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법소녀물 야겜 속 최종보스가 되었다-468화 (468/471)

〈 468화 〉 절연 #2

* * *

“소속사에서 스텔라 씨의 건강이 좋지 않다고 했는데... 지금은 괜찮으신 건가요?”

라디오 MC의 친절한 물음에, 스텔라가 방긋 웃으며 답했다.

“네. 많이 나아졌어요.”

“다행이네요. 로즈마리들의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습니다.”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면목이 없네요.”

“이렇게 나와 주셨으니, 팬 분들도 이해해주실 겁니다. 그런데 스텔라 씨.”

“네?”

“이미지가 약간... 바뀌신 듯한데요?”

그 말에 스텔라가 자신의 얼굴을 만지작거렸다.

그리고는 천연덕스럽게 반문했다.

“어떤 점이 바뀐 것처럼 보이세요?”

“으음... 묘하게 날카로워진 것 같기도 하고... 오늘 혹시 새로운 메이크업을 하신 건가요?”

“맞아요! 아이라인을 평소와 다르게 해봤어요. 잘 캐치해주셨네요?”

“하하! 제가 눈썰미가 좀 있는 편이긴 하죠. 그나저나 신곡이 곧 발표될 거라고 알고 있는데, 간단하게…….”

대본 외의 대사가 많았음에도 잘 대답해주고 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바쁜 스케줄을 소화했음에도 얼굴에 웃음기를 잃지 않고 있다.

천성이구나. 타락해도 가수 생활은 계속 하고 싶어 하려나?

자신의 모습을 관객들에게 보여주고 싶다면야 뭐...

그렇게 하도록 해줘야겠다.

스텔라와 MC는 한 시간에 걸쳐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신곡의 일부를 살짝 불러주는 것으로 라디오를 마무리한 스텔라는, 대기실에서 나와 여느 때처럼 모든 스탭들에게 인사를 한 뒤 내 앞에 섰다.

그런 그녀에게 두꺼운 가디건을 둘러준 내가 말했다.

“수고했어.”

“응.”

평소와 같은 태연한 투로 고개를 주억거린 스텔라는, 나와 함께 차로 이동했다.

그리고 거기서 휴대폰을 확인해보았다.

­아...! 싼다...!

스피커를 통해 들려오는 알렉스의 흥분한 목소리.

차를 출발시킨 내가 물었다.

“그거 무슨 소리야?”

그에 인상을 찌푸린 스텔라가 휴대폰을 가방 안으로 던지다시피 집어넣었다.

“마사지 베드 같은 곳에서... 어떤 여자가... 더, 더러워서 말 안 할래.”

마사지 베드라면 섹스를 하는 건 아닐 테고, 마사지를 방자한 유사성행위를 하고 있나보다.

픽 하는 콧바람을 내뱉은 내가 말했다.

“괜히 봐서 기분만 나빠졌네? 얼른 집에 돌아가서 쉬자.”

“응... 내일은 스케줄 있어?”

“보영이 누나네 집에서 세 시간 정도 연습만 하면 돼.”

“알았어...”

등받이에 등을 기댄 스텔라의 표정은 약간 후련해보였다.

방금 못 볼 꼴을 본 사람치고는 이상한 반응이었다.

“표정은 왜 그렇게 좋은 건데?”

“뭔가 후련해서...”

“뭐가?”

“알렉스한테 밥 안 차려줘도 되잖아. 빨래도 덜 나오구...”

그 이유 때문이었나?

스텔라도 참... 많이 변했다.

친동생의 의식주를 귀찮게 치부해버리는 스텔라를 향해 히죽 웃어준 나는 집으로 돌아갔다.

**

­안녕하십니까, 캐시 박사님. 저번에 보내주신 자료는 잘 받아보았습니다.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네요.

화면을 통해 나타난 데이비드 허셀의 정중한 태도에, 박사가 인자한 미소를 지었다.

“참 착하고 열정이 있는 아이더군요. 과학자로서의 마음가짐도 잘 되어있고요.”

샬롯을 언급하자, 허셀의 입가가 슬쩍 올라갔다.

­마음에 드셨다니 다행입니다. 솔직히 세 가지 기술을 주실 줄은 전혀 몰랐습니다.

“저도 몰랐어요. 가르쳐주다보니 더 알려주고 싶더군요. 다음 접선도 샬롯 클라크와 할게요. 그녀가 늙고 고리타분한 과학자들에게 영향을 받지 않도록 특별히 잘 대해주셨으면 좋겠네요.”

­물론입니다. 이런 말씀을 드리기엔 뭣하지만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저흰 샬롯이 사령부와 본부 간의 중재자 역할을 잘 수행해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샬롯을 중요한 인물로 판단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중재자가 아니라 오작교겠죠. 저흰 싸운 게 아니잖아요.”

­하하! 그렇죠. 옳은 말씀입니다. 다음 접선 날짜에 대해 토의해볼까요?

“네, 좋아요.”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허셀과 대화를 끝낸 박사는 통신을 종료했다.

“스텔라는 어때?”

“곧이야.”

“우리가 어떻게 해줘야 될까?”

“그냥 평소대로 하면 돼. 변화가 끝나면 잘 대해주고.”

“응, 알았어.”

호들갑을 떠는 것보단 평소처럼 대해주는 게 낫다.

적어도 스텔라의 경우에는 말이다.

나는 내 자리에 조신하게 앉아있는 마르셀라를 쳐다보았다.

항상 비밀기지에 있었던 그녀는, 이제를 눈치를 보지 않아도 돼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는지 표정이 굉장히 좋았다.

그런 그녀를 향해 피식 웃어준 나는, 박사와 사령부에 관한 이야기를 나눈 뒤 보영의 집으로 향했다.

딩­동­!

초인종을 누른지 얼마 지나지 않아, 문이 열리면서 돌핀팬츠 차림의 보영이 날 맞이했다.

“오셨어요?”

자그마한 목소리로 존대를 하는 그녀.

고개를 한 차례 까딱한 내가 물었다.

“스텔라는?”

“방에서 혼자 연습 중이에요.”

“오늘 이상한 점은 없었나?”

“음... 저를 뚫어지게 쳐다보면서 헷갈린다는 표정을 짓더군요.”

보영의 몸 안에 내재되어있는 마기를 감지했구나.

예전에도 이런 기미를 보였었는데, 타락 직전까지 오니 제대로 느낀 모양이다.

“알았다.”

보영의 집 안으로 들어가 소파에 앉아있던 나는, 10분 정도 뒤에 스텔라가 나오자 씨익 웃어보였다.

“오빠! 언제 왔어?”

초인종을 눌렀음에도 듣지 못한 걸 보니, 방 안에 따로 만든 연습실 방음이 어마무시한가보다.

자리에서 일어난 내가 대답했다.

“방금. 얼른 들어가자.”

“응... 언니, 저 가볼게요...!”

보영을 향해 상체를 꾸벅 숙이는 스텔라.

슬슬 저 입장이 뒤바뀔 때인가?

착한 스텔라가 어떤 반응을 보여줄지 기대가 되는구나.

보영의 집을 나와 엘리베이터를 탄 나는, 자신의 앞머리를 만지던 스텔라의 물음에 귀를 쫑긋했다.

“오빠. 혹시 보영이 언니한테 이상한 느낌 안 났어?”

“이상한 느낌? 어떤?”

“아니... 아무것도 아냐...”

스텔라의 고개가 갸웃거렸다.

아리송한 듯한 모습.

이제 자연스레 깨닫게 될 텐데, 충격을 받지 않도록 세심하게 주의를 기울여야겠다.

@@

알렉스를 놓아준 지 이틀이 지난 시점.

그는 사고를 치지 않고 오랜만에 얻은 자유를 만끽하며 시간을 보냈다.

범죄조직에 몸을 담았던 학교 친구들을 만나 사정을 파악하거나, 밤엔 성매매를 하거나.

딱히 큰일은 저지르지 않았기에, 심심한 표정을 짓고 있던 스텔라가 휴대폰을 넣어두려고 했다.

하지만,

­얼마에요?

비즈니스 호텔 근처 마트에 간 알렉스가 계산대에 물건을 내려놓자 미간을 좁혔다.

여러 먹거리들 사이에 망치가 하나 있었기 때문이다.

저것으로 대체 뭘 하려는 걸까?

뭔지는 모르겠지만, 좋지 않은 생각이 자꾸 든다.

“.....”

심각한 얼굴로 손톱을 깨작깨작 씹은 스텔라는 잠자코 알렉스를 지켜보았다.

계산을 마친 그는 호텔 방에 들러 먹거리를 대충 던져놓고, 망치를 품에 잘 갈무리한 뒤 곧바로 다시 나왔다.

이후 택시를 타고는 어디론가 향하기 시작했다.

약 20분 정도 끝에, 택시가 내린 곳은 오피스텔이었다.

현재 자신이 있는, 지혁과 함께 살고 있는 그 오피스텔 말이다.

‘설마...’

그냥 맨몸으로 왔다면 용서를 빌겠구나 생각했겠으나... 알렉스는 흉기를 들었다.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단 하나.

바로 지혁을 노리는 것이었다.

알렉스는 망치를 손에 든 채로 지하주차장으로 가, 지혁이 자주 사용하는 전용 주차석으로 향해 그곳의 벽에 몸을 숨겼다.

그것을 본 스텔라의 입이 뿌드득 갈렸다.

‘저건 대체 언제 알아낸 거지...?’

소파에서 벌떡 일어난 그녀는, 현재 본부에서 이리로 오고 있는 지혁에게 연락을 하려고 했다.

하지만 금세 생각이 달라졌다.

자신이 먼저 범죄가 발생하기 전에 알렉스를 막아내고, 지혁에게 말해주는 편이 나을 것 같았다.

그편이 지혁에게도, 자신에게도 좋을 테고...

‘좋아.’

빠르게 판단을 마친 스텔라는 디바이스를 두 번 터치했다.

푸화악­!

평소보다 더욱 서슬퍼런 기운을 뿜어내 변신을 마친 그녀는, 기운을 최소한으로 줄여놓은 채 창문을 열고 밖으로 튀어나갔다.

그때,

부우웅...

공교롭기 그지없게도, 지혁의 차가 조용히 주차장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꽁무니가 진입하는 것을 본 스텔라는, 다급하게 공중에서 내려와 주차장으로 들어갔다.

이후 채찍의 날을 모조리 숨긴 채로,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알렉스가 숨어있는 기둥을 향해 채찍을 날렸다.

쐐애액­!

기세 좋게 공기를 찢으며 날아간 채찍이 마치 의지가 있는 생물처럼 유려하게 움직였다.

그리고 스텔라는, 기둥을 쏙 피해 수직으로 꺾인 채찍의 끄트머리에서부터 묵직한 손맛을 느꼈다.

“커억...!”

터엉­!

동시에 숨구멍이 턱 막힌 소리와 무거운 무언가가 떨어지는 소리가 기둥 뒤에서부터 들려왔다.

알렉스가 잡혔음에 안도한 스텔라는 오른손에 힘을 빡 주고 뒤로 확 잡아당겼다.

쿠당!

그러자 중심을 잃고 넘어진 알렉스가 앞으로 쫘아악 끌려왔다.

그는 돌아가는 상황을 전혀 모르겠다는 듯 눈을 부릅뜨며 자신의 목에 감긴 채찍을 풀어내려 애쓰고 있었다.

콰아악­!

스텔라는 채찍을 더욱 잡아당기며 그런 알렉스의 목을 인정사정없이 죄었다.

“허어어... 허어...”

입에서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낸 그의 눈이 뒤집어졌다.

얼굴이 순식간에 빨개진 채로 발버둥을 치던 그는, 이내 온몸에 힘을 쫙 빼며 고개를 떨어뜨렸다.

스텔라는 정신을 잃어버린 자신의 동생을 싸늘하게 내려다보며 채찍을 풀었다.

바뀔 거란 기대 따윈 하지도 않았기에, 실망감이 예전보단 덜하다.

하지만 화가 났다.

구제불능인 동생에게, 그리고 그런 동생을 구제하려 여태까지 노력을 해왔던 자신에게.

‘이젠 끝이야.’

등을 떠밀지도 않고 오히려 안정을 시켜주었음에도, 증오심을 못 이기고 사고를 친 알렉스.

그와의 인연은 이제 완전히 끝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후련했다.

하지만 20년간 함께 해왔던 동생이니만큼, 꿀꿀한 기분이 더 컸다.

이토록 쉽게 연을 끊어버릴 수 있는 자신이 무섭기도 했다.

시원섭섭.

이 한 마디로 표현할 수 있을 것 같다. 현재 느끼고 있는 감정은.

덜컥!

뒤에서부터 차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려오자, 스텔라가 변신을 풀고 몸을 돌렸다.

뚜벅. 뚜벅.

자신을 향해 천천히 다가오고 있는 지혁의 표정은 놀라움 따윈 전혀 없이 평온했다.

“결국 이렇게 됐네.”

자신의 코앞까지 다가온 지혁의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듯한 말투.

어깨를 축 늘어뜨린 스텔라가 대답했다.

“응...”

지금 가슴이 찡해져오는 느낌이 드는데, 이게 기분이 좋은 건지 불쾌한 건지는 잘 모르겠다.

그러나 한 가지만큼은 확실했다.

그건 바로 자신이 마음의 결정을 내렸다는 것이다.

아주 분명하게.

“그래, 데리고 올라갈 테니까 먼저 들어가 있어.”

무감정한 지혁의 목소리를 들은 스텔라는, 고개를 천천히 주억거리고는 주차장을 벗어났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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