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66화 〉 아델의 어설픈 연기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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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대체 뭐하시는 거예요...? 가면은 대체 왜... 그리고 그 머리는 뭔가요...? 복장도...”
“나, 나는 아델라인이라는 자가 아니야!”
여전히 발뺌을 하려는 아델.
긴장이 완전히 풀린 스텔라가 자신의 입가를 가리며 웃었다.
“아니에요? 제가 잘못 본 건가요?”
“그래!”
“이상하네요...? 방금 제가 아델라인이라고 했을 때 움찔하시던데...”
“무, 물론 그렇긴 했지...! 예쁜 이름이라서 놀랐던 것뿐이야...!”
정체가 완전히 탄로 났음에도 여전히 연기를 하려고 하는데, 아델은 배우 오디션을 본다면 무조건 탈락이다.
그리 생각한 스텔라는 채찍을 회수했다.
철컥!
경쾌한 소리와 함께 자루 안으로 빨려들어간 채찍이 허리춤에 딱 달라붙었다.
그 모습을 본 아델이 소리쳤다.
“지금 뭐하는 거얏!?”
화를 내는 척하는 모습이 웃기다.
현재 상황을 보아하니, 아델은 일부러 자신을 호출한 듯했다.
시간이 꽤 지났음에도 다른 선배들의 지원이 없고, 통신기에서 본부의 연락도 없는 것을 보면 확실했다.
스텔라는 아델을 향해 성큼성큼 걸어갔다.
아무런 망설임도 없이, 경계 따윈 완전히 푼 채로 말이다.
천천히 뒷걸음질을 치던 아델은, 스텔라가 자신의 지척까지 다가오자 자포자기했다.
“아휴...”
그런 아델을 지켜보던 스텔라가 환한 미소를 지었다.
“가면 벗어주세요.”
“내, 내가 왜...?”
“벗어주세요, 선배님. 네?”
애교가 뚝뚝 묻어나오는 말투.
아델의 입꼬리가 쭈욱 올라갔다가 순식간에 다시 내려왔다.
“나는 네 적인데에... 이, 인간들도 마구 없애는 사악한 사람인데에...”
“그러면 저도 없애실 거예요? 저를 막... 잔인하게 죽이실 건가요?”
그 말에 아델이 노발대발했다.
“가, 감히 그런 말을...! 말버릇이 아주 나빠졌구나! 때찌한다!?”
“말버릇이 나빠졌다구요? 예전엔 제 말버릇이 어땠는데요?”
“앗...!”
“이제 연기는 그만해주셨으면 좋겠어요.”
“.....”
결국 퇴로마저도 차단되어버린 아델이 말했다.
“놀라면 안 돼... 알았지?”
“네, 선배님.”
머뭇머뭇 가면으로 손을 가져가는 아델.
짧은 시간동안 몇 번이나 망설이던 그녀는, 곧 가면을 벗어 자신의 얼굴을 드러냈다.
그리고 스텔라는,
“....?”
기존과는 확연히 다른 아델의 얼굴을 보고 눈을 크게 떴다.
동글동글한 얼굴형은 그대로지만 눈매가 사나웠고, 보라색으로 빛나는 눈동자 가운데에 자리한 고양이 같은 동공이 눈에 띠었다.
정말 새하얀 피부와, 끄트머리가 뾰족한 손톱도 특이사항 중 하나였고,
무엇보다 귀여웠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온몸에 색기를 가득 두르고 있었다.
“.....”
아델과 상당히 닮긴 했지만, 아델이 아니라고 해도 믿을 정도다.
이상한 일이었다.
본래라면 의심의 의심을 거듭했어야하는데...
왜 이렇게 익숙하고 편안하게 느껴지는 건지 모르겠다.
아델의 가슴팍에 있는, 원래는 노란색이었어야 할 크리스탈이 보랏빛을 발하고 있음에도, 불안감 같은 게 전혀 없다.
저 모습이 진짜 아델 같다는 생각마저도 들었다.
“어, 어때...?”
잔뜩 긴장한 아델의 몸에서는 어떠한 기운이 피어나고 있었다.
신성한 노란색 기운이 아니라, 음산하고 검은... 스텔라로서는 처음 보는 기운이었다.
하지만...
‘따뜻해...’
그 기운을 받아들인 스텔라는, 기존에 아델이 사용하던 기운과 저 기운이 완벽하게 똑같다고 판단했다.
쉽게 말해, 눈앞에 있는 사람은 자신이 아는 상냥한 아델이 맞다는 뜻이다.
겉모습이 조금 다르면 뭐 어떠한가.
아델이 확실하다면 됐지.
마음의 정리를 끝낸 스텔라는, 아델의 코앞까지 걸어가 그녀를 꼬옥 안았다.
“예뻐요, 선배님...”
그 말에 아델이 스텔라의 겨드랑이 아래로 손을 집어넣었다.
그렇게 두 사람은 오래, 아주 오랜 시간동안 서로를 껴안고 온기처럼 느껴지는 냉기를 나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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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뭔가요?”
아델의 옆에 둥둥 떠다니고 있는 빨간 보옥을 가리킨 스텔라의 물음이었다.
“아... 이건...”
그것을 손바닥에 올려놓은 아델이 손을 스텔라의 앞에 내밀었다.
“내 무기야.”
“선배님의 무기는 해머잖아요.”
“그런 무식한 걸 가녀린 내가 어떻게 들고 다니니? 창피해서 바꿨어.”
잘만 들고 다녀놓고선... 새침하기는.
눈에 호선을 그린 스텔라가 말했다.
“어떤 효과가 있는 무기에요?”
“으음... 지금은 그것보다 더 궁금한 게 있지 않니?”
“그렇긴 해요.”
“내가 왜 이런 모습으로 나타난 건지 알고 싶지?”
“그것보다는... 왜 그런 모습이 되신 건지가 알고 싶어요.”
고개를 느릿하게 주억거린 아델이 설명했다.
“이건 사랑하는 분에게 영원한 사랑을 맹세했을 때 나타나는 모습이야. 아이테르가 완전히 해방되었다고 보면 돼.”
“완전한 해방...?”
“응, 응. 성적인 행위로 충전할 필요가 없어지고, 사랑하는 사람의 마려... 으흠...! 마음을 공유하는 것으로 변신상태를 유지할 수 있어.”
“그, 그게 정말이에요...? 에너지가 떨어지지 않는다는 말씀이신가요?”
“맞아.”
그저 마음만을 공유하는 것으로 에너지가 무한해질 수 있다니...
아이테르에 그런 숨겨진 능력도 있었나?
엄청 신기하다.
그런데 문득 궁금한 게 생긴다.
아델의 말대로라면, 자신의 아이테르도 해방을 했어야하는데, 왜 그대로일까?
지혁을 영원히 사랑할 자신도 있고, 그의 앞에서 몸과 마음, 그리고 영혼까지 다 바친다고 맹세했는데.
“저... 근데 선배님. 제 아이테르는 왜 바뀌지 않는 거예요...?”
“네가 자고 있을 때 보니까, 징표는 생긴 상태야. 나머지는 네 의지에 달렸어.”
“징표라뇨...?”
“잠깐만 실례할게.”
그리 말한 아델이 돌연 스텔라의 치마를 확 들추었다.
그 돌발적인 행동에 기겁한 스텔라가 언성을 높였다.
“서, 선배님...! 뭐하시는...”
그러다가 자신의 하복부에 음란해 보이는 문양이 떡하니 박혀있자 소스라치게 놀랐다.
“이, 이게 뭔가요...? 왜 제게 이런...”
당혹스러워하는 스텔라의 하복부에 손을 댄 아델이 힘을 집중했다.
스스스...!
그러자 그녀의 손에서부터 거뭇한 기운이 피어나, 스텔라의 몸에 서서히 흡수되기 시작했다.
‘읏...!’
그 기운을 받아들인 스텔라는, 처음엔 찌릿한 감각에 인상을 찌푸렸다.
하지만 곧바로 마음이 안정되어오자 눈이 서서히 풀렸다.
포근하다. 마치 지혁의 품에 안겨있을 때처럼.
“이건 막내 네가 지혁 씨에게 모든 것을 바쳤다는 증거야. 네 마음을 알아차린 아이테르가 해방 준비를 마쳤다는 증거지.”
“아... 그런 건가요...?”
“응. 다시 말하지만, 나머지는 네 의지에 달렸어.”
“의지... 저는... 충분하다고 생각하는데에...”
“막내 너는 네 아이테르가 해방되었으면 좋겠니?”
당연한 것 아닌가?
원한다. 원해서 미칠 것 같다.
자신이 지혁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해방을 통해 보여주고 싶다.
그럴 의욕이 충만하다.
“네...”
“징표가 있긴 하니 따로 조언은 필요 없을 것 같네? 우리 막내... 잘했어요.”
스텔라의 정수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은 아델이 말을 이었다.
“힌트를 하나 줄게. 나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모든 것을 버렸단다. 세화도, 유리아 언니도, 실비아 언니도 마찬가지야. 그 정도 각오는 있어야 해.”
선배들은 모두 해방을 했다는 뜻이구나.
자신도 얼른 그렇게 되고 싶다.
그나저나 ‘모든 것’이라...
‘모든 것’...
우웅...
스텔라가 상념에 잠기려는 찰나, 아델의 손이 아랫배에서 떨어졌다.
그에 정신을 차린 스텔라가 아쉬운 마음에 입맛을 다시다가, 아델을 빤히 바라보았다.
“선배님들이 사랑하시는 분은 누구인가요?”
“그건 나중에, 자연스레 알게 될 거야. 이만 돌아갈까?”
미심쩍은 대답이지만 넘어가자.
지금은 가장 중요한 일을 하는데 집중해야할 때다.
“네, 선배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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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실비아 선배님.”
포탈을 타고 아델의 집으로 돌아온 스텔라는, 가장 먼저 거실에서 홈 트레이닝을 하고 있는 실비아를 찾았다.
“응?”
웃는 낯으로 스텔라를 반기는 실비아.
그녀의 얼굴과 목에 맺혀있는 식은땀이 굉장히 매력적이라고 생각한 스텔라가 조심스레 이야기를 꺼냈다.
“아델라인 선배님이 그러시는데... 실비아 선배님도 아이테르를 해방하셨다고...”
“결국 알게 됐구나? 맞아. 보여줄까?”
“아, 가능하세요...?”
“물론이지. 잠깐만...”
실비아의 눈이 서서히 감겼다.
이윽고,
푸화악!
날카로운 기운이 방 전체로 퍼졌다가, 연기처럼 화해 사라졌다.
변신한 실비아의 모습을 본 스텔라는 두 번 놀랐다.
첫 번째는 실비아가 디바이스를 터치하지도 않고 변신했다는 것.
두 번째는 변신한 실비아의 외형이 무척이나 요염하다는 거다.
검은빛을 띠는 청자색 머리카락과 시뻘건 홍채가 한층 더 새하얘진 피부와 조화를 이뤄 무척 섹시했다.
동경심이 든다고 해야 하나?
언뜻 이질적으로 보이면서도, 굉장히 잘 어울렸다.
헌데 아델도 그렇고, 실비아도 그렇고...
변신하면 동공이 저렇게 위아래로 쭉 찢어지나...?
뭔가 무섭기도 한데, 아름답기도 하다.
그러고 보니 자신에게도 저런 비슷한 일이 일어났었다.
얼마 전 알렉스와 대화를 나누고 화장실에서 거울을 봤을 때, 자신의 홍채가 빨개지더니 동공이 세로로 찢어졌었다.
그때가 조짐의 시작이었던 건가?
지금은 해방 직전까지 온 것이고?
당시엔 겁을 집어먹고 지혁에게 안겼었는데... 그가 그랬었다.
빨간 눈이 아름답다고.
지금보다 훨씬 어울린다고.
‘아...!’
왠지 희망이 보이는 것 같다.
다른 건 다 제쳐두고서라도, 지혁이 자신의 변한 모습을 좋아해줬다는 부분이 마음에 들었다.
“생각이 많아 보이는데, 집으로 돌아가서 혼자 잘 고민해봐.”
온화한 실비아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움찔한 스텔라는, 색기를 풀풀 풍기고 있는 실비아의 아랫배를 바라보았다.
허리춤까지 오는 검은 치마로 가려져있어서, 그 징표가 생겨났는지 알 수가 없다.
그런 스텔라의 시선을 눈치챈 실비아가 피식하더니,
스륵.
자신의 치마를 슬쩍 위로 들추었다가 내려놓았다.
‘이, 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스텔라는 확실히 볼 수 있었다.
실비아의 아랫배에도 그 징표가 있다는 것을 말이다.
“이제 만족해?”
“네, 넷...! 감사합니다...! 그, 그런데 아델라인 선배님도, 실비아 선배님도 슈트가 평소의 것과는 다르네요...?”
“응. 내가 사랑하는 사람의 취향이 듬뿍 들어간 옷이거든.”
“그, 그래요...?”
아델은 그렇다 쳐도 자존심이 강해 보이는 실비아가 저런 외설적인 의상을 입다니...
물론 자신도 지혁이 좋아한다면야 얼마든지 저런 옷을 입을 수 있긴 하지만, 의외다.
묵묵히 실비아의 길쭉한 다리를 감상하던 스텔라의 코가 돌연 벌름거렸다.
어째서인지는 몰라도, 향긋한 냄새가 풍겨와 코를 간지럽혀왔기 때문이었다.
마치 지혁의 것 같은 냄새가 말이다.
고개를 갸웃한 스텔라는, 일단 그 생각을 날려버린 채로 실비아에게 공손히 감사를 표했다.
“감사합니다, 선배님...”
“응원하고 있을게.”
자신이 지금 어떠한 마음을 먹고 있는지 꿰뚫는 듯한 격려.
힘을 얻은 스텔라의 낯이 밝아졌다.
“네...!”
그렇게 집으로 돌아온 스텔라는, 아무도 없는 거실을 혼자 배회했다.
모든 것을 버려야한다는 아델의 그 말이, 나머지는 자신의 의지에 달렸다는 말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는다.
‘모든 것...’
상념에 잠긴 스텔라의 시선은, 알렉스가 갇혀있는 방의 철문으로 향해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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