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45화 〉 절연의 신호탄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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퍽!
단말마조차 내지르지 못하고 쓰러지는 조직원.
수도로 조직원을 내려쳐 기절시킨 스텔라는, 그의 코에 손가락을 대어보았다.
숨을 쉬고 있다. 다행이다.
안도한 스텔라는 멀찍이 서선 하품을 하고 있는 아델을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통신기에 손을 가져갔다.
“선배님, 저 다녀올게요.”
하아암... 으응? 잘 다녀오렴.
발랄하게 손을 흔드는 아델에게 간단한 목례를 한 스텔라가 조직원의 주머니에서 열쇠를 꺼냈다.
이후 굳게 닫힌 철문을 열었다.
스으윽...
삐걱거릴 줄 알았는데 기름칠이 잘 되어있는지 소리조차 나지 않는다.
눈앞에 펼쳐져있는 건 양옆에 방이 쫙 늘어서있는 기다랗고 넓은 복도.
이제부터 이곳에서 난교를 벌이고 있는 범죄자들을 혼자 처리해야한다.
일단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복도를 지나다니는 정찰조를 처리하는 것.
조직 바깥에 있는 사람들은 이미 죄다 기절시켰으니, 남은 사람들을 마무리하고 서로 연락을 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생각을 마친 스텔라는, 복도 끝 코너에서부터 걸어오는 조직원이 보이자마자 발을 놀렸다.
팟!
최대한 힘을 제한했음에도, 눈 깜짝할 사이 조직원의 얼굴이 가까워졌다.
언제나 느끼는 거지만 아이테르의 힘은 너무나도 신기했다.
자신이 이렇게 초인적인 힘을 발휘할 줄 그 어떤 누가 예상했을까.
아, 지혁을 비롯한 동료들은 대충이나마 알고 있었겠다.
뻑!
둔탁한 소리를 시작으로, 복도에 있던 모든 정찰조가 스텔라의 손에 쓰러졌다.
방 안에서 누가 나올까 걱정스러웠지만 그런 일은 전혀 없었다.
마약에 취해 섹스에 빠지느라 정신을 못 차리는 모양이었다.
“선배님, 복도 정리 끝났어요.”
잘했어. 다시 봤네.
무심한 듯한 실비아의 칭찬에 기뻐한 스텔라가 말했다.
“이제 시작하겠습니다.”
남녀 모두 잡아야하는 거 알지?
“알아요.”
그래. 특이사항 있으면 바로 얘기해.
“네, 선배님.”
통신을 종료한 스텔라는 자신과 가장 가까운 문에 귀를 대어보았다.
방음이 잘 된 방이었지만, 변신하고 민감해진 청력을 최대한 집중하니 희미한 소리가 들려왔다.
아아아...♡
쾌락으로 가득 찬 여자의 목소리.
성관계가 아니라 마약을 함으로서 나오는 신음 같다.
좋지?
응... 이거 장난 아니야... 바로 다시 하자... 벗어 빨리...
마약 같은 걸 대체 왜 하는 걸까.
한 번 하면 돌이킬 수 없다는 선례가 무척 많은데... 그렇게나 좋은가?
속으로 한숨을 푹 내쉰 스텔라는 문고리에 손을 가져가보았다.
그러자 문고리가 그대로 내려갔다.
조심성 없게 잠그지도 않았다.
밖에 있는 조직원들을 믿었나보다.
문을 슬며시 민 스텔라는 자그마한 틈으로 방 안을 살폈다.
과일안주와 양주, 다 쓴 일회용 주사기가 널브러져있는 식탁, 그리고 그 위에서 나체로 뒹굴고 있는 한 쌍의 남녀가 보인다.
푸짐한 뱃살을 출렁거리며 화장기가 짙은 여자 여자에게 성기를 삽입하고 있는 남자를 본 스텔라의 얼굴이 마구 찌푸려졌다.
남들이 하는 섹스를 구경하는 기분은 그야말로 최악이었다.
슬쩍 여자를 살펴보니 완전히 녹아버린 표정을 짓고 있었다.
마약 때문에 평소보다 더한 쾌감을 느끼는 것 같다.
눈을 약하게 뜬 채로 여자를 지켜보고 있던 스텔라는 문득 이러한 상상을 해보았다.
마약을 하고 지혁과의 섹스를 하면 기분이 얼마나 좋을까...? 라는 상상을.
‘내, 내가 미쳤지...!’
고개를 마구 털어내며 정신을 차린 스텔라는 곧바로 방 안에 난입했다.
발가벗고 있는 남녀의 맨살에 지혁이 만들어준 흰 장갑이 닿는 건 정말 싫지만...
그래도 어쩌랴. 이들은 자신이 꼭 잡겠다고 다짐했는데.
뻐억! 퍽!
얽혀있는 두 사람을 재빨리 기절시킨 스텔라는, 더러운 것을 본 양 인상을 사정없이 찌푸리며 다음 방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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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분간 수십 개나 늘어서있는 방의 절반 정도를 청소한 스텔라가 벽에 몸을 기댔다.
‘지친다...’
몸이 힘든 게 아니라, 정신이 지쳤다.
범죄자들을 처리하러 방에 들어갈 때마다 온갖 기행적인 성욕을 목도했기 때문이었다.
처음에 처리했던 그 두 남녀는 약과 중에서도 약과였다.
남자 둘이 여자 한 명을 겁탈하는 플레이를 즐기는 방은 기본이고,
여자 두 명이 남자를 벽에 매달아놓고 구두굽으로 성기를 마구 때리는 방도 있었다.
심지어는 딱 달라붙는 라텍스 복장을 입은 채, 엎드려 설설 기고 있는 뚱뚱한 남자의 등에 채찍을 갈기는 여자도 봤다.
이 외에도 다양하고 심한 BDSM 플레이를 봤는데, 화룡점정은 칼로 몸에 상처를 내며 쾌락을 얻는 피학성애자가 있는 방이었다.
진심을 담아 자해를 하며 온몸을 푸들푸들 떨고, 키스를 하는 남녀...
인간의 깊은 심연을 본 것 같아서 기분이 너무 꿀꿀했고, 혐오감이 무럭무럭 자라났다.
괜찮아? 문제는 없어?
귀에서 들려오는 지혁의 목소리에, 스텔라가 눈을 질끈 감았다 뜨며 애써 정신을 붙잡았다.
“응. 문제없어. 금방 처리하고 나갈게.”
혹시 힘들면 아델과 교대해도 돼.
아델이 저 범죄자들의 추악한 모습을 본다면 며칠간 악몽을 꿀 것이다.
그러니 절대 교대하지 않는다. 애초에 그럴 생각도 없었지만.
“아냐. 내가 할 수 있어. 실비아 선배님은? 다 끝내셨어?”
아직이야.
빠른 일처리를 선호하는 실비아가 지금까지 마무리를 못했다?
하찮은 인간 따위를 상대로?
그녀 또한 자신처럼 정신적 데미지를 받고 있는 모양이었다.
‘정신훈련... 이건 정신훈련이야...’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조금이나마 편해졌다.
다음 방의 문고리를 잡고 열려던 스텔라가 멈칫했다.
이번엔 어떤 미친 상황이 나타날까.
두렵다. 그러나 피할 수는 없는 일이다.
천천히 숨을 내쉬고 들이켜며 호흡을 고른 스텔라는 문을 아주 약간만 열었다.
그 방의 구조는 다른 방과 달랐다.
소파의 등받이 위치가 문 바로 앞에 있었는데, 그 때문에 남자 두 명의 머리통과 어깨만 보였다.
밝은 갈색머리, 그리고 검은색 머리를 지닌 두 명의 위에선, 목줄을 찬 나체의 여자 두 명이 천천히 허리를 흔들며 춤을 추고 있었다.
이성을 유혹하는 것 같은 야하기 그지없는 춤 말이다.
“똑바로 빨라니까 이 씨발년들아...”
검은색 머리의 남자가 돌연 아래를 향해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춤을 추는 여자들 외에도, 소파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 두 사람에게 봉사를 하는 여자들이 있는 듯했다.
‘이번엔 그나마 낫네...?’
춤을 추는 여자들의 머리카락과 몸 일부에 정액이 묻어있어 눈살이 찌푸려지기는 하지만...
앞선 방에 비하면 양반이었다.
그런데...
‘응...?’
갈색머리 남자의 뒤통수가 상당히 익숙했다.
게다가 저 어깨넓이와 근육... 집에서 옷을 훌렁훌렁 벗고 다니는 누군가와 닮아있다.
‘그럴 리는 없어.’
말도 안 되는 생각에 픽 웃어버린 스텔라가 몸을 움직이려고 할 때,
“야, 그 송지혁인가 뭔가 하는 새끼는 대체 왜 잡으려고 하는 거냐? 일반인 잡아다 뭐에 쓰려고?”
검은 머리의 남자가 지혁을 언급하며 갈색 머리의 남자에게 질문을 했다.
‘잠깐만...’
이거... 월척 아닌가?
검은 머리의 남자가 말하는 걸 들어보면 갈색 머리의 남자가 지혁을 노린 장본인인가본데, 이유를 들어보면 나중에 심문할 시간도 아낄 수 있게 된다.
좋아. 최대한 기척을 죽여 놓고 둘의 대화를 조금만 더 들어보자.
라고 생각하던 스텔라는, 이어지는 갈색 머리 남자의 목소리에 귀를 의심했다.
“형, 그 새끼 진짜 미친놈이야. 개또라이 새끼라니까? 형도 보면 알 테니까 저 믿고 잡아줘요.”
‘어...?’
20년간 함께 해왔던 사람의... 여기 있어서는 안 되는 사람의 익숙한 목소리가 들린다.
두근...! 두근! 두근!
전신에 소름이 끼치면서 심장박동이 빨라진다.
호흡이 절로 거칠어지는 건 물론, 시야까지 확 좁아진다.
방금 자신이 누구의 목소리를 들은 거지?
게다가 뭐라고...? 날 믿고 잡아달라고...?
그러면 지혁을 노린 사람이...
‘아, 아냐...! 아니라고...’
그냥 목소리가 비슷한 사람일 것이다.
그래야만 한다. 무조건 그래야만 해.
스텔라는 저도 모르게 귀로 손을 가져가 통신기를 껐다.
왠지 꺼야만 할 것 같아서였다.
“나야 항상 널 믿지.”
“감사합니다, 형님. 아... 이 씨발년 이빨 세우지 말라고 몇 번을 말하지? 뒤질래 썅년아?”
얼굴근육이 불개미가 문 듯 뜨겁다.
혹시 꿈이라도 꾸나...? 온갖 이상한 장면을 많이 목도해서 착란이라도 일으키고 있는 건가?
스텔라의 멘탈이 바스라지는 사이, 갈색머리 남자의 위에서 춤을 추던 여자가 스르륵 내려와 식탁으로 향했다.
그리고는 흰 가루를 자신의 가슴 위에 뿌리더니, 자그마한 막대를 남자에게 내밀었다.
막대를 받아든 남자는, 여자의 가슴 위에 그것을 대고 코로 훅 빨아들였다.
“쓰읍... 하... 씨발... 존나 좋네...”
소파 등받이 위에 양팔을 걸치고 나른한 한숨을 내뱉는 그.
저 건방진 말투마저도 자신이 알던 동생과 똑같다.
눈을... 아니, 귀를 씻고 들어봐도 알렉스의 것과 완전히 동일한 목소리는 스텔라의 이성을 순식간에 잠식했고,
그로 인해 정신이 나가버린 스텔라는 해서는 안 될 말을 내뱉어버렸다.
“아, 알렉스...?”
그녀는 지금 한 가지 생각밖에는 하지 않고 있었다.
확인하고 싶었다. 저 남자가 알렉스인지 아닌지를.
“뭐야?”
뒤에서부터 들려오는 목소리에, 방 안의 사람들이 화들짝 놀라선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스텔라는,
“아...”
동생이 눈을 부릅뜬 채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것을 확인하자마자, 눈앞이 아찔해졌다.
“넌...! 비스트...!”
다급하게 식탁에 놓인 권총을 집어 드는 검은 머리의 남자.
그는 곧바로 스텔라의 미간을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탕!
방 안을 쩌렁쩌렁 울리는 총성에, 스텔라의 정신이 일부 돌아왔다.
재빨리 머리를 틀어 총알을 피한 스텔라는, 검은 머리 남자의 뒤를 잡고 수도를 내리쳤다.
퍽!
“컥!”
짤막한 비명을 터뜨린 남자의 신형이 앞으로 쓰러졌다.
기절한 그를 쳐다본 스텔라의 입에서 거친 숨이 토해져 나왔다.
“하아... 하아...”
그녀의 시야는 언제부턴가 맺히기 시작한 눈물로 인해 뿌옇게 변한 상태였다.
그런 와중에도, 스텔라는 본능적으로 몸을 움직여 알렉스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을 기절시켰다.
퍼억! 퍽!
그렇게 알렉스에게 코카인을 흡입하라고 유혹했던 여자가 마지막으로 쓰러지자, 스텔라는 다시 알렉스를 돌아보았다.
“.....”
경악의 경악을 거듭하고 있는 그의 표정.
저건 비스트 슬레이어가 난입해서 그런 게 아니었다.
“누나...?”
알렉스는 너무나 분명하게도 스텔라를 알아보고 있었다.
아까 그녀가 알렉스를 불러서 목소리를 듣고 알아차린 게 아니라, 눈 때문이었다.
스텔라는 홍채가 백색으로 변했음에도 눈매는 여전했다.
그녀 특유의 순한 눈.
보고만 있어도 선한 영향력을 주는 것 같은 그 눈을 20년간 보고 자랐던 알렉스는, 로제로 변한 스텔라를 직접 마주하자마자 그녀의 정체를 단숨에 알아보았다.
“.....”
아무런 말도 없이 서로를 응시하는 두 사람.
수 초 정도밖에 안 되는 그 시간동안, 알렉스의 경악한 얼굴을 보던 스텔라의 눈동자에 담긴 감정이 시시각각으로 변했다.
온갖 감정이 휙휙 지나가던 스텔라에게 마지막으로 남은 감정은 단 하나.
바로 분노였다.
꿀럭!
“어...?”
알렉스가 흠칫하며 반 발자국 뒷걸음질을 쳤다.
스텔라의 순수한 흰색 홍채가 일순 시뻘겋게 변한 것 같아서였다.
그런 동생의 행동에 눈을 가라앉힌 스텔라는,
저벅. 저벅.
두려워하는 동생을 향해 천천히 다가가더니,
짜아아악!
그의 뺨을 아주 세게 갈겼다.
이후 비명조차 내뱉지 못하고 정신을 잃어버린 그의 멱살을 잡아, 구석으로 던져버렸다.
쿠당탕!
요란한 소리를 내며 TV를 떨어뜨리고는 바닥에 쓰러진 알렉스.
움찔, 움찔. 간헐적으로 떨리는 동생의 나체를 증오가 가득한 눈빛으로 쏘아보던 스텔라는, 그의 머리채를 잡고 방에서 나왔다.
동생이 죽이고 싶을 정도로 미움에도 불구하고 그를 대피시키기 위해서였다.
복도는 아주 조용했다.
총성 때문에 소란이 일어날 것 같았는데, 방마다 방음이 잘 되어있어 아직 눈치채지 못한 것 같았다.
그렇게 조용히 알렉스를 질질 끌면서 밖으로 나가려던 스텔라는, 복도 끝에서 아델이 달려오자 아랫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막내야! 막내야! 통신기가 왜...”
후다닥 달려온 아델은 스텔라와 그녀의 손에 잡혀있는 알렉스를 보고 눈을 크게 떴다.
“저게 뭐야...?”
아델은 알렉스의 얼굴을 본 적 없다.
이대로 얼버무리며 상황을 넘길까? 아니면 솔직하게 실토할까?
스텔라의 선택은 그 무엇도 아니었다.
그저 울먹거리면서 아델을 쳐다보는 게 다였다.
“선배님...”
“.....”
톡 건드리면 쓰러져버릴 것처럼 위태로워 보이는 스텔라.
그녀의 상태를 파악한 아델이 두 눈을 끔벅거리더니, 조용히 통신기를 껐다.
그 모습을 본 스텔라가 거의 흐느끼듯 호소했다.
“선배님... 저... 오늘은 이만하면 안 될까요...?”
그러자 아델의 고개가 작게 끄덕여졌다.
“응. 이쯤해도 돼. 수고 많았어.”
“죄송해요... 죄송해요...”
“나머지는 내가 처리할 테니까 얼른 가, 막내야.”
믿음직스러운 아델의 말에 참아왔던 눈물을 터뜨린 그녀는, 목이 메어 감사하다는 말도 못한 채로 아델을 스쳐지나갔다.
이후 밖으로 나오자마자, 알렉스를 어깨에 들춰 메고 발을 굴렸다.
뻐엉!
공기가 찢어지는 소리와 함께 솟구치는 스텔라의 신형.
뒷일 같은 건 생각도 하지 않고 있는 그녀의 목적지는 의료기기가 있는 본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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