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29화 〉 역전되어가는 사랑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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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십니까, 형님!”
우렁찬 소리와 함께 폴더인사를 하는 알렉스.
그의 표정엔 긴장한 낯이 역력했다.
그도 그럴 게, 스텔라가 외출 제한을 검으로서 마약 유통에 차질이 생겼기 때문이다.
물론 자신 한 명만 빠진 것이라 큰 문제는 없었지만... 간부급 승진을 앞두고 있는데 이러면 이미지가 좋아지지 않았다.
그냥 이참에 그만둘까도 고민했었다.
스텔라가 그렇게 화를 내는 모습은 처음 봐서 진심으로 개과천선하고 싶었다.
하지만 자신은 이곳이 마음에 들었다.
동료들은 당연히 좋았고, 편의점 사장을 연기해주고, 사정을 봐준 보스는 존경스러웠다.
무엇보다 여기 있다 보면 정말 자유로워지고, 자존감이 높아지는 느낌이었다.
왜? 자신을 인정해주는 사람들이 많아서.
“오냐.”
대충 손을 휘휘 저은 보스가 자리에 앉자, 알렉스가 맞은편에 공손히 자리했다.
그리고는 두 손으로 잔에 양주를 따르며 감사를 표했다.
“이번에 도와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형님 덕분에 잘 넘어갈 수 있었습니다.”
“가족끼리 당연한 거 아니냐? 근데 누나가 있다는 말은 왜 안 한 거냐? 처음에 전화 받고 깜짝 놀랐다.”
“굳이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닙니까?”
“할 필요가 없긴 하지. 됐고, 이제 복귀하려고?”
“예. 못한 만큼 더 열심히 하겠습니다.”
“쉬엄쉬엄해라. 요새 단속 심하다.”
심드렁한 투로 그리 말한 보스가 양주를 확 들이켰다.
희미한 미소를 지은 채 보스를 쳐다보고 있던 알렉스는, 문득 궁금한 것이 생겨 물었다.
“근데... 형님. 한 가지 질문이 있는데 여쭤봐도 됩니까?”
“해봐.”
“저희 가족들도 사주를 받습니까?”
“사주? 청부살인 같은 거? 그런 건 외노자들 시켜야지.”
“살인까진 아니고... 몇 군데 부러질 정도로 두들겨 패는 정도면 됩니다.”
“그 정도면 뭐... 어려운 일은 아니지. 헌데 갑자기 사주는 왜? 패고 싶은 놈이라도 있냐?”
있다.
정말 죽기 직전까지 패주고 싶은 놈.
바로 송지혁이었다.
자신을 조롱하고 누나의 혼을 쏙 빼놓은 쓰레기...
어떤 방법으로 누나를 유혹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자신에게 이를 드러낸 이상 이젠 호락호락 당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일단은 인맥을 동원해 구타부터 시작할 거다.
그 이후 누나의 곁에서 떨어질 때까지 끊임없이 괴롭혀주지.
그리 생각한 알렉스가 대답했다.
“예. 있습니다.”
“주소랑 이름 알아?”
“△△ 오피스텔 25층에 사는 송지혁입니다.”
“.... 그래? 친한 애들 몇 명한테 말해놔. 내가 허락했다고 하고.”
“그 정도면 충분합니다. 감사합니다, 형님!”
역시 이 조직은 자신을 아낀다.
주먹을 불끈 쥔 알렉스는, 보스가 행여나 거슬려할까 아주 조심조심, 소리 내지 않고 방을 나섰다.
**
“아람이 왔니?”
“네, 대표님. 안녕하십니까.”
여전히 단정한 정장 차림의 아람이를 보니 욕구가 솟구친다.
무릎까지 가리는 저 검은색 스커트를 올리고, 가랑이 가운데의 스타킹을 부욱 찢어버리고 싶다.
벽에 손을 대게 한 다음에 한쪽 다리를 들려 올려 거칠게 삽입하고 싶다.
굽이 높은 구두가 반쯤 걸쳐진 채로 고통과 쾌락이 섞인 신음을 터뜨리는 아람,
그녀의 잘 다려진 와이셔츠가 마구 구겨지는 모습을 상상하니 꼴린다.
하지만 참자. 여긴 지금 집이니까.
커피를 내리고 식탁으로 간 내가 자리에 앉아 한손을 뻗으니, 아람이 맞은편에 앉았다.
그녀를 향해 잔을 민 내가 물었다.
“보고할 게 있다고?”
“네. 김민지 이사님께서 지금 바쁘셔서... 제가 대신 전하라고 하셨습니다.”
마르셀라가?
“뭔데?”
“알렉스라는 사람이 대표님을 노린다고 합니다. 조직원들을 시켜 집단구타를 시도하려 한다고... 어떻게 해야 할지 여쭤보라고 하셨습니다.”
이 새끼 이거... 장난질을 할 거라고 생각하긴 했다만 벌써 이런다고?
행동력이 장난이 아니다. 아무래도 날 어지간히 싫어하게 된 모양이었다.
“하고 싶은 대로 놔두라고 해.”
“알겠습니다.”
“요즘 잘 지내지?”
“물론이에요.”
“일은 힘든 거 없고?”
“전부 잘 처리하고 있어요.”
“그렇군.”
가만, 좋은 생각이 났다.
“아람아.”
“네, 대표님.”
“너 세계연합 한국지부에 한 번 들어가 봐라.”
“세계연합이요...?”
“응. 지금 하는 일 전부 멈추고 공채 준비해.”
아람이는 정말 유능한 인간이다. 나나 마르셀라가 인정할 정도로.
그리고 악의가 전혀 존재하지 않고, 뒷배도 깨끗하다.
우리의 도움으로 엘리트 코스를 밟아 성공가도를 달리고 있는 인재이기도 하다.
나는 그녀를 세계연합에 침투시킬 생각이었다.
나나 마르셀라, 박사가 모르는 정보를 알려주는 스파이로서.
공개채용으로 들어간다면 세계연합에 깊숙이 침투할 수는 없겠지만...
능력을 보여주고 높은 사람의 눈에 띤다면 전환 특채로 중요한 곳에 들어갈 수도 있다.
아름답기도 해서, 여자를 밝히는 놈의 비서가 될 가능성도 있지.
물론 이건 희망사항이고, 들어가면 아무런 소득을 얻지 못할 가능성도 농후했다.
하지만 괜찮다.
세계연합에 들어간 것만으로도, 극비인 그쪽 인원들을 제대로 전부 파악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아주 큰 도움이 될 테니까.
슬슬 세계연합이 나한테 이빨을 드러내고 있는데, 뭐라도 해야지.
“알겠습니다.”
“자세한 사항은 민지랑 상의해봐. 말해둘 테니까.”
“네, 대표님.”
새하얀 컵 상부에 묻은 빨간 립스틱 자국이 뭔가 묘하다.
그냥 짧게 한 번 할까?
라는 생각을 하며 아람을 바라보고 있던 나는,
삑! 삑삑삑!
도어락 소리와 함께 현관문이 열리자 흠칫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빠. 나 물어볼 게 있...”
가벼운 화장을 한 채 들어온 스텔라가 신발장에 있는 구두를 본 직후 입을 다물었다.
순식간에 눈썹이 구겨지는 그녀.
예상치 못한 방문에 재빨리 머리를 굴린 나는, 아람이가 옆으로 다가오자 태연스레 말했다.
“어서와. 저번에 아람이 누나 한 번 봤었지?”
스텔라의 시선이 아람이로 향한다.
적대감이 꽤나 있는 눈빛.
고개를 천천히, 아주 천천히 주억거린 그녀가 말했다.
“아... 그때 그분이셔...? 뒷모습만 뵙긴 했는데...”
“잠깐 물어볼 게 있다고 해서 오라고 했어. 인사해.”
“.... 아, 안녕하세요...”
다소곳이 두 손에 손을 모으고 고개를 꾸벅 숙이는 그녀.
아람 또한 예의 바르게 스텔라에게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그리고는 날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이만 가볼게. 도와줘서 고마웠어.”
“들어가요.”
그렇게 아람을 보낸 나는, 그때까지 아무 말도 않고 날 노려보고 있던 스텔라를 향해 환히 웃었다.
“물어볼 거 있다고? 뭔데?”
“.... 식기세척기 사용법을 몰라서... 설명서가 없어.”
“그래? 이리 와봐. 알려줄게.”
“오빠.”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다.
화가 많이 났구나. 그럴 만도 하지.
아무것도 모른 척 순둥한 표정을 지은 내가 대답했다.
“응?”
말없이 날 지나친 스텔라는 식탁에 놓인 컵을 발견했다.
그 상단부에 묻은 아람의 입술자국까지 확인한 그녀가 몸을 홱 돌리더니 성큼성큼 다가왔다.
“저분이랑 친해?”
“친하다고 했잖아.”
“집에 부를 정도로?”
“그건 아닌데, 일하는데 도움을 좀 달라고 해서... 전화로 하기엔 복잡한 건이라 근처에 왔다길래 오라고 했지...”
“저번에도 꾸역꾸역 오빠 있는 데까지 찾아와서 직접 만나더니... 앞으로 만나지 마.”
거의 통보하듯 그리 말한 그녀가 소파에 주저앉았다.
털썩 소리를 다소 과하게 내면서 말이다.
속으로 끌끌거린 나는 컵을 치우고 스텔라의 옆에 앉아, 그녀의 허리를 안으려고 했다.
하지만 스텔라가 건들지 말라는 듯 몸을 피했다.
그러더니 서운한 투로 내게 따지기 시작했다.
“알렉스도 가서 나 혼자 외롭게 있는데 왜 오빠는 다른 여자를 불러? 그것도 집에?”
“미안해. 네가 이렇게 민감해할 줄은 몰랐어.”
“왜 몰랐는데?”
“난 널 만나고 있잖아.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기도 했고. 그래서 날 믿을 거라고 생각했어.”
“물론 오빠를 믿어. 근데 이건 다른 문제야. 세상에 그 어떤 여자가 남자친구 집에 다른 여자를 들이는 걸 그냥 보고만 있어? 게다가 저분은 딱 봐도 오빠한테 관심이 있어 보이던데?”
“그랬어...? 난 몰랐는데...”
“짜증나. 진심이야. 진짜 화나.”
콧김을 훅 뿜어내면서까지 자신이 삐쳤음을 알리는 스텔라.
팔짱까지 낀 모습을 보니 어지간히 화가 난 것 같았다.
그런 스텔라를 바라보던 나는, 조심스레 그녀의 손목을 잡았다.
힘없이 딸려오는 팔을 보니 이번엔 빼지 않으려는 것 같다.
다행이라고 생각한 나는 그녀의 손을 천천히 마사지하면서 말했다.
“미안해. 앞으로는 안 만날게.”
“.....”
진중한 목소리에 진정이 된 걸까?
스텔라의 표정이 조금 누그러졌다.
하지만 여전히 날카로운 상태였다.
잠자코 스텔라가 화를 풀길 기다리며 손을 꾸욱 꾹 주물러주고 있는데, 그녀가 뜻밖의 소리를 했다.
“나 여기서 살 거야. 지금부터 짐 옮길 테니까 오빠도 도와줘.”
“여기서 산다고...?”
“왜? 싫어?”
“아니... 나야 좋지만 알렉스는? 개학하면 돌아오게 될 텐데 어떡하게?”
알렉스가 자는 틈에 거실 소파에서 하는 광란의 섹스는?
“바로 옆집이잖아. 들러서 밥하고 빨래하고 해주면 돼.”
두집살림을 하면서 날 감시하겠다?
알렉스보다 나한테 더 정성을 쏟겠다면... 나야 환영이지.
동생인 자신보다 남자친구를 더 신경 써주는 누나,
점점 소외되어가는 자신의 상황에 분노하여 화살을 나에게 돌리고,
그것을 본 스텔라는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알렉스에게서 빠르게 정을 떼어가고...
그림이 굉장히 좋다.
“알렉스한테는 뭐라고 말하게?”
“솔직하게 말할 거야. 알렉스한테 우리 관계를 속이는 거 진짜 지쳐. 그래서 싸웠을 때도 제대로 만날 거라고 말한 거고.”
“그래...? 나야 뭐... 네가 오면 엄청 좋지.”
그 말에 스텔라의 표정이 완전히 풀렸다.
말하지도 않았는데 내게 딱 밀착한 그녀가 내 목을 껴안았다.
“나는 원래 내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았어... 소심하기도 했고, 주변 시선이 무서워서... 근데 오빠를 만나고 나서부터 달라졌어.”
“그랬어?”
“응... 요즘은 하루하루가 즐거워... 우울한 일도 오빠 생각만 하면 다 나아... 그래서 안 놓을 거야... 나 오빠 진짜 엄청 많이 사랑해...”
지금이라면, 알렉스와 크게 다투고 날 향한 사랑이 물이 오른 지금이라면...
내가 원하는 대답이 나오지 않을까?
스텔라의 등을 위에서 아래로 부드럽게 쓸어내린 내가 물었다.
“알렉스보다 더?”
“이런 상황에서도 장난을 치는 거야...?”
“장난 아닌데.”
낮아진 목소리를 들은 스텔라가 포옹을 풀었다.
그리고는 내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약간 좁아진 미간, 내가 진심인지 아닌지 확인하려는 것 같다.
한동안 그러고 있던 그녀는,
“.... 응. 최소한 지금은 그래...”
아주 작게 고개를 주억거렸다.
전신이 기쁨으로 달아오른다.
‘최소한’이라는 조건을 붙이는 게 마음에 들지는 않았다.
허나 며칠 전의 대답과 비교하면 격세지감이 느껴질 정도로 큰 성과를 얻었다.
여기서 조금만 더 용기를 내보자.
스텔라의 양 어깨를 잡은 내가 그녀를 지그시 쳐다보며 말했다.
“제대로 말해. 알렉스보다 더 사랑한다고.”
“시, 싫어... 난 대답했어...”
“말해.”
“.... 오빠 알렉스한테 열등감 같은 거 있어...? 왜 저번에도 그렇고... 자꾸 알렉스랑 비교하려고 해?”
“네 마음을 제대로, 확실히 확인하고 싶으니까. 난 알렉스를 좋아해. 좋은 동생이자 친구라고 생각해. 하지만 솔직히 알렉스한테 질투한 적이 많아. 나한테 줄 사랑을 동생한테 더 주는 것 같아서.”
그에 스텔라의 눈이 두 배는 더 커졌다.
“마, 말도 안 돼... 알렉스는 내 친동생인데... 그런 마음을 가졌었다구...?”
“난 집착이 심하거든.”
“.....”
이젠 입까지 헤 벌린 채 솔직한 속내를 내뱉은 날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다.
나는 잠자코 스텔라의 마음이 안정되길 기다렸다.
그러자 얼마 뒤, 숨을 길게 빨아들인 스텔라가 침을 꿀꺽 삼키고는 말했다.
“.... 알렉스보다... 오빠를 더 사랑해...”
머릿속에서 무언가가 끊어지는 소리가 들린다.
엄청난 정복감.
희열로 뇌가 타버릴 것 같다.
“아... 진짜아...”
동생을 향한 죄책감을 느꼈을까?
아니면 진심을 다해 사랑고백을 한 자신에게 부끄러웠을까?
스텔라가 고개를 약간 돌린 채 어쩔 줄 몰라 했다.
그리고 나는,
“꺄아악! 오빠!”
내가 원하는 말을 기꺼이 해준 스텔라에게 그대로 달려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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