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26화 〉 업보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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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여기 왜 이렇게 좋냐...?”
이사를 온 집 내부를 둘러본 알렉스가 감탄을 연발했다.
뿌듯한 얼굴로 동생의 반응을 살핀 스텔라가 말했다.
“괜찮지?”
“엄청 큰데... 화장실도 각방에 있고... 여기 월세 얼마야?”
“보영이 언니가 내주신대. 그래도 나중에 정산받으면 갚아야지.”
“진짜 누나는 보영이 누나 없었으면 큰일 날 뻔했다. 그치?”
“뭐래... 네가 사고만 안 쳤어도 이럴 일은 없었어.”
신랄한 스텔라의 비판에, 알렉스가 머리를 긁적였다.
“그건 할 말 없네. 나 학교는 어디야?”
“한국대 부속고. 한국대 건너건너에 있어. 바로 졸업할 수 있는 기회를 걷어찬 건 네 자신이니까, 불만 갖지 말고 1년 더 다녀. 알았어?”
알렉스는 출석일수가 모자라 1년을 더 꿇어야 했다.
불량학생임이 분명하게 나타나는 기록부를 보고 학교 측에서도 받아주기 싫어해서 꼼짝없이 검정고시를 봐야 할 뻔했지만, 지혁이 힘을 써서 어찌 입학을 시켜주었다.
그러니까 제발! 자신이 지혁을 볼 면목이 없게 사고를 치고 다니지 말고, 무사히 졸업만 했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알았다고... 불만도 없어. 나 이제 진짜 정신 차렸다니까?”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기엔 신용이 없다.
그래도 뭐... 예전이었다면 1년을 더 다니라는 말에 노발대발했을 텐데, 이번엔 얌전히 알겠다고 하는 걸 보면 정신을 차린 것 같기는 했다.
어디까지나 추측이지만 말이다.
고개를 천천히 주억거린 스텔라가 구석에 있는 방을 가리켰다.
“저기가 네 방이니까 가서 짐 풀어.”
“알겠어.
신나선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는 알렉스.
어린아이 같은 모습을 보여주는 동생을 보며 피식한 스텔라가 자신의 방에 캐리어를 놓아두었다.
그리고는 침대에 걸터앉아 다리를 여러 번 교차했다.
드디어 이곳에 왔다.
자신도 이제 지혁, 그리고 동료들과 한 지붕 아래에 살게 됐다.
심심하면 동료들의 집에 놀러가도 되고, 매니저 일과 본부 일을 병행하는 지혁의 수고도 덜 수 있게 되어 기뻐 미치겠다.
이제 문제는 알렉스의 관리뿐.
동생은 요 이틀간 아주 나아지긴 했지만, 여전히 관심을 놓을 수가 없는 상태였다.
혹시나 동료들에게 추파라도 던진다면 그만큼 끔찍한 일이 없었으니, 개학 전까지는 외출 가능 시간을 정하는 게 좋을 것 같았다.
마치 동물처럼 가둬놓고 사육하는 느낌이라 미안하기는 해도, 알렉스에게 철이 제대로 박힐 때까지는 이럴 생각이었다.
이 주제는 지혁과 상의해야지.
그리 생각한 스텔라가 휴대폰을 들고, 자신이 사랑해 마지않는 지혁에게 톡을 남겼다.
[오빠 아직 수속 중이야? 끝나면 연락해줘.]
톡을 보내자마자 10초도 채 안 되어, 휴대폰이 진동을 발했다.
발신자는 당연히 지혁이었다.
마치 자신이 오기를 손꼽아 기다리기라도 한 것 같은 느낌에, 스텔라의 가슴속이 설렘으로 가득해졌다.
심호흡을 하며 두근거리는 마음을 진정시킨 스텔라가 전화를 받았다.
“응, 오빠.”
집에 도착했나보네?
“방금 도착했어. 마지막 수속은 잘 끝났어?”
끝났어. 교복도 사놨는데... 알렉스가 걱정이네. 스물한 살에 졸업하게 돼버리는데 화나지는 않을까 모르겠다.
보라, 알렉스의 미래까지 걱정해주는 지혁의 상냥함을.
알렉스도 이런 지혁의 선의를 알아줬으면 했는데... 지혁이 웬만하면 말하지 말라고 해서, 그게 참 아쉬웠다.
“그건 지 업보야.”
네가 그렇다면 난 할 말 없긴 한데...
“알렉스 신경은 그만 써도 돼. 이렇게까지 해준 것만으로도 고마워.”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인데 고맙긴 뭘... 아델이 마중나간다고 난리던데, 만났어?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라고? 왜?
처남이라서? 가족이니까?
상상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는 미래를 한 번 그려본 스텔라가 대답했다.
“내가 나오지 말라고 부탁했어. 알렉스랑 마주치게 하기 싫어서.”
알렉스가 알면 서운해 하겠네.
“저지른 잘못이 있으니까 어쩔 수 없어. 나 지금 짐 풀어? 아니면 오빠 만나?”
어떻게 하고 싶은데?
“만나고 짐 풀래.”
대답이 마음에 들었을까?
휴대폰 너머에서 낮게 웃는 소리가 들려왔다.
너무나도 듣기 좋은 중후한 목소리에 저도 모르게 입을 헤 벌린 스텔라가 말했다.
“지금 나갈게...”
응. 지하로 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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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텔라는 자각하지 못하고 있겠지만, 그녀는 은연중으로 자신의 동생을 껄끄러워하고 있었다.
아니, 껄끄러워한다기보다는 진심으로 의심한다고 해야 옳겠지.
사랑하는 동생을 소중한 동료들에게 소개시켜주는 것이 싫다고 생각하는 게 그 증거.
동료들을 위해서, 알렉스의 교육을 위해서라고 포장하고 있지만, 사실이 이렇다.
알렉스야, 그러니까 사고 좀 그만 치고 다니지 그랬냐.
아무리 내 계획 때문이라고는 해도, 눈앞에 있는 유혹에 넘어간 네 잘못이 더 크단다.
스텔라가 말한 것처럼, 업보라는 거지.
차 안에서 음흉하게 낄낄거린 나는, 스텔라가 조수석 문을 열자 표정관리를 했다.
문을 닫자마자 내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맞대는 그녀.
눈을 감고 애정 어린 뽀뽀를 받아준 나는, 글러브 박스를 열어 스텔라에게 서류를 보여주었다.
“알렉스 입학서류인데, 나중에 돌아가면 줄게.”
“아, 응... 우리 근데 어디 가?”
“아직도 비 오고 있으니까 산책은 무리고, 영화라도 한 편 보자. 괜찮지?”
“난 다 좋아.”
배시시 웃는 모습이 너무 예쁘다.
가벼운 화장을 한 것도 마음에 들고.
스텔라의 손을 한 차례 꽉 맞잡은 나는, 자동차를 출발시켰다.
이후 조심스레 생각하고 있던 것을 전했다.
“덜렁아.”
“응?”
“너 다음에 실비아 씨랑 훈련하잖아.”
“그치.”
“그때 어디 한 군데를 좀 다녀와 줘야겠어. 실전훈련도 할 겸, 치안도 살필 겸...”
아리송한 말에 스텔라의 고개가 갸웃했다.
“그게 무슨 소리야? 치안유지?”
“최근에 전국에서 범죄조직이 기승을 부리기 시작하고 있거든. 정부나 세계연합은 다른 일로 바빠서 그쪽에 돌릴 인력이 별로 없어. 그래서 우리가 연례행사 느낌으로 석 달에 한 번 정도 범죄조직을 소탕하고 있지.”
“아... 그거 박사님한테 들은 것 같았는데... 정기적으로 하는 거였어?”
“맞아. 난 네가 실비아 씨랑 같이 인천에 있는 조직을 처리해줬으면 좋겠어.”
스텔라의 얼굴이 부르르 떨렸다.
아무래도 ‘처리’라는 단어를 오해한 듯싶었다.
우리 덜렁이, 범죄영화를 많이 봤구나.
지금은 그냥 훈육 정도로 끝내주다가, 시간이 지나면 진짜 ‘처리’를 해주렴.
그녀의 귀여운 반응을 본 내가 말을 이었다.
“무슨 나쁜 생각을 하길래 표정이 그래? 내 말은 그냥 잡아놓고 경찰에 인계해달라는 뜻이었어.”
“아... 그런 거지...? 난 또...”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스텔라.
눈동자를 데굴 굴린 그녀가 질문을 해왔다.
“나더러 사람들을 상대로 싸우라는 거야?”
“위험하지는 않아. 변신했을 땐 기본적인 방어력이 아주 높고, 슈트로 보호하고도 있으니까 범죄자들이 쓰는 화기로는 피해를 입힐 수 없어.”
“그런데도 실전경험이 돼?”
“실전 같은 훈련만큼은 절대 아니겠지만 그래도 경험이 쌓이기는 할 거야. 넌 처음이니까 실비아 씨랑 같이 붙일 생각인데... 어떻게, 하고 싶어?”
아... 하는 감탄사를 터뜨린 스텔라가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주억거렸다.
마물이 아닌 인간을 상대하는 일이니만큼 바짝 긴장한 듯했다.
“할래. 나만 빠질 수는 없잖아.”
치안을 유지한다는 명목으로 훈련이랑 연계해서 범죄집단을 소탕하도록 한다.
그러다가 자연스럽게 그곳에 발을 들인 알렉스를 발견하도록 만드는 거다.
물론 첫 출정 때 발견하는 건 아니다.
내가 됐다고 판단했을 때 터뜨리는 게 목표.
그 전까진 스텔라의 알렉스를 향한 비호감 스택을 꾸준히 누적시켜놓을 것이다.
“알았어. 그럼 그렇게 알고 있는다?”
“응. 그리고 나 궁금한 게 있어.”
“말해.”
“우린 사람들을 지켜야하는 입장 아니야? 아무리 범죄자라고는 해도... 이렇게 개입해도 돼? 정부나 세계연합에 맡기는 게...”
걱정할 필요 없어.
걔네들이 뭔 짓을 벌이는지 알면 그 생각은 싹 사라질 테니까.
그리고 너는 네 동생이 범죄자들한테 마약을 구매한 걸로 알고 있잖아.
그럼 어떻게 해야겠어? 더욱 열심히 소탕해서 한국을 마약청정국으로 만들어야하지 않겠니?
“그쪽에선 인력이 없다고 했잖아.”
“아, 그렇지... 근데 실비아 선배님은 우리 중에서 제일 빠르잖아. 그럼 그냥 휙휙 지나가면서 한대 톡 때리면 사람들이 기절하지 않아? 그런데도 내가 필요해?”
손짓까지 해가며 묘사하는 스텔라를 보고 빵 터진 나는, 한참을 킥킥거리다가 대답했다.
“글쎄. 나는 현장에 없어서 잘 모르겠네. 실비아 씨가 알아서 잘 조절하겠지.”
“오빠는 없어? 왜?”
“마물이라면 전투기에 타서 도움을 줄 수 있는데, 사람들은 마구 공격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잖아. 맨몸으로 나갈 수도 있기야 하지만 눈 먼 총알에 머리를 맞으면 난 그날로 즉사야. 차라리 없는 게 더 도움이 돼.”
스텔라의 눈이 질끈 감겼다.
오만상을 다 쓰는 것으로 보아 내가 죽는 상상을 해본 듯했다.
그런 그녀의 다리에 손을 올려놓은 내가 말했다.
“그래도 연구실 안에서 상황을 지켜보고는 있을 거야. 통신기도 열어놓을 거고, 일이 끝나면 직접 상황을 파악하기도 할 거고. 그러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
“응... 아프지 마, 오빠...”
스텔라의 입에서부터 뜬금없이 나온 진심어린 걱정.
또 다시 대소가 튀어나올 것 같다.
이래서 난 스텔라가 너무 좋단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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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 밤.
아델의 집에서 열리는 스텔라 환영회에 주인공을 보낸 나는, 집에서 게임을 하고 있음이 분명한 알렉스의 성질을 살살 긁어볼까 고민하다가 그만두었다.
중요한 전화가 왔기 때문이었다.
왓슨입니다. 새로운 정보를 알아내서 연락드렸습니다.
“보고해.”
세계연합에서 비스트 슬레이어 본부에 맞서 새로운 조직을 창설한다고 합니다. 전투요원은 그 때문에 모집하고 있던 것이라고 했습니다.
예상하고 있던 바였기에, 놀랍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 예상이 완전히 확실해진 것이라 무의미한 정보는 아니다.
자신보다 위에 있는 존재를 끌어내려 그 자리에 서려는 건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인간들의 본성.
욕심을 버리면 평화롭게, 떵떵거리며 살 수 있을 텐데... 그놈의 권력욕이 뭔지... 참으로 한심하다.
“정보의 출처는 미래사령부 사령관이겠지?”
네. 어제 부인의 생일이라 흥이 났는지 술을 평소보다 많이 마셨고, 늦은 시간에 오늘 있었던 업무에 관한 상의를 하고 있었는데... 그때 지나가는 말로 넌지시 알려주었었습니다.
“다른 사항은 없나?”
네, 없습니다.
“수고했다. 계속 알아봐.”
네, 주인님.
전화를 끊은 나는 휴대폰 모서리로 이마를 약하게 툭툭 쳤다.
이제 슬슬 세계연합이 본격적으로 움직이는구나.
차출된 전투요원을 알아내서 포획할 수만 있다면 아주 좋을 텐데... 기회가 없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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