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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소녀물 야겜 속 최종보스가 되었다-449화 (449/471)

〈 449화 〉 굴욕

* * *

어제 신이 나선 내게 들이댔던 스텔라는 얕게 코를 골기까지 하며 잠에 빠져있었다.

그녀의 허리를 콕콕 찌르자,

“우웅...”

귀여운 소리를 내며 팔을 휘적거렸다.

무언가 잡고 싶은 듯한 행동.

피식한 나는 그녀가 발로 찬 이불을 덮어주고 거실로 나왔다.

부엌으로 가서 오늘 알렉스가 먹을 아침을 만들고 있는데, 스텔라가 눈을 부비적거리며 밖으로 나왔다.

피곤에 찌든 눈으로 내게 와선 안기는 그녀의 엉덩이를 토닥거려준 내가 말했다.

“잘 잤어?”

“응... 지금 만들고 있는 거... 알렉스 아침이야?”

“맞아.”

“토스트에 계란이 끝이야...? 너무 적은 것 같은데...”

“그런가? 어제 힘 많이 썼을 테니까 더 해줘야 되나?”

그 말에 스텔라의 눈빛이 흉흉해졌다.

“그거 얘기하지 마...!”

어제 발정제를 처먹은 알렉스가 자위를 하는 모습을 보면서 짜증이 솟구친 게 보이긴 했다만... 그렇게나 싫었어?

앞으로 더 혐오하게 해줄게.

“알았어. 근데 덜렁아.”

“왜애...!”

“피곤하지만 미안한데... 내가 어제 너 재우고, 알렉스가 왜 날 그렇게 증오하나 생각해봤거든?”

“아... 응응. 그러면 소파에서 얘기할까?”

“잠깐만... 마저 마무리하고.”

스크램블을 대충 볶은 나는, 가스를 끄고 스텔라를 소파에 데리고 와 앉혔다.

이후 본격적으로 음모를 꾸몄다.

“알렉스는 널 엄청 사랑해. 변한 지금도 그것만큼은 여전해. 맞지?”

“그야... 응...”

스텔라가 지금 알렉스에게 마지막 기회를 주고 있는 이유 중 하나도, 알렉스가 얼마나 자신을 사랑하는지 알기 때문이다.

자신을 향한 사랑으로 정신을 차리지 않을까 하는 희망, 기대...

그것을 품고 있는 상태다.

이제부터 저 알렉스의 누나를 향한 사랑을 재해석해 스텔라의 머리에 주입시키면 된다.

“그런데... 최근 그 사랑이 엄청 삐뚤어졌어. 날 때렸고, 범죄자들과 결탁해서 폭행까지 하려고 했지. 처음 알렉스에게 맞았을 때, 난 너한테 처음으로 생긴 남자친구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라고 생각했어. 근데...”

“근데?”

“날 납치까지 하려 했을 때 다른 생각을 해봤지. 알렉스가 날 죽이고 싶을 정도로 질투해서 그런 짓을 게 아닐까 하고...”

“질투...?”

“응. 누나의 사랑이 다른 사람에게 가고 있어서 하는 질투가 아니라... 사랑하는 여자를 빼앗겼다는 부분에 대한 질투.”

내 설명을 듣고 있던 스텔라의 표정이 구겨져갔다.

“무슨 소리야...?”

여기서 잠시 텀을 둔 나는, 스텔라가 내 팔을 흔들며 재촉하자 마지못한 척 이야기를 꺼냈다.

“어쩌면 알렉스는 널 가족으로서 사랑하는 게 아니라, 한 명의 여자로서 사랑하고 있는 걸지도 몰라.”

“뭐어어...?”

입을 떡 벌리는 그녀.

엄청난 충격을 받은 얼굴이다.

한동안 침묵으로 일관하던 그녀의 입이 어렵사리 열렸다.

“마, 말도 안 돼... 그런 일은 있을 수가 없어... 나, 나랑 알렉스는 거의...”

“그래. 거의 20년이 넘도록 함께 살았지. 그래서 더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해. 처음엔 그저 누나, 동생 사이로 지냈겠지만... 매일같이 널 보면서 이성으로서의 사랑을 키워나간 거지.”

“오빠...! 아니야...! 그건 오빠의 착각이야...”

“글쎄, 과연 착각일까? 인간은 자신과 비슷한 유전자를 지닌 이성에게 더 끌린다는 연구 결과도 많아. 물론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확실해지지 않은 가설일 뿐이고, 반박도 많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해.”

스텔라는 이젠 눈까지 끔벅거리고, 고개를 가로저으면서 내 말을 부정했다.

그런 그녀의 뺨을 어루만진 내가 말했다.

“만약 내가 틀리다고 생각하면... 한 번 확인해보는 게 어때?”

“화, 확인...? 혹시 의료기기에 집어넣자는 뜻이야?”

“아니. 의료기기에선 그런 것까진 알 수 없어.”

“그럼 어떻게...”

“너만 괜찮으면 괜찮은 방법이 있긴 한데...”

“나만 괜찮으면...? 내가 직접 해야 되는 일이야...?”

“음... 직접까진 아니고, 간접적으로...”

나는 스텔라에게 내가 계획하고 있던 생각을 말해주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눈이 점점 크게 뜨인 스텔라.

내가 마지막 이야기를 마쳤을 땐, 그녀는 수차례나 헛웃음을 켜며 날 황당하게 쳐다보고 있었다.

“진심이야...?”

“네 선택에 따를게. 네가 그렇게나 확신한다면... 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지 않아?”

“.....”

양손으로 자신의 얼굴을 감싼 채 깊은 고민에 빠진 스텔라.

얼마 후 소파에서 벌떡 일어난 그녀가 자신의 방으로 향했다.

할 생각이구나. 잘 선택했어.

아직 알렉스의 몸속에 미량 남아있는 발정제가 날 도와줄 거다.

@@

철컹!

밥구멍을 내리자, 알렉스가 재빨리 달려온다.

“누나...! 나 책 진짜 열심히 읽었는데... 검사해줄 거지...?”

“.....”

목소리가 약간 상기되어있다.

어제 자위행위를 한 여운이 아직도 남아있는 건 아닐 텐데...

“너 어제 뭐했어?”

“뭐하긴...! 책 읽었지...”

“.... 지금 들어갈 테니까 침대에 앉아있어.”

“아, 알았어...! 얌전히 있을게.”

알렉스의 발걸음이 약간 멀어지는 소리가 들리자, 스텔라가 도어락 비밀번호를 입력하고 문을 열었다.

철컥­!

묵직한 소리와 함께 천천히 열리는 철문.

침대에 공손히 앉아 자신을 바라보는 알렉스가 보인다.

거실의 광경이 보이지 않도록 틈을 약간만 벌리고 들어간 스텔라는, 문을 닫고 알렉스의 얼굴을 살폈다.

평소보다 약간 붉어져있다.

무언가를 한 것처럼.

설마 새로운 성욕이 끓어올라서, 아침에 한 번 해버린 건 아니겠지?

그러한 생각을 하며 방 냄새를 맡던 스텔라는, 알렉스의 얼굴이 더 빨개지는 것 같자 흠칫했다.

“.... 왜 그래? 어디 아파?”

“아니... 그게 아니라... 그냥 몸이 조금... 감기 걸린 것 같아...”

어제까지만 해도 팔팔하던 애가 감기?

방 안의 온도도 일정하게 유지되고 있는 상태인데... 신용하기 힘들다.

설마 지금 자신이 입고 있는 옷을 보고 부끄러워진 건가?

맨다리를 거의 드러내고 골반의 굴곡까지 노골적으로 보여주는 팬츠와,

가슴과 허리 라인에 딱 달라붙는 티셔츠.

평소에는 입지도 않는, 다소 야하다고 할 수 있는 옷을 입었는데... 바로 반응이 온다.

지혁이 말했던 게 진짜인가?

마음속에서 의심의 싹이 새록새록 피어오른다.

“흐흠...”

한 차례 헛기침을 한 스텔라가 책상에 있는 플라스틱 의자를 빼서, 알렉스의 맞은편에 두고 앉았다.

그리고는 지혁이 말했던 대로 한쪽 다리를 꼬며, 뒤쪽 허벅지를 보여주었다.

그러자 알렉스의 시선이 자신의 다리로 갔다가 금세 원위치 됐다.

그 미세한 반응을 캐치한 스텔라는, 지혁의 말이 점점 사실로 다가오는 것 같자 눈을 질끈 감았다가 떴다.

친누나에게 사랑이라는 감정을 품은 동생...?

자신의 상식으로는 이해가 안 된다.

‘아니야... 아닐 거야...’

애써 정신을 가다듬은 스텔라가 물었다.

“그건 외웠어?”

“그거...? 아... 그냥... 외우긴 했는데... 띄엄띄엄... 대, 대신 책은 진짜 집중해서 읽었어.”

책보다는 사과문이 더 중요한데, 알렉스는 지혁을 향한 증오 때문에 그걸 뒷전으로 두고 있다.

점점 추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데, 이대로 계속 가다간 동생은 영영 자신의 손을 떠나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지 않도록, 강제로라도 교육시키자.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낸 스텔라가 알렉스를 찍기 시작하며 말했다.

“책 내용은 이따가 물어볼 거야. 지금 네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사과야. 지금부터 영상 촬영할 테니까, 무릎 꿇고 지혁이 오빠한테 사과해. 사과문 그대로 읊어.”

그 말에 알렉스가 펄쩍 뛰며 격한 반응을 보였다.

“누나...! 그건...”

“못하겠어?”

“.....”

주먹을 불끈 쥔 알렉스의 이빨이 뿌드득 갈렸다.

엄청난 분노를 느낀 듯 온몸을 부르르 떨던 그는,

턱.

침대에서 내려오더니 순순히 무릎을 꿇고 앉았다.

그 모습을 본 스텔라의 가슴이 좋은 쪽으로 울렁거렸다.

‘뭐지...?’

왠지 모를 희열이 전신에 쫙 퍼진다.

한국에 온 이후 자신의 말은 듣지도 않았던 사고뭉치 동생을 무릎 꿇렸다는 것에 대한 정복감,

상황을 무탈하게 넘기기 위해서 억지로 저런 행동을 하는 그를 향한 한심함,

지혁에게 저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는 기대감...

이 외에도 온갖 복합적인 감정이 파도처럼 밀려들어, 스텔라의 뇌리에 쾌감을 가져다주었다.

끓어오르는 흥분감을 간신히 억누른 스텔라가 말했다.

“시작해.”

“.... 지혁이 형한테 죄송하다는... 마,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제가... 형을 너무 싫어하는 데에 눈이 멀어 못할 짓을... 했습니다... 그...”

우물거리는 알렉스.

대사가 기억이 나질 않나보다.

책상 위에 꾸깃하게 접혀진 사과문을 보고 인상을 찌푸린 스텔라는, 그것을 알렉스에게 주려다가 멈칫했다.

현재 알렉스는 강제적이긴 하지만 아주 좋은 반응을 보여주고 있었다.

강압적으로 가는 게 정답이었던 것 같은데... 그렇다면...

생각을 마친 스텔라는, 사과문을 알렉스의 앞에 휙 던졌다.

툭.

“오늘은 보면서 말해도 좋아.”

“.....”

알렉스의 표정이 완전히 일그러졌다.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사과문을 집고 펼친 알렉스가 말했다.

“저는... 버, 범죄자들과 함께... 결탁해서 지혁이 형에게 폭력을 휘두르려고... 했으며... 최근엔 납치까지 사주하려고 했습니다... 저는...”

“너는?”

“.....”

“너는?”

재차 재촉을 하는 스텔라를 흘끗 바라본 알렉스가 억지로 말을 쥐어짜냈다.

“저는... 쓰레기... 입니다...”

알렉스가 눈치채지 못하도록 침을 꼴깍 삼킨 스텔라의 코에서 후끈한 바람이 훅 하고 새어나왔다.

패배감과 열등감으로 젖어버린 동생의 모습을 보고 이러한 감정을 느끼다니?

온몸이 너무 짜릿하다.

여기서 나가면 지혁에게 안겨야겠다.

“그 다음.”

“진심으로 반성하고 있을 테니... 부디 용서해주신다면 감사하겠습니다... 누나가 허락해준다면... 형을 한 번 뵙고 제대로 된 사과를 드리고 싶습니다...”

사과문을 다 읽은 알렉스의 머리가 바닥에 닿을 정도로 내려갔다.

그 모습에 다시 한 번 흥분이 찾아온 스텔라는 촬영종료 버튼을 눌렀다.

그리고는 무슨 생각에서였는지, 꼰 다리를 풀고 자리에서 일어나 알렉스의 앞으로 한 발자국 다가갔다.

“수고했어.”

조아리다시피 했던 머리를 든 알렉스가 지척까지 접근한 스텔라를 올려다보았다.

눈가가 푸들거리는 것이 대단한 굴욕을 느낀 모양이었다.

채찍을 줬으니 당근을 줄 차례.

알렉스의 앞에 쪼그려 앉은 스텔라가 방긋 웃었다.

“거 봐. 하면 되잖아.”

“.....”

“계속 이런 식으로 하면, 네 말을 들어줄 수도 있어.”

알렉스의 눈동자에 기대감이 서렸다.

“.... 약속해...?”

그렇게나 자기 자신의 이야기를 말하고 싶은 걸까?

애초에 사고를 치지 않았으면 이렇게까지 되지도 않았을 일이었는데, 웃기는 애다.

“응, 약속해. 대화도 고려해볼게.”

온화해진 말투로 알렉스를 격려한 스텔라는 다리에 힘을 주고 일어났다.

그러자 알렉스의 시선이 위를 향했다.

여전히 무릎을 꿇고 있는 알렉스,

그리고 제자리에 선 자신.

각도를 고려해볼 때, 아마 알렉스는 자신의 밑가슴과 명치를 보고 있을 것이었다.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지금 저 반응을 보니 지혁의 추측이 진짜인 것 같다.

그런데 왜일까? 아까까지만 해도 질색을 했는데, 지금은 아니다.

오히려 알렉스의 반응을 더 살펴보고 싶었다.

‘.... 궁금해서 이러는 거야...’

그래, 궁금한 것뿐이다.

알렉스가 진짜 자신을 여자로 보는지 제대로 확인해보고 싶은 것뿐이다.

그게 전부다.

절로 거칠어져오는 숨을 조용히 내뱉으며 마음을 다스린 스텔라가 말했다.

“아침밥은 지금 바로 넣어줄게.”

“아, 알았어... 내가 읽은 책에 대해선...”

“점심에 간단하게 요약해서 보고해.”

“그럴게... 빨랫감도 내어놓을까...?”

빨랫감이라...

그러고 보니 그게 있었구나.

원래라면 받아야 맞지만, 더럽게 느껴져서 만지기가 싫다.

“내일 수거함 갖다놓을게. 앞으로는 다 입었던 옷가지들은 거기다 넣어놔.”

“아, 응...”

하찮은 동생의 몸에서 생성된 액체가 묻어있는 옷.

그것들이 지혁과 자신이 사용하는 세탁기에 들어간다고 생각하니 소름이 끼친다.

수거함을 회수하면, 그 안에 있는 옷들은... 버리던지 해야겠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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