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44화 〉 절연의 신호탄
* * *
“알렉스는?”
스텔라의 거실 소파 옆에 가방을 올려놓은 내 물음이었다.
스텔라가 가디건을 벗으며 대답했다.
“친구 집에서 자고 온다고 연락 왔어...”
친구 집이 아니란다.
지금 알렉스는 마르셀라의 명령 때문에 다른 일을 처리하러 갔거든.
“그 고등학교 친구? 연락하지 말라고 했었잖아.”
“이번 스케줄 때 보니까 서툴기는 해도 바뀌려는 모습이 보여서... 너무 구속하지는 않으려고 해.”
네가 이럴수록 알렉스가 범죄조직에 가담한 것을 발견했을 때, 어떤 판단을 하게 될지 궁금해지잖아.
“네가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근데... 꼭 가야겠어?”
범죄조직 소탕 건을 말함이었다.
자신의 부어오른 눈 밑을 콕콕 찔러보던 스텔라가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오빠, 차 안에서도 몇 번이나 그러더니 지금까지도 이래야 해...? 자꾸 가지 말라는 듯 말하는 이유가 뭐야?”
“그냥 며칠 쉬는 게 나을 것 같아서.”
“난 지금까지 오빠 말을 잘 들어왔잖아... 이번만큼은 오빠가 양보해줘.”
“알았어.”
“내가 실비아 선배님한테 참가하고 싶다고 말씀드릴 때, 오빠도 편들어 줄 거지...?”
“.... 그래. 그렇게 할게.”
잠깐 머뭇거리는 모습을 캐치한 스텔라가 가까이 다가와, 내 팔을 잡고 천천히 흔들었다.
“아 오빠아... 왜 하기 싫은 것처럼 말해... 나 못 믿어?”
콧소리가 섞인 목소리로 저리 말하니 뭐든 다 해주고 싶다.
내가 힘없는 미소를 터뜨리자, 스텔라가 마주 배시시 웃었다.
“해줄 거지...? 그치?”
“네가 원하는 대로 할게.”
“진짜지? 번복하기 없기다?”
“응. 약속해.”
망설임 없는 승낙에 뛸 듯이 기뻐한 스텔라가 까치발을 들며 내 목을 끌어안았다.
완전히 밀착한 채로 온몸을 배배 꼬는 것이, 지금 당장 관계를 갖고 싶은 모양이었다.
오늘 착잡했던 마음을 그렇게 해소하고 싶은 듯한데... 원하는 대로 해주자.
그녀의 귓가에 입술을 가져간 내가 작게 속삭였다.
“오늘 속옷 예쁜 거 입었어?”
“응... 오빠가 좋아하는 거...”
“진짜 내가 좋아하는 건 따로 있는데?”
“뭔데...?”
“나중에 서랍에 넣어놓을 테니까, 나 만날 때 입어.”
스텔라의 몸이 부르르 떨렸다.
어떤 디자인의 속옷인지는 모르겠지만, 무조건 야할 거라는 건 예상했겠지.
나는 벌써부터 살살 흥분하기 시작한 그녀의 손을 이끌고 알렉스의 방으로 향했다.
자연스럽게 내 손에 이끌려 발걸음을 옮기는 스텔라.
이젠 동생의 방에서 섹스를 하는 것에 일체의 거부감도 없는 모습이었다.
알렉스의 방 안으로 들어간 나는, 문을 활짝 열어놓은 채 침대에 스텔라를 쓰러뜨렸다.
그렇게 슬슬 애무를 시작하려고 할 때, 스텔라가 목을 길게 빼더니 날 만류했다.
“오빠... 잠깐만... 물어볼 게 있어.”
“말해.”
“오빠를 노리는 범죄자들 있잖아... 당장 잡아들여도 모자란데, 왜 지금까지 기다리고 있는 거야?”
네 정신건강을 위해서란다.
“조직원들이 다 모이길 기다리고 있는 거야. 조만간 파티를 한다는 정보를 입수했는데, 그때 한꺼번에 소탕하려고.”
“아... 그런 거였어...?”
납득한 스텔라가 이번엔 다른 질문을 했다.
“근데 오빠, 오빠도 아델라인 선배님의 동생을 봤어?”
“메릴? 봤어.”
“왜 나한테 미리 말 안 했어?”
악의가 충분히 퍼지기 전에 메릴을 만났다면, 넌 메릴을 마물로 생각했을 거잖아.
그랬다면 그녀를 귀여워하지 않고 싫어했겠지.
아델이 왜 마물을 데리고 있는지도 궁금해 했을 테고.
“난 처음에 메릴을 보고 엄청 놀라서 기절할 뻔했어. 상식을 벗어난 존재였으니까. 그래서 비밀로 하고 있었지. 네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 몰라서.”
“그랬던 거야? 진짜 오랜 시간동안 숨겼네...? 서운하게...”
이 대화를 이어나가면 끝도 없어진다.
나는 말없이 스텔라의 목에 진한 키스를 하며, 그녀의 입을 다물도록 했다.
**
“이번 사건으로 스텔라가 동생을 버릴 것 같아?”
세계연합의 모든 정보를 파악하고 있던 박사의 물음.
커피를 홀짝인 내가 단호하게 대답했다.
“아니. 부모를 버리며 패륜을 저지른 자식도 혈육이라는 이름하에 용서해주는 게 인간인데, 범죄에 가담한 정도로 스텔라가 알렉스를 놓아버리지는 않겠지. 하지만 그 시작은 될 수 있어.”
이십 년간 함께 해온 두 사람의 유대감이 끊기게 되는 도화선,
본격적으로 알렉스를 향한 혐오감을 키우게 되는 출발점이 이번 사건이다.
이번 일을 위해서 지금까지 차근차근 벽돌을 쌓아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어마어마한 추태를 연속적으로 보여주는 동생을 빠르게 싫어하게 되도록 만들려면...
스텔라가 범죄조직의 본거지에 들어갔을 때 보게 되는 장면을 잘 조정할 필요가 있다.
“마르셀라한테 전해줄래? 우리가 조직을 습격하기 전에, 알렉스를 데리고 질펀하게 놀라고.”
“질펀하다는 건... 난교 파티라도 열라는 뜻이야?”
“맞아. 술과 마약까지 있으면 더 좋겠지. 알렉스가 창녀들과 신나게 놀고 있는 모습을 스텔라가 보게 할 생각이야. 여기서...”
여기서 더 나아가, 날 노릴 음모를 계획하고 있는 장면까지 추가하면 완벽하다.
정신을 차리려고 하는 줄 알았던 동생의 거대한 방황.
그로 인해 완전히 폭발하는 스텔라.
엄청난 정신적 충격을 받은 그녀를, 나를 비롯한 아내들이 위로해줄 예정이다.
진정한 가족은 우리밖에 없다고 생각하도록.
내 설명을 모두 들은 박사가 흥미로운 눈을 했다.
“알았어. 아, 그리고 세계연합이 만드는 비밀조직의 전투요원 명단 말이야... 나는 물론이고 마르셀라도 틈이 날 때마다 찾아보고는 있는데... 이게 쉽지가 않아. 미안해.”
“부담 갖지 말라고 했잖아. 마르셀라가 만든 세뇌장치도 세 명의 인간들에게 다 성공했으니까, 눈에 불을 켜고 찾을 필요까진 없어.”
“만약 그 아이들이 차출되는데 실패하면?”
“그땐 비밀조직이 출범한 후에 계획을 짜봐야지. 감춰두고 있는 시설을 파악해보고 싶은 마음이야 굴뚝같지만, 이건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영역이야. 어차피 그 조직은 알아서 나오게 되어있어. 지금은 스텔라의 악의를 크게 키워놓는데 집중해야 돼.”
“응. 이해했어요. 스텔라의 상태는 어때?”
“괜찮아. 많이 좋아졌어.”
스텔라는 어제 나와 뜨거운 하룻밤을 보내고, 메릴을 만나거나 선배들과 모임을 갖기도 하며 안정을 찾았다.
소중한 사람들이 옆에 있어주니 마음을 다스리는데 도움이 되었겠지.
이럴 때 알렉스가 옆에 있어주면 스텔라도 좋아할 텐데, 놈은 지금 조직 내에서 영문을 모른 채 대기 중인 상태.
불쌍하게 됐구나. 네 누나와의 거리는 여기서 더 멀어지면 멀어졌지, 좁혀지진 않는단다.
우웅!
[오빠, 나 점심에 언니랑 떡볶이 먹고 싶은데, 사와 줄 수 있어?]
[금방 갈게.]
스텔라의 톡에 답장을 보낸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후 박사의 부드러운 금발머리를 살살 쓰다듬으며 말했다.
“내일 시작하자.”
“알았어요. 마르셀라더러 준비해놓으라고 할게.”
**
다음 날, 본부 휴게실.
“상태는 어때?”
“전 준비됐어요.”
단호히 대답한 스텔라가 실비아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굳건한 눈동자를 본 실비아의 안색이 약간 펴졌다.
“지혁이가 믿어도 된다고는 했지만... 솔직히 난 지금도 네가 걱정스러워.”
“저번 일로 제가 미덥지 못하다는 건 알아요. 하지만 정말 잘할게요. 기회만 주세요. 제 정신은 지금 그 어느 때보다도 깨끗해요.”
“하아... 지혁이를 노리는 사람들이 그렇게나 원망스러워?”
“네. 꼭 제가 잡고 싶어요. 아니, 제가 잡을 거예요. 이유도 밝혀낼 거구요.”
주먹을 불끈 쥐기까지 하며 흔들림 없는 다짐을 하는 스텔라.
실비아의 고개가 끄덕여졌다.
“좋아... 하지만 첫 공격이 너무 심하다 싶으면 바로 중지할 거야.”
“물론이에요. 정말 감사합니다, 선배님.”
“브리핑 들으러 가자.”
“네!”
스텔라가 실비아의 뒤를 따라나서며 날 돌아보았다.
무어라고 뻐끔거리고 있는데, 이제 걱정하지 말라고 말하는 것 같다.
열의가 가득한 모습이지만... 알렉스를 발견하는 순간 저 얼굴이 일그러질 것이다.
아니, 일단 처음엔 눈을 의심하고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게 먼저겠지.
“아델은 스텔라가 난입한 주변 퇴로를 차단해. 유리아는 실비아 주변에서 대기하고.”
휴게실에서 나와 보니 박사가 벌써부터 브리핑을 시작하고 있었다.
홀에 앉아 한 마디도 놓치지 않겠다는 듯 극도의 집중력을 발휘하고 있는 스텔라가 보인다.
조용히 맨 뒤로 간 나는, 잠자코 평범한 소탕작전을 연기하는 박사의 말을 들었다.
“세화는 오더를 내리면서 대기하다가, 도움이 필요한 곳으로 지원을 가면 돼. 어떠한 이유에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지혁이가 표적이 됐어. 한 놈도 놓치지 말고 잡아들이자. 알았지?”
““네!””
이구동성으로 대답하는 아내들.
특히 스텔라의 목소리가 가장 컸다.
“질문 있는 사람?”
그 말에 스텔라가 번쩍 손을 들었다.
박사가 그녀를 지목하며 물었다.
“뭐가 궁금해?”
“그... 중요한 일인데 초소형 무인 정찰기로 내부를 먼저 살피는 게 낫지 않을까요? 저희가 습격하면 비밀통로로 숨어들지도 모르고... 그 사람들이 지금 뭘 하는지도 알아야하니까...”
“놈들이 사용하는 비밀통로와 내부 구조는 세화가 모조리 익혀뒀어. 넌 눈에 보이는 범죄자들만 기절시키고, 포박해놓으면 돼.”
말을 마친 박사가 손에 들고 있는 리모컨의 어느 버튼을 눌렀다.
그러자 본부 홀 스피커가 켜지더니, 그곳에서부터 남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똑바로 빨아 이 씨발년아...!
쯔릅...! 쯥... 병신 같은 새끼가 욕하고 지랄이야...
하... 씨발... 싼다...!
조루새끼... 입에다 싸줘... 아앙...
그 색욕이 가득한 대화에, 스텔라의 온몸이 굳었다.
스피커를 끈 박사가 말했다.
“이 정도면 안에서 대충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는 알겠지?”
“네...? 아, 네...”
“이건 가장 건전한 방을 도청한 것뿐이야. 다른 곳에서는 난교 파티가 벌어지고 있어. 구하기 힘든 마약까지 쓰면서 제대로 놀고 있으니까, 남녀 가릴 것 없이 모두 잡아들여.”
“아, 알겠습니다아...”
눈에 띄게 혼란스러운 모습을 보였던 스텔라였지만, 그녀는 이내 다시 결의를 다졌다.
그 어떤 장면을 보든 당황하지 않고 똑바로 일을 처리할 거라는 의지가 느껴진다.
“저번처럼 대놓고 박살내면서 요란하게 들어가지 않을 거야. 꼼꼼히 전부 잡아들이는 게 중요하니까, 실비아와 스텔라는 입구를 지키고 있는 가드를 처리하고 몰래 잠입해.”
고개를 끄덕이는 두 사람.
냉정한 얼굴로 모든 사람들을 둘러본 박사가 모니터를 껐다.
“디바이스 에너지는 모두 다 채워놨지?”
““네.””
“좋아. 출동해.”
누가 뭐랄 것도 없이 동시에 자리에서 일어난 다섯 사람이 각자의 장비를 점검한 뒤 본부를 빠져나갔다.
스텔라와 눈을 마주친 나는 방긋 웃어주는 것으로 그녀를 격려했다.
이후 휑해진 본부 안에서, 박사와 단둘이 남아 대화를 나누었다.
“마르셀라는?”
“다른 곳으로 보내놨어.”
“알렉스는 지금 뭐하고 있어?”
“여자 세 명의 목에 목줄을 채우고...”
“그만, 됐어. 안 봐도 알겠네.”
코웃음을 친 나는 박사와 함께 나란히 상황판 앞에 앉았다.
스텔라의 가정을 파탄내고 새로이 구축하는 계획은 지금 시작되었다.
알렉스의 상태를 들어보니, 계획이 빠르게 잘 진행될 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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