야?"

'…….'

지금은 없는 단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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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로켓.

과거의 업적이 현재 시점에서는 그리 큰 가치를 가지지 않는다는 뜻의 신조어.

'스포츠에서는 여러가지 논란이 있는데.'

단순 비교가 불가능하다.

이를 테면 펠레.

당시의 경기력을 현재 팬들이 본다면 다소 부족해 보일 수 있다.

하지만 달걀이 있어야 닭도 태어나듯 선구자의 공로를 무시하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스포츠에서는 그렇게 정리가 돼도.

"물로켓?"

"물로켓이 무슨 뜻이야?"

"그 과학의 날에 쏘던 거?"

경제계에서는 일리가 있다는 것이 업계인들의 공통된 시각이다.

특히 편하게 경력을 쌓은 옛날 세대.

'아니, 그 시절에는 성공하는 게 너무 쉬웠잖아.'

한국은, 대한민국은 급속도로 성장한 나라다.

불과 50년 전만 해도 아프리카 오지보다 못한 후진국이었다.

그 당시 태어난 사람들은 인생 개꿀이다.

가만히 숨만 쉬고 있어도 에스컬레이터처럼 자동으로 승진했으니까.

"아니, 그 다른 말이 아니라. 교수님 시대 때 통용되던 논리가 지금은 안 통한다는 말이에요."

<……설명을 해보세요.>

"실례가 아니라면 잠깐 강단으로 나가도 될까요?"

한국대에서 교수직을 할 정도면 그래도 숨을 꽤 열심히 쉬신 편인 건 맞다.

하지만 그래봤자.

'요즘 애들 공부하는 것의 반에 반도 안 했잖아.'

능력이 부족하다.

그런데 직책은 높다.

그렇다 보니 젊은 증권인들 사이에서 무시하는 풍조가 솔직하게 있다.

"미국 1인당 GDP가 올라가는 건 대개 경제 사이클의 고점이 꺾인 후반기에 일어나는 현상인데……."

저 사람들 지금 태어났으면 한국대는 커녕 인서울도 힘들지 않을까?

같은 수준이 아니라는 것이 느껴질 수밖에 없다.

에스컬레이터처럼 자동으로 승진하던 사회.

그런 뜨뜻미지근한 인생을 살아온 어른들이 대체 무엇을 알겠냐는 것이다.

"그리고 경제 사이클 후반이라는 것은 앞서 한 차례 돈을 풀었다는 거잖아요? 그걸 거둬들여야죠. 그 말인즉, 금리 인상이 동반된다는 것이고 할부 구매를 하는 미국인들의 특성상 부동산, 자동차 수요는 줄어드는 것이 일반론입니다. 복리이기 때문에 금리가 1%만 올라도 가격이 10% 상승하는 효과가 일어나요."

<음…….>

"맞죠? 반박할 거 없죠?"

극히 일부를 빼면 노오오오오력을 하지 않는다.

최근 경제계가 얼마나 복잡하게 굴러가는지 업데이트하지 못했다.

<할부 구매까지는 내가 생각을 못했어.>

"교수님!"

<네, 뭐죠?>

"왜 할부로 구매해요? 그냥 일시불로 하면 되잖아요."

<미국은 Fico score, 신용 점수를 올리는 걸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그래서 돈을 더 내더라도 할부 구매를 많이 택해요.>

'뭐, 이 정도는 알겠지.'

썩어도 준치.

한국대 교수 정도면 미국 유학 경험도 있을 수 있다.

그게 아니더라도 나이 먹다 보면 쌓이는 지식들이 있다.

강의실 이곳저곳.

학생들이 나를 바라보는 시선도 달라진다.

그럴 듯한 이야기를 하러 나왔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흥미로운 시각이었어요. 하지만 주가가 올라가진 못해도 내려갈 근거로는…….>

"아니, 그건 기본 배경이고."

<뭐라고요?>

"정치적 스탠스도 계산을 해야죠."

내가 하는 것은 완전한 실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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