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58화 〉 성스러운, 그러나 어딘지 모르게 요사스러운.
* * *
“안녕하세요, 김민지라고 합니다.”
위장한 마르셀라의 공손한 인사에, 스텔라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아, 네... 안녕하세요...”
머뭇머뭇 화답한 그녀의 시선이 내 쪽으로 향한다.
설명을 요구하는 눈빛.
어깨를 으쓱인 나는 박사를 쳐다보았다.
“박사님이 대신 말씀해주시죠.”
“그래. 민지는 내 제자야.”
그 말에 스텔라의 눈이 동그래졌다.
“제, 제자요...?”
“응. 전도유망한 과학자고, 믿음이 가는 아이라서 내일부터 연구실로 출근할 거야. 이참에 너희들한테 소개시켜주려고 불렀어.”
“아... 제자를 구하셨었구나...”
“미리 말하지 않은 건 미안해. 뜬금없었지?”
“조금 당황했어요... 그런데 나이가...”
그에 대답한 건 마르셀라였다.
“스물 셋이에요.”
“아... 언니셨구나... 잘 부탁드려요, 언니.”
“저야말로 잘 부탁드립니다, 스텔라 님.”
“님...?”
극존칭에 당황해하는 스텔라.
마르셀라가 환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이제부터 열심히 모실게요.”
“어... 자세한 이야기는 나중에 하고... 이, 일단 들어오세요.”
“네. 그럼 실례하겠습니다, 스텔라 님.”
마르셀라를 안으로 들여보낸 스텔라는, 박사에게 어색한 미소를 짓고는 날 복도로 끌고 왔다.
“오빠는 알고 있었어?”
알았다고 한다면 스텔라는 왜 자신에게 그 일을 공유하지 않았냐고 뭐라 할 것이다.
가뜩이나 음문이 생성되어 집착이 늘어났을 텐데, 긁어 부스럼이 될 일은 만들지 말자.
“나도 몰랐어.”
“그래...? 그러면 됐어.”
“위험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아?”
“딱히 그런 생각은 안 들었어. 근데 뭔가...”
헷갈린다는 듯 고개를 갸웃하는 모습을 보니, 마르셀라에게서 은은하게 풍겨오는 마기를 익숙하게 느꼈나보다.
“왜? 문제 있어?”
“그게 아니라... 친숙하게 느껴지는 것 같아. 저 민지라는 언니가.”
예상대로다.
“싹싹한 사람이라서 그런가보지.”
“응... 그런 것 같기도 하네...”
다른 사람을 향해 저 말을 했다면, 스텔라는 질투심이 확 끓어올랐을 것이다.
하지만 마르셀라를 칭찬하니 수긍만 하고 있다.
무의식 속에서 느끼고 있는 것이다.
마르셀라가 어떤 존재인지.
스텔라의 갈색 머리를 쓰다듬은 내가 말했다.
“알렉스한테 밥 줬어?”
“아니.”
“노느라 까먹었던 거야? 아니면 일부러 안 줬던 거야?”
스텔라는 멋쩍은 눈웃음을 치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둘 다였구나. 요망해가지고...
“오빠 냄새 좋아...”
돌연 내 품에 쏙 안기더니 코를 킁킁거리는 스텔라.
내 특유의 마기를 감지한 것 같다.
피식한 나는 그녀의 등을 두드려주다가, 함께 세화의 집으로 향했다.
이제 가족들은 다 모였고...
진정한 가족이 되기까지 딱 한걸음 남았다.
@@
삐비비빅! 삐비비빅!
귀를 찌르는 듯한 알람소리.
잠에 빠져있던 스텔라가 인상을 팍 찡그리며 부스스한 눈을 떴다.
더듬더듬 휴대폰을 찾은 그녀가 시간을 보았다.
일곱 시. 이른 시간이다.
왜 자신이 이때 알람을 맞춰놓았을까?
곰곰이 생각해보니, 알렉스에게 밥을 차려주기 위해서였다.
‘귀찮아...’
스케줄을 가야하는 것도 아닌데, 그냥 다시 잘까?
밥은 점심에 더 많이 주면 되지 않을까?
그러한 유혹들이 새록새록 샘솟는다.
톡 알림이 하나 와있다.
지혁의 것이구나.
오늘 스케줄 건으로 소속사에 잠깐 들렀다 온다고 쓰여 있다.
외롭지만 금방 올 테니 참자.
멍하니 누워 지혁과 찍은 사진을 살펴보던 스텔라는 침대에서 일어났다.
그래도 교화가 되어가고 있는 동생이고, 아침에 밥을 준다고 약속했으니까 챙겨줘야 맞다.
‘아파...’
침대 밖으로 벗어나니 머리가 띵 하고 아려왔다.
어제 술을 너무 많이 마셔서 숙취가 온 것이다.
좀비처럼 흐느적흐느적 거실로 간 스텔라는, 냉장고 문을 열어 재료들을 꺼냈다.
그렇게 간단한 볶음밥을 만들어주려고 하던 그녀의 눈에, 저번에 사놓았던 개 사료가 담겼다.
“.....”
볶음밥에 넣고 반응을 살펴볼까?
왠지 재미있을 것 같다.
찌릿.
“아...!”
스텔라의 입에서 짤막한 신음이 터져 나왔다.
알렉스의 밥에 사료를 넣는다고 생각하니, 갑작스레 아랫배가 쑤셔왔기 때문이었다.
아니, 쑤셔온다기보다는, 강아지풀 같은 것으로 간지럽히는 느낌이었다.
기분이... 꽤나 좋다.
“후아...”
계속 자극을 받고 있는 아랫배를 꽉 누른 채 어찌 저찌 볶음밥을 다 만든 스텔라는, 쟁반에 그릇을 옮겨놓고 알렉스의 방으로 갔다.
덜컹!
“누나... 배고파...”
밥구멍이 열리자마자 곧바로 달려와선 밥을 갈구하는 알렉스.
구멍을 통해 얼굴을 살펴보니, 약간 홀쭉해져있다.
“미안해. 밥 가져왔어.”
잽싸게 그릇을 가져간 알렉스가 시야에서 사라졌다.
의자가 드르륵 끌리는 소리를 들어보니, 허겁지겁 퍼먹기 시작하려는 것 같다.
한심하다.
어머니의 뱃속에서 왜 저런 아이가 태어...
찌릿.
“흣...!”
과격한 생각을 하던 스텔라가 얕은 신음을 터뜨렸다.
또 다시 아랫배에 자극이 왔기 때문이었다.
“.... 누나? 괜찮아?”
방 안에서부터 들려오는 알렉스의 물음.
스텔라가 애써 침착한 투로 대답했다.
“응... 조금 피곤해서 그래... 맛있게 먹구, 점심에 봐.”
“알았어...”
조용히 밥구멍을 닫은 스텔라는 비틀비틀 걸어 침대로 향했다.
요 며칠간 자꾸 이런다.
어떨 땐 따끔하고, 또 어떨 땐 시원했으며, 소변이 마려울 정도로 가렵기도 했다.
혹시 자궁 쪽에 이상이라도 생겼나?
지혁이 돌아오면, 의료기기에서 검사를 받아봐야 할 듯싶다.
삐비빅! 철컥!
이런저런 생각을 하던 스텔라는,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자 반색을 했다.
하지만 이내 미간을 좁혔다.
어제 지혁에게서 맡았던 그 냄새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다만 익숙했다. 누구의 것인지 대번에 알 수 있을 정도로.
‘아델라인 선배님...?’
냄새만으로 사람을 구별한다는 게 웃기지만, 스텔라는 확신을 가졌다.
지금 들어온 사람은 아델이 확실하다고 말이다.
“막내야~ 어디 있어?”
예상대로, 거실에서부터 아델의 발랄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천천히 상체를 일으켠 그녀가 말했다.
“저 여기 있어요...! 아델라인 선배님...!”
“들어가도 돼?”
이번엔 소리가 문 바로 바깥에서 들렸다.
아델이 문짝에 입을 대고 말하는 모양이었다.
픽 실소를 터뜨린 스텔라가 괜찮다고 말하자, 문이 열리면서 아델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스텔라는, 아델이 입은 옷을 보고 눈을 부릅떴다.
아델은 어깨라인을 드러내는 오프숄더 맨투맨 셔츠를 입고 있었다.
그것만이라면 그러려니 하겠지만... 하의가 없었다.
흰색 팬티만 입은 상태.
그 모습에 기겁한 스텔라가 아델을 나무랐다.
“서, 선배님...! 옷을 왜 입다 말았어요...!? 그러다 누가 보면 어쩌려고 그래요...?”
“이 층은 우리만 살잖아. 그리고 오버핏이라서 아래를 가려주는데... 괜찮아.”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경계심이 없어도 너무 없는 것 아닌가?
“그렇게 밖으로 나가실 생각은 아니시겠죠...?”
“응. 안 나갈 거야.”
방글방글한 표정으로 착한 대답을 하는데, 더 이상 뭐라고 할 수가 없다.
기다란 콧바람을 내뱉으며 답답했던 심경을 날려버린 스텔라가 물었다.
“그러면 다행이구요... 그런데 비밀번호는 어떻게 아신 거예요...?”
“네가 어제 알려줬잖아. 기억 안 나니?”
“아... 그때 취해서 알려드렸나보네요...?”
“응. 그래서 일어난 김에 놀러 왔어.”
허락도 받지 않고 무단으로 온 것임에도 화가 나지 않는다.
아델이라서 그런가?
아니, 세화든, 유리아든, 실비아든, 박사든... 심지어 어제 처음 만난 민지든, 누가 온다고 해도 기쁜 마음으로 환영할 것 같다.
“근데 막내야, 저 거실 옆에 있는 철문은 뭐야?”
아델의 물음에 정신을 차린 스텔라가 재빨리 머리를 굴렸다.
“아, 거긴... 쓸모없는 물건들을 집어넣는 창고에요.”
알렉스를 쓸모가 없는 물건이라고 지칭해버려서 그런가?
묘하게 흥분된다.
“그렇구나... 아랫배는 왜 만지고 있어?”
“이건... 갑자기 조금 아려와서요.”
“그래? 나도 그런 적 있는데. 콕콕 찌르는 것 같지? 기분이 좋다가도 막... 간지러울 때도 있고, 아플 때도 있고 그럴 거야.”
증세를 정확히 진단하는 아델에게 놀란 스텔라의 눈이 커졌다.
“어, 어떻게 아세요...?”
“지금은 어때?”
“지금은... 약간 아파요... 따끔해요...”
“그러면 내가 봐줄까?”
아델의 눈빛은 초롱초롱했다.
이 고통에 무언가 비밀이 있어 보이고, 해결책마저도 있는 것 같은데...
봐달라고 할까? 그래야겠다.
“네... 부탁드릴게요.”
“알았어. 그러면 변신해봐.”
“변신까지 해야 해요...?”
“응. 막내 네가 지금 느끼고 있는 고통은 나도, 세화도, 유리아 언니도, 실비아 언니도 다 겪어본 거야. 어디에 문제가 생긴 건 아니구, 이브... 아니... 흐흠...! 비스트 슬레이어의 특징이라고 보면 돼.”
아... 그래서 아델이 이 느낌에 대해 알고 있는 건가보다.
몸에 이상이 없다면야 안심이다.
표정을 편 스텔라는 아무런 의심 없이 디바이스를 터치했다.
화악!
변신을 완료하고 기운을 최대한으로 낮춘 스텔라는, 침대에 걸터앉으라는 아델의 조곤조곤한 말투에 순순히 자리를 옮겼다.
그러자 아델이 천천히 다가오더니,
“잠깐 실례할게?”
스텔라의 디바이스 뒤쪽을 만지작거리더니, 어떠한 버튼을 눌렀다.
그와 동시에,
스스슥!
신비로운 소리와 함께 스텔라가 입고 있던 슈트가 완전히 사라졌다.
디바이스 안으로 들어간 것이다.
심지어는 속옷마저도 없다.
순식간에 알몸이 된 스텔라가 황급히 자신의 중요부위를 가렸다.
“지, 지금 뭐하시는 거죠...!? 슈트는 왜...”
“아이 참... 봐주려면 어쩔 수 없잖니.”
“그... 슈트를 입은 상태로는 못 봐주시는 거예요...?”
그에 대답하지 않은 아델은, 스텔라의 뒤로 향했다.
가로로 되어있는 모서리에 걸터앉아 스텔라와 딱 달라붙은 아델.
그런 그녀의 행동에 갑자기 불안해진 스텔라가 잠깐만 기다리라고 말하려 할 때,
스윽.
아델이 치구를 막고 있는 스텔라의 손 안으로, 자신의 손을 들여보냈다.
그에 까무러칠 정도로 놀란 스텔라의 몸이 크게 떨렸다.
“서, 선배님...!”
“괜찮아. 자아...”
우우웅...!
곧이어 아델의 손에서 피어나오기 시작한 금빛 광채.
그것에 닿은 스텔라는, 자신의 온몸에 힘이 풀리면서 아랫배의 고통이 가시자 벙 쪘다.
“이게... 왜...”
“응, 응. 진정하구 받아들이렴.”
“아... 네에...”
성스러운 기운이 몸 안에 가득 들어오고 있다.
기분이 굉장히 좋다.
동료들이 아델의 힘은 특별하다고 했었는데... 이런 효과도 있었나?
그런데... 기운에 요사스러움이 섞여있는 것 같다고 느껴지는 건 왜일까?
“방금 네가 느꼈던 고통은 사랑이 극에 달했을 때 나타나는 현상이야. 지금 엄청 불같은 사랑을 하고 있어서, 아이테르에 잠깐 과부하가 온 거란다. 몸 전체에 퍼진 그 아이를 살살 달래주면 돼.”
눈이 나른해진 채로 아델의 기운을 쭉쭉 흡수하며 상념에 잠겨있던 스텔라는, 설명을 듣고는 아하 하는 탄성을 내뱉었다.
“그래서... 변신하라고 하셨던 거군요...”
“응. 기분 좋지?”
“네... 좋아요...”
전신이 정화되는 것 같다. 동시에 음욕이 확 퍼진다.
아델이 ‘사랑’을 언급한 순간부터, 머릿속에 생긴 지혁의 실루엣이 떠나질 않는다.
치료받고 있는데... 이래선 안 되는데...
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지혁을 갈구하길 멈출 수가 없다.
“후우... 후...♡”
저도 모르게 뜨거운 숨결을 내뱉은 스텔라.
그녀는 뒤에 있는 아델의 입꼬리가 쭈욱 올라가는 것을 눈치채지 못했다.
“옳지, 옳지... 전부 다 흡수하면 된단다.”
“네에... 선배님... 햐악...!?”
착한 아이마냥 고개를 끄덕이던 스텔라의 입에서 살쾡이 같은 신음이 흘러나왔다.
아델이 돌연 스텔라의 가슴 한쪽을 움켜잡았기 때문이었다.
치구에 대고 있던 손은 더욱 아래로 내려가서, 지혁의 물건만이 출입할 수 있는 은밀한 부위에 닿은 상태였다.
질겁한 스텔라가 아델의 손을 치우려고 했다.
“선배님...! 왜 이러세요...?”
“많이 흥분해있는 게 보여서, 정신 차리라구 만진 거야. 몸이 경직되어있으면 기운이 잘 들어가지 않아. 그러니까 힘 빼렴. 다 끝나가니까.”
덕분에 정신이 확 들긴 했다.
놀란 마음을 진정시킨 스텔라가 전신에 힘을 풀자, 아델이 그녀의 가슴에서 손을 떼어냈다.
그 이후 잠깐동안 스텔라의 하복부에 기운을 불어넣은 아델이 손을 털고 일어났다.
“수고 많았어. 이제 하나도 안 아프지?”
그 말에 스텔라가 자신의 하복부를 만지작거려보았다.
“네... 괜찮은 것 같아요... 다 끝난 건가요?”
“응.”
“선배님이야말로 수고 많으셨습니다... 그... 오해해서 죄송해요...”
“아냐. 내가 짓궂게 군 건데 뭐. 근데 막내야... 나한테 딸기 쉐이크 하나만 만들어줄래? 사실 그거 먹으려고 왔어...”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스텔라의 눈치를 보는 아델.
그 행동에 한없이 인자한 미소를 지은 스텔라가 대답했다.
“바로 만들어드릴게요, 선배님.”
재빨리 슈트를 소환한 스텔라는 부엌으로 나가 믹서기를 꺼냈다.
‘상쾌하긴 한데...’
이 성욕은 대체 어찌해야할지 모르겠다.
이게 아델이 말한 극에 달한 사랑인가?
하긴, 자신은 지혁 대신 죽을 수도 있다고 생각할 정도로 그를 사랑하긴 한다.
‘돌아오면 안아달라고 해야지...’
그리 생각한 스텔라는 냉장고에서 딸기를 꺼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