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59화 〉 완성된 음문
* * *
“이름이 뭐죠?”
박사의 물음에, 우리가 만든 통신기를 착용한 한 여자가 공손히 답했다.
샬롯 클라크입니다. 현재 세계연합 특수작전사령부에서 연구를 하고 있습니다.
샬롯 클라크는 세계연합에서 보낸 과학자였다.
박사의 요구대로 여자에다 젊었는데, 오똑한 콧대가 매력적인 퍽 아름다운 사람이었다.
“어때? 괜찮아?”
통신장치를 잠깐 끈 박사의 물음.
마르셀라와 함께 박사의 옆에 있던 나는, 한쪽 입꼬리를 올리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그러자 박사가 가벼운 웃음을 터뜨리더니 통신장치를 켰다.
“반가워요, 클라크 박사님.”
그냥 샬롯이라고 불러주세요, 파슨스 박사님.
샬롯의 목소리엔 기대감이 묻어나와 있었다.
과학자라면 미래과학에 크나큰 도움을 준 박사를 모를 수가 없겠지.
심지어 젊은데다 같은 국가 출신이라서 존경심이 더욱 클 테고.
저런 반응은 당연한 수순이다.
“알겠어요. 가지고 온 전자기기가 있나요?”
없습니다.
“믿고 싶지만 확인은 해봐야겠네요.”
물론이에요, 어떠한 검사든 받겠습니다.
“좋아요. 설치된 박스 안으로 들어가주세요.”
알겠습니다, 파슨스 박사님.
샬롯은 아무런 의심도 없이 야외에 설치된 세로로 기다란 기계장치 안에 들어갔다.
그와 동시에 연구실 모니터에서 샬롯의 생체정보가 나타났다.
“외부는 물론이고 내부까지 깨끗해. 거긴 어때?”
모니터를 바라보던 박사의 물음에, 샬롯의 주변을 탐색해보던 마르셀라가 대답했다.
“여기도 깨끗해요. 세계연합에서 애가 탔나보네요?”
“그래야지.”
사악한 미소를 흘린 박사는 기계장치의 문을 열고, 샬롯이 나온 것을 확인하자마자 말했다.
“검사는 다 끝났어요. 의심해서 미안해요.”
아니에요. 제가 박사님의 입장이었어도 같은 일을 했을 테니 신경 쓰지 마세요.
“그렇게 말해줘서 고맙군요. 앞으로 150미터만 오면, 지하로 통하는 계단이 있을 거예요. 따라오면 본부 안으로 들어올 수 있어요.”
지금 출발할까요?
“네. 그대로 걸어오면 돼요.”
알겠습니다.
박사의 리드에 따라 우리가 만들어둔 통로에 도착한 샬롯은, 그녀를 따라다니는 수십 대의 감시카메라를 살피면서 발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연구실 후문에 도착한 그녀가 물었다.
문이 있는데... 어떡할까요?
“기다리고 계세요.”
네, 박사님.
긴장한 듯 뻣뻣하게 차렷 자세로 서있는 샬롯.
그녀를 지켜보던 우린 자리에서 일어나 후문을 열었다.
푸쉬익!
육중한 소리를 내며 좌우로 개폐된 문.
문 앞에 서있는 우릴 발견한 샬롯이 상체를 숙이며 다시 자신을 소개했다.
“안녕하세요. 세계연합 특수작전사령부 연구원, 샬롯 클라크입니다.”
그에 박사가 화사한 미소를 지으며 샬롯을 맞이했다.
“이사벨 파슨스라는 이름으로 활동하고 있던 제니퍼 캐시에요.”
“본명이 따로 있으셨군요...! 반갑습니다, 캐시 박사님. 저... 이분들께서는...”
나와 마르셀라를 쳐다보며 눈을 데굴 굴리는 샬롯.
내 팔에 팔짱을 끼고, 다른 한손으로는 마르셀라의 허리를 감은 박사가 우릴 소개했다.
“여긴 제 남편 송지혁이고, 여기는 제 친동생인 김민지에요.”
샬롯은 나에 대한 설명을 들을 땐 그러려니 했으나, 마르셀라를 소개받을 땐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입을 떡 벌린 그녀가 물었다.
“치, 친동생이요...?”
“네. 생김새가 많이 다르죠? 하지만 같은 피를 이어받은 분명한 가족이에요. 함께 본부를 운영하고 있죠.”
장난을 치는 박사가 짓궂구나.
사실이기는 하다.
박사와 마르셀라는 내 권속이니까,
“아... 그렇구나...”
“서있지 말고 이리 오세요.”
“아, 넷...!”
박사의 친절한 안내에 얼굴이 쫙 편 샬롯은, 우릴 지나치며 예의 바르게 목례를 했다.
이제부터 어떤 일이 벌어질지도 모르고... 안타깝구나.
우리의 훌륭한 수하가 돼서, 특수작전사령부의 비밀을 낱낱이 파헤쳐주렴.
샬롯을 휴게실로 데려간 박사는, 그녀를 앉히고 커피를 가져다주었다.
공손하게 잔을 받은 샬롯이 말했다.
“본부가 생각 외로 좁네요... 아, 비판하는 건 절대 아닙니다...!”
그러자 박사가 맞은편에 앉아 실소를 터뜨렸다.
“알고 있어요. 혹시 복귀시간이 언제인지 알 수 있나요?”
“최대 이틀이에요.”
“그때까지 탐색기 기술을 완벽하게 카피하고 오라는 명령을 받았나보죠?”
“.... 그게...”
“솔직하게 말씀하셔도 돼요. 얘기는 비서실장과 다 끝냈으니까.”
“네... 이틀 안으로 기술을 다 익혀놔야 해요.”
고개를 주억거린 박사가 커피를 홀짝였다.
“시간이 꽤 촉박해서 빨리 시작해야겠네? 숙소는 구했나요?”
“호텔을 잡아놨어요.”
“하루에 한 번은 보고를 해야겠네요. 맞죠?”
“맞아요.”
“좋아요. 이제부터 이틀간 잘 가르쳐드리죠.”
“감사합니다, 파슨... 아니, 캐시 박사님.”
“앞으로 숙식은 여기서 해결하세요, 샬롯.”
“아... 그러면 보고만 잠깐 하러 나갔다와도 되겠죠?”
박사는 그 물음에 대답하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나 샬롯의 뒤로 향했다.
그리고는 그녀의 어깨 위에 양손을 올리고 살살 주무르기 시작했다.
분위기가 무척 스산해졌음을 느꼈을까?
샬롯의 몸이 일순 부르르 떨렸다.
“저... 박사님...? 그... 보고하러 나갈 시간은 박사님께서 정해주실 건가요...?”
“아뇨.”
“호, 혹시 껄끄러우신 거라면... 여기서 비서실장님과 영상통화를 해도 괜찮을까요...?”
“음... 그건 나쁘지 않겠네요.”
“다행이네요... 그러면 그렇게 하는 걸로... 그런데... 저 갈아입을 옷을 좀 사고 와도 괜찮을까요?”
샬롯의 어깨를 안마하는 것을 그만둔 박사는, 그녀의 가슴팍을 가볍게 툭툭 두드렸다.
그리고는 마르셀라를 향해 이리 오라고 손짓했다.
마르셀라가 가까이 다가가자, 박사가 웃는 낯으로 물었다.
“변신이랑 목소리 변조까지 다 가능하지?”
“물론이에요, 박사님.”
“알았어. 장치는?”
“준비되어있어요.”
샬롯은 지금 상황이 어찌 돌아가는지 전혀 이해를 못하고 있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갑자기 변신과 목소리 변조, 장치를 언급하는 박사,
친자매 사이라고 했으면서 박사에게 존대를 하는 마르셀라...
아무리 똑똑하다고 해도 이건 모를만하지.
“바로 시작하자.”
“네, 박사님.”
대화를 마친 박사는 다시 샬롯의 뒤로 가서, 그녀의 얼굴을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이상하기 짝이 없는 행동임에도, 샬롯은 그 어떠한 움직임조차 가져가지 못했다.
억압적인 분위기에 짓눌린 것이다.
그런 그녀를 향해, 박사가 나긋한 목소리로 말했다.
“특수작전사령부와 어떤 식으로 보고하는지 입을 맞춰놓았을 테니까... 일단은 그 체계부터 알아낼게요.”
“.... 그게... 무슨 말씀이... 커어억...!”
말을 하던 샬롯의 입에서부터 가래 끓는 소리가 새어나왔다.
어느 샌가 나타난 마르셀라의 꼬리가 그녀의 목을 둘러 꽉 조였기 때문이었다.
더 커질 수 없을 정도로 뜨인 눈.
파란색 홍채가 인상적이다.
“이제부터 당신을 세뇌할 거예요.”
“켁...! 케겍... 케엑...”
샬롯의 눈에 눈물이 맺히기 시작한다.
고통스러웠기에 나온 반응이었다.
지금 그녀는 박사의 말을 듣지도 못한 채, 어떻게든 살기 위해 버둥거리고 있었다.
박사는 그러한 샬롯의 반응에도 아랑곳 않고, 제 할 말을 했다.
“그렇다고 해서 너무 걱정하지는 마세요. 저희 편이 된다는 건, 미래가 보장되어있다는 얘기니까요. 내 밑에서 원하는 연구를 마음껏 할 수 있게 해줄게요.”
“케헥...! 켁...”
“금방 알게 될 거예요. 제 남편을 따라야하는 이유를요. 부디 빨리 무너져줬으면 좋겠네요. 10분만 푹 자요, 샬롯.”
박사의 그 요염한 말을 끝으로, 샬롯의 눈이 스르륵 감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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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 엄청 늦었잖아...!”
노트북을 보다 말고 달려와선 내게 꼭 안기는 스텔라.
그녀의 정수리에 진한 키스를 해준 내가 말했다.
“박사님이랑 민지 누나랑 실험하고 온다고 말했었잖아.”
“그건 아는데... 외로웠어...”
“쭉 집에 혼자 있었던 거야?”
“아니... 그냥 보영이 언니네 집에 가서 연습했어... 요새 통 뵙지를 못해서 인사도 할 겸...”
“그랬어? 잘했네?”
“응... 실험은 잘 끝났어?”
한창 진행 중이란다.
지금쯤 샬롯은 내 환상이 만들어낸 촉수에 온몸을 유린당하고 있을 거야.
“끝났어. 알렉스 밥은?”
“줬어. 근데 오빠, 오늘 이상한 일 있었다?”
“이상한 일?”
“그... 사실은 일이라기보다는 느낌인데... 보영이 언니네 집에서 내리다가 내 팬을 만났거든?”
“응.”
“사인해달라고, 사진 찍어달라고 하셨는데... 막... 뭐라고 해야 하지...?”
대충 알 것 같다.
공격성이 올라왔나보구나.
“짜증났어?”
“그... 짜증났다기보다는...”
우물쭈물하는 그녀.
그보다 훨씬 더 과격한 생각을 했나보다.
가령 ‘죽이고 싶다.’ 같은 것들.
“아 몰라... 말 안 할래...”
솔직하게 말하면 내게 혼이 날까봐 얼버무리는 건가?
귀여워가지고.. 쯔쯔...
스텔라의 엉덩이를 토닥이며 달래주던 나는, 이어지는 스텔라의 물음에 귀를 쫑긋했다.
“오빠, 혹시 아델라인 선배님이 무슨 능력을 갖고 계시는지 알아?”
“아델? 갑자기 왜?”
“아니... 오늘...”
스텔라는 오늘 아델과 있었던 일을 내게 얘기했다.
모든 설명을 들은 나는 눈을 빛냈다.
‘장난을 쳤구나, 아델.’
몸이 경직되어있으면 기운이 잘 들어가지 않는다고? 말은 번지르르하네.
막내의 몸을 흥분시키고 싶어서 일부러 그랬으면서.
어쨌거나 음문에서 지속적인 통증과 쾌락이 나타난다는 건, 스텔라의 마음까지 침투한 악의가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는 뜻.
스텔라가 팬에게 과격한 생각을 한 것도 그 일환이다.
스텔라의 아랫배에 손을 댄 내가 물었다.
“아델이 치료해준 이후로는 쭉 괜찮은 거야?”
“응...”
“눌러볼게. 아프면 말해.”
그리 말한 나는 스텔라의 아랫배를 살피는 척하면서 미량의 마력을 흘려 넣어보았다.
음문이 완성되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결과는 기대와는 다르게 아직도 미완성인 상태.
진이 빠진 나는 손을 떼어냈다.
언제쯤 완성되는 거지? 이런 적은 처음이라서 감이 안 잡힌다.
큰 계기가 있어야하나?
사람을 죽여 보도록 판을 짜볼까?
현 상태에서 알렉스를 죽이는 건 무리라고 보고...
아까 만났다던 팬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싶은데...
아니면 세화를 떨어뜨렸던 방법처럼, 인간의 추악함을 보여주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싶다.
스텔라는 불운한 생활을 하면서도 착한 심성을 잃지 않았었고, 사람 자체를 잘 믿으니까 잘 통할 것 같다.
“오빠... 더 눌러주지...”
아쉬운 듯한 스텔라의 투정.
헛웃음을 켠 나는 그녀를 번쩍 안아들고 소파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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