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법소녀물 야겜 속 최종보스가 되었다-442화 (442/471)

〈 442화 〉 양자택일

* * *

“마지막 실험체라고?”

“네.”

“스완이 유인해온 아이와 내가 데리고 온 아이는?”

“여기 왔다 간 기억은 잊은 채 일상생활로 돌아갔습니다. 암시를 심어놓는데 성공했고요.”

“뇌가 잘 받아들이던가?”

“불협화음은 없었습니다만... 실전은 다를지도 몰라요. 키워드는 마왕님의 본명이에요. 마왕님이 직접 말씀하셔야 해요.”

“타이라트라고 말하면 되는 건가?”

“맞아요. 말씀만 하시면 암시가 깨어날 겁니다.”

역시 마르셀라는 내게 없어서는 안 될 존재다.

실패할 수도 있다고 하긴 했지만, 그래도 뭐 어떠한가.

장치 개발은 잘 되어가고 있는데.

“알았다. 오늘까지만 수고해다오.”

“네. 아, 그리고... 알렉스가 조직원들을 몇 명 데려갔어요. 마왕님을 노릴 것 같아요. 저번처럼 몇 군데를 불구로 만들어버리는 게 아니라... 날을 잡고 아예 납치를 하려고 하는 듯해요.”

내 예상대로 움직여주는구나.

하긴, 누나 앞에서는 착한 인간 연기를 하고, 놈의 앞에서는 온갖 조롱을 해대는데 열이 받지 않으면 이상한 일이지.

그나저나 납치라... 잡아가서 며칠간 폭행이라도 할 생각인가?

차라리 살인 사주를 하든가. 애새끼가 겁은 많아가지고.

“마왕님이 당하는 모습을 스텔라 님이 발견하도록 하실 건가요? 개인적으로 저는 마왕님이 굴욕을 당하는 모습이 보기에 좋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나도 그럴 생각은 없다. 걱정하지 마라. 마지막 아이에게 암시를 심어놓기 전에 몇 가지 일을 해줘야겠다.”

“네, 마왕님.”

“지금 알렉스와 조직원들의 발을 묶어놓고, 청기수를 내보낼 준비를 해라. 스텔라의 성장과 관련해선, 이번이 마지막 결투가 될 것이다.”

“알겠습니다.”

“그리고 청기수에게...”

마르셀라에게 추가적으로 몇 가지의 당부사항을 전한 나는 한국으로 돌아왔다.

마기를 빼고 본부로 가보니 스텔라가 있었다.

상황판을 신기한 듯 구경하고 있던 그녀는, 날 발견하고 반색을 했다.

“오빠!”

후다닥 달려와 내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들이미는 스텔라.

헛웃음을 켠 나는 그녀의 키스를 받아주고는 물었다.

“여기서 뭐하고 있는 거야? 연습은 저녁때나 끝나는 걸로 알고 있었는데?”

“아... 그게... 차 안에서... 그거 때문에... 엄청 피곤해져서 잤는데... 일어나니까 목이 잠겨있어서...”

“제대로 못했나보네?”

“응... 계속 컨디션을 조절하지 못해서 보영이 언니한테 엄청 혼나구 연습 끝냈어...”

“그래서 여기 왔구나. 연락이라도 하지 그랬어.”

“오빠 바쁠까봐 그냥 왔지... 그리구 혹시 선배님들이 계시면 훈련이라도 할 수 있을까 해서... 차는? 청소 끝났어?”

마력으로 아주 쉽게 청소했단다.

“끝났지.”

“오빠 연구실에서 할 일 남았어?”

“조금 남긴 했는데... 왜?”

“그게... 나 피곤해서...”

“오래 잔 거 아니었어? 그런데도 피곤해?”

“오빠 때문이잖아... 아침부터 날 막... 괴롭혀서...”

좋다고 다리까지 벌려놓고는 책임을 나한테 떠넘기기는...

자그맣게 실소를 터뜨린 나는 스텔라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

“그럼 오피스텔까지 데려다줄 테니까, 오늘은 아델의 집에서 쉬고 있어. 아델이 그러더라. 옆집인데도 며칠간 제대로 만나지 못해서 서운하다고.”

“아델라인 선배님이 그러셨어?”

“응. 진심을 다해서 한숨을 내쉬던데.”

“진짜...? 그럼 가야겠다... 근데 나 아델라인 선배님 집은 처음 가보는데...”

“이번 기회에 갔다 오면 되지. 지금 연락해놔.”

“알았어.”

죄책감이 가득한 표정을 지은 스텔라가 황급히 휴대폰을 꺼냈다.

아델에게 소홀한 것이 정말 미안했나보다.

@@

“막내야!”

잠옷 차림의 아델이 양팔을 쫙 뻗으며 스텔라를 향해 달려들었다.

이산가족을 만난 것 같은 반응.

죄송스러워진 스텔라는 달려온 아델을 격하게 끌어안고 사과를 했다.

“선배님... 죄송해요... 제가 연락을 드렸어야했는데...”

“아니야...! 우리 막내는 연예인이니까 당연히 바빴겠지...!”

바빴다고? 아니다.

지혁과 시간을 보내느라 그런 것이었다.

가족과도 같은 동료들임에도 연락을 소홀히 하다니... 자신은 너무 못됐다.

스스로를 자책한 스텔라는, 아델과 딱 붙어있다시피 하며 소파에 나란히 앉았다.

마음이 편안해진다.

집 구조가 같아서, 처음 와봄에도 익숙하게 느껴지는 걸지도 모른다.

그러고 보니 거실에 유아용 장난감들이 널브러져있다.

아델의 동생이 갖고 노는 것이구나.

오늘 볼 수 있으려나 싶다.

그리 생각한 스텔라는, 자신의 무릎 위에 얼굴을 묻은 아델에게 물었다.

“선배님, 혹시 저 장난감들은 동생 건가요?”

그러자 아델이 고개를 홱 들더니 대답했다.

“맞아. 진짜 많지? 요즘 사달라는 게 많아서... 청소하기도 힘들어.”

“지금 집에 있어요?”

“응. 있어. 지금 실비아 언니랑 목욕하고 있는데, 조금만 있으면...”

­흐아아아아앙!!

아델이 딱 동생을 언급하는 타이밍에 맞춰, 안방 화장실에서 여자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깜짝 놀란 스텔라가 말했다.

“무, 무슨 일이에요...? 동생 분이 미끄러지기라도 한 건가요...?”

“아니야. 실비아 언니가 실수해서 그래. 아휴... 샴푸 아무렇게나 하면 귀에 들어가서 싫어한다고 그렇게 말했는데...”

“아하...”

울음소리가 뭐랄까... 굉장히 앙증맞았다.

알렉스가 어렸을 적이 생각나기도 한다.

여린 마음씨를 가져서 실수라도 하거나 슬픈 것을 보면 방 안이 떠나가라 울어댔었는데.

지금은 왜 이렇게 변해버렸는지... 아쉽다.

아델과 담소를 나누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안방에서 드라이기 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실비아가 동생의 머리를 말려주고 있는 듯했다.

아델의 동생에다 나이도 어리니 엄청나게 귀여울 터.

기대감을 품은 스텔라는 애꿎은 목을 가다듬으며 동생이 나오길 기다렸다.

그런데 드라이기 소리가 한동안 지속되었다.

여아의 머리를 말리는데 이렇게나 긴 시간이 소모되나?

아니면 두피가 민감해서 살살 하고 있는 건가?

라는 의문을 품었을 시점에,

철컥.

문이 슬며시 열리더니, 그 안에서부터 자그마한 신형이 엄청난 속도로 아델에게 뛰어들었다.

인간 같지 않은 움직임.

문을 주시하고 있던 스텔라는, 순간 뭔가 싶어 아델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어...?”

그녀는 까무러칠 정도로 놀라고야 말았다.

아델의 무릎에 올라가있는 생물이 몹시 낯설었기 때문이다.

“무, 뭐야...? 여우...? 아, 아니... 사람...?”

관자놀이 뒤에 있어야할 귀가 머리 위에 떡하니 자리하고 있다.

심지어 귀가 여우마냥 무척 컸다.

그뿐이랴? 입고 있는 한 장의 큰 티셔츠 밑으로 복실복실한 꼬리가 나와 있기까지 하다.

그런데 얼굴과 몸은 인간의 그것이다.

손가락과 발가락이 아주 약간 뾰족한 것만 빼면.

“서, 선배님... 저 아이는 대체...”

혼란에 빠진 스텔라의 더듬거리는 물음.

아델이 배시시 웃더니 꼬마아이를 소개시켜주었다.

“메릴이라고 해. 내가 무지 사랑하는 동생이야.”

“네...?”

아니, 수인처럼 보이는 저 아이가 아델의 동생이라고?

말이 되나?

입을 쩍 벌린 스텔라는, 호기심이 담긴 큼지막한 눈을 끔벅이는 미지의 생물을 한참이나 쳐다보았다.

그러다가 오피스텔로 이사하기 전에 집 구경을 할 당시, 아델의 집 현관문에서 쏙 사라진 꼬리가 생각나 탄성을 터뜨렸다.

“아...! 그때...!”

그땐 애완동물이거나 잘못 본 줄 알았는데... 저 아이의 것이었구나.

“....?”

낯선 반응에 고개를 갸웃하는 메릴.

스텔라의 고개 또한 메릴을 따라갔다.

그 반응이 웃겼던 것일까?

메릴이 까르르 거리며 손가락을 세 개 폈다.

“메릴! 세 살이에여!”

메릴의 어여쁜 목소리를 들은 스텔라의 얼굴이 순간 녹아내렸다.

귀여운 얼굴과 환상적인 조화를 이루는 목소리.

말투마저도 애교가 넘쳐서 사랑스러웠다.

뭐가 뭔지는 전혀 모르겠지만, 일단 인사부터 하자.

이성이 돌아온 스텔라가 손을 흔들었다.

“스텔라 헤일리라고 해. 잘 부탁해, 메릴.”

“스떼라 헤이리?”

다르닐과 베르그가 자신을 부르는 발음과 비슷하다.

아델 또한 스텔라와 같은 생각을 했는지, 풋 하는 실소를 터뜨렸다.

어색한 표정으로 선배를 바라본 스텔라는, 다시 메릴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응... 스텔라 헤일리.”

“방갑습니다!”

아델에게서 내려와 힘차게 배꼽인사를 하는 메릴.

그 깜찍한 행동에 절로 엄마미소를 지은 스텔라는, 문득 메릴이 친숙하게 느껴졌다.

마치 잘 아는 사람을 오랜만에 만난... 그런 느낌이 났다.

왜 그럴까? 메릴이 너무 발랄해서 그런가보다.

“스텔라 왔어?”

어느 샌가 방에서 나온 실비아의 말이었다.

자리에서 일어난 스텔라가 방금 인사를 했던 메릴처럼 상체를 꾸벅 숙였다.

“안녕하세요, 선배님.”

“응. 얼굴 보니까 좋다.”

진심으로 말하는 게 느껴진다.

진작 찾아올 걸... 죄송스럽기도 하고 후회가 되기도 한다.

“저도 마찬가지에요. 앞으론 자주 들를게요.”

“그래. 자주보자. 근데 신기하네?”

“네? 뭐가요?”

“메릴 말이야. 원래는 낯을 가리는 아이인데, 넌 처음 보자마자 좋아하고 있어서.”

실비아가 웃는 낯으로 소파 옆을 턱짓했다.

실비아의 시선을 따라 옆을 바라본 스텔라는, 메릴이 조막만한 손으로 자신의 옷자락을 잡고 있자 입을 틀어막았다.

‘너, 너무 귀여워...’

천천히 살랑거리는 주황색 꼬리... 만지고 싶다.

메릴의 외모에 매료된 스텔라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사이, 아델이 실비아에게 말했다.

“막내는 상냥하니까, 메릴도 그 마음을 알아차린 것이지요.”

그리 말한 아델이 스텔라를 향해 앉으라고 손짓했다.

그녀가 자리에 앉자, 아델이 메릴을 스텔라의 무릎 위에 올려주었다.

“흐앗!”

저도 모르게 기쁨에 겨운 소리를 낸 스텔라는, 메릴이 얌전히 있는 것을 확인하고는 아주 조심스럽게 꼬리를 만져보았다.

‘부드러워...’

촉감이 장난이 아니다.

껴안고 자고 싶은 기분.

만질 때마다 쫑긋거리는 귀도 신기하고... 데려다가 키우고 싶을 정도다.

시간이 잠깐 지나자, 메릴의 고개가 확 떨어졌다가 천천히 올라왔다.

꾸벅꾸벅 졸기 시작하는 것이다.

환한 미소를 지은 채 가만히 메릴을 만지고 있던 스텔라는,

“후아암...”

나른한 하품을 한 메릴이 아델에게 안기려고 팔을 뻗자 괜히 서운해졌다.

자신의 무릎 위에서 자도 되는데... 아직 적응이 안 돼서 그런가보다.

자주 들러서 만나야지.

아델이 메릴을 안방으로 데려가는 것을 본 스텔라가 실비아에게 물었다.

“그런데 왜 메릴이 아델라인 선배님의 동생이에요? 의붓동생 같은 건가요?”

“음... 나중에 말해줄게. 지금은 네게 중요하게 할 말이 있어.”

“그게 뭔가요?”

“박사님께서 지혁이를 습격한 범죄조직을 알아냈어.”

그 말을 듣자마자, 실비아가 소파에서 벌떡 일어났다.

“네!? 그게 정말이에요?”

“응. 며칠 뒤에...”

삐빅­! 삐빅­!

실비아가 어떠한 말을 하려던 찰나, 두 사람의 손목에 찬 디바이스에서 급박한 경고음이 울려 퍼졌다.

흠칫한 스텔라가 재빨리 디바이스를 확인했다.

“마물이에요. 이블리언 게이지가 S급인데... 또 그 기사겠죠?”

“그건 모르지. 일단 범죄조직에 관한 건은 나중에 얘기하자. 지금은 마물을 상대하는 데만 집중해야 돼.”

디바이스를 조작하기 시작하는 유리아.

뜬금없는 타이밍에 마물이 나타났음에도 너무 침착하다.

저게 경험이라는 거구나. 덕분에 자신도 덩달아 차분해진다.

“네, 선배님.”

고개를 주억거린 스텔라는 디바이스에 손을 가져갔다.

적기수 베르그, 청기수, 그리고 흑기수 다르닐...

이 순서대로 나왔으니까, 이번엔 청기수겠지?

오늘 아마도 그의 이름을 들을 수 있을 것 같다.

그는 기사들 중에서 가장 강한 존재다.

인정을 받기 위해서라도, 여태까지 쌓아온 노하우를 총동원해서 훌륭한 결투를 펼쳐야지.

굳게 다짐한 스텔라는 화면을 두 번 터치했다.

* * *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