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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소녀물 야겜 속 최종보스가 되었다-434화 (434/471)

〈 434화 〉 솔직한 마음

* * *

츠르르륵... 츠륵...

평온한 듯 움직이는 무지개색 아이테르.

그것을 확대한 나는, 구석 끄트머리에서 번져가고 있는 검은색의 악의를 보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커졌다.’

느릿한 속도이긴 하지만 제대로 커가고 있다.

말을 듣지 않는 알렉스로 인해 생긴 혐오감부터 시작해서, 자신을 인정해주는 마물을 향한 동정과 동료애까지...

지금까지 내가 해왔던 모든 것들이 스텔라의 안에 내재된 악의를 성장시키고 있었다.

이제부터는 더욱 빠른 속도로 아이테르를 침식시켜나가겠지.

딸깍.

버튼을 눌러 화면을 들여보낸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자 옆에 앉아있던 박사가 내게 다가오더니 물었다.

“어때? 잘 침식됐어?”

“일단은.”

“다행이네. 아, 그리고 마르셀라가 만든 장치 봤어. 대단하던데?”

“봤어? 마르셀라 최대의 역작이라고 할 만한 기계이긴 하지. 칭찬도 좀 해주지 그랬어.”

“당연히 해줬지.”

박사의 칭찬을 듣고 쑥스러워하며 꼬리를 살랑거리는 마르셀라가 그려진다.

가벼운 웃음을 터뜨린 나는 박사를 무릎에 앉혔다.

그리고는 그녀의 배에 양손을 가져가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이에 그치지 않고 허벅지 안쪽에까지 손을 넣어 천천히 주무르니, 박사가 움찔하며 반응을 보였다.

꿈틀거리는 그녀의 어깻죽지.

혹시나 날개가 튀어나오려나 싶었으나, 그 걱정은 기우였다.

순식간에 잦아든 그녀의 날개뼈를 어루만진 내가 말했다.

“저번보다 유연하게 컨트롤할 수 있게 됐네?”

“.... 응... 세화가 많이 도와줬어... 근데 지혁아.”

“말해.”

“스텔라는 지금 어디 있어? 동생 찾으러 갔나...?”

“원래는 그러려고 했는데, 아델이 동료들이랑 술 마시자고 꼬셔서 지금 오피스텔 안에 있을 거야.”

“그래...? 연락이 안 되는 동생을 찾는 일을 동료들과의 술자리보다 후순위로 둘 정도라면... 악의를 더 많이 넣어 봐도 되는 거 아니야?”

“그런 생각을 안 해본 건 아니지만, 일단은 최대한 신중하게 움직이자는 게 내 계획이야.”

“응. 네가 그렇다면 난 따를게.”

전남편의 유지를 이어 정의를 부르짖던 사람은 온데간데없어지고, 내 친족이 되어 아이까지 밴 박사.

놈이 박사의 이 모습을 보면 땅을 치면서 눈물을 흘리겠지.

그걸 보지 못한 게 천추의 한이다. 정말 재미있었을 텐데.

그래도 알렉스라는 대안이 있으니까 거기에 만족하자.

우우웅­! 우웅­!

박사의 목덜미부터 어깨라인에까지 키스를 하며 시간을 보내던 나는, 휴대폰이 울리자 입맛을 다셨다.

발신번호가 뒤죽박죽인 걸 보니 왓슨이다.

“보고해.”

­네, 주인님. 미래사령부 사령관이 오늘 각국 수뇌부들과 비밀 회담을 가졌다고 합니다. 조만간 세계연합에서 어떠한 발표를 할 것 같습니다. 아마도 저번에 보고를 드렸던 조직 창설에 관한 건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래?”

슬슬 내 노예 겸 화살받이가 될 새로운 영웅이 탄생하나?

이들을 써먹기 위해선 우리처럼 본부를 설립할 것 같은데...

충분한 준비가 필요한 만큼 급하게 움직이진 않겠지만, 적어도 초읽기까지는 온 것 같다.

세계연합에서 애가 탔구나. 우리가 정말 마음에 들지 않았나보다.

“다른 사항은?”

­없습니다.

“수고했다.”

­감사합니다.

전화를 끊은 나는, 통화내용을 전부 들은 박사가 생각에 잠겨있자 물었다.

“무슨 문제라도 있어?”

“여론전을 대비해야할지 고민 중이야.”

“여론전? 아... 무슨 얘기인지 알겠네.”

세계연합은 영웅만 갖고 있는 상태지, 그 외엔 아무것도 없다.

마물의 출현을 미리 알 수 있는 이블리언 탐색기와 포탈은 물론이고, 본부가 갖고 있는 각종 기술을 모른다.

이 때문에 분명히... 새로운 본부를 창설하기 전부터 여론전을 펼칠 것이었다.

비스트 슬레이어 본부와 포탈 공유를 요청한다든가...

이블리언 탐색기를 유지보수 할 수 있는 기술을 공유하길 요청한다든가...

이 외에도 본부가 갖고 있는 노하우를, 대의를 위한 것으로 포장해서 빼먹으려고 하겠지.

난색을 표하면 전 세계에 본부를 깎아내리는 기사들을 내보내면서, 이미지를 서서히 깎아먹으려 할 테고.

이 부분에 대한 해결방법은 간단하다.

박사의 배를 다시 한 번 쓰다듬은 내가 말을 이었다.

“대비하지 마. 도와주면 돼. 기술 공유라는 명목으로 우리가 그쪽에 스며들어가는 것도 나쁘지 않아.”

“알았어. 그럼 그냥 가만히 있을게?”

“응.”

우린 언제나 표면적으로는 지구의 평화를 위해서 움직일 것이다.

언제까지? 새로운 영웅들이 전부 내 수족이 될 때까지,

그리고 구원진리교의 신도가 크게 늘어나 내 힘이 아주 강대해질 때까지.

“아, 그리고 누나한테 부탁이 있어.”

“말해.”

“세계연합에서 차출된 전투요원 명단을 알아내줬으면 좋겠어. 힘들겠지만 왓슨이랑 같이 정보를 공유하면서 찾아줄래?”

“응. 꼭 알아낼게요.”

박사는 내 의견이라면 무조건적인 지지를 보내주고, 도움을 보태준다.

그 점이 너무 좋다.

**

[오빠, 먼저 자. 나 알렉스가 와서... 이야기 나누다가 오늘은 우리 집에서 잘게. 사랑해.]

내가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받은 건, 스텔라의 톡이었다.

나는 곧장 스텔라의 집에 심어둔 도청기를 켰다.

솔직히 오늘 돌아올 줄은 몰랐는데, 어떤 얘기를 나누는지 한 번 알아봐야지.

­잘 지냈어? 톡이랑 전화도 다 무시하고... 내가 얼마나 걱정했는지 알아?

알렉스가 돌아온 지는 얼마 되지 않았구나.

대화를 초반부터 파악할 수 있어서 좋다.

­미안해. 원래 내일 오려고 했는데, 그냥 기분도 꿀꿀해서 금방 돌아왔어. 근데 누나 술 마셨냐?

며칠 전에 내게 개쪽을 당한 것치고는 목소리가 꽤나 평온하다.

계속 들어보자.

­응. 동료들이랑 조금...

­동료면 연예인?

­아니, 음... 운동하면서 알게 된 사람들이야.

­그래? 송지혁이랑 같이 아는 사람들은 아니지?

역시 민감하게 생각하고 있을 줄 알았다.

­아니, 지혁이 오빠도 그분들을 잘 아셔.

­그럴 줄 알았다. 아직도 정신 못 차렸네.

­알렉스, 그런 식으로 말...

­됐고, 요 며칠간 예전 집에 있으면서 잘 생각해봤거든?

­.... 기다려. 내 말 먼저 들어줘.

­뭔데?

­나도 요 며칠 동안 잘 생각해봤어. 우리 사이가 왜 이렇게 됐는지.

알렉스가 조용하다.

무슨 얼굴표정을 짓고 있을까?

얼마간의 침묵 끝에, 스텔라의 입이 다시 열렸다.

­난 널 나처럼 힘들게 크지 않도록 만들려는 강박증 같은 걸 가지고 있었던 것 같아. 그래서 널 심하게 압박했어. 이런 행동을 했는데도 잘 참아준 네게 고맙다고 말하고 싶어.

갑자기 화해 무드라고? 이건 좀 별론데?

­잘 참긴 무슨... 그냥 반항하니까 안 돼서 억지로 참는 척한 거지.

­그래도 참은 건 참은 거잖아. 솔직하게 말해줘서 고맙고... 내가 말하고 싶은 건 이게 아니라... 이제 금방 개학이잖아?

­응.

­안 가도 돼.

­.... 뭐?

­학교에 안 가도 된다구.

알렉스는 정말 많이 놀랐는지 한동안 말이 없었다.

이해가 간다. 나도 제법 놀랐는데 저놈은 오죽했을까?

기나긴 고요함이 싫었는지, 스텔라가 말을 이었다.

­정말 오래 고민해보고 내린 결정이야. 검정고시를 보라는 말도 안 할게. 나는 네가 꿈을 쫓아갔으면 좋겠어. 꿈이 없으면 찾아봐. 하고 싶은 일을 해. 나랑 지혁이 오빠가 도와줄게.

덜렁아, 잘 나가고 있었는데 내 이름을 언급하면 어떡하니.

알렉스에게 있어서 나는 역린과도 다름없는데 말이야.

­그 새끼는...

예상대로, 알렉스가 버럭 화를 내려고 했다.

하지만 누나가 진지하게 자신을 살펴주는 것이 마음에 걸렸는지, 말을 하다 말고 한숨만 내쉬는 것으로 그쳤다.

­하... 그래. 그렇게 말해줘서 고마워, 누나. 근데...

­근데?

­나는 누나가 송지혁이라는 사람이랑 같이 있는 게 싫어.

­네가 왜 이렇게 지혁이 오빠를 싫어하는 건지 물어봐도 될까?

­말했잖아. 음흉하다고. 그것뿐만이 아니라... 걔가 나한테 무슨 말을 했는지도 말했... 아니다. 백날 이래봐야 누나는 날 믿으려고 하지도 않겠지.

­말이 안 되는 이야기니까.

나에 관해서만큼은 단호한 스텔라의 목소리를 들으니, 절로 웃음이 새어나온다.

­.... 누나가 저번에 그랬지? 나한테 정신병 있냐고.

­응. 하지만 그건 홧김에...

­누나야말로 병원에 가봐야 할 것 같다.

­알렉스! 너 정말...!

스텔라의 입장에선 알렉스가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한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그녀는 연구실 안에 있는 의료기기에서 자주 검사를 받고는 하니까.

전투가 끝나면 치료를 받고,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지 체크를 하기까지 한다.

결과는 당연히 정상. 그러니 알렉스의 말이 와 닿을래야 닿을 수가 없겠지.

­방금까지 분위기 좋았지? 근데 왜 이렇게 뜨거워졌을까?

­무슨 소리야?

­누나는 내가 송지혁을 싫어하고 있다는 걸 잘 알잖아. 그런데도 그 새끼를 언급하니까 내가 화가 나? 안 나?

­.... 알렉스... 그건...

­알아. 안다고. 누나가 송지혁을 진짜 좋아하는 거. 근데 꼭 이런 자리에서까지 그 새낄 들먹여야했어?

그래, 이번 건 알렉스 말이 맞다.

화해 자리에서까지 내 이름을 꺼내는 건 너무 심했어.

는 무슨, 아주 잘했어 우리 덜렁아.

­.... 네 말이 맞아. 미안해. 내 실수야.

순순히 사과를 하는 스텔라였지만, 알렉스는 여전히 화가 나있는 상태였다.

콧바람을 훅훅 내뿜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려왔던 것이다.

­난 진짜 누나가 이렇게 된 게 안타깝다.

­미안해... 그러니까 앉아줄래? 다시 천천히 얘기해보자.

­이 상태로 대화를 하자고? 난 안 돼.

­그럼 어떡해...? 모처럼 찾아왔는데 대화라도 해야 네가 여기 있을 거 아니야아...

스텔라의 목소리가 떨려왔다.

울먹거리고 있구나. 안타깝다.

끝나면 바로 위로해주러 가야겠다.

­일단 당분간은 여기 있을 생각이니까, 자고 일어나서 다시 얘기하자.

­.... 정말...?

­어. 떨어져있는 동안 누나가 걱정됐어. 지금도 마찬가지고. 나 어디 안 가니까 내일 얘기해.

­응... 그렇게 할게. 잘 생각했어... 밥은 먹었니? 안 먹었으면 지금 바로 차려줄까?

­아냐. 오늘 나 진짜 피곤하거든? 그러니까 내일 아침에 같이 먹자.

­알았어... 얼른 들어가서 쉬어.

뒤이어 철컥하는 소리와 함께, 코를 훌쩍이는 소리가 같이 들려왔다.

알렉스가 들어가는 것을 본 스텔라가 눈물을 훔친 모양.

도청기를 끈 나는 잠깐 텀을 투고 스텔라에게 톡을 보냈다.

[만약 알렉스가 자고 있으면 도어락 무음으로 설정해줄래?]

그러자 금방 답장이 왔다.

[피곤하다고 하긴 했는데... 오려구...? 오늘은 쉬는 게 좋을 것 같은데...]

[보고 싶어. 네가 없으니까 잠이 안 와.]

[그래...? 그러면 내가 잠깐 오빠 집에 들를까?]

[아니다. 그냥 내가 창문으로 넘어갈게. 네 방 창문 열어놔.]

[뭐?]

우우웅­!

곧바로 울리기 시작하는 휴대폰.

놀란 스텔라의 전화를 무시한 나는, 스텔라의 방과 가장 가까운 방으로 들어가 창문을 열고 몸을 내밀었다.

“오빠...! 오빠...! 도어락 무음으로 해놓을게...! 복도로 와...! 그거 하지 마...!”

고개를 빼꼼 내민 스텔라의 간절한 목소리.

안 들린 척 귀에 손을 갖다 댄 나는 망설임 없이 난간에 발을 내딛었다.

일부러 떨어져볼까? 그럼 스텔라가 변신해서 날 구할 텐데.

아니다. 스텔라가 소리를 지를 수도 있으니까 그냥 무사히 넘어가야겠다.

오늘 스텔라랑 신나게 해야지.

알렉스로 받은 스트레스, 내가 전부 풀어줄게.

그러니까 너는 마음 편하게 먹고, 감정에 솔직해지면 된단다.

그렇게 네 안에 있는 악의를 키워나가면 돼.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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