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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소녀물 야겜 속 최종보스가 되었다-427화 (427/471)

〈 427화 〉 업보 #3

* * *

알렉스는 스텔라의 허락 하에, 하루에 한 번 편의점을 갈 수 있다고 했다.

어제 스텔라가 알렉스가 밤새 게임만 해서 잠을 못 자겠다고 톡을 보내왔었다.

그렇다면 일곱 시인 지금쯤 슬슬 내려올 시간이었다.

이사한 지 얼마 안 됐으니 밥반찬도 없을 터이니, 편의점에서 대충 끼니를 때우고 자려 할 것이었다.

“어...? 야...! 아니, 형!”

공원을 배회하던 나는, 거슬리지만 기다리던 목소리가 뒤에서 들려오자 고개를 돌렸다.

이후 멀리서 알렉스가 빠른 걸음으로 다가오는 것을 보고 한손을 들어올렸다.

“알렉스네? 안녕?”

놀라움 따윈 하나도 없는 내 표정을 본 알렉스가 미심쩍은 눈초리로 물었다.

“형이 왜 여기 있어? 누나 스케줄 가는 거예요? 누나는 오늘 오후에 하나 있다고 했는데?”

“왜 여기 있냐니... 나 여기 사는데?”

“예...? 뭐라고요...?”

“나 여기 산다고. 스텔라랑 같은 층이야. 몰랐어?”

“.....”

“몰랐나보네. 스텔라가 말한 줄 알았는데... 어쨌든 잘 왔어. 앞으로 친하게 지내보자.”

그리 말한 나는 알렉스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알렉스는 내민 손을 맞잡지 않았다.

그저 어이가 없다는 듯 헛웃음을 켜기만 했다.

기다린 보람이 있다. 오늘 사건 하나만 터뜨리자.

그리 생각한 나는 손을 회수하고 멋쩍은 듯 머리를 긁적였다.

“넌 여기서 뭐해? 운동 가?”

“아니... 편의점 가려고 나왔는데... 왜 형이 여기 살아요? 돈 많아?”

“갑자기 그런 얘기가 왜 나와?”

“그렇잖아요. 여기 매니저가 버는 걸론 꿈도 못 꾸는 비싼 집인데...”

“.... 그런 건 네가 알 바 아니지 않냐?”

“그렇긴 하... 음?”

수긍하려던 알렉스가 멈칫했다.

얘는 이해력이 달려도 너무 달리네... 멍청하기는...

“형 방금 뭐랬어요?”

“알 거 없지 않냐고. 개인적인 일을 알려줄 필요는 없다고 보는데.”

알렉스는 날 얕보고 있다.

호구처럼 생각하는 내게 이런 말을 듣는다면 상당히 화가 날 것이었다.

예상대로, 녀석이 제법 격한 반응을 보여주었다.

“아니, 왜 말을 이렇게 싸가지 없이 하지?”

“먼저 예의 없이 구니까 상대방도 이러는 거라고는 생각 안 해?”

“.....”

이런 씨발. 고민을 하고 있잖아?

이놈이 자신이 했던 말을 되짚어보기 전에 선수를 치자.

아예 설마 내 입에서 나오리라고는 믿어지지 않는 비난으로 긁어버리자.

그래야 알렉스가 스텔라에게 고자질을 했을 때, 그녀가 날 믿어주지.

“네가 2년이나 꿇은 이유가 있구나. 애가 아직 철이 없네.”

그 말이 도화선이 되었는지, 알렉스의 눈이 부릅떠졌다.

그래그래, 생각 같은 건 하지 말고 너 하고 싶은 대로 해.

“뭐?”

“네가 계속 이런 식으로 나오니까 너희 누나가 너에게 정을 떼어가는 거야.”

이번 건 조금 강했지?

“뭐 이 씨발놈아?”

누나 성능 확실하네.

“이젠 욕도 하네. 너답다.”

꽉 쥔 주먹이 부들부들 떨린다.

어지간히 때리고 싶은 듯한 모습.

그러나 온힘을 다해 참고 있다.

참을성은 나름 있지만... 거기까지가 한계.

어깨를 으쓱인 나는 알렉스를 쳐다보았다.

한심하다는 듯 이죽거리는 표정으로 말이다.

이후 몸을 돌리며 마지막 결정타를 날렸다.

“스텔라가 왜 저런 양아치를 키워주는지 이해가 안 가네... 그래도 동생이라 이건가?”

내가 말을 끝마치자마자, 뒤에서 타다닥거리는 소리가 들려옴과 동시에,

뻐억­!

내 왼쪽 광대에서 아주 찰진 소리가 일어나며, 얼굴이 옆으로 홱 돌아갔다.

주먹이 아주 맵다. 복싱 선수가 됐으면 대성했겠어.

상당히 아프다. 그런데 왜 웃음이 나오려고 하지?

**

“오빠! 잘 잤... 어...?”

신발을 정리하고 집 안으로 들어오던 스텔라가 멈칫했다.

그라데이션을 주며 내려가는 스텔라의 목소리 톤.

내 한쪽 뺨이 띵띵 부은 것을 본 그녀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뭐야...? 그거?”

재빨리 내가 앉아있는 소파로 다가온 그녀가 쪼그려 앉으며 말을 이었다.

“오빠...! 얼굴 왜 그래? 맞았어!?”

내 얼굴에 손을 가져갈 듯 말듯 하는 스텔라.

내가 고통스러워 할까봐 우려하는 것 같았다.

얼굴 한쪽이 저린 것처럼 눈가의 근육을 움직인 나는 손을 휘저었다.

“아냐. 돌부리에 걸려서 넘어졌어.”

“웃기지 마! 누가 봐도 맞은 건데...!”

“넘어졌다니까... 괜찮아.”

“넘어지긴 뭐가 넘어져! 넘어졌는데 다른 덴 다 멀쩡하고 한쪽 볼만 띵띵 붓냐!?”

당돌하게 따지고 드는 스텔라를 사랑스런 눈으로 바라본 나는 입술을 내밀었다.

왔으면 뽀뽀부터 해달라는 뜻.

이런 내 천연덕스런 행동에 입술을 잘근거린 그녀는, 결국 내가 원하는 대로 쪽 소리까지 내며 키스를 해주었다.

아주 조심스럽게, 내가 아파하지 않도록 말이다.

이후 다시 날 취조했다.

“누가 그랬어?”

이번엔 좋은 경찰 역을 하기로 했는지, 목소리가 약간 누그러져있다.

새어나오려는 웃음을 간신히 참아낸 내가 대답했다.

“땅바닥이 그랬어.”

“오빠... 뭐라고 하려는 거 아니고, 오빠를 때린 사람을 해코지하려는 것도 아니니까 걱정하지 말고 말해. 남자는 젊었을 때 많이 싸우잖아. 성인이 돼서 싸우는 건 조금 유치하기는 하지만, 우리 아빠도, 알렉스도 그래서 딱히 문제는...”

지금이다.

속으로 타이밍을 재던 나는, 스텔라가 알렉스를 언급할 때에 맞춰 어깨를 움찔 떨었다.

“....?”

스텔라의 고개가 갸웃거렸다.

내가 갑자기 왜 저러나 싶은 모양.

무언가를 고민해보던 스텔라는, 내가 그녀와 시선을 피하자 거의 경악에 가까운 표정을 지었다.

설마 하고 있는 것이다.

“오빠... 혹시...”

표정은 어색하게, 시선은 사선으로, 몸은 스텔라를 아주 약간 등지도록 돌린다.

이후 애써 태연스런 모습을 보여주려고 하는 연기력이 허접한 배우처럼 무미건조한 목소리를 낸다.

“어. 왜?”

낯빛이 순식간에 어두워지는 스텔라가 보인다.

제대로 먹혀들었다는 방증.

그녀는 곧 아주 가라앉은 톤으로 날 심문했다.

“알렉스랑 싸웠어?”

“아니.”

“솔직하게 말해.”

“안 싸웠어.”

“진심이야? 가슴에 손을 얹고 안 싸웠다고 말할 수 있어?”

이렇게까지 말하는데 뭐... 내가 무슨 힘이 있다고 더 거짓말을 하겠니.

나는 말없이 스텔라의 눈을 쳐다보며 미안하다는 신호를 보냈다.

그러자 사실을 확인한 스텔라가 자신의 이마를 짝! 소리가 나도록 쳤다.

“하아... 왜 싸웠는지 지금 전부 말해. 이번에도 거짓말하면 진짜 화낼 거야.”

“굳이 알아야 돼?”

“나랑 가장 가까운 관계에 있는 두 사람이 싸웠는데 어떻게 가만히 있어? 알아야겠으니까 말해.”

“음...”

한 차례 침음성을 내뱉은 나는, 마지못한 척 스텔라에게 모든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내게 유리한 쪽으로 조작된 이야기를 말이다.

알렉스를 조금 커버해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렇게 내가 모든 이야기를 전하자, 잠자코 듣고 있던 스텔라가 몸을 벌떡 일으켰다.

“잠깐만 기다려.”

서슬퍼런 투로 그리 말한 그녀는 성큼성큼 걸어가 현관문을 열었다.

쾅! 하고 닫히는 문.

스텔라가 자신의 집으로 간 것을 확인한 나는 등받이에 등을 기대고 다리를 쫙 폈다.

이제 알렉스는 엄청난 시련에 빠진다.

그 새끼가 나한테 먼저 싸가지 없게 굴었다니까!

그 새끼가 날 살살 긁으면서 약올렸다니까!

라며 사실을 말해봤자, 스텔라는 알렉스가 거짓을 말한다고만 생각할 것이다.

왜? 지금까지 해왔던 게 있었기 때문이다.

욕설, 동급생 폭행은 물론 결석, 대마초 상습 흡연...

이 외에도 온갖 사고를 치며 누나의 속을 썩인 알렉스.

반면 아무런 문제를 일으킨 적도 없고, 스텔라를 위해서 희생해왔으며,

그녀의 마음에 싹튼 사랑을 키워주기도 했고, 그보다 더 큰 사랑을 준 나.

꾸준히 업을 쌓은 자, 공덕을 쌓은 자.

이런 상황에선 아무리 혈육이라 하여도, 스텔라는 내 손을 들어주겠지.

업보란 게 그런 거다.

알렉스의 업보는 내가 몰래 쌓아둔 것이라는 게 차이점이었지만.

어쨌거나 힘내, 덜렁아.

날 위해서 알렉스를 혼내줘.

히죽 웃은 나는 아주 편한 자세로 TV를 켰다.

@@

덜커덩!

문을 거의 발로 차듯 연 스텔라는, 시끄러운 소리가 일어났음에도 평온한 표정으로 꿈나라에 빠져있는 알렉스를 보며 가슴을 쿵쿵 쳤다.

지금 상황이 얼마나 심각한지 모르는 건가?

곧바로 그를 깨우려던 그녀는, 일단 마음을 가라앉히고 알렉스의 얼굴을 살폈다.

‘멀쩡하잖아...?’

아무런 상처도 없이 깨끗하다.

그럼 둘이 치고 받고 싸운 게 아니라는 건가?

아니면 싸우긴 싸웠는데, 알렉스가 지혁을 일방적으로 구타한 건가?

‘아냐...’

지혁은 알렉스보다 덩치가 크다.

모든 싸움에선 체급이 높은 우선순위를 차지한다.

지혁이 일방적으로 밀리는 건 말이 안 됐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지혁이 절대 져선 안 되는 이유가 있었다.

어제 세화가 그랬었다.

지혁이 홀로 무장을 하고, 마물들의 신체부위로 생체실험을 하는 시리아의 테러집단을 찾아갔었다고.

거기서 격렬하게 전투를 하였다고.

지혁에게 그런 과거가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기에 어찌나 놀랐었는지 모른다.

어쨌거나 중요한 건 자신이 놀란 게 아니라,

잡히기는 했지만 홀로 수십 명과 맞서 싸울 수 있는 담력을 가진 사람이,

그럴 실력이 있는 사람이 고작 주먹질에서 밀릴 리가 없었다.

모든 것을 종합해보았을 때, 이번 사건은 알렉스의 일방적인 폭행이라고 할 수 있었다.

지혁은 동생이 주먹을 들고 달려드니 그냥 맞아준 거고.

그리고 지혁이 거짓말을 한 건... 그냥 상황을 유야무야 넘기려던 거다.

왜? 자신이 미안해 할까봐, 알렉스가 곤란한 상황에 처할까봐.

모든 정리를 끝낸 스텔라는,

“야!!”

방 안이 쩌렁쩌렁 울릴 듯 소리를 질렀다.

“으허억! 뭐야!?”

기겁을 하며 상체를 일으키는 알렉스.

그런 그를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쳐다본 스텔라가 말했다.

“너 진짜 머리가 어떻게 된 거 아니야!?”

“아 또 뭔데... 나 편의점 말고는 아무데도 안 갔어...”

“지금 그게 문제인 줄 알아!? 너 왜 지혁이 오빠 때렸어! 어!?”

그제야 누나가 화를 내는 이유를 알아차린 알렉스가 하품을 했다.

“아... 그거? 그 새끼가 나보고 2년 꿇은 이유가 있다잖아. 게다가 내가 계속 이런 식으로 나오니까 누나가 정을 떼어가는 거래. 재수 없지 않냐? 그래서 한 대 쳤지.”

대수롭지 않은 듯 말하는 게 어이가 없다.

쟤가 정상인지 의심이 들 지경.

뒷목이 빳빳해져온 스텔라가 그곳으로 손을 가져갔다.

“지혁이 오빠가 너한테 그랬다고? 그런 식으로 욕을 했다고?”

“그렇다니까... 그 새끼 뭔가 음흉해서 마음에 안 들었어.”

스텔라는 알렉스에게 정신병이 생긴 건지 진지하게 고민해보았다.

지금 자신이 저 말을 믿을 거라고 생각한 건가?

지혁은 사적인 인맥까지 동원해가며 알렉스의 입학도 도와줬고, 알렉스를 억압하여 훈육하려는 자신에게 우려를 표하기도 했다.

그럴 정도로, 지혁은 알렉스를 아꼈다.

그리고 지혁은 건들거리는 알렉스를 좋게좋게 타일렀다고 말했다.

이후에 알렉스는 지금 자신과 싸워서, 그리고 외출도 제한인 상태라 싱숭생숭할 거라고, 그러니까 너무 뭐라 하지 말라고 하기까지 했다.

그런 사람이 뭐?

2년 꿇은 이유가 있다?

네가 그러니까 누나가 정을 떼는 거다?

만약 지혁이 정말로 저 말을 했다면, 손에 장을 지진다.

그렇게 자신할 정도로 지금 알렉스가 한 말은 말이 안 됐다.

“이참에 혼내주는 게 맞았어. 누나는 걱정하지 말고 나만...”

자신의 무용담을 늘어놓으려는 알렉스가 진심으로 한심해진 스텔라가 조용히 알렉스를 불렀다.

“야.”

“응?”

“너 혹시... 어디 아픈데 있어? 최근에 막 머리가 울린다거나... 어지럽다거나 한 적 있어?”

“그건 또 뭔 소리래?”

“이 바보야... 지혁이 오빠는 널 학교에 입학시키려고 사적인 힘을 쓸 정도로 우릴 아끼고 걱정하는데...”

스텔라의 말을 듣던 알렉스의 표정이 썩어갔다.

한손을 들어 올려 그녀의 말을 끊은 그가 언성을 높였다.

“누나가 정말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면, 누나야말로 머리가 아픈 거야. 송지혁 그 새낀 누나한테 뭔가 목적이 있으니까 잘해주는 척하는 거라고.”

“무슨 목적?”

“누나 몸이겠지 당연히. 그놈은 진짜 개 변태 새끼라고. 속에 구렁이를 수십 마리 키우고 있는 미친놈이야.”

“와... 너...”

스텔라가 입을 뻐끔거렸다.

어떻게 말을 저따위로 할 수 있는지... 황당해서 말을 잇지 못할 정도다.

조금 정신을 차린 것 같다고 생각했었는데 아니었다.

알렉스는 철이 들려면 아직 한참이나 남았다.

아니, 과연 철이 들 수 있기나 할까?

“야... 지혁이 오빠는 네가 생각하는 그런 사람이 아니야... 장담할 수 있어...”

“아 씨발 진짜 미치겠네... 그럼 내가 들은 건 뭔데?”

“욕하지 마. 너 지금 선을 넘어도 한참 넘었어.”

“아니, 누나는 왜 그딴 병신새끼 편을 들어? 내 말이 안 믿겨?”

안 믿긴다. 믿고 싶지도 않고.

알렉스가 지혁을 조금이라도 알았다면 저런 말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개구쟁이이긴 하지만 순박하고, 성실하기 그지없는 남잔데...

지끈거리는 머리를 진정시키기 위해 관자놀이를 꾹꾹 누른 스텔라가 최대한 조곤조곤하게 말했다.

“네 말이 사실이라고 치자. 지혁이 오빠가 네게 험한 말을 했다고 쳐. 그렇다고 해도 원인은 네게 있었어.”

“뭔 개소리야...”

“네가 지혁이 오빠한테 그랬다며? 돈 많냐고, 어떻게 매니저 같은 일을 하면서 이런 집에 살 수 있냐고.”

“.....”

침묵하는 걸 보니 사실이었다.

혹시나, 호오오옥시나 했는데 역시나였다.

가슴이 먹먹해진 스텔라가 거의 울먹일 듯 말듯 알렉스를 타박했다.

“우리가 부자야? 남들 무시할 수 있는 수준이야? 여기 보영이 언니가 구해준 집인 거 몰라? 입주하니까 진짜 네 집이라는 생각이 들어? 그래서 막 다른 사람들이 서민처럼 보이는 거야?”

“그건... 그런 뜻으로 말한 게 아니라... 매니저 월급이 적으니까... 말이 되질 않아서 물어본 건데...”

“그렇다고 해도 실례되는 말을 하면 안 되지! 그리고 뭐? 매니저 ‘같은 거’? 네 눈엔 매니저가 창피한 직업이야? 왜 그렇게 깔보듯 말한 건데? 너 그럼 나도 딴따라라고 창피해하겠네?”

“미쳤냐 진짜? 난 누나가 가수라는게 얼마나 자랑스러운데...”

“그런 애가 내가 엄청 아끼는 매니저를 때리냐? 게다가 너 나 데뷔할 때 사고 쳤잖아... 그때 욕한 것도 커버해준 사람이 지혁이 오빠야... 그거 기억하고 있긴 해?”

알렉스의 입이 앙다물렸다.

기세가 팍 죽은 그가 애꿎은 자신의 발톱을 톡톡 떼어내려고 했다.

씩씩대는 자신의 누나를 올려다본 그가 성토했다.

“기억은 하고 있고, 오늘까지 고마워하고도 있었어. 근데...”

“근데? 지혁이 오빠는 뭔가 목적이 있는 사람이니까 정말 싫다고?”

“.... 맞다니까... 누나... 진짜라고... 걔 존나 음흉하다고...”

음흉한 건 인정. 자신과 관계를 가질 땐 그만큼 변태가 없었다.

하지만 일상을 보낼 땐 절대 그렇지 않았다.

배려가 넘치고 추진력도 있는 멋진 남자다.

자신은 물론 동료들, 심지어 박사마저도 지혁을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하고, 의지하고 있는 걸 보면 답이 나왔다.

“헛소리 집어치우고 당장 사과하러 가.”

“내가 왜 그 새끼한테 사과해야 돼?”

또 또 성숙하지 못하게...

답답한 마음이 든 스텔라가 자신의 가슴을 세차게 때렸다.

“너 폭력 휘둘렀어... 오빠가 착해서 망정이지, 다른 사람이었으면 바로 고소감이야... 간신히 입학한 학교에 다니지 못할 수도 있었어...”

“하... 누나... 제발 정신 좀 차려라...”

“너야말로 정신 좀 차려... 제발...! 제발!”

점점 톤이 올라가는 자신의 누나를 본 알렉스는 절망스런 한숨을 내뱉었다.

“.... 진짜 어이가 없다... 그 새끼가 누날 진짜 망가뜨려놨구나...”

그리고는 고개를 두리번거리더니, 거실로 나가 미처 조립하지 못한 의자 다리를 집어 들어, 그것으로 손바닥을 툭툭 쳤다.

방 안에서 그런 동생의 모습을 지켜본 스텔라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너 지금 뭐해...?”

“그 새끼 죽이려고.”

동생의 입에서 튀어나오는 험악한 말에, 일순 눈앞이 아찔해진 스텔라가 미간을 구겼다.

거실로 성큼성큼 걸어간 그녀가 소리쳤다.

“야! 알렉산더 헤일리! 너 진짜 이럴래!? 아예 외출금지 당하고 싶어!?”

“그딴 거 이제 안 통해.”

이대로 가다간 수습하기가 불가능할 정도로 일이 커져버릴지도 몰랐다.

황급히 현관문 앞으로 가서, 몸으로 알렉스를 막은 스텔라가 진심을 다해 말했다.

“나가. 지금 예전 집으로 돌아가. 개학할 때 다시 와.”

“뭐하냐?”

“너 굉장히 흥분한 상태야. 진정할 때까지 돌아오지 마.”

“장난치지 말고 비켜. 밀치기 전에.”

“밖으로 나가기만해! 너 빨간 줄 그이고 싶어!?”

“경찰에 신고하려고? 날? 누나 동생인 나를?”

“살인자가 되는 것보단 낫다고 봐.”

알렉스의 입에서 기가 찬 듯한 숨이 튀어나왔다.

“누나 지금 엄청 한심한 거 알아? 혹시 그 새끼 좋아하냐?”

“응, 좋아해. 제대로 만날 거야.”

망설임 없이 나오는 대답.

허탈한 웃음을 터뜨린 알렉스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래서 그렇게 편을 들어준 거구만.”

“아니, 난 지금 누구보다도 객관적이야.”

“그 객관적인 사람이 한쪽 말만 믿고 날 타박하냐?”

응, 난 네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생각해.

아니, 생각이 아니라 확신해.

왜? 네가 여태까지 계속 날 속였으니까!

주변 사람들 생각은 하나도 안 하고, 자기 자신의 이득을 위해서 서슴없이 거짓말을 해왔으니까!

이러한 말들이 스텔라의 목구멍 끝까지 나왔다가 다시 들어갔다.

말하지 못한 이유는 딱 하나였다.

자신 또한 알렉스에게 거짓말을 했기 때문이었다.

자신이 떳떳하지 못한데 어찌 상대방에게 떳떳함을 바라리?

거실은 긴 침묵이 흘렀다.

길게 이어지는 침묵.

알렉스는 여전히 지혁을 죽일 듯 각목을 들고 있었다.

더 이상은 안 되겠다고, 빨리 알렉스를 보내야겠다고 생각한 스텔라가 말했다.

“지금까지 내가 너한테 걸었던 것들 다 풀어줄 테니까, 예전 집으로 돌아가줘.”

“또 이러네... 우리 이제까지 떨어진 적 없었어. 그건 알고 있어?”

“알아. 그래서 이참에 한 번 떨어져보자. 그리고 생각해보자. 서로에게 필요한 게 뭔지.”

“.... 진심이네...”

“응. 진심이야. 가서 연 끊었다던 친구들이랑 마음껏 놀아. 뭐라고 안 할게.”

“하... 누나 진짜 웃긴다... 송지혁 그 개새끼가 대체 어떻게...”

“욕하지 말라고 했어.”

“.....”

뿌드득­!

분을 억지로 삼켜내던 알렉스의 입에서부터, 이가 갈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의자 다리를 부셔져라 쥐고 있던 그가, 그것을 바닥으로 휙 던졌다.

“좋아. 예전 집으로 갈게.”

“잘 생각했어.”

“대신 이거 하나만 약속해줘. 송지혁을 만날 때, 걔가 뭘 하는지 자세히 관찰해보겠다고.”

“내가 왜 그 말을 들어야하는데?”

“진짜 마지막으로 한 번만 믿어줘. 걔 진짜 뭔가 있어.”

“.....”

어찌할까 고민하던 스텔라는, 결국 동생이 원하는 대답을 내놓았다.

“좋아. 그렇게 할게.”

“약속했다?”

“약속해.”

“알았어. 지금 나가면 돼?”

“응.”

스텔라의 말이 끝나자마자, 알렉스가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 가방 안에 옷가지를 쌌다.

순식간에 일을 해치운 그가 다시 돌아와선 턱짓했다.

“나가게 비켜줘.”

몸을 옆으로 빼는 스텔라.

재빨리 주머니를 뒤적거린 그녀는, 동생에게 5만원 권 두 장을 쥐어주었다.

“지금 가진 게 이것밖에 없어. 나중에 계좌로 돈 보낼 테니까 밥은 꼭 건강식으로 챙겨먹어.”

“.... 대판 싸운 판에 신파는...”

틱틱댄 알렉스가 실소를 터뜨렸다.

자신의 누나를 복잡한 얼굴로 한 차례 바라본 그는, 곧 집을 나섰다.

한바탕 폭풍이 지나간 거실.

부서진 세간살이는 의자다리 하나가 끝인데, 개판이 난 것처럼 느껴진다.

후들거리는 다리를 움직이며 널브러진 다리를 구석에 세워놓은 스텔라.

두근!

그녀는 돌연 자신의 심장소리가 무척 크게 들려오자 심호흡을 하며 진정하려고 노력했다.

이건 무슨 감정일까? 분노? 슬픔?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온몸이 너무 뜨겁다.

어쩌다 알렉스와 자신이 이렇게까지 되어버린 걸까?

‘가슴이 너무 아파... 답답해...’

자신도 동생을 믿고 싶었다.

그러나 지금까지 알렉스가 보여주었던 모습들 때문에 그러지를 못하겠다.

지금도 그 생각은 똑같다.

성이 났다고 사람을 죽이려 드는 걸 보면, 믿지 않기를 잘한 것 같았다.

오늘은 알렉스에게 정말 큰 실망을 한 날이었다.

그것도 아주 많이... 일순 혐오스럽다고 생각할 만큼.

“흐윽...!”

처량하게 소파에 앉은 그녀는 결국 참아왔던 눈물을 터뜨렸다.

“흐아아아아앙! 허어어엉!”

그리고 곧바로 이어진 그녀의 서러운 통곡이, 조용한 거실을 메아리쳤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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