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71화 〉 모두에게 사랑받는 막내
* * *
“.....”
피가 뚝뚝 떨어지고 있는 자신의 손을 뚫어지게 보고 있는 스텔라.
애환이 담긴 표정을 짓고 있는데, 기쁨이 더욱 커 보인다.
지구에 마지막 남은 연을 끊어내서 홀가분한 모양이다.
한참동안 손만 바라보며 몸을 떨던 그녀는, 내가 가까이 다가오자 정신을 차렸다.
“아...!”
화들짝 놀라선 고개를 돌리는 그녀를 향해 부드럽게 웃어보인 나는 마력을 일으켰다.
화륵! 치이익...!
동시에 스텔라의 손에 검은 불길이 일어나더니, 묻어있는 알렉스의 피가 모조리 태워지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사라진 알렉스의 흔적.
자신의 새하얗고 가느다란 손을 이리저리 돌려 확인해본 스텔라가 입을 열었다.
“.... 아, 저...”
날 어떻게 호칭해야할지 잘 모르겠는 표정.
알렉스를 매도할 땐 알아서 잘 하던데... 흥분이 식고 나니 내 안에 자리한 마력을 느끼고 주인이라는 생각이 들었나보다.
그런 그녀에게 인자한 미소를 지어준 내가 말했다.
“평소대로 해도 돼.”
“응...”
그 누구보다도 인간다웠던 스텔라는 자신의 의지로 마족의 길을 택했다.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만족스러운데, 혈육이었던 인간을 조롱하며 죽었을 땐 정말이지 쾌락으로 머리가 타버리는 줄 알았다.
세로로 쭈욱 찢어진 자신의 빨간 동공을 좌우로 움직이는 그녀.
몸의 굴곡이 드러나는 외설적인 드레스와 스텔라의 현 마음을 나타내는 듯한 까만 머리가 조화를 이뤄 너무나도 요염해 보인다.
“이리와.”
나는 스텔라를 향해 양팔을 뻗었다.
그러자 잠시 머뭇거리던 그녀가 또각거리는 구두소리를 내며 내게 다가와, 품에 쏘옥 안겼다.
“후으...”
스텔라의 코에서 기분 좋은 콧바람이 새어나왔다.
예전의 그녀처럼 가슴팍에 이마를 대고 비비는 모습이 퍽 귀엽다.
그리고 신선했다. 타락한 상태로 이러니까.
냉기가 풀풀 흘리는 그녀의 몸을 녹여주던 나는, 죽어있는 알렉스의 빛을 잃은 눈을 물건 취급하듯 말했다.
“저건 치울게.”
그러자 스텔라의 고개가 뒤로 돌아갔다.
바닥에 흥건한 피와 내장조각들을 보고 잠시 몸서리를 친 그녀는, 자신이 만들어낸 산물에 쾌락이 느껴졌는지 침을 꼴깍 삼켰다.
“징그러워...”
이젠 알렉스를 인간 취급도 하지 않는 것 같다.
“네가 한 거야.”
“.... 몰라아...”
쑥스러운 듯 말끝을 길게 늘어뜨린 스텔라가 내 가슴에 다시 얼굴을 묻었다.
피식한 나는 스텔라의 바로 옆에 포탈을 만들었다.
고오오...!
불길한 소리와 함께 그녀의 지척에 나타난 마물의 아가리.
입을 굳게 닫은 그것을 보고 움찔한 스텔라가 눈을 크게 떴다.
“저, 저건...”
마물들이 출현할 때 나타났던 것과 크기만 다르지 완벽하게 똑같은 외형.
그 포탈을 내가 직접 만들어내니 놀란 듯했다.
말을 잇지 못하던 스텔라는 디바이스와 포탈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마기를 풍기는 포탈이 나타났음에도 경고음을 발하지 않으니 어리둥절해하고 있다.
쩌어억!
포탈은 곧 끈적한 타액을 질질 흘리며 열렸다.
그리고 그 안에서부터, 기다란 날개와 끄트머리가 하트 모양으로 된 검은 꼬리를 살랑거리는 마르셀라가 나타났다.
“.... 어...?”
당황한 탄성을 내뱉은 스텔라의 미간이 꿈틀했다.
분명히 처음 보는 마물인데 기운이 익숙해서 저러는 것이다.
“미, 민지 언니에요...?”
정체를 정확히 꿰뚫은 스텔라의 물음.
마르셀라가 자신의 아랫배에 양손을 모으더니 공손히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왕비님. 앞으로 왕비님을 모시게 될 마르셀라라고 합니다. 혼란스러우신 마음, 깊이 통감하고 있습니다.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아, 저... 그게... 안녕하세요...”
아직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기 힘든 듯 말을 더듬던 스텔라가 어정쩡하게, 그러나 예의가 있음이 느껴질 정도로 고개를 숙였다.
‘왕비’라는 호칭에 기분이 좋았는지 희미한 미소도 띄운 채였다.
타락해도 순하기 그지없구나.
물론 첫 살인을 한 직후이긴 하지만, 스텔라답다.
“왕비님께서 적응하실 때까지 온 마음을 다해 도와드리겠습니다.”
마르셀라의 조신한 태도에 안도감이 들었을까?
한층 표정이 풀린 스텔라가 대답했다.
“네... 잘 부탁드려요... 언니...”
스텔라의 성격상, 마르셀라에게 반말을 할 일은 일어나지 않겠지.
마르셀라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어서, 말을 편하게 하라느니 같은 말을 하지 않고 있다.
스텔라에게 부담을 지우지 않으려는 그녀의 행동에 기꺼워한 나는 알렉스의 시체를 가리켰다.
“쓸모가 있을 것 같으냐?”
“음...”
잠시 무언가를 고민하던 마르셀라가 좋은 생각이 났다는 듯 말했다.
“아델라인 왕비님께 부탁드리겠습니다.”
아델의 보옥은 영혼을 흡수하는 능력을 가졌다.
현재 말파스의 영혼이 깃들어있는 상태이기도 하다.
거기 알렉스의 혼까지 집어넣는다면, 스텔라가 심심할 때마다 장난감으로 사용할 수 있을 것도 같다.
물론 아직 그 혼을 끄집어낼 수는 없지만, 천계를 정복한 후에 연구를 한번 해봐야겠다.
“괜찮구나. 처리해라.”
“네, 마왕님.”
상체를 꾸벅 숙인 마르셀라는, 곧 알렉스의 몸을 허공에 띄운 후 포탈을 타고 사라졌다.
그때까지 잠자코 있던 스텔라가 날 올려다보았다.
“.... 오빠, 이상해...”
“뭐가?”
“말투...”
근엄한 목소리를 좀 냈더니 낯설었나보다.
그런 스텔라의 엉덩이를 토닥여주자, 움찔한 그녀가 말을 이었다.
“근데 아델라인 선배님한테 뭘 부탁한다는 거야...?”
“그건나중에 아델한테 직접 들어보고,우리도 가자.”
“어디...?”
“일단은 첫 인연이라고 할 수 있는 보영이한테 먼저 갈게.”
“아...”
돌연 입을 삐죽 내미는 스텔라.
내가 자신을 속인 것을 알아차리고 삐친 것 같다.
“보영이 언니가 나한테 접근한 거... 오빠 때문이지...? 맞지?”
“응.”
“애초에 날...”
“맞아, 널 노렸어.”
“.....”
꽁한 표정이다.
뒤에서 온갖 수작을 다 부리고, 다른 사람들과도 문란한 일을 다 했다고 하면 더욱 뾰로통해지겠지.
당분간은 스텔라를 케어해주는데 집중해야겠다.
생각을 마친 나는 보영의 집으로 통하는 새로운 포탈을 만들었다.
“갈까?”
“.... 응.”
조심조심 포탈 안으로 한발을 내딛어본 그녀는, 이내 숨을 후욱 빨아들이고는 안으로 들어갔다.
드디어 마지막 남은 영웅을 내 권속이자 아내로 만들었다.
뿌듯함과 정복감이 뇌를 장악하면서, 도파민이 마구 분비되어 쾌락의 파도를 만들어낸다.
아직 남은 일이 있긴 하지만, 지금은 생각하지 말자.
잠깐 즐기는 거다. 마지막으로 타락한 스텔라의 행보를.
**
스텔라의 입장에서, 보영은 보잘 것 없는 존재다.
내 권속이긴 하지만 마력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스텔라 또한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음에도, 그녀는 보영을 하대할 생각이 전혀 없어보였다.
“언니.”
“네, 왕비님.”
“일어나세요.”
“네.”
바닥에 무릎을 꿇고 있던 보영이 스텔라의 명령에 따랐다.
보영이 자신보다 아래에 있는 존재임을 명확하게 하고 있긴 하구나.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앞으로 두 사람의 입장은 정반대가 된다는 거다.
스텔라는 보영을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었다.
아무 말 없이, 오랜 시간동안.
그에 부담감을 느낀 보영의 시선이 아래로 내리깔아질 때쯤,
“노래 연습하고 싶어요.”
스텔라의 입이 열렸다.
“네...? 연습이요...?”
“저는 계속 가수가 하고 싶어요. 도와줄 거죠?”
“아, 무, 물론이에요...!”
만족스런 얼굴로 보영의 대답을 들은 스텔라는, 보영을 천천히 끌어안았다.
화아악...!
동시에 그녀의 몸에서부터 피어난 마기가 보영의 안으로 일부 들어갔다.
“앗...!”
신음 같은 감탄사를 터뜨린 보영이 눈에 흰자위를 잠깐 드러냈다.
처음 강제적으로 마기를 받아들일 때와 비슷한 반응이지만, 얼굴이 흥분으로 가득 차있다.
나와 똑같은 종류의 마기를 주입받아 쾌락을 느낀 모양이었다.
“저는 언니가 저희 소속사 대표가 되어주셨으면 좋겠어요.”
“대, 대표...?”
“지금 대표님은 필요 없어. 같이 있으면 기분 나빠요. 그러니까 언니가 해주세요. 전 언니가 해주는 게 좋아요.”
사근사근한 말투로 보영에게 권유를 하는 스텔라의 모습은 무척 요망했다.
그리고 어울렸다. 왠지 모르게.
“왕비님... 저... 흣...!”
이젠 목소리까지 떠는데, 조금만 더 있으면 아래에서 조수를 뿜어낼 것 같다.
오르가즘이 확 차오른 보영을 한번 쓰윽 살핀 스텔라가 포옹을 풀었다.
마기도 마찬가지. 보영을 애태우기로 작정한 듯 완전히 끊어냈다.
“아...!”
보영이 안타까운 탄식을 터뜨리자, 한쪽 입꼬리를 아주 희미하게 올린 스텔라가 재촉했다.
“언니가 해주실 거죠?”
“하, 할게요...! 대표 할게요...!”
주인을 발견한 강아지마냥 골반을 흔들며 냅다 승낙하는 보영.
방긋 웃은 스텔라는 다시 그런 보영을 껴안고 마기를 조금씩 흘려보내주었다.
착하지만 사악하다. 그리고 여우같다.
변한 스텔라를 본 내 평가였다.
저런 식으로 하지 않아도 명령만 내리면 그대로 따를 텐데, 마음속으로부터 굴복시키려는 것 같아서 오싹하기까지 하다.
“최승환 대표님도 언니가 알아서 해주실 거죠?”
“네에...! 네...!”
“저 싫어요? 귀찮아요?”
“그, 그럴 리가요...! 왕비님... 정말 좋아해요... 왕비님을 위해서라면 뭐든지 할 수 있어요...!”
“저도 마찬가지에요.”
“아... 아아아...♡”
호흡곤란이라도 온 사람처럼 숨을 헐떡이는 보영의 가랑이 사이에서 허연 액체가 줄줄 흘러내렸다.
여태 맛보지 못한 대량의 마기가 몸 안에 들어오고, 자신이 모셔야할 스텔라가 특유의 선한 목소리로 달콤한 말을 속삭여주니 완전한 절정에 도달한 듯한 모습이었다.
‘허...’
아랫도리에 신호가 빡 하고 온다.
그만큼 스텔라는 색기와 청순미가 풀풀 흘러넘쳤다.
“흐읏...! 조, 죄송합니다...”
순간 다리가 확 풀려버려 스텔라에게 몸을 기댄 보영의 사과.
스텔라가 괜찮다는 듯 따스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응, 괜찮아요. 여기 앉아요.”
보영을 조심스레 소파에 앉힌 스텔라는, 감사인사를 하는 그녀를 보듬어주고는 내게 다가왔다.
“오빠... 나 연습하고 싶어.”
기다란 속눈썹을 늘어뜨리며 저리 말하는데, 눈앞이 아찔해진다.
“보영이를 저렇게 만들어놓고 연습하겠다고...?”
“조금만 있으면 회복하실 테니까... 그때 할래. 한 시간만 하고 싶어... 연습한 다음에 선배님들 보러 가도 돼?”
아양이 듬뿍 담겨있는 말투다.
마족이 되어 혼란스런 마음을, 좋아하는 노래로 다스릴 수도 있으니까...
들어주지 않을 수는 없지.
욕구로 지끈거리기 시작한 이마를 꾸욱 꾹 누른 내가 말했다.
“한 시간만 해 그럼.”
“응, 나 안아줘...”
아까 집에서 내가 했던 것처럼 양팔을 쭈욱 뻗는 스텔라.
인간이었을 때보다 애교가 더욱 흘러넘치고 있다.
세화를 비롯한 아내들이 본다면 정말 좋아하겠는데...
특히 아델이 끔벅 죽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