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32화 〉 마물인데 싫지 않아
* * *
스텔라는 노래를 할 때가 가장 빛난다.
청아한 목소리, 진심이 느껴지는 행복한 표정...
나와 함께 시간을 보낼 때만큼 기뻐하는 것 같다.
관객이 별로 없는 녹화방송임에도 프로답게 노래를 마친 스텔라는, 내게 안겨오려다가 주변 눈치를 보고 그만두었다.
식은땀이 송골송골 맺혀있는 얼굴을 보자니 당장 닦아주고 싶다.
매니저의 입장에서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지만... 참자.
혹시라도 스캔들이 일어나면 스텔라가 슬퍼할 테니까.
방송국 관계자와 이야기를 나눈 나는 스텔라와 함께 자그마한 홀로 이동했다.
데뷔 때처럼 간단하게 팬 사인회를 하기 위해서였다.
돈을 주고 고용한 경호원과 최승환이 홀의 상황을 정리하는 사이, 나는 대기실에서 천희주를 만났다.
그녀와 스텔라가 인사를 나눌 때까지 기다린 내가 안부를 전했다.
“희주 누나, 오랜만이네. 잘 지냈지?”
“잘 지냈지. 너 요새 소속사에도 잘 안 들리고... 서운하네?”
“미안. 근데 대표님 표정이 왜 그래? 약간 썩어있던데...”
“경호원 팀한테 줄 돈이 아까우신 거지 뭐. 사람이 왜 이렇게 쪼잔한지 모르겠어. 이리 와서 선물 포장 좀 도와줄래?”
“응.”
스텔라는 천희주와 태연하게 이야기를 나누는 내가 못마땅한 듯했다.
천희주가 자신을 볼 수 없도록 내 뒤에 앉더니, 등을 꼬집기 시작했던 것이다.
처음엔 약간 따끔할 정도였지만, 천희주와 대화를 나누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강도가 강해져갔다.
“.... 그래서 내가 대표님한테... 너 왜 그래? 등 불편해?”
자꾸 어깨를 움직이며 등을 쫙 폈다 말았다 하는 날 본 천희주의 물음이었다.
“아뇨. 어제 운동을 많이 해서 근육통이 약간 있네요.”
“그래...? 내가 풀어줄까?”
“스텔라가 지금 열심히 마사지해주고 있어요.”
그 말에 천희주가 몸을 옆으로 뺐다.
움찔하더니 내 등에서 손을 떼어내는 스텔라.
그녀를 발견한 천희주가 놀란 낯으로 말했다.
“너 언제 거기 있었어?”
“아, 그... 처음부터요...”
“그래...? 지혁이 덩치가 커서 그런가... 가려져서 못 봤네.”
“어, 언니. 팬들한테 줄 선물... 포장 다 하셨어요...?”
“다 했어. 잠깐 대기하기만 하면 돼.”
“아쉽다아... 팬들한테 줄 선물이라 저도 하고 싶었는데... 지혁이 오빠가 마사지하라고 협박해서...”
질투가 나선 내 등을 마구 꼬집는데 집중하고 있었으면서 아쉽긴 무슨.
무릎을 짝 소리가 나게 때리며 가식을 떠는 스텔라에게, 천희주가 빙긋 웃으며 말했다.
“팬들한테는 네가 포장을 도왔다고 말할게.”
“아니에요... 그건 거짓말이잖아요... 저는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싶지 않아요.”
그런데도 방금 내가 협박했다느니 뭐니 하며 거짓말을 하셨어요?
라며 스텔라를 놀리고 싶다.
“우리 스텔라 엄청 착하네? 알았어. 그럼 그냥 아무 말도 안 하면 되지?”
“네에...”
“알았어. 난 잠깐 홀 좀 살피고 올게. 쉬고 있어.”
천희주가 대기실을 나가자, 스텔라가 벌떡 일어나더니 내 맞은편에 앉았다.
그리고는 방금 수줍어했던 태도와는 정반대로, 다리를 꼬며 팔짱을 꼈다.
눈에 힘을 빡 주고 노려보는 모습이 귀엽기도 하고, 웃기기도 하다.
“왜 그렇게 쳐다봐?”
“오빠는 왜 다른 여자들한테 엄청 친절하게 대해? 희주 언니도 그렇고, 이지안 선생님한테도 그렇고... 저번에 집으로 초대했던 그... 최아람이라는 사람한테도 그렇고...”
“음... 정색하면서 대할 필요는 딱히 없다고 봐서.”
“오빠가 그러니까 희주 언니가 오해하잖아.”
“무슨 오해?”
“오빠가 자길 좋아하는 줄 알잖아...! 그래서 희주 언니도 오빠한테 꼬리치는 거고...!”
꼬리치다니... 우리 덜렁이, 입이 많이 험해졌구나?
“그런 기색은 못 느꼈는데.”
“오빠 그거 알아? 오빠는 평소엔 눈치가 엄청 빠른데, 꼭 여자가 끼면 맹해진다? 이게 무슨 뜻일까?”
예리하네.
“지금 내가 가식이라도 떤다는 거야?”
“응. 일부러 날 화나게 하려는 것 같아.”
“내가 그래야할 이유가 있어?”
“.... 밀당... 뭐 이런 거겠지.”
“지금 우리 관계상, 아무리 생각해도 그런 식으로 밀당을 할 이유를 찾을 수가 없는데? 우리가 무슨 썸을 타고 있어? 아니면 갓 알아가는 상태야?”
“.....”
“너는 왜 나한테는 넘겨짚지 말라고 하면서, 너 자신은 마음대로 넘겨짚고 그러는 거야?”
목소리를 약간 낮게 깔자, 스텔라가 찔끔했다.
하지만 그건 찰나뿐이었다.
물러서지 않겠다는 듯 눈을 부릅뜬 그녀가 말했다.
“그건 미안하지만... 오빠 나 잘 알잖아. 질투심 많은 거.”
“그러면 나는 아무 여자하고도 대화하지 말까?”
“그렇게까지 하라고 말한 적은 없어. 그냥 태도만 조금... 바꿔줬으면 좋겠어. 아니다, 아예 반지를 맞추자.”
“반지?”
“응. 커플링 맞출 테니까 맨날 끼고 다녀. 그러면 다른 여자들이 오빠한테 여자친구가 있는 걸 알고 접근하지 않겠지.”
기특한 생각을 다 했네?
“그럼 넌?”
“방송이나 팬들 앞에 나갈 때 빼고는 나도 끼고 다닐게.”
“그러다 들키면 어쩌려고? 아무리 개방적인 요즘이라지만, 갓 데뷔한 신인에게 남자친구가 있다는 게 알려지면 팬들의 절반은 떨어져나갈 거야.”
“나는 아이돌로 데뷔한 게 아니라서 괜찮을 거라고 생각해. 데뷔할 때 연인이 있다는 걸 밝힌 선배님들도 많아. 게다가 요즘 팬들도 연예인들이 몰래 연애하고 있다는 걸 잘 알아. 오빠는 지금 지레 겁부터 먹고 있어.”
“어쨌든 난 반대야.”
“반대해도 상관없어. 오늘 당장 예약할 거야.”
황당한 듯 헛웃음을 켠 내가 미간을 좁혔다.
“내가 안 끼고 다닐 건데?”
“그럼 내가 끼고 다니면서, 사람들이 반지에 대해 물어보면 솔직히 말할 거야. 그리고 오빠가 자고 있을 때, 약지에 반지 모양으로 문신까지 새겨야지.”
이러다 꼬추에도 새기겠다고 하겠는데?
극단적으로 나서는 모습이 보기가 좋다.
속내를 완전히 감춘 나는, 일단 한 발 물러서는 척하기로 했다.
얕게 한숨을 내쉰 내가 말했다.
“일단 팬 사인회부터 끝내고 다시 얘기하자.”
“좋아. 하지만 날 설득하려고 하지는 말아줬으면 해.”
“스텔라.”
애칭인 덜렁이가 아니라 스텔라의 이름을 그대로 부르자, 그녀가 입을 꾹 다물었다.
얼굴에 미안함이 스쳐지나갔지만 그것도 잠시, 예의 그 뚱한 얼굴로 돌아온 그녀가 대답했다.
“알았어.”
**
오랜만의 팬 사인회를 망치기 싫어서였는지, 스텔라는 표정관리를 아주 잘하며 팬들을 대했다.
한 남자 팬이 스텔라에게 달려들어 포옹을 하려고 했지만, 나와 경호원들의 재빠른 제지 덕에 작은 소란으로 끝났다.
저놈은 오늘 일을 평생토록 후회할 거다.
아니, 죽어서 없어질 테니 후회조차도 못하겠지.
그렇게 팬 사인회를 모두 마친 나는, 최승환과 간단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스텔라를 차에 태웠다.
뒷좌석에 올라타 신경질적으로 담요를 덮은 스텔라는, 팬 사인회 때 보여주었던 화사한 미소는 온데간데없이 아주 꽁한 표정을 지었다.
나와는 말을 하지 않겠다는 분위기다.
쌓여왔던 질투가 지금 확 터져버린 건가?
스텔라가 모르게 히죽거린 나는 차를 몰고 번화가로 향했다.
그러자 창문을 바라보고 있던 스텔라가 내게로 고개를 돌리더니, 아주 싸늘한 목소리로 물었다.
“어디 가?”
“반지 맞추러.”
“.... 뭐?”
“반지 맞춘다며. 샵 예약해놨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던 스텔라의 입꼬리가 씰룩거렸다.
애써 화난 척을 해보려고 하지만, 미소를 감출 수 없는 게 티가 난다.
차 안이 갑자기 봄바람이 부는 분위기로 전환된 것 같다.
룸미러를 통해 그런 스텔라를 보고 있던 내가 말했다.
“대신 조건이 하나 있어.”
“.... 뭔데...?”
“밖에선 끼지 말고, 안에서만 껴. 스케줄 있을 때도 금지야.”
“나, 나는 알려져도 딱히 상관은 없는데...”
“연예계 생활 잘해야지. 안 그래?”
“.... 오빠는...?”
“난 계속 끼고 있을게.”
그 대답에, 스텔라가 담요를 확 벗어던지더니 앞좌석으로 움직였다.
조수석에 타고 안전벨트까지 단단하게 맨 그녀는, 컵 홀더에 놓인 모과차를 꺼내 마셨다.
내 눈치를 보면서 말이다.
마치 ‘이렇게나 말 잘 듣는 날 어떻게 생각해?’라고 묻는 것 같은 느낌.
그 여우같은 행동에 실소를 터뜨린 나는 화제를 돌렸다.
“알렉스랑은 요즘 연락해?”
“톡은 계속 보내는데 답장을 안 해...”
그날 이후 바짝 쫄아있는 건 아닐 테고...
큼지막한 사건을 준비하는 건가?
아니, 알렉스를 밀착 마크하는 마르셀라는 아무 일이 없다고 했다.
자존심이 확 짓뭉개진 상황임에도 가만히 있는다?
무언가 심경의 변화가 있었을 것 같은데, 일단 지켜보자.
“읽긴 하나보네?”
“응. 또 대마초 같은 마약에 손을 댈까 걱정돼... 알렉스를 믿긴 하지만... 멘토 같은 믿을만한 사람이 주변에 없으면 엇나갈 가능성이 높잖아.”
믿을만한 사람? 마르셀라가 있단다.
이미 엇나갈 대로 엇나간 범죄조직 보스의 옆에 있으니 긍정적인 영향을 받을래야 받을 수가 없지.
“모레가 개학이지? 내일까지 안 들어오면 어쩌려고?”
“그땐...”
뒷말을 삼키는 스텔라.
정말 진지하게 고민을 한 그녀가 구슬픈 투로 대답했다.
“설득해야지... 그래도 동생인데...”
“그래. 지금은 잠깐 엇나가고 있지만 천성은 어디 안 간다고, 예전 모습으로 돌아올 거라고 믿어.”
마음에도 없는 말을 진심인 양 해주자, 스텔라가 함박미소를 지었다.
아까의 뾰로통한 태도가 완전히 사라진 그녀는, 자신의 핸드백을 뒤적거리더니 쿠키를 꺼냈다.
그리고는 정성스럽게 포장지를 뜯어 내 입에 가져다댔다.
“이거 먹어. 내가 몰래 먹으려고 남겨놓은 건데, 오빠 줄게.”
선심이라도 쓰는 양 말하는 스텔라.
쿠키를 한 입 베어 물고 삼킨 내가 말했다.
“요즘 훈련은 어때? 동료들이 잘 가르쳐줘?”
“요새는 자꾸 칭찬만 해주셔. 어제는 유리아 선배님께서 따로 부르시더니, 잘했다고 엉덩이를 토닥여주셨어.”
“유리아 씨가?”
“응. 엄청 의외지? 나 진짜 발전하고 있나봐. 아, 그건 어떻게 됐어?”
“뭐가?”
“그거 있잖아... 며칠 전에 오빨 노렸던 사람들... 알아보고는 있는 거야?”
나는 한손을 들어 스텔라의 머리를 헝클어뜨리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무언가를 알아내긴 했지만, 아직 말하기 곤란하다는... 그런 표정을 지으면서 말이다.
스텔라는 이런 내 표정을 읽어냈으나 딱히 캐묻지는 않았다.
시간이 되면 어련히 알아서 알려줄 것이라고 생각하는 듯했다.
예약해둔 샵 부근에 도착한 나는, 인적이 없는 곳을 찾아 차를 세웠다.
이후 엉덩이를 달싹거리는 스텔라를 말렸다.
“넌 여기 있어. 나 혼자 다녀올게.”
“왜...? 사람들이 날 알아보고 수상하게 생각할까봐?”
“응.”
“하아... 진짜 싫다아... 같이 고르고 싶은데...”
“사진 찍어서 보낼 테니까 대기하고 있다가 답장해. 알았지?”
“.... 이렇게 떳떳하지 못할 때마다 슬퍼져...”
어쩔 수 있나.
네가 선택한 길인데.
스텔라의 입술에 가벼운 키스를 해준 나는, 차에서 내려 샵으로 향했다.
스텔라의 몸 안에 있는 악의는 크기가 얼마나 불어났을까?
약간이긴 하지만 예전보다 과격해진 것을 보면 확실히 커지긴 했을 텐데...
적기수와 붙인 뒤에 체크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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