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46화 〉 감금
* * *
연구실로 혼자 돌아온 나는 의료실의 의료기기 앞에 앉아있는 스텔라를 발견했다.
의료기기 안에는 알렉스가 눈을 감은 채 미동도 없이 누워있다.
너는 알고 있을까? 통신기를 꺼놨어도 전투기에서 내보낸 초소형 정찰기가 모든 상황을 송출해주었다는 것을,
그리고 네가 알렉스의 뺨을 후려갈길 때, 일순 엄청난 마기가 피어올라 주변을 뒤덮었다는 것을.
솔직히 알렉스에게 폭력까지 휘두를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그때 박사와 함께 눈을 부릅뜨면서 서로 얼싸안았는데, 스텔라는 이 사실을 영원히 모르겠지.
조심스럽게 걸음을 옮겨 스텔라의 곁으로 갔음에도, 그녀는 멍하니 의료기기만 바라보고 있었다.
옆모습을 살펴보니 눈에 초점이 없다. 툭 건드리기라도 하면 그대로 무너져 내릴 것 같다.
나는 말없이 의료기기의 모니터를 살펴보면서 알렉스의 상태를 체크했다.
그러자 스텔라의 고개가 천천히 돌아갔다.
“.... 오빠...”
“회복은 잘 진행되고 있네. 걱정하지 않아도 되겠어.”
스텔라의 입이 삐죽 튀어나왔다.
당장에라도 울 것 같은 표정.
가슴에서부터 목까지 올라오는 먹먹함을 애써 삼키려는 듯, 그녀의 목젖이 계속 꿀렁거린다.
“아무것도... 안 물어봐...?”
한참을 그러고 있는 스텔라의 물음.
부드러운 미소를 지은 나는, 따뜻한 생수를 꺼내 뚜껑을 땄다.
그리고는 스텔라의 입가에 가져다댔다.
내 움직임에 따라 서서히 들리는 스텔라의 고개.
그녀에게 약간의 물을 먹여준 내가 말했다.
“대충이나마 눈치채긴 했는데... 나중에, 네가 준비됐을 때 말해줘.”
수분이 들어가니 심신이 조금 안정되었던 걸까?
스텔라의 눈에 생기가 약간 돌아왔다.
“그 조직은... 소탕했어...?”
“다 끝났어. 이제 그 조직은 다신 일어나지 못할 거야.”
“선배님들은 뭐라셔...? 나한테 실망하시지는 않았어...?”
“그런 기색은 전혀 없었어. 오히려 걱정을 하고 있었지.”
“.... 오빠.”
“응.”
“.... 알렉스가... 흐윽...!”
참아왔던 눈물을 터뜨리는 스텔라.
나는 그녀를 소중한 듯 안아주었다.
“알렉스가... 그 조직의 조직원... 흐으윽... 이었어... 오빠를... 노렸던... 것도... 우윽... 알렉스가...! 한 일이었... 흐아아아앙!”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고 대성통곡을 터뜨리고 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꺽꺽거리는 소리를 내기 시작하는 그녀.
목이 확 메여온 듯했다.
이정도로 우는 건 처음인가?
멘탈에 타격이 정말 심하게 왔구나. 내가 상상하는 그 이상으로.
“미안해...! 오빠아... 허어어엉...! 미안해...!”
“우리 덜렁이... 마음씨가 너무 예쁘다. 이렇게 착하면 어떡하냐...”
“흐으으응... 흑... 후아아아아앙!!”
그렇게 오랜 시간동안 펑펑 울어대던 스텔라는, 아내들이 본부에 도착할 즈음 눈물을 멈췄다.
눈 밑을 허겁지겁 닦아내고는 의료실 밖으로 나간 그녀가 아내들에게 고개를 꾸벅 숙였다.
“죄송합니다...”
이후 손을 공손히 모으고 꼼지락거리며 자신의 불안한 마음을 여과 없이 표출했다.
그런 그녀에게 가장 먼저 다가간 사람은 실비아였다.
스텔라의 손을 아주 조심스럽게 포갠 실비아가 물었다.
“의료기기에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 알려줄 수 있을까?”
“.... 제... 동생이에요...”
“그렇구나... 많이 힘들었겠다.”
그 한 마디만을 듣고 돌아가는 사정을 파악한 듯한 실비아의 인자하기 그지없는 말투에, 스텔라의 눈이 다시금 젖어갔다.
스텔라의 이마에 애정이 가득 담긴 키스를 해준 실비아가 사과했다.
“미안해. 널 그곳으로 보내는 게 아니었는데.”
“아, 아니... 히이잉... 에요... 제가... 간다고... 한 건데에...”
실비아는 스텔라를 꼭 안아주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다른 동료들 또한 스텔라를 소중한 동생을 대하듯 안아주었다.
특히 아델의 경우는 같이 울기까지 하며 스텔라의 처지에 공감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녀들의 행동에 온기를 느꼈을까?
스텔라의 안색이 조금 밝아졌다.
여전히 울고는 있지만 입가에 미소를 띤 그녀는, 동료들에게 인사를 하고는 내게로 돌아왔다.
“알렉스는... 치료 끝났어...?”
“다 끝났어. 수면제만 투여해놓고 데려가자.”
“수면제...?”
“하루에서 이틀 정도는 안정을 취하는 게 낫다고 생각해서.”
“.... 오빠는 알렉스가 오빠한테 못할 짓을 했는데도... 용서할 수 있다고 생각해...? 화나지 않아...?”
오늘 일로, 스텔라의 악의는 그 크기를 상당히 불렸을 것이다.
이제부터 진짜 본색을 드러낼 때가 됐다.
살살 유도해보자. 알렉스를 파멸로 이끄는 길로.
“내 감정을 지금 얘기하는 건 아니라고 봐. 한 가지 확실한 건, 난 네 뜻에 따른다는 거야. 너는 지금 알렉스를 치료하고 싶어 해. 그러니까 기꺼이 따를게.”
“.... 나 오빠 옆에서 잘래... 피곤해...”
“그래. 돌아가면 바로 자자.”
“응... 그리고 오빠한테 부탁이 있어...”
저런 말을 하는 스텔라의 표정엔 굳건한 결의가 서려있었다.
무언가 결심했구나.
오늘 알렉스에게 폭력까지 휘두른 모습을 보여주었던 너니까... 그 어떤 생각을 하든지 전부 들어줄게.
“돌아가서 얘기할까?”
“오빠는... 무조건 내 편이지...?”
“물론이야.”
@@
“끄응...”
머리가 깨질 듯 아프다.
몸에 힘이 잘 들어가지 않는다.
힘겨운 신음을 내뱉은 알렉스는 억지로 상체를 일으켰다.
‘여긴...’
익숙한 이불과 냄새... 자신의 방이다.
머리를 천천히 털어낸 알렉스는, 본능적으로 침대에서 나오려다가 모든 움직임을 멈췄다.
자신이 정신을 잃기 전에 일어났던 사건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 아...”
마약과 난교 파티를 벌이던 자신을, 비스트 슬레이어 로제로 변신한 누나가 보았다.
‘누나가...’
누나가 지구를 지키는 영웅이었다니...
있을 수가 있는 일인가? 믿어지지 않는다.
꿈이라도 꾸는 게 아닐까 싶었으나... 자신이 목도한 건 모두 진실인 것 같았다.
그렇지 않고서야 기억이 이렇게나 선명할 리 없을 테니까.
대체 언제 비스트 슬레이어가 된 거지?
일단 미국에 있을 때는 아니다.
그렇다면 한국에 있을 때 비스트 슬레이어 본부의 선택을 받았나?
무슨 이유로?
오랜 시간 혼자 상상의 나래를 펼쳐보던 알렉스는, 답이 나오질 않자 자조적으로 욕을 내뱉었다.
“.... 씨발...”
지난날이 정말 후회됐다.
어떤 식으로 비스트 슬레이어가 된 건지는 모르지만, 누나는 마물, 범죄와 싸우며 지구를 지키고 있는데...
자신이란 놈은 범죄조직에 들어가 온갖 병신 같은 짓을 다 하고 다녔으니...
“누나...”
동료가 쏜 총을 피한 누나의 눈동자가 안타까움에서 혐오로 물들어갔을 때, 마음이 무척 쓰렸었다.
처음으로 자신의 뺨을 갈긴 누나가 이해될 정도다.
송지혁을 노렸다는 얘기만큼은 듣지 않았길 바라지만, 아마도 들었을 가능성이 높다.
자신은 진심으로 망한 것이다.
한숨을 푹푹 내쉬며 뺨에 손을 올려본 알렉스는, 붓기가 전혀 없자 의아해했다.
분명히 제대로 맞았었고, 목뼈가 부러지는 소리를 듣고 정신을 잃었었는데... 왜 멀쩡하지?
이해할 수 없는 일 투성이다.
누나에게 물어보면 알려줄까?
‘근데 빨간색 눈은 뭐지...? 각성 같은 건가...?’
분명히 누나의 홍채가 빨개졌었는데... 모르겠다.
일단 천천히 생각을 하면서 상황을 정리해보자.
그리 생각한 알렉스는 목을 이리저리 꺾다가 움찔했다.
방 구조가 바뀌어있었기 때문이다.
‘뭐지...?’
방탄유리인지 뭔지 두껍게 변한 창문은 열쇠가 있는 고정 장치로 고정되어있었다.
그리고 문 중앙엔 마치 죄수에게 식사를 줄 법한, 가로로 기다란 네모난 공간이 덮개 같은 것과 함께 생겨나있었다.
그뿐이랴? 문의 재질은 강철이었고, 문고리 대신 도어락이 설치되어있다.
현관문이 아니라, 자신의 방 문에 말이다.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어리둥절해하던 그는, 도어락에서 삑삑거리는 소리가 나자 척추를 바짝 세웠다.
덜컥.
곧이어 문이 열리며 스텔라가 들어왔다.
일순 밝게 웃으려던 알렉스는 사태의 심각성을 제대로 깨닫고 표정을 굳혔다.
당장 사과부터 박아도 모자랄 판인데 실실 쪼갰다간... 상상하기도 싫은 일이 일어날 거다.
“일어났네...?”
핼쑥해진 스텔라를 보니 알렉스의 가슴이 미어져왔다.
어떻게 말을 꺼내야할지 몰라 가만히 있던 그는, 누나가 종이 한 장을 자신에게 내밀자 그것을 받아들였다.
“네 현재 상태를 진단한 결과야. 다행히도 네 몸에 있는 마약성분을 전부 제거했어. 앞으로는 중독 걱정 같은 건 하지 않아도 돼.”
“.....”
어떻게 제거했냐고 묻고 싶지만, 닥치고 있자.
지금은 자신이 그 어떠한 말을 해도, 누나는 들어주지 않을 테니까.
사과부터 하자.
“누나...”
“조용히 하고 있어.”
냉랭하기 짝이 없는 목소리에 알렉스의 눈이 커졌다.
온몸에 소름이 돋아난다.
누나가 이런 말투를 할 수 있었던가?
스텔라의 눈엔 자신을 향한 정이 단 하나도 남아있지 않았다.
아니, 깊숙한 곳에 약간이나마 있긴 했다.
하지만 그마저도 거의 꺼져가고 있었다.
이토록 차가운 누나에게 도저히 적응이 되지 않는다.
허나 이해는 됐다.
그만큼 자신은 쓰레기 같은 짓을 했고, 그 모습을 누나에게 보였다.
“내가 여기 온 건, 네게 지시를 내리기 위해서야.”
“....?”
“앞으로 여기서 살아. 밥은 문 밑에 만들어놓은 구멍으로 줄 거고, 다 먹은 밥그릇은 다음 식사시간 때 수거해갈 테니까 받침대에 올려놔. 받침대를 내리는 방법은 여기 이걸 당기면 돼.”
“어...?”
“컴퓨터랑 휴대폰은 치웠어. 네가 또 쓸데없는 짓을 할까봐. 대신 하루에 책 한 권씩 넣어줄 테니까 읽어.”
지금 누나가 뭐라고 하는 걸까.
안 그래도 정신이 없는데, 점점 더 복잡해지는 것 같다.
그런 알렉스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스텔라는 여전히 싸늘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네가 진심으로 반성하고 있다는 게 보일 때 풀어줄 예정이야. 그게 얼마나 걸릴지는 너 하기 나름이고, 판단은 내가 해. 1년이 지나도 그대로인 것 같으면, 너는 여전히 여기 있어야 해.”
“.....”
“이건 네 마지막 기회야. 명심했으면 좋겠어. 어차피 내 말은 귓등으로도 안 듣겠지만.”
“.....”
“불만 있으면 지금 말해. 당장 감옥으로 보내줄게.”
“누, 누나... 난... 먼저 사과를 하고...”
“그만. 이제는 안 속아. 그리고 틈 날 때마다 이거 외워둬.”
알렉스의 말을 끊어버린 스텔라가 그의 앞으로 쪽지 한 장을 던졌다.
거기엔 여러 여러 문장이 적혀져있었다.
그것들을 읽어본 알렉스가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쪽지의 내용이 자신이 그토록 증오하는 송지혁을 향한 사죄의 말이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누나의 글씨체였다.
스텔라가 직접 이 대사를 짰다는 뜻이다.
“누나...! 송지혁은...”
“또 시작하려는 거야?”
“.....”
송지혁... 송지혁!
그 개새끼가 누나를 유혹한 게 틀림없다.
누나가 이렇게 변한 이유는 백 퍼센트 그놈 때문이다.
이제부터 나쁜 짓은 하지 않는다고 해도, 그 새끼만큼은 용서가 안 된다.
찢어 죽여 버려야 한다.
주먹을 꽉 쥐며 살의를 다지는 알렉스.
그런 그를 쳐다본 스텔라는 기다란 한숨을 내쉬었다.
그에 퍼뜩 정신을 차린 알렉스가 손에 힘을 풀었다.
“누나...”
“내가 어디 소속인지는 이제 너도 잘 알지?”
“.....”
“대답해. 알아? 몰라?”
“아, 알아...”
“그러면 네가 쓸데없는 짓을 하려고 할 경우, 어떻게 되는지 대충 예상이 가지? 그러니까 얌전히 있도록 해봐. 지금 밥 차리고 넣어줄 테니까 기다려.”
통보하듯 말한 스텔라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알렉스의 방을 나섰다.
“기, 기다려...! 할 말이...”
쿵!
일부러 강하게 문을 닫자, 알렉스의 목소리는 더 이상 들려오지 않았다.
문에 등을 기댄 스텔라는 그대로 주저앉았다.
“하아...”
극단적인 조치를 주장하고 이틀간 알렉스의 방을 개조했지만, 마음이 쓰라리지 않은 건 아니었다.
하지만 예전처럼 풀어준다면, 알렉스는 또 다시 사고를 칠 것이다.
그의 교화를 위해선 완전한 감시를 통한 지배가 최선이라고 본다.
‘마지막이야... 더 이상은 안 돼... 지쳤어...’
알렉스를 보면 지혁을 비롯한 동료들과 보냈던 행복한 시간이 와르르 무너지는 기분이었다.
양아치 같은 행동을 받아주는 것도 한두 번이어야지... 동생을 그대로 놔뒀다간 자신이 먼저 미쳐버렸을지도 몰랐다.
자신은 성인군자가 아니다. 그렇게 될 생각도 없고.
그러니 이번이 마지막이다.
각오했다. 동생이 예전처럼 돌아오려는 기색이 없다면 끝이다.
“괜찮아?”
어느 샌가 다가온 지혁의 걱정스런 물음에, 스텔라가 자리에서 일어나 그의 품에 안겼다.
“오빠... 나 잘한 거 맞지...? 그치...?”
지혁을 향한 스텔라의 말투는 알렉스를 대할 때의 그것과는 완전히 달랐다.
사랑이라는 늪에 완전히 푹 빠진 여자의 목소리처럼 애교가 있었고, 순했다.
“응, 잘했어.”
흔들림 없는 지혁의 목소리를 들은 스텔라가 생각했다.
지혁과 동료들 덕분에 위태로웠던 감정을 이틀 동안 잘 추스를 수 있었다.
자신은 자신을 믿어주는 이런 사람들과 함께해야한다.
자신은 행복할 자격이 있는 사람이다... 라고.
“카메라는? 잘 나와...?”
“잘 나오고 있어. 볼래?”
“볼래.”
소파로 스텔라를 데리고 간 지혁은, 닫혀있는 노트북을 열어 무릎 위에 올려놓았다.
노트북 화면 안엔 선명한 컬러로 알렉스의 방 안이 비춰지고 있었다.
알렉스가 볼 수 없도록 설치된 카메라가 영상을 송출해주고 있는 것이다.
“급하게 설치하느라 음성은 안 나와. 나중에 더 개량할게.”
“응.”
화면에서 알렉스가 벽을 쾅! 하고 치는 게 보였다.
분에 겨워하는 행동.
그 모습을 본 스텔라의 미간이 구겨졌다.
‘저럴 줄 알았어.’
기대치가 낮으니 뭔 짓을 하든 화가 나지 않는다.
교화하려면 얼마나 걸릴까? 앞날이 캄캄하다.
어쩌면 일치감치 포기해버리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
일순 극단적인 생각을 해버린 스텔라는, 고개를 절레절레 가로젓고는 주방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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