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60화 〉 완성된 음문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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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급 마물이 대규모로 출몰한 미국, 플로리다의 어느 해변.
그쪽에 막 도착한 스텔라는, 자신의 밑에서 펼쳐지는 광경에 말을 잇지 못했다.
바다 밑에서부터 빠르게 튀어나온 F급 마물들로 인해 혼비백산한 사람들이 벙커로 달려가고 있다.
경고 사이렌이 울리자마자 생존을 도모하는 건 좋았다.
하지만 문제는 따로 있었다.
“아아악! 밟지 마!”
“이 씨발...! 꺼져 이 개새끼들아!”
사람들은 노인이 밀쳐져 쓰러지고, 아이가 엉엉 울며 부모를 찾는 상황임에도, 눈길을 주는 이 하나 없이 생존본능만을 앞세우고 있었다.
심지어는 쓰러진 사람을 가차 없이 밟고 지나가는 사람들마저 나왔다.
“이게... 대체...”
그러한 시민들을 살펴야할 세계연합 군대는, 해안가에 집결해 마물들에게 공격만 퍼붓는데 집중하고 있다.
심지어는 눈먼 총알에 사람이 맞아도 신경조차 쓰지 않고 있었다.
미처 대피하지 못한 죄라도 묻고 있는 것일까?
급박한 상황인 건 이해하지만... 너무하다.
게다가... 눈...
지금 마물들을 향해 화력을 퍼붓고 있는 군인들의 눈은 광기가 가득했다.
공포 또한 있긴 했지만, 흰자위에 그득한 광기를 따라올 수 없을 만큼 적었다.
크게엑...!
갸아아악!
구슬픈 비명을 내지르며 스러져가는 F급 마물들도 보인다.
이들의 신체가 미래무기에 의해 꿰뚫릴 때마다, 스텔라의 몸이 움찔움찔 떨렸다.
마음이 아픈 것처럼 느껴지는 건 착각인가?
총소리가 무섭게 들린다.
인간과 마물의 핏물이 한데 뒤섞여 파도에 떠밀려오는 해변가를 바라보면서, 스텔라는 침을 꼴깍 삼켰다.
가히 인외마경이라 칭해도 모자람이 없을 지경.
혼이 쏙 빠질 것 같다.
그리고 이 감정은 뭘까?
속이 부글부글 끓어오르는데... 이는 대체 누구를 향한 분노인가?
약자를 도와주긴 커녕 도태시키면서 추잡하게 살아남으려는 인간들?
아니면 광기에 몸을 맡긴 채로 인간을 포함한 마물들을 죽이는 군인들?
“하아... 하아...”
거친 숨소리만을 내뱉으며 혼란스러워하던 스텔라는,
쿠오오오오...!!
물에서부터 거대한 수룡이 나타나자 눈을 부릅떴다.
디바이스에 나타난 이블리언 게이지 등급은 C.
비스트 슬레이어가 아니라면 처리할 수 없는 마물이었다.
‘어, 없애야 돼...’
그래야 한다는 걸 알고 있음에도 몸이 뜻대로 움직이질 않는다.
이를 악 문 스텔라는 자신의 허벅지를 꼬집었다.
이런 대규모 교전에 난입한 건 처음이라서 긴장한 거다.
괜찮다. 할 수 있다.
스스로를 다스린 스텔라는 곧장 허공을 찼다.
뻐버벙!
거대한 파공성과 함께 쏜살같이 뛰쳐나간 스텔라의 신형.
스텔라의 아이테르가 가진 특유의 새하얀 빛이 바닥을 향해 내리꽂히는 장면은 마치 지상에 천사가 강림한 것 같은 모습을 자아냈고, 그 모습을 지켜보던 인간들에게 희망을 심어주었다.
그리고 스텔라는, 그런 사실 따윈 알지도 못한 채로 수룡에게만 시선을 집중하고 있었다.
“하아압!”
자신의 마음을 다잡는 것 같은 기합성을 터뜨린 스텔라가 팔을 높이 들었다 쭉 뻗었다.
쐐애액!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수룡에게 쇄도하는 채찍.
공격 부위는 수룡이 막 펴려고 하는 날개 아래쪽의 풍절이었다.
찌익!
얇은 피막으로 된 풍절이 종이처럼 꿰뚫리며, 짙은 색의 파란 피가 쏟아져 나와 바다를 적셨다.
크오오오오오!
고통에 찬 비명을 내지르며 몸을 꿈틀한 수룡의 눈동자가 스텔라에게로 향했다.
불길함을 자아내는 시뻘겋고 거대한 세로동공.
일반 사람이 봤다면 저도 모르게 실금을 할 정도로 위압감이 대단하다.
하지만 스텔라에게는 아니었다.
그녀는 수룡의 눈이 왠지 슬퍼 보인다고 생각했다.
마치 부모에게 매를 맞는 아이처럼 느껴졌다.
“.....”
아랫입술을 잘근 깨문 스텔라는, 바다로 내려가다 말고 공중에 우뚝 멈췄다.
C급 마물은 인간들에겐 공포의 대상이지만, 비스트 슬레이어에겐 아니다.
손쉽게 처리할 수 있는 약한 마물이었다.
그럼에도 왜 자신은 수룡의 날개를 노렸을까?
저 머리통을 그대로 꿰뚫어버렸다면 즉사인데.
마물을 없애는 게 두려워서?
아니다. 자신은 지혁의 차를 전복시킨 마물도 죽여 봤다.
물론 세화의 도움이 있긴 했지만, 치명상을 입힌 건 자신이다.
그런데 왜 망설였던 건지 도무지 이해를 할 수가 없다.
그리고...
고오오...
수룡의 힘없는 포효를 듣자니 가슴이 너무 아려왔다.
커다란 눈에 맺히기 시작한 눈물을 보니 제대로 눈을 마주칠 수가 없었다.
‘이래선... 안 되는데...’
끔찍한 생각임을 알면서도, 저 수룡을 원래 있던 곳으로 돌려보내고 싶었다.
인간을 습격하러 온 마물을 말이다.
‘아직... 아직 사람들을 해치지는 않았으니까...’
그런 식으로 자기 위안을 한 스텔라는, 간절한 눈빛으로 수룡을 쳐다보았다.
세화를 비롯한 동료들이 오기 전까지, 제발 마계로 돌아가 달라고.
가서 두 번 다시는 지구에 오지 말라고.
그르르...
그러한 스텔라의 마음을 알아차렸을까?
수룡이 낮게 그르렁거리더니,
첨버엉!
망설임도 없이 바다 속으로 들어가, 깊숙이 잠수했다.
그리고 다시는 떠오르지 않았다.
‘아...!’
안색이 밝아진 스텔라는, 사람들이 자신의 이런 모습을 보지 못하게 다시 공중으로 솟구쳤다.
이후 거기서 박사의 타박을 받았다.
뭐하는 거야?
귀에서 들려오는 냉랭한 목소리에 찔끔한 스텔라가 대답했다.
“그... 도망쳤어요... 마물이... 제가 바다로 쫓아 들어갈 수는 없잖아요...”
네 스스로도 말도 안 되는 핑계인 거 알고 있지?
“.....”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다.
변명을 그만둔 스텔라는 고개를 푹 숙인 채로, 박사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오늘 컨디션 별로니?
“아, 그게...”
솔직하게.
“네... 벼, 별로인 것 같아요...”
사실은 출동하기 전까지만 해도 쌩쌩했지만...
추악한 모습을 보여준 인간들을 보고,
고통에 겨워하는 마물들을 보고 심란해졌다.
자신은 비스트 슬레이어의 그릇이 아니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이렇게 우유부단하고 여린데 영웅은 무슨 영웅.
그냥 그만둬버리고, 가수와 지혁과의 사랑에만 집중하고 싶어진다.
그래... 곧 세화가 오니까 연구실에서 대기해. 아니다... 연구실에 있는 지혁이랑 같이 집으로 돌아가서 푹 쉬어.
“아, 알겠습니다... 죄송해요...”
아냐. 내가 미안해.
더 혼이 날 줄 알았는데, 박사는 의외로 잘 넘어가주고 있었다.
게다가 못난 자신에게 사과를 해주다니...
자신의 심정을 이해하고 있는 걸까?
고마운 마음이 싹튼다.
“네, 박사님...”
힘없이 대답한 스텔라는 해변가를 바라보았다.
아직도 폭탄이 뻥뻥 터지고, 큼지막한 총알이 날아다니고 있다.
B급 이상 마물이 나타나서 소규모 교전을 했다면 어땠을까?
그럴 경우에도 자신은 지금처럼 어벙한 모습을 보여주었을까?
모르겠다... 이젠 생각하기 싫다.
빨리 지혁의 품 안에서 쉬고 싶다.
키에에에엑!!
하늘을 울릴 듯한 마물의 비명.
그 소리를 들은 스텔라는, 더 이상 이 자리에 있지 못하고 포탈을 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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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컹!
아무런 대화조차 않고 알렉스에게 밥을 준 스텔라는, 밥구멍을 닫아버리고는 흐느적흐느적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 침대에 누웠다.
마물의 해변가 습격으로 인해 충격을 크게 받은 모양이다.
물을 떠온 나는 스텔라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물 마시고 자.”
그러자 스텔라가 자신의 상체를 스르륵 일으키더니, 몸을 돌려 날 쳐다보았다.
“오빠...”
“응.”
“오늘... 나 이상한 감정을 느꼈다?”
“뭔데?”
“C급 마물이 나타났을 때... 알아?”
“알지. 모니터로 보고 있었어.”
스텔라의 입술이 파리하게 떨려왔다.
곧 눈물을 보일 것 같은 표정.
물컵을 탁상 위에 놓은 나는, 스텔라를 꼭 안아주며 그녀의 심신이 안정될 때까지 기다려주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스텔라가 내 어깨에 이마를 댄 채로 말했다.
“그 마물이... 죽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 그리고...”
스텔라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모든 고민거리를 모두 털어놓았다.
어딜 향해있는지 모를 분노, 마물에 대한 동정심, 그리고 비스트 슬레이어로서의 마음가짐...
모든 이야기를 들은 나는, 속으로 꽤나 놀랐다.
그저 음문의 완성을 위해 악의를 더욱 키우려던 일이 본질 자체를 고민할 정도까지 올 줄이야.
아무래도 나는 스텔라의 천성을 과소평가하고 있었나보다.
저런 스텔라의 모습은, 내게 있어서 악재가 아니었다.
오히려 기존의 목표에 비해 훨씬 좋았다.
내가 그녀의 어지럽게 흔들리는 마음을 다스려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랬구나... 힘들었지?”
“응... 힘들어... 그리고 모두에게 죄송스러워... 날 열심히 가르쳐주셨는데... 그게 헛수고가 됐어...”
“헛수고가 아니야.”
“.... 아니라구...?”
“응. 아냐.”
“왜...?”
“세화를 비롯한 사람들은 믿고 있거든. 네가 다시 일어설 거라는 걸.”
“.... 부담스러워...”
지금부터 시작하자.
음문의 완성을 위한 마지막 공정을.
스텔라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은 내가 말했다.
“부담스러우면 쉬어도 돼. 비스트 슬레이어? 하지 마.”
“....?”
뜬금없는 말이라고 생각했는지, 스텔라가 고개를 들어 날 올려다보았다.
그녀를 향해 인자한 미소를 지은 내가 말을 이었다.
“나랑 같이 있으면 좋지? 나랑은 뭐든 함께 하면 좋지?”
“응... 행복해...”
“날 위해서라면 뭐든지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했지?”
“응...”
“내가 좋아할만한 일은, 너 또한 좋아한다는 뜻이네?”
“으음... 그런 것 같아...”
“그러면 정의니 뭐니 하는 것들은 집어치우고, 오직 우리가 기뻐할만한 일을 하자.”
“.....”
입을 약간 벌린 채로 날 몽롱하게 쳐다보는 스텔라.
진지해진 분위기에 취한 것 같다.
그녀의 이마에 진한 키스를 해준 내가 말했다.
“이제는 날 위해서 싸워줘.”
“오빠를... 위해서...?”
“맞아. 오직 나만을 위해서.”
“.... 아...”
큰 눈을 끔벅거리던 스텔라의 입꼬리가 이내 희미하게 올라갔다.
‘나만을’ 위한다는 말이 왠지 듣기 좋다고 생각한 듯했다.
“다른 생각은 하지 마. 아까와 같은 상황이 오면, 날 위해서, 널 위해서, 우릴 위해서 한다고 생각해. 그러면 편해질 거야.”
“.....”
스텔라의 미간이 약간 구겨졌다가, 다시 펴졌다.
아까 해변가에서 있었던 일을 복기하면서, 내가 해준 말을 주입시키며 자신의 입장을 바꿔나가고 있음이 분명했다.
“네가 마물에게 부상만 입혔던 건, 우리가 그렇게 원했기 때문이야. 인간들을 추잡하다고 느낀 것도 우리가 그렇게 생각했기 때문이고.”
“.... 오빠도... 그 마물이... 살길 바랐어...? 사람들한테 화났어...?”
“물론이지. 네 의지가 곧 내 의지니까.”
“내 의지가... 곧... 오빠의... 아아...!”
스스스...!
기분 좋은 신음을 터뜨린 스텔라의 몸에서부터 거뭇한 기운이 피어나기 시작했다.
스텔라가 내 말에 깊이 심취하고 공감을 함으로서, 심층 깊숙한 곳에 자리를 잡고 있던 마기가 겉으로 드러난 것이다.
사악하기 그지없는 기운임에도, 스텔라는 그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상태였다.
저 편안해 보이는 얼굴을 보면 안다.
스텔라는 마기를 애초에 자신과 한 몸인 것처럼 느끼고 있다.
당연한 일이었다.
시간의 시간을 두고 천천히 적응시켜나갔으니까.
됐다. 이제는 악의를 주입하면서 음문을 완성시키자.
완벽하게 확신한다.
오늘 스텔라의 마음은 전부 물들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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