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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소녀물 야겜 속 최종보스가 되었다-462화 (462/471)

〈 462화 〉 길진 않았던 인연

* * *

다음 날 새벽, 본부 의료실.

의료실 구석에 만들어둔 실험실 입구의 홍채 인식기를 쳐다보자,

끼긱...

문이 음산한 소리를 내며 열렸다.

“아아아아... 아아아아아...”

세뇌장치를 착용하고 있는 채로 침을 질질 흘리고 있는 샬롯이 보인다.

생체정보를 확인해보니 정신이 거의 무너진 상태.

고문에 내성이 있는 요원이 아니라 연구직인 만큼, 정신력이 약한가보다.

“오셨어요? 마왕님.”

박사와 함께 세뇌를 진행하고 있던 마르셀라가 다가와 날 맞이했다.

그녀를 향해 방긋 웃어준 내가 대답했다.

“그래.”

“스텔라 님께선... 어떻게 되셨나요? 어제 분명히... 마왕님의 기운이 오피스텔 전체를 덮을 정도로 쏟아졌었는데...”

“잘 되었지만, 아직 일어나지 못하고 있다.”

“제가 모시고 의료기기에서 체크를 해볼까요?”

“마기를 넣어 확인해보니 이상은 전혀 없었고, 그저 잠만 든 것뿐이니 지켜만 봐도 좋을 것 같구나.”

“다행이에요.”

기뻐하는 마르셀라의 뺨을 어루만져준 나는, 세뇌 공정이 진행되고 있는 샬롯을 쳐다보며 물었다.

“진행도는?”

“7할 정도는 진행되었어요. 특수작전사령부의 보고체계도 알아낸 상태구요.”

“보고는 끝냈나?”

“네. 4시간 전에 제가 직접 변장해서 끝내놓았습니다. 아무런 의심 없이 넘어갔어요.”

“그 외에 알아낸 것은?”

“현재 확인 중입니다. 같이 보시겠어요?”

“짧게 한 번 보지.”

나는 마르셀라와 함께 박사의 곁으로 향했다.

모니터에 집중하며 샬롯의 상태를 살피던 그녀는, 샬롯의 뇌파가 미쳐 날뛸 때쯤 키보드를 조작했다.

파지직...!

그러자 세뇌장치에 강한 전류가 흐르더니,

“으긱!”

샬롯의 결박되어있던 몸이 달싹거렸다.

그 틈을 탄 박사가 마이크에다 대고 상냥한 목소리로 말했다.

“당신은 에란델 은하, 타이라트 님의 하인이에요. 눈앞에 계신 그분이 당신의 주인이죠.”

파직! 파지직!

샬롯에 귀에 들어가 있는 촉수가 꿈틀거리면서, 그녀의 턱이 꼿곳하게 세워졌다.

그녀는 곧 뇌 속으로 직접 전달된 박사의 말을 따라하기 시작했다.

“아아아... 아아아... 저는... 에란델... 은하... 타이라트님의... 이익...! 주인님의... 하인...! 눈앞에... 계신... 아힉!”

입에서부터 흘러나오는 강제적인 충성의 서약.

팔짱을 낀 채 샬롯을 지켜보고 있던 내가 마르셀라에게 물었다.

“상식개변인가?”

“네. 아직 저항감이 있긴 하지만, 세뇌가 진행되면 진행될수록 사라질 거예요. 공정이 다 끝난다면 겉으로는 평범하고, 일상을 살아갈 수도 있는데다 감정도 멀쩡하게 남아있는 인간처럼 보이겠지만... 속은 마왕님의 명령만을 받들고 따르는 충실한 하인이 되는 거죠.”

“일상을 유지할 수 있다고? 장치가 그 정도로 발전했나?”

“알렉산더 헤일리가 갇히고 나서는 장치 개조에만 몰두했어요.”

“수고가 많구나.”

“감사해요.”

마르셀라의 공을 치하한 나는 다시 샬롯에게로 눈을 돌렸다.

파직! 파지직!

“으힉...!”

“샬롯 클라크, 당신은 타이라트 님, 주인님만을 위해 존재하고, 살아가는 거예요. 현재의 모습은 세계연합 특수작전사령부에 잠입, 의태하기 위한 가면이죠.”

“네에...! 저는... 주인님만을... 끄극...! 살아가는...”

파짓!

“어헉...! 지금의... 모습은... 특수작전사령... 잠입... 의태... 입니다아...!”

이성이 충돌하고 있는 것 같다.

여기서 더 건드렸다간 백치가 되겠다고 생각할 때쯤,

박사가 재빨리 키보드를 따닥거렸다.

지직...! 치지직!

미약하게 바뀐 전류.

샬롯이 곧바로 반응을 보였다.

“아아아... 주힌니힘...! 감사함니다아...”

그녀의 입가엔 나른한 미소가 피어나있었다.

심리적인 압박감과 전신에 흐르고 있던 고통이 사라지니 굉장한 해방감을 느낀 모양.

그런 와중에도 애타는 투로 내게 감사를 표하고 있었는데, 그녀의 뇌리에 각인된 내가 어떠한 행동을 해서 고통이 사라지게끔 착각하게 만든 것 같았다.

“주인님께서 뭐라고 말씀하시고 있죠?”

“아... 제게... 그 힘... 에 대해서 말하라고 명령하십니다...”

또박또박하게 변한 말투에서, 날 향한 충성심이 느껴진다.

박사는 만족스런 미소를 흘리고 있는 나를 힐끔 바라보더니, 화사한 미소를 지으며 샬롯에게 말했다.

“저희가 명명한 아이테르에 대해서 말인가요?”

“네...! 맞아요...”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죠?”

“설명해야 해요...! 제가 알고 있는 모든 것들... 주인님께 전부... 말씀드려야 해요...!”

“왜?”

“저는... 주인님의 하인이니까...! 제가 모시는 분께 보고를 올려야하는 건 당연해요...!”

“잘했어요. 그럼 말해볼까요?”

파직!

“아힛! 힉!”

전류가 다시 강해지자 간헐적인 신음을 터뜨린 샬롯은, 자신이 알고 있는 정보를 술술 말하기 시작했다.

“특수작전사령부가 획득한 아이테르의... 적합자는 네 명이에요... 모두 비스트 슬레이어에게 준하는 힘을 갖고 있다고 평가하는 중이고, 현재 사령부 안의 훈련실에서 개인훈련을 하고 있어요...”

“주인님께서 아이테르는 어떠한 에너지냐고 물으시네요?”

“정의로운 의지... 의지로 인해 사용자와 감응하는 무한한 에너지입니다...!”

샬롯의 설명을 듣던 박사와 나, 그리고 마르셀라는 서로의 눈을 마주보았다.

아이테르는 무한한 에너지가 맞다.

하지만 조건부였다.

그 조건은 다름 아닌 사랑.

서로에게 감정이 있는 남녀 간의 스킨십으로 인해 아이테르는 힘을 얻고, 사용자에게 막대한 힘을 준다.

그런데 정의로운 의지라니...?

의지만 있다면 무한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는 말인가?

그렇다면 이는 곧 마르셀라가 연구했었던 부분이 그대로 발현된 거라고 봐도 좋았다.

그녀는 복제 아이테르를 무한한 에너지로 만들기 위해 온갖 방법을 동원했었으니까.

로사리오의 힘이 깃들어서 그 특성이 나타날 줄 알았는데...

이거 의외로 소득이 커진 것 같다.

“제... 제 연구가...!”

잔뜩 흥분한 목소리로 중얼거리는 마르셀라.

나는 그녀의 어깨를 감싸 내 품으로 끌어왔다.

평소였다면 몸을 떨며 조수를 내뿜었을 텐데, 지금만큼은 아니다.

내게 만져지는 것보다 자신의 연구 성과에 뿌듯함을 느끼는 것이 더욱 컸는지, 폴짝폴짝 뛰려고까지 하며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그런 마르셀라의 반응을 지켜보던 박사는,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키보드를 따닥거렸다.

그리고는 샬롯에게 질문을 건넸다.

“그렇다면 현재 아이테르의 적합자들은, 하루 종일 에너지를 사용해도 괜찮은 건가요?”

“어... 네...? 괜찮습니다...”

일순 질문을 이해하지 못한 것 같은 모습을 보인 샬롯.

당연하다는 듯 대답하는 것이, 우리가 예상한 가설이 확실한 듯했다.

“좋아요. 충실한 하인의 보고를 들은 주인님께선 어떠한 반응을 보여주고 계신가요?”

“아아...! 기, 기뻐하십니다...! 제, 제게 잘했다고 칭찬해주시고 계세요...!”

파직!

“앗♡ 행복해...! 행복해요...!”

샬롯의 몸이 꿈틀거리며, 입에서 혓바닥이 살짝 튀어나왔다.

누가 봐도 흥분한 모습.

내게 보고를 하면 엄청난 성취감, 고양감을 느끼도록 설정한 모양이었다.

“주인님께서 다음 질문을 하시네요? 적합자들이 누구인지는 알고 계신가요?”

“아뇨... 고위 관계자만 알고 있습니다... 죄송해요... 하, 하지만 성별은 알아요...!”

“성별?”

“네...! 세 명이 여자... 그리고 한 명이 남자에요... 응앗♡”

샬롯의 입에서 튀어나온 놀라운 말에,

기뻐하던 마르셀라도, 한창 장치를 조착하던 박사도, 그리고 나도 우두커니 서서 침묵했다.

그리고 그 조용한 분위기를 깬 건 박사였다.

“남자...? 아이테르의 적합자는 여자뿐일 텐데요?”

“어... 아니에요...! 분명히 남자가 한 명 있어요... 한국인이고...”

남자, 그리고 한국인.

거기까지 들은 나는 직감적으로 눈치챘다.

아이테르의 주인이 누구인지 말이다.

‘유승현이로구나.’

정의로운 의지를 가진 한국인 남자라면 놈밖에는 생각이 안 난다.

죽인다 죽인다 생각했었고, 거제도 조선소에서 일하고 있는 것까지는 파악하고 있었으나...

처분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

헌데 복제 아이테르의 적합자가 되어서 나타날 줄이야... 놀랄 노 자다.

박사와 마르셀라 또한 뒤늦게 유승현이 생각났는지, 눈을 부릅떴다.

내 표정을 살핀 박사가 황급히 물었다.

“혹시 그 남자의 이름이 뭔지 아시나요?”

“말씀드렸다시피 적합자들의 정체는 고위 관계자들밖에는... 죄송해요...! 제가 열심히 알아낼게요...! 앗♡ 읏!”

“주인님께서 잠깐 쉬고, 다시 보고를 시작하라고 말씀하시네요?”

“네에...! 자비에 감사드립니다...!”

샬롯은 곧 새근새근한 숨소리를 내뱉으며 잠에 빠졌다.

가라앉은 눈으로 그녀의 생체정보를 살펴보던 나는,

“지혁아. 남자는 아마 유승현 같은데...”

“조, 죄송합니다, 마왕님! 제가 그냥 죽여 놨어야 하는 건데...! 제 실책이에요!”

박사와 마르셀라의 말에 정신을 차렸다.

부드러운 미소를 지은 나는 괜찮다는 듯 마르셀라의 어깨를 두드려주었다.

“상관없다.”

“네...?”

“네 개의 복제 아이테르 중 하나가 소실되는 건 아깝긴 하지만... 오히려 잘됐다.”

‘소실’이라는 말에, 마르셀라와 박사가 내 의도를 눈치챘다.

“아, 그럼... 이참에...”

“그래, 이참에 완전히 끝내놓겠다.”

길진 않았지만 악연이라 할 수 있는 인연을 끊어주지.

세화, 그리고 세뇌된 복제 아이테르의 적합자들이 보는 앞에서 처참하게, 완벽한 절망을 선사하며 죽여주마.

스스로 목숨을 끊게 만드는 것도 나쁘진 않겠어.

그렇게 모든 일을 마무리 지은 뒤, 홀가분한 마음으로 로사리오를 만나러 가겠다.

사악한 미소를 흘리는 날 보며 안심했을까?

기다란 안도의 한숨을 내쉰 박사가 말했다.

“유승현은 간략하게나마 아이테르에 대해서 알고 있어. 세화의 정체도... 그럼에도 세계연합 측에서 세화에게 접근하지 않았던 걸 보면... 놈은 우리에 대한 정보를 그쪽에 말하지 않은 것 같아.”

“동의해.”

“그래도 의리는 있어서 다행이네... 아니지, 멍청한 건가?”

박사의 말이 맞다.

유승현은 멍청한 거다.

그저 정의롭고 올곧기만한 호구.

어떻게 세계연합에게 간택을 받았는지는 모르겠지만, 너는 평범하게 살 수 있는 기회를 놓쳤다.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은 나는 화제를 돌렸다.

“나는 스텔라한테 가볼 테니까, 세뇌가 끝나면 보고해줘.”

“알았어요.”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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