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33화 〉 마물인데 싫지 않아 #2
* * *
@@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밤.
지혁의 탄탄한 몸을 손가락으로 콕콕 찔러보던 스텔라는, 지혁이 깨지 않을 정도로 아주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바라마지 않던 음방 녹화도 했고, 훈련 땐 선배들의 칭찬세례를 들었다.
지혁이 보내준 사진을 꼼꼼히 비교해보고 커플링도 새로 맞췄다.
요 며칠은 정말이지 기분이 좋지 않을 수가 없었다.
단 하나, 알렉스와 관련된 일만 빼면.
자신의 훈육법이 잘못돼서 알렉스가 엇나간 걸까?
지혁은 괜찮다고 했지만... 조금 심한 것 같긴 하다고 했었는데...
화가 났어도 겉으로는 살갑게 다가갔어야 했나?
이러한 생각을 하지 않으려 해도 자꾸 하게 된다.
휴대폰을 켜보니 알렉스는 여전히 자신의 톡에 답장을 하지 않고 있었다.
설마 그대로 가출할 생각은 아니겠지?
내일 꼭 와야 모레부터 학교에 갈 수 있을 텐데 걱정이다.
‘그냥... 학교에 가지 말라고 할까?’
지금 생각해보면, 자신은 제대로 된 교육을 못 받고 자라다보니 학교에 대한 강박이 있는 것 같기도 했다.
그래서 그 강박을 알렉스를 통해 해결하려는 것이고, 그 때문에 알렉스는 스트레스를 받았는지도 몰랐다.
때 아닌 자아성찰을 하던 그녀는 지혁을 바라보았다.
입을 꾹 다물고 숙면에 빠져있는 그.
올곧게 닫힌 속눈썹과 쭉 뻗은 콧대가 무척 매력적이다.
침을 바르고 싶다는 충동에 휩싸일 정도로.
지금 코끝을 톡 하고 건드리면 지혁이 깨어나겠지.
갑자기 깨우면 화를 낼까?
아니, 힘 빠진 미소를 지으면서, 왜 아직까지 안 자고 있냐며 자신을 꼭 안아줄 것이 분명하다.
지혁은 그런 사람이니까.
알렉스도 이런 지혁의 진면목을 알아주었으면 좋겠는데...
괜히 헛것이나 들어선 오해나 하다니...
“후으...”
지혁의 우람한 팔뚝을 죽부인인 양 껴안은 스텔라는, 그냥 머릿속을 비우기로 했다.
혼자 이런저런 고민을 해서 뭐하겠는가.
내일 알렉스가 오지 않으면 예전 집으로 가서, 그와 많은 이야기를 나눠봐야지.
그리 생각한 스텔라의 눈이 서서히 감길 때,
삐빅! 삐빅!
디바이스에서부터 경고음이 울려 퍼졌다.
화들짝 놀란 스텔라가 상체를 벌떡 일으켜 디바이스를 확인해보았다.
위치는 태평양. 아주 먼 거리지만 포탈이라는 지혁의 역작이 있어 순식간에 갈 수 있었다.
“으음...”
누워있던 지혁이 뒤척이며 잠에서 깨어났다.
안쪽 눈구석을 손가락으로 꾸욱 꾹 누른 그가 말했다.
“출동해. 연구실 가자마자 바로 뒤따라갈게.”
피곤에 찌들어있는 목소리.
자신의 매니저를 해서 쉴 시간이 없어 지쳐있나 보다.
괜히 미안해진 스텔라는, 지금 나타난 마물을 원망하며 디바이스를 터치했다.
화아악!
방 안을 가득 메우는 새하얀 빛.
변신을 완료한 그녀는, 사랑이 가득 담긴 눈으로 지혁을 쳐다보고는 디바이스와 포탈을 연동했다.
@@
스테라 헤리...! @!$@!
등장하자마자 자신을 똑바로 쳐다보며 이름을 부르는 적기수.
뒷말은 분명히... ‘결투를 신청한다!’이리라.
“.....”
황당한 표정으로 입을 살짝 벌린 스텔라는 고개를 좌우로 가로저었다.
마물들의 세계에 자신의 이름이 팔렸구나.
다르닐이 소문을 낸 모양이다.
S급 마물의 출현은 대사건이다.
전 세계가 들썩일 정도로 말이다.
지금도 태평양을 둘러싼 국가들은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을 터였다.
그만큼 긴장의 끈을 놓칠 수 없는 마물 등급이 S급인데...
‘이젠 그냥 익숙해한 것 같아...’
처음 봤을 땐 어마어마한 위압감에 몸이 떨릴 정도였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오히려 친숙했다.
심지어는 마물들의 세계가 궁금해지기도 했다.
자신의 이름을 동료들에게 말할 정도면 꽤나 문명화되어있을 텐데...
저들은 식사를 어떤 식으로 할까?
인간들처럼 희로애락 같은 것도 느끼겠지?
이러한 생각들이 새록새록 났다.
“푸히히... 스테라 헤리...! 인기 엄청 많네?”
상념에 젖어있던 스텔라는, 뒤에 있던 아델이 낄낄거리며 적기수의 말을 따라하자 정신을 차렸다.
적기수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은 스텔라가 아델을 향해 말했다.
“놀리지 마세요, 선배님...”
“재미있는데 어떡해... 막내 너도 저 녀석의 이름을 물어봐. 기사들은 통성명을 기본 예의처럼 알고 있잖니.”
“그, 그런가요...?”
“그러엄...! 자, 어서 물어봐.”
기대감이 잔뜩 서린 말투를 들어보니, 그냥 이 상황이 재미있어서 자신을 놀리려고 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확실히, 아델의 말은 일 리가 있었다.
또한 한 국가를 멸망시키고도 남을 S급 마물인데, 자신과의 결투를 위해서 피해를 끼치지도 않고 얌전히 있는 걸 보면... 그만큼의 예의를 갖춰야할 듯싶기도 했다.
게다가 적기수는 자신에게 검을 내민 채로 가만히 있었다.
저게 통성명을 하자는 뜻이 아니면 뭐란 말인가?
결국 스텔라는 에라 모르겠다 싶었던 스텔라는, 언제든 공격할 준비를 한 채로 적기수를 향해 물었다.
“네 이름은 뭐니...?”
# @#$ 베르그.
용케도 질문을 이해했구나.
아니, 흐름 자체를 파악한 거겠지.
뭐가 됐든 한 번에 끝내줘서 칭찬해주고 싶을 지경이다.
그나저나 베르그라... 나무로 된 맥주잔에 술을 가득 따라서 호탕하게 마실 것 같은 이름이다.
갑주는 호리호리해가지고... 어울리지 않다.
“베르그...? 맞아?”
@#!$&. 스테라 헤리. #@&$! #$%&%@!#.
이제야 결투를 신청하는구나. 안 봐도 뻔하다.
스텔라는 허공에 채찍을 한 차례 휘둘렀다.
파아앙!
경쾌하게 울리는 파공성.
그에 베르그 또한 자신의 가슴께에 검을 세우고는, 사선으로 내려뜨렸다.
콩트가 끝나자마자 주변 공기가 싸늘해진다.
풀린 긴장을 다시 조인 스텔라는, 눈도 깜박하지 않으며 베르그를 주시했다.
@@
파캉!
한창 베르그와 무기를 맞대며 싸우고 있던 스텔라는, 귀에서 들려오는 경쾌하기 그지없는 소리에 눈을 크게 떴다.
“어...?”
베르그가 사용하고 있던 검의 검봉이 깨져 귀를 스쳐지나갔다.
순간 잘못 봤나 싶었지만 확실했다.
으으음...!
베르그 또한 침음을 내뱉으며 거리를 벌리고, 자신의 검을 살피고 있었다.
시뻘건 검 끝이 뭉툭해져있는 것을 확인한 베르그가 스텔라를 쳐다보았다.
@#$^&!@.
목소리 톤이 높은 것으로 보아, 스텔라 자신에게 상당한 흥미를 느낀 것 같았다.
훌륭하다고 말하고 있는 건가...?
만약 그렇다면 진심으로 기쁠 것 같았다.
S급 마물과 맞붙어도 밀리지 않는다는 뜻이었으니까.
물론 베르그가 사정을 봐준 것도 있겠지만... 그것을 감안하더라도 축하할만한 일이었다.
아직 자신은 한참 모자라다.
하지만 A급 마물 정도는, 이제 혼자서 처리할 수 있을 것 같다.
더 자세한 사항은 결투가 끝나면 선배들의 피드백을 통해 알아봐야겠지만, 적어도 지금은 방방 뛰고 싶은 심정이었다.
@##$&!@#, $&%%!@##.
쩌어어억!
무어라 말을 한 베르그의 뒤에서 마물의 아가리가 나타나더니, 타액을 질질 흘리며 입을 벌렸다.
처음엔 징그럽다고 생각했는데, 자주 봐서 적응을 해버린 걸까?
지금은 귀여... 운 것까지는 절대 아니고, 그냥 그러려니 하는 생각밖에는 안 든다.
“돌아가려는 거야...?”
괜히 아쉬운 마음이 들어 대화를 시도해보는 스텔라.
새빨간 안광이 흐릿해진 베르그는, 그녀의 물음에도 대답하지 않고 한손을 뻗었다.
그러자 주변 공기가 흔들리더니, 바닷속에서부터 퐁! 소리와 함께 자그마한 무언가가 튀어나와 베르그의 손에 쥐어졌다.
그리고 베르그는, 그것을 스텔라에게 휙 던졌다.
지구의 적인 마물의 행동.
본래라면 잔뜩 경계를 했어야했지만, 스텔라는 아무런 의심 없이 그것을 낚아챘다.
그것이 무엇인지 아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또한 자신을 성장시켜주는 베르그, 다르닐, 그리고 그 퍼런 기사가 싫지 않았다.
그로 인해 약간이나마 신용이 생겨서, 지금 자신이 이렇게 긴장을 풀 수 있었다.
조심스럽게 손을 펴자, 아까 자신이 부서뜨린 검봉이 있었다.
자신이 착용한 새하얀 장갑과 어울리지 않는 시뻘건 빛을 뿜어내면서.
베르그는 그 행동을 끝으로 포탈에 들어가 버렸다.
사라져버린 마물 포탈이 있었던 허공을 주시하고 있던 스텔라가 생각했다.
‘쟤는 약간... 츤데레 같은 성격인가...?’
뭐, 마물들도 생명체인데... 각기 다양한 성격을 가지고 있겠지.
마치 인간처럼.
그리 생각한 스텔라는, 뒤에서 들려오는 세화의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오늘은 소모품도 없이 잘 싸웠네?”
“아, 네... 베르그가 봐준 것 같아요.”
“네가 생각할 정도로 많이 봐준 것 같지는 않아. 실력이 올랐다는 증거지. 지금 사라진 베르그라는 녀석도 네 성장을 느끼고 있을 거야.”
리더 격인 세화에게 듣는 칭찬은 언제 들어도 정말 좋다.
얼굴이 환하게 밝아진 스텔라가 고개를 꾸벅 숙였다.
“감사합니다, 선배님!”
“조금만 더 이용하다가, 네 성장속도가 한계에 부딪쳤다고 느끼면 없애자.”
“네, 알겠... 네...? 뭐라구요? 없애요...?”
없애다니? 누구를? 저 베르그를 비롯한 두 명의 기사들을?
눈을 동그랗게 뜬 스텔라가 세화를 쳐다보자, 세화가 냉랭하게 말했다.
“응. 마물인데 당연히 처치해야지. 지금이야 호기심이 동해서 너와 결투를 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지만, 나중엔 어떻게 될지 몰라.”
냉정한 대답이었다.
순간 당혹스러울 만큼.
주위를 둘러보니 유리아도, 실비아도, 심지어는 정이 많은 아델도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주억거리고 있었다.
“.....”
물론 세화는 맞는 말을 했다.
마물은 자신들이 지켜야할 지구 최대의 적.
인간들을 서슴지 않고 죽이는 악독한 놈들이었다.
하지만... 이 기사들은 달랐다.
자연경관은 파괴했을지언정 사람들에게 피해는 준 적이 없었다.
자신과 결투를 하기 시작한 이후부턴 경관조차도 파괴하지 않았다.
돌아갈 때도 얌전히 사라졌고 말이다.
무기를 맞대고 합을 나눠보면 안다.
기사들은 진심으로 자신과 명예로운 결투를 하고 싶어 했다.
과장 좀 보태서 서로의 마음가짐이 느껴지기까지 했다.
왜 그런 행동을 하는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지만, 기사들은 다른 마물들과는 다르게 아주 순수한 의도를 가진 녀석들이었다.
자신의 실력을 고의적으로 낮춰가면서까지 성장을 시켜준, 어찌 보면 고마운 자들이기도 했다.
헌데 그런 녀석들을 이용하기만 하고 없애자고?
아무런 자비도 없이?
“.....”
스텔라는 미래를 그려보았다.
기사들 중 한 명과의 결투에서 승리하여, 목숨을 취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 미래를.
거기서 자신은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기사의 목을 벨 수 있을까?
‘불가능할... 것 같아...’
만약 기사들이 사람을 해쳤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그랬다면 결투도 하지 않았을 테고, 나오자마자 선배들과의 협공으로 처리했을 것이다.
하지만 안 했잖은가. 살인은커녕 부상도 입히지 않았잖은가.
괜히 씁쓸해진 스텔라는, 자신의 발 아래로 천천히 지나가고 있는 자그마한 구름을 찼다.
물에 잠긴 솜사탕마냥 흩어져 사라지는 구름.
그 모습을 지켜보던 세화는, 얕은 한숨을 내쉬며 스텔라의 어깨를 감쌌다.
“우리 스텔라는 착해도 너무 착해서 탈이네. 나중에 다시 얘기해보자.”
“.... 네, 선배님...”
“돌아가자.”
“네...”
그렇게 두 사람은 어느 샌가 도착해있던 전투기 안으로 움직였다.
변신을 푼 스텔라는 조종석에 앉아있는 지혁과 눈을 맞추었다.
대화 내용을 들었을 텐데도 따뜻한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
역시 지혁은 자신의 마음을 알아주고 있구나.
선배들도, 박사도 속이 깊긴 하지만, 지혁만큼은 절대 아니다.
예전부터 생각했지만, 자신은 그가 없으면 안 된다.
살 수가 없을 것 같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