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65화 〉 아델의 어설픈 연기
* * *
삐비빅! 덜컥.
현관문을 연 나는, 스텔라를 부축하며 안방으로 향했다.
아델이 자주 입는 박시한 옷을 입고 있던 그녀는, 자신의 침대에 몸을 뉘더니 나른한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그녀는 세화의 집에서 나올 때부터 자신의 아랫배에 손을 가져간 채였다.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는 것이다.
완성된 음문이 가져다주는 편안함을.
나는 스텔라의 옆에 누워 그녀의 머리카락을 옆으로 살살 넘겨주었다.
그러자 자연스럽게 내 품으로 파고든 그녀가 말했다.
“이상해...”
“뭐가?”
“꿈을 꿨는데... 일부가 툭툭 끊겨있는 것 같아... 선배님들이랑 오빠가 날 안아줬던 것밖에는 기억이 잘 안 나...”
“꿈이란 게 다 그렇잖아.”
“그렇지... 오빠는 사흘 동안 뭐했어?”
“똑같지. 본부에서 일하고, 대표님하고 보영이 누나한테 사정 설명하고...”
그 말에 스텔라의 눈이 커졌다.
“아...! 두 사람한테 연락해야 되는데... 나 욕 엄청 먹겠지...?”
“잘 해결해놨으니까 괜찮을 거야. 사흘간 아무것도 못 먹어서 배고플 텐데... 요리라도 해줄까?”
“딱히 배고프지는 않은데... 오히려 부른 기분이야...”
그리 말한 스텔라가 은근슬쩍 손을 내려, 내 사타구니를 살살 만지작거리기 시작했다.
붉게 물든 얼굴을 보아하니, 오랜만에 품에 안겨 흥분한 것 같았다.
바지를 뚫고 들어온 스텔라의 손은, 평소와는 정반대로 굉장히 차가웠다.
한기가 느껴질 정도는 아니지만, 자극이 굉장했기에 아랫도리가 순식간에 빳빳하게 세워진다.
“오빠...”
야릇한 목소리로 날 부르는 그녀.
순한 눈매가 가라앉으면서 뇌쇄적으로 변하고, 몸에서는 은근한 마기가 피어나오고 있다.
손이 냉랭해진 것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스텔라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본질이 바뀌어가고 있었다.
내 권속이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아까는 힘이 하나도 없어 보였는데, 지금은 아닌 것 같네?”
“.....”
살가운 미소를 지은 스텔라는 자신의 몸을 내 복부에 바짝 붙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품 안으로 쏙 들어온 그녀의 정수리에 턱을 괸 내가 나직이 말했다.
“변신해.”
“응...”
스텔라는 그 어떠한 의문도 없이 디바이스에 손을 가져갔다.
그리고 화면을 두 번 터치했다.
고오오오...!
불길한 소리와 함께, 회색빛 기운이 방 전체에 퍼져나가면서 스텔라의 머리카락이 아래에서부터 서서히 바뀌어나갔다.
외견은 그대로다.
순백색 머리와 홍채. 예전의 스텔라와 완전히 똑같았다.
그러나 기운만큼은 전혀 달랐다.
그녀의 몸에선 사악함, 그리고 순수함이 반반씩 섞여있는 것 같은 기운이 물씬 풍겨져 나오고 있었다.
색은 아까 봤던 대로, 검은색을 코앞에 둔 것 같은 회색이었다.
“왜 그래...?”
자신을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는 내가 낯설었을까?
스텔라가 겁먹은 표정으로 눈을 끔벅거렸다.
하지만 이어지는 내 말에 곧 표정을 풀고는 헤실거렸다.
“아냐. 예뻐서.”
“히...”
헤픈 웃음을 터뜨리며 좋아하는 그녀.
자신의 아이덴티티인 순백색의 기운이 사라져 있는 걸 눈치채지 못하고, 그저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만 있다.
또 내게 파고들려는 스텔라를 말린 나는, 드레스 같은 백색 치마를 살짝 들추어보았다.
뽀얀 배꼽 아래에서 보랏빛이 희미하게 빛나고 있다.
음문이 발현되려 하고 있는 것이다.
스텔라는 참 신기한 사람이다.
타락한 것 같으면서도, 이성을 유지하는 것도 같다.
유리아도, 아델도, 실비아도... 심지어는 세화도 이런 경우는 없었는데...
천성이 워낙 순해서 마지막 한 걸음이 늦춰지나보다.
“왜 그래...?”
의아해하는 스텔라의 물음에 인자하게 웃은 나는, 그녀의 아랫배로 손을 가져갔다.
그리고는 살살 쓰다듬는 척하면서 마기를 불어넣었다.
“아까부터 자꾸 만지고 있길래, 어디 아픈가 해서.”
“흐응...”
마치 신음 같은 탄성을 내뱉은 스텔라의 눈이 나른해졌다.
몸엔 힘을 쭉 빼고 마기를 온전히 받아들이는데 집중하고 있다.
마력이라는 초월적인 힘을, 한낱 인간인 내가 내뿜는 것엔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모습인데...
스텔라는 지금 느끼고 있는 마기를 서로 사랑해서 나타나는 감정... 이런 식으로 치부하고 있겠지.
“알렉스가 잘 지내는지는 안 궁금해?”
“음... 글쎄...? 오빠가 밥 줬다고 하니까... 잘 지내고 있겠지...”
“동생이잖아.”
“응, 동생이야.”
“걱정 안 돼?”
“걱정...? 으음...”
스텔라의 미간이 약간 좁혀졌다.
어떠한 고민이 있는 모양.
잠자코 스텔라를 기다려주자, 얼마 뒤 그녀의 입이 열렸다.
“걱정은 되는데...”
“되는데?”
“이게 무슨 걱정인지 모르겠어... 아니, 걱정이 아니라... 알렉스가 괜찮아서 안도하는 것 같아...”
스텔라가 느끼고 있는 ‘안도’라는 감정엔 두 가지 의미가 섞여있을 것이다.
하나는 동생이 진짜로 괜찮아서 느끼는 안도감,
또 하나는 갖고 놀 장난감이 무사해서 느끼는 안도감.
전자의 감정을 함께 느끼는 걸 보면, 도덕심이 완전히 붕괴된 건 아니다.
그러나 붕괴가 유의미할 정도로 진행되긴 했다.
왜? 스텔라가 잠에 들기 전에, 그녀는 겉으로라도 알렉스를 챙기는 척을 했었기 때문이다.
일단은 너무 복잡하게 생각하지 말자.
스텔라는 지금 마음의 결정을 내린 상태다.
내재되어있는 마기가 잘 섞이도록 해주면, 그녀는 알아서 알렉스를 마무리 지을 것이다.
일을 진행시킬 겸, 미래를 위해서 스텔라가 나와 아내들의 정체를 어렴풋이나마 알아차리도록 만들고 싶은데...
처음은 아델에게 한 번 제안을 해봐야겠다.
그녀는 스텔라라면 끔벅 죽으니까.
@@
“방황하는 그대여...♬ .... 힘든 시간 속에♬”
스텔라는 자신의 데뷔곡을 흥얼거리며 커피를 따랐다.
조용한 거실. 지혁은 일찍 나가고 없다.
본래라면 외로움에 사무칠 정도로 그를 그리워했을 텐데...
이상하게도, 오늘따라 마음이 너무 상쾌했다.
또한 어제 새벽까지 뜨거운 정사를 나누었음에도, 힘이 빠지긴 커녕 쌩쌩하다.
“.....”
지혁이 없음에도 있는 듯한 기분이 든다.
안방은 물론 거실까지... 온통 그의 존재감으로 가득한 것 같다.
삐익! 삐익!
거실을 둘러보던 스텔라는, 커피머신이 시끄러운 소리를 내자 정신을 차렸다.
그렇게 커피를 가져와 소파에 앉아 홀짝이던 그녀는, 알렉스가 갇혀있는 철문을 흘끗 바라보았다.
‘밥은 지혁이 오빠가 주고 갔다고 했으니까...’
그냥 놔둬도 되겠지.
알렉스에게 사료를 먹이면서 반응을 지켜보고 싶긴 하지만, 지금은 조용히 있고 싶은 마음이 더 크니 얌전히 있자.
라고 생각하던 스텔라는,
삐빅! 삐빅!
디바이스가 큼지막한 경고음을 발하자 화들짝 놀라선 화면을 쳐다보았다.
이블리언 탐색기가 감지한 마기의 등급은 S급.
감지한 위치는...
‘남극...?’
남극. 이블리언 탐색기 바로 옆이었다.
아주 먼 거리이긴 하지만, 포탈을 타면 한순간이다.
어찌할까 고민하던 스텔라는,
‘먼저 가있자...!’
저번에 보여주었던 추태를 만회할 기회다.
마물과 싸우고 있다 보면 선배들이 오겠지.
@@
남극에 도착한 그녀는, 뼛속까지 얼려버릴 정도의 한기가 덥다고 느껴졌다.
마치 원래 시린 세계에 살고 있던 사람처럼, 추위에 적응하는 것이 너무나도 쉬웠다.
변신하면 추위를 타지 않긴 하지만... 이건 조금 의아했다.
그러나 따로 알아볼 시간은 없었다.
탐색기 근처에 있는 마물을 잡는 게 급선무였으니까.
파앗!
엄청난 속도로 탐색기까지 달려간 그녀가 가장 먼저 본 것은,
‘응?’
쪼그려 앉아 이블리언 탐색기를 건드리고 있는 자줏빛 머리카락의 여성이었다.
‘사람...?’
마치 타락한 수녀 같은 외설적인 옷차림을 한 그 사람은, 인기척을 느꼈는지 자리에서 일어나 서서히 뒤를 돌아보았다.
그 사람은 자신의 얼굴을 드러내기 싫은 듯, 가면을 쓰고 있었다.
입가만 보이는 여우 모양의 가면 말이다.
“후후후...”
그녀의 입에서부터 새어나온 낮은 웃음.
웃음소리가 뭔가 경박하다고 생각하던 스텔라는,
스스스스...!
자신의 몸을 옥죄어오는 어마어마한 압박감에 저도 모르게 반걸음 뒤로 물러났다.
“큭...!”
자그마한 체구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운이 장난이 아니다.
느껴지는 기운으로만 따지면, 3기사보다 더욱 강할 것 같다.
‘먼저 공격해야 돼...!’
스텔라는 그간의 경험으로, 초반 기세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고 있었다.
공격이 통하든 통하지 않든, 선제공격으로 저 마녀의 기세를 누르는 것이 최우선 과제.
판단을 마친 스텔라는, 이상하게도 잘 움직여지는 다리를 옮겼다.
“네가 바로 스테라 헤...”
그리고는 자신에게 무어라고 말을 거는 마녀를 향해, 디딤발을 내딛으며 오른팔을 휘둘렀다.
쐐애액!
어마어마한 속도로 쏘아지는 채찍.
“이힉!?”
기겁한 마녀가 한 팔을 들어 채찍의 경로를 막았다.
촤라락!
손쉽게 스텔라의 공격을 막아낸 마녀.
스텔라의 눈이 낭패감으로 물들었다.
여기서 그대로 당겨지면 큰일이 날 것 같은데, 채찍을 놓고 소모품을 던질까?
아니면 힘겨루기를 해볼까?
온갖 고민을 하던 스텔라는,
“앗 따가! 앗따따...! 야!! 왜 예고도 없이 공격하구 그래! 난 아직 준비가 안 됐단 말이야!”
채찍 군데군데에 있는 검날에 찔려선 고통스러워하던 마녀가 자신을 향해 씩씩거리며 따져오자 입을 떡 벌렸다.
“무슨...”
그 사이 손가락으로 채찍의 날을 잡아 살살 푼 마녀가 방방 뛰며 소리쳤다.
“사과해! 아프잖아!”
그 어이가 없는 모습을 본 스텔라가 생각했다.
‘말투가 익숙해...’
약간 격앙되어있긴 하지만, 너무 익숙한 말투다.
그리고 저 사악한... 아니, 사악한 척을 하는 마녀에게서, 아주 포근한 기운이 느껴졌다.
아까부터 그랬다.
압박감을 느꼈지만, 그 안에 섞여있는 따스한 무언가가 자신의 몸으로 들어와 마음을 다잡게 해주었다.
저 마녀에게서 뿜어지고 있는 기운이, 자신의 심신을 진정시켜주었다는 소리다.
그래서 움직일 수 있었던 거고.
이블리언 탐색기를 건드리고 있는 것도 수상하고...
압박감 때문에 신경이 쏠려서 몰랐는데, 지금 보니 지구의 언어까지 사용하고 있다.
또한 저 가면이 눈에 띈다.
많고 많은 동물들 중에서 여우라... 왜 메릴이 생각나는 걸까?
“.....”
스텔라의 고개가 이리저리 갸웃거려지자, 마녀가 입을 꾹 다물고는 팔짱을 꼈다.
마치 찔리는데 일부러 태연한 척하는 것 같은 몸짓.
저 행동을 본 스텔라가 저도 모르게 입을 열었다.
“.... 아델라인 선배님...?”
그러자 마녀... 아니, 아델이 숨을 훅 삼켰다.
“어헉!?”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