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67화 〉 절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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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내가 얼마나 걱정했는지 알아...? 대체 무슨 일이 있었길래 거의 사흘이 될 때까지...”
같잖은 걱정을 하는 동생에게 약간 짜증이 난 스텔라는, 겉으로는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그를 안심시켰다.
“미안해. 피곤해서 계속 잠만 잤어. 이젠 괜찮아.”
“정말 괜찮은 거야...?”
“그렇다니까. 밥은 지혁이 오빠가 잘 챙겨줬지?”
“응... 잘 먹고 있었어...”
“그래...”
말끝을 흐린 스텔라는 알렉스의 지척까지 의자를 바짝 당겼다.
그리고는 한쪽 다리를 꼬아 허벅지 위에 팔꿈치를 올려놓고, 손바닥에 턱을 굈다.
그 상태로 자신의 동생을 빤히 쳐다보았다.
정이 있어 보이지만 어딘지 모르게 싸늘한 눈빛.
그것을 읽어낸 알렉스가 침대로 기어 올라가 무릎을 꿇었다.
“오, 왜 그래...? 내가 뭐 잘못했어...? 말해주면 당장 고칠게...!”
스텔라는 그런 동생의 저자세에 한쪽 입꼬리를 올렸다.
이제야 뭔가 알 것 같다. 지금 자신이 아이테르를 해방시키지 못하고 있는 이유를.
자신은 동생에게 애착을 주고 있었다.
반응을 보기 좋은 놀잇감으로서.
물론 가족애도 있긴 했지만, 장난감으로서의 가치가 더 컸다.
어쨌거나 아이테르를 해방하기 위해서는 이 가족애를 버리는 게 관건인 것 같았다.
‘음...’
현재의 알렉스는 예전 미국에서의 모습으로 돌아가고 있다.
찌질하고, 소심했던... 그래서 자신이 예뻐했던 모습으로.
가끔 친누나의 몸매를 상상하며 자위행위를 하면서, 재미있는 반응을 보여주기도 했다.
그렇기에 버리기가 아깝다.
이게 미련이라는 것인가보다.
잠자코 알렉스를 지켜보고 있던 스텔라가 물었다.
“입술이 많이 말랐네...? 목말라?”
상냥하기 짝이 없는 말투.
알렉스의 표정이 대번에 환해졌다.
“아냐...! 괜찮아... 이건 그냥 누나 걱정에 밤잠을 못 자서...”
“다행이네. 지금 혹시 배고파?”
“아니, 괜찮아. 하나도 안 고파.”
“빨래거리는?”
“수거함에 다 넣어놨어.”
자신에게 좋은 평가를 받기 위해 꼬리를 흔들고 있는데, 며칠 전이었다면 기특한 마음을 느꼈겠지만 지금은 아니다.
그냥 웃기기만 했다.
잘 조련된 개를 보는 것 같아서, 그리고 열등해서.
범죄자들의 유혹에 넘어가버리고...
동급생을 괴롭히면서 친누나의 속도 썩이고...
중요한 첫 팬미팅을 망치기도 하고...
지혁을 노리기도 하고...
이 외에도 멍청한 짓을 한 게 수도 없이 많다.
알렉스가 저질렀던 잘못을 되새겨보던 스텔라는 갑자기 화가 났다.
지혁이 저번에 했던 말마따나, 알렉스는 한국에 와서 자신에게 도움을 준 일이 단 하나도 없었다.
그리 생각하니 남아있는 정이 확 떨어지는 기분이다.
“많이 반성했어? 이젠 나갈 준비가 된 것 같아?”
“누나가 판단하기에 아니라고 생각하면... 계속 여기 있을게. 나 반성문 읽을까?”
“아니. 오늘은 됐어. 그런데 알렉스.”
“응.”
“궁금한 게 있는데... 대답해줄래?”
“물론이야. 얼마든지 물어봐.”
“너 미국에서는 엄청 맞고 살았는데, 한국에선 떵떵거렸던 이유가 뭐야?”
질문을 가장하고 트라우마를 건드리는 스텔라.
그 적나라한 비꼼에, 알렉스가 움찔하더니 숨을 훅 들이켰다.
동생의 반응을 지켜보며 속으로 킥킥거린 스텔라가 말을 이었다.
“한국에선 네 진짜 모습을 아는 사람이 없으니까 안심한 거야? 아니면 보상심리야? 아무런 죄가 없는 사람한테 네가 당했던 걸 그대로 해주고 싶었어?”
“누, 누나...! 그건...”
“솔직하게 대답해봐.”
“.....”
무릎 위에 올라가있는 알렉스의 손이 꽉 쥐어졌다.
부들부들 떨리는 모습을 보니 분노를 삭이고 있는 듯하다.
“대답 안 할 거야?”
“.....”
알렉스의 눈이 그렁그렁해졌다.
서러움에 눈물이 터져 나올 것 같은데, 꾹 참고 있는 게 눈에 보인다.
저런 알렉스의 반응은, 자신이 했던 질문이 정답이라는 뜻과 똑같았다.
피해자의 마음 따윈 신경도 쓰지 않다가, 자신이 해코지를 당할 위기에 처하자 질질 짜다니...
사람의 천성은 어디 가지 않는 건가?
역시 동생은 찌질하다.
대답은 들었다고 치자고 생각한 스텔라가 알렉스에게 다가가, 그의 뺨을 어루만졌다.
“요즘 스트레스를 받는 일이 많아서, 못할 말을 해버렸나보다. 마음 아프지?”
“.... 아냐... 난... 내가... 잘못한 거니까...”
“미안해, 정말...”
“괜찮아... 누나가 미안해할 필요는 없어...”
힘든 척 울상을 지은 스텔라는, 자리에서 일어나 철문을 열어 옆으로 비켜섰다.
그리고는 알렉스를 바라보며 말했다.
“잠깐 나갔다 와.”
“.... 어?”
소스라치게 놀란 알렉스.
방긋 미소 지은 스텔라가 문 밖을 손짓했다.
“나갔다 오라구.”
“지, 진심이야...?”
“응. 진심이야.”
알렉스의 눈에 욕심이 감돌았다.
당장에라도 뛰쳐나가고 싶은 듯한 얼굴.
스텔라는 그런 알렉스의 등을 떠밀어주었다.
“여태까지 말 잘 들었으니까 상 주는 거야. PC방에 가도 되고, 친구들을 만나도 되고, 뭐든 하고 싶은 걸 해. 사흘 줄게.”
“사, 사흘...? 누나...! 이거 테스트 같은 거지...? 내가 진짜 나가면 아웃이고, 나가지 않으면...”
“날 못 믿는 거야?”
“그건 아니지만... 너무 뜬금없게...”
“이렇게까지 널 압박하는 게 옳은 일인지 고민 많이 해봤어. 여전히 그 생각은 변함없지만... 그래도 약간은 풀어주고 싶어.”
진중해진 말투에 감동했을까?
알렉스가 입술을 잘근 깨물더니 스텔라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그 시선이 무안한 척 뒷목을 만지작거린 스텔라가 문을 닫으려고 했다.
“싫으면 그냥 여기 있을래?”
“아, 아냐!!”
버럭 소리를 지른 알렉스가 냅다 침대에서 내려왔다.
“사흘 뒤에... 돌아오면 돼...?”
“응. 사흘 뒤 자정까지야. 식탁 위에 네가 쓸 돈이랑 휴대폰 놔뒀어.”
미리 준비하고 있었다는 말을 에둘러 하자, 알렉스의 표정이 밝아졌다.
감격에 겨운 미소를 짓고 있던 그가 말했다.
“사흘간... 하고 싶은 건 다 해도 돼?”
“물론이야. 난 전혀 신경 쓰지 않을 테니까, 네가 원하는 건 뭐든 해.”
그 말에 알렉스가 조심스레 한걸음을 내딛었다.
발끝이 방 밖으로 나간 것을 확인한 그가 스텔라의 눈치를 보았다.
그리고 알렉스는, 스텔라의 안색이 괜찮자 침을 꼴깍 삼키더니, 몸을 완전히 내보냈다.
식탁 위에 놓인 휴대폰과 흰 봉투를 발견한 그가 물었다.
“저거 가져가면 되는 거지...?”
“맞아. 사흘간 나한테 연락하지 말고... 잘 놀아.”
“그... 지혁이 형은...”
지혁의 이름이 더러운 입에서 언급되자, 스텔라의 가느다란 눈썹이 꿈틀했다.
“오빠는 왜?”
“아니... 같이 산다고 들었는데... 안 계셔서... 혹시 안방에 계신가...?”
“네가 신경 쓸 일이 아냐. 얼른 가. 마음 바뀌기 전에.”
“아, 알았어... 고마워... 고마워, 누나...”
스텔라는 알렉스를 향해 방긋 웃어주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그러자 알렉스가 성큼성큼 걸어가 식탁에 있는 돈과 휴대폰을 챙기더니, 마치 살인마에게서 도망치듯 집을 빠져나갔다.
‘똑같았어...’
쾅! 하고 닫히는 현관문을 바라보던 스텔라는, 알렉스가 나가기 전에 보여주었던 모습을 되새겼다.
골반까지 딱 달라붙은 치마를 입은 자신의 허벅지로 향해있었던 시선...
그로 인해 약간 부풀어 올랐던 아랫도리...
알렉스는 또 자신의 몸을 보면서 성욕을 느꼈다.
그렇게 걱정한다고 짖어대놓고선, 막상 마주하니 저런 행동을 보여주다니...
역시 본능은 못이기는 건가?
“하아...”
알렉스가 진심으로 한심하다고 생각한 스텔라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덜컥.
동시에 화장실 문이 열리면서 지혁이 나오자 만면에 환한 미소를 띠었다.
“오빠...!”
후다닥 달려가 지혁의 품에 안기는 스텔라.
예전보다 더욱 강해진 포근함을 느끼며 지혁의 가슴팍에 얼굴을 부비던 그녀는,
“네 선택이니만큼 존중하겠지만... 너무 파격적인 대우를 해주는 거 아니야?”
이어지는 지혁의 인자한 목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나 믿는다고 했잖아... 기다려줘.”
“물론이야.”
“나 오늘 스케줄 있지...?”
“있어. 옷 갈아입고 준비해.”
“응.”
착한 아이마냥 대답한 스텔라가 드레스 룸으로 들어가 옷을 훌렁 벗었다.
이후 청순한 원피스를 입으면서 알렉스가 갈 곳을 예상해보았다.
3일간 자유를 얻은 알렉스가 갈 곳은, 아마 음지일 것이다.
남녀간 그렇고 그런 일이 벌어지는 천박한 장소 말이다.
여태까지 많이 쌓여있었을 테고, 가진 돈도 충분하니 분명히 성욕을 해소하려고 하겠지.
거기까지는 봐주겠지만, 그 이후부터가 관건이다.
만약 알렉스가 마음에 들지 않은 짓만 골라서한다면... 그는 아웃.
동생과 완전히 절연하고 자유를 찾을 것이다.
갖고 놀 수 있는 장난감이 사라지게 되는 건 아쉽지만, 자신은 그보다 더 중요한 일이 많다.
그리고 자신은, 은연중으로 알렉스가 사고를 치길 바라고 있는 것 같았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토록 심장이 두근거릴 리는 없을 테니까.
옷을 전부 갈아입고 나온 스텔라는, 지혁이 건네주는 휴대폰을 받아들었다.
허억...! 허억...!
지혁이 본부에서 갖고 온 초소형 정찰기 덕분에, 어느새 오피스텔을 나와 거리를 질주하는 알렉스의 뒷모습이 보였다.
자유를 찾은 게 그렇게나 좋을까?
동생이 즐거워는 것 같아 왠지 뿌듯하다.
‘힘내.’
사람들의 시선에도 개의치 않고 달려가는 알렉스에게 속으로 격려를 해준 스텔라는, 휴대폰을 가방에 넣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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