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38화 〉 송지혁 없이는 못살아 #2
* * *
[오빠, 잠깐 얼굴 볼 수 있어?]
[오빠.]
[오빠.]
[오빠.]
[오빠.]
시간차도 거의 없이 톡 폭탄을 보내는 스텔라.
늦은 밤, 목표대상을 납치한 뒤 연구실 근처에서 마기를 빼고 있던 나는, 약간의 텀을 두고 답장을 보냈다.
그 텀을 두는 순간까지도, 스텔라는 내게 톡을 보내고 있었다.
집착이 제대로 물 오른 모습이 보기 좋다.
[연구실로 올래? 아니면 내가 갈까?]
스텔라는 톡을 읽었음에도 답이 없었다.
빨리 오기 위해서 세수라도 하고 있나? 라는 생각을 하고 있던 찰나, 스텔라에게서 전화가 왔다.
“여보세요.”
나 연구실인데 왜 오빠 없어?
“.... 뭐?”
연구실에 오빠 없는데.
황당함에 입을 쩍 벌린 나는, 스텔라가 포탈을 타고 왔다고 직감했다.
“나 지금 밖에 바람 쐬러 나왔어. 너 혹시... 아니다. 만나서 얘기하자. 금방 갈게.”
응.
전화를 끊은 나는 빠른 걸음으로 연구실을 향해 갔다.
제법 긴 통로의 끝에 있는 입구에 생체 인증을 하고 나니, 묵직한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연구실 가운데에서 손톱을 물어뜯고 있는 스텔라가 보인다.
날 발견하자마자 우다다다 달려와선 점프해 안기는 그녀.
스텔라의 엉덩이에 팔을 받치고 등을 툭툭 두드려준 나는, 휴게실로 이동해 그녀를 앉혔다.
이후 미간을 약간 좁혔다.
“너 포탈 타고 왔지? 알렉스한테는 안 들켰어?”
“걔는 방에서 게임하고 있어서 괜찮아.”
“그건 다행이지만, 디바이스 에너지를 이런 사적인 곳에 쓰면 안 되지. 어떤 일이 일어날지도 모르는데.”
“어차피 1퍼센트도 안 썼고, 맨날 100퍼센트로 채워놓잖아...”
“그렇긴 한데, 네가 포탈을 타면 연구실에 다 나온다고. 박사님이 보시면 뭐라고 하겠어?”
“.... 괜찮다고 하실 거야. 박사님께서는 오빠처럼 보수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분이 아니거든.”
얘가 은근히 날 맥이네.
만나자마자 나무라니 삐친 것 같다.
무안한 듯 입맛을 다신 나는, 냉장고에서 아델이 항상 채워놓는 딸기우유를 하나 꺼내 내밀었다.
“목 좀 축여.”
“아델라인 선배님 거 아니야? 마음대로 마셔도 돼?”
“네가 마신다고 하면 좋아라할 거야.”
그 말에 얼굴색이 펴진 스텔라가 딸기우유를 받아들었다.
그녀의 옆에 털썩 주저앉은 내가 물었다.
“자고 있던 거 아니었어?”
“자려고 누웠는데 잠이 안 와서...”
“왜 잠이 안 왔는데?”
“갑자기 혼자 자려니까 외로워서... 오빠 본부 일은 언제 끝나?”
“내일 밤에 끝낼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어.”
“그래...? 오늘은 나랑 같이 가면 안 돼?”
“어딜? 집에?”
“응. 철없는 소리인 건 아는데... 오빠 없으니까 너무 힘들어... 매니저도 마음에 안 들구...”
나는 스텔라의 어깨를 감싸 내 쪽으로 당겨왔다.
힘없이 딸려오는 것도 모자라, 아예 내 무릎에 머리를 대어버리는 그녀.
그 아이 같은 행동에 폭소를 터뜨린 내가 말했다.
“너 오후엔 왜 거짓말을 한 거야?”
“뭐가...?”
“대표님한테 밴이 고장 났다고 거짓말했잖아. 설마 임시매니저가 거기 타는 게 싫어서 그랬어?”
“.... 응. 진짜 싫어. 거긴 나랑 오빠만 탈 수 있어.”
솔직한 마음을 토해내는 것이 보기 좋다.
“대표님이 수리 맡기면 금방 들통 날 텐데?”
“수리 맡기신대?”
“아니. 내가 돌아와서 하겠다고 했어.”
“그, 그러면 됐네에... 오빠도 공범이야... 아, 그리고 나 오빠한테 따질 거 있어.”
“뭔데?”
“오빠 보영이 언니한테 내가 매일 모과차 마신다고 말했지? 왜 오빠는 다른 사람한테 그 얘기를 해?”
나는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듯 고개를 갸웃했다.
“하면 안 돼?”
“안 되지...! 그건 우리 둘만의 비밀이잖아...!”
“네 목 상태를 걱정해서 말한 건데? 그리고 다른 누구도 아니라 네 스승인 보영이 누나한테 한 건데...”
“그래도... 어, 어쨌든 안 돼... 오늘 임시매니저가 나한테 모과차 줬는데, 엄청 싫었어...”
엄청이라는 부사까지 붙일 정도로 싫었어?
악의가 무럭무럭 자라고 있는 게 눈에 보이는 것 같다.
“그래도 먹긴 했지?”
“받기도 싫어서 안 먹겠다고 했어.”
“임시매니저가 서운해 하겠다.”
“내가 더 서운해... 아무리 보영이 언니라고는 하지만...”
“근데 모과차 같은 건 희주 누나도 알지 않나?”
“오빠랑 사귀기 전이랑 비교하면 안 되지...! 어, 어쨌든 앞으로는 얘기하지 마...”
그리 말한 스텔라는 더 이상 말하기 싫다는 듯, 내 배에 자신의 얼굴을 묻었다.
오늘따라 꼬마 같은 스텔라의 행동에 혀를 찬 나는, 그녀의 머리카락을 손가락에 꼬거나 하며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얼마간 조용히 있자, 스텔라가 고개를 슬쩍 돌리더니 날 올려다보았다.
“오빠...”
“응.”
“오늘 나랑 같이 자면 안 돼...? 나랑 같이 포탈 타자... 방 안으로 가면 알렉스도 눈치채지 못할 거야...”
“평범한 사람인 내가 포탈을 타면 어떻게 되는지 잘 알잖아. 토악질을 해대다가 알렉스한테 걸릴 걸?”
“그럼... 도어락 무음으로 해놓을 테니까 몰래 들어와... 나 진짜 오빠 없으면 안 되겠어... 몇 시간 떨어진 것뿐인데 너무 외로워...”
“그럴 정도면 스케줄은 어떻게 소화하는 건데?”
타박하는 듯한 말투에, 스텔라가 입을 삐죽 내밀었다.
“그땐 오빠가 대기실에 있다는 걸 아니까 버티는 거지...!”
“그래도 안 돼. 우리 약속한 게 있잖아. 알렉스랑 네 관계.”
“오빠가 알렉스 눈에 띄지만 않으면 되는 거잖아...! 아 오빠아... 오늘만 같이 자면 앞으로는 이렇게 칭얼대지 않을게...”
교태 섞인 목소리로 내게 앙탈을 부린 스텔라는, 내 티셔츠를 젖혀놓고 복부에 뜨거운 바람을 후 불기 시작했다.
날 흥분시켜서 집에 오게 하려는 듯한 행동이었다.
어이가 없어진 나는 그녀의 뺨을 누르고 살짝 위로 들어올렸다.
붕어처럼 모아진 그녀의 입술에 애정 어린 뽀뽀를 해준 내가 말했다.
“오늘 같이 자면, 내일은 잘 버틸 자신 있어?”
“응...! 오빠가 내일까지 일 끝내놓는다고 했잖아. 버틸 수 있어.”
“알렉스한테도 안 들킬 자신 있고?”
“응! 응! 나 연기 엄청 잘해...!”
기회가 찾아오는 것 같자 냅다 긍정하는 스텔라.
원래라면 날 향한 스텔라의 그리움을 확 증폭시키려고 했지만, 이렇게까지 말하는데 안 들어줄 수는 없는 노릇 아니겠는가.
어차피 스텔라도 내일 임시매니저와 스케줄을 소화할 때 짜증이 많이 쌓일 테니, 오늘만큼은 스트레스를 풀어주자.
“그러면 먼저 포탈 타고 돌아가 있어. 나도 바로 출발할게.”
그 말에 스텔라가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내게 달려들었다.
내 무릎 위에 올라타선 격정적으로 입을 놀리는 모습을 보아하니, 돌아가자마자 한 판 하자고 들이댈 것 같다.
스텔라를 간신히 달랜 나는, 변신한 그녀가 포탈을 타자마자 연구실 불을 껐다.
이후 밖으로 나가기 전에 마르셀라가 있는 창고의 카메라를 휴대폰과 연동해보았다.
흐흐흑... 사, 살려주세요... 제발... 살려주세요... 뭐든 할게요...
실험대 같은 곳에 누워선 가련한 목소리로 애원을 하고 있는 여자가 보인다.
옆에 있는 모니터에 나타난 정보를 보니 세뇌교육이 3회차에 이르고 있었다.
진행은 잘 되어가고 있구나.
직접 진행상황을 보려 했지만, 스텔라 때문에 그럴 수가 없게 된 것이 약간 아쉽다.
그래도 뭐... 마르셀라가 알아서 잘 해내겠지.
인간이여, 내 심복인 마르셀라가 친히 구원을 내려주는데, 감사하게 생각하고 받아들이려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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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부터 보고 싶다.
하지만 이미 잘 버티겠다고 약속을 해버려서, 어제처럼 징징대는 건 자제해야한다.
그래도 지혁의 씨앗을 받아 하루를 배부르게 보낼 수 있다는 건 장점이었다.
“배 아파?”
복부를 쓰다듬으며 지혁과의 정사를 생각하던 스텔라는, 옆에서 들려오는 알렉스의 목소리에 정신을 차렸다.
“어...? 아... 그냥 아침을 너무 많이 먹었나봐.”
“그래? 하긴... 오늘따라 평소보다 더 많이 먹더라.”
알렉스는 현재 스텔라, 그리고 이효섭과 함께 스케줄 장소로 이동하고 있었다.
어제 지혁이 긍적적인 남매관계를 위해서, 그리고 외로움도 달랠 겸 오늘 함께 생활해보라고 권유했다.
그리고 지혁의 그 생각을 좋다고 판단한 스텔라는 아침에 알렉스에게 오늘 같이 가보지 않겠냐고 제안했고...
알렉스는 흔쾌히 그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 결과가 지금 이것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조금 떨떠름했다.
알렉스가 무슨 사고를 칠지 걱정되었기 때문이다.
달라지려는 동생을 믿어야하지만, 첫 팬 사인회 때처럼 해버리면... 그 뒤는 상상만 해도 끔찍했다.
그땐 지혁이 있어서 다행히 빠르게 해결이 됐는데, 지금은 미덥지 못한 이효섭이 함께 하고 있다.
그래서 불안했다. 뭔가 일이 터지면 수습 자체가 불가능할까봐.
게다가 지금은 알렉스에게 정신병까지 있어서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애써 마음을 가다듬은 스텔라는 알렉스를 흘끗 쳐다보았다.
‘얼굴색은 괜찮긴 한데...’
이효섭과 인사를 할 때도 밝긴 했다.
지혁이 아닌 사람이 매니저를 해줘서, 그리고 그 매니저가 못생긴 사람이라서 좋아하는 것 같았다.
가끔 이효섭에게 농담도 던지는 걸 보면, 그가 마음에 든 것 같다.
‘왜 저러는지 알 것 같아...’
알렉스는 잘생기고 능력 있는 지혁이 누나를 채갈까 우려하고 있었는데, 지금 이효섭은 그럴 사람으로 보이지 않으니 안심하고 있는 것이다.
솔직히 동생의 입장은 이해가 간다. 알렉스는 자신을 정말 끔찍이도 아끼니까.
하지만 조금 한심하게도 느껴졌다.
사고란 사고는 다 치고 다니면서, 뭐라 하려고 하자 성인의 자유를 존중하라며 부르짖었으면서...
정작 자신은 왜 과할 정도로 보호를 하려고 하는지.
그리고 만약, 아주 만약에 알렉스가 지혁을 극도로 싫어하고 있는 이유가 저것이라면...?
동생을 사랑하긴 하지만, 그게 이유라면 솔직히 찌질하게 보일 것 같았다.
“으...”
저도 모르게 몸서리를 친 스텔라는, 알렉스가 이상한 눈으로 자신을 찾아보자 어색하게 웃었다.
“아까부터 뭐해 대체?”
“응? 아, 아니... 그냥 피곤해서...”
“어제 잠 못 잤어?”
“자긴 잤는데... 너 게임하는 소리 때문에 중간에 깼어.”
사실 중간에 깨지도 않고, 지혁의 손을 꼭 잡으며 잘 잤다.
무안한 듯 머리를 긁적인 알렉스가 사과했다.
“아 진짜...? 말하지... 미안해.”
“아냐, 괜찮아. 네가 집에 들어온 것만으로도 기뻐.”
예전엔 동생에게 거짓말을 하는데 크나큰 죄책감을 느꼈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전혀 없다고 할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신경 쓰지 않을 정도까지는 됐다.
머릿속에서 이런저런 생각을 하던 스텔라는, 동생 몰래 자신의 허벅지를 꼬집었다.
한 번 나쁜 쪽으로 생각을 하니 동생의 모든 것이 나쁘게 보인다.
이러면 안 된다. 지혁이 그랬잖은가.
관계 개선을 하라고.
그가 희생하면서 얻은 모처럼의 기회인데, 잘 이용해야한다.
“점심은 소속사에서 도시락 보내주기로 했으니까, 어디 나가지 말고 누나랑 먹자. 알았지?”
“알았어. 근데 내가 방금 찾아봤거든? 스케줄 하는 동안 팬들이 과자나 뭐 초콜릿 같은 걸 보내준다고 하던데, 누나도 많이 받아?”
“나는 그렇게 많이 받는 편은 아냐.”
그 말에 이효섭이 대화에 끼어들었다.
“너무 겸손하신 거 아니에요? 웬만한 연예인들보다 훨씬 많은 선물을 받으시던데... 고액 선물은 정중히, 편지까지 써서 돌려보낸다고 해서 칭찬이 자자해요.”
“.... 감사합니다...”
그러고 보니 이효섭이 꽤나 방해된다.
차라리 알렉스에게 운전을 시켰더라면, 3자 없이 단둘이 진지한 대화도 할 수 있을 텐데...
속으로 꿍얼거린 스텔라는 지혁에게 연락을 할까 하다가 그만두었다.
그는 지금 본부에 생긴 일을 처리하고 있을 것이니 방해하지 말아야한다.
알렉스의 눈치도 보이니까... 지금은 자제하자.
화장실에 갈 일이 있을 때나 한 번 전화해봐야지.
‘그래도... 벌써 보고 싶은데...’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지혁에 대한 사랑이 깊어져간다.
오늘 하루는 스케줄이 바빠서 그나마 다행이었다.
한가했다면 지혁을 생각하느라 정신을 놓아버렸을 테지.
이렇게 생각하니, 알렉스를 데리고 온 건 역시 잘한 일인 것 같았다.
불안하긴 해도 지혁 ‘다음’으로 믿는 동생이고, 대기실에서 편하게 대화를 나누다보면 심심하지는 않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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