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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소녀물 야겜 속 최종보스가 되었다-421화 (421/471)

〈 421화 〉 조금 황당한 세 번째 결투

* * *

한국으로 돌아온 나는 집으로 돌아와 휴식을 취했다.

포탈을 탐으로서 묻은 마기를 지우기 위해서였다.

악의를 주입한 스텔라는 지금 오감이 민감할 시기니까, 만반의 준비를 다 해야지.

비바람을 구경하며 마기를 날려 보내고 있던 나는, 스텔라에게서 전화가 오자 피식했다.

시간이 얼마 지나지도 않았는데 닦달을 하려는 것 같아 귀여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보세요.”

­오빠, 나 본부인데 왜 없어?

스텔라가 미심쩍은 투로 저런 말을 하자 속으로 식겁을 했다.

행동력이 장난이 아니다. 폭우가 쏟아지는 날에 직접 올 줄은 몰랐는데.

재빨리 머리를 굴린 내가 대답했다.

“나 지금 집 들러서 샤워했다가 차타고 너희 집 가고 있는데? 대체 본부엔 왜 간 거야?”

­오빠가 끝나면 연락한다고 했잖아. 금방 끝낸다고도 했는데 소식이 없어서 본부에 있는 줄 알았지...

“아... 그때 작업에 열중하고 있어서...”

­그래서 까먹었다구?

으스스한 기분이 든다.

“아니, 까먹은 건 아니고... 지금 연락하려고 했어. 데리러 갈 테니까 거기서 기다리고 있어.”

­응, 빨리 와.

“금방 갈게.”

전화를 끊은 나는 시간을 보았다.

돌아온 지 20분가량이 지난 시간.

아직 마기가 아주 약간 남아있기야 하겠지만, 차를 타고 본부로 가는 동안 전부 지워질 것이다.

그렇게 나는 곧장 주차장으로 가, 공간이 넓은 SUV를 타고 본부로 향했다.

스텔라는 본부로 통하는 복도에서, 비를 바라보며 쪼그려 앉아있었다.

찾는 수고를 던 나는 우산을 펼치고 그녀를 향해 걸어갔다.

내가 점점 가까이 다가오자 계단에 놓인 크로스백을 주섬주섬 챙기고 일어나는 스텔라.

우산을 접고 빗물을 털어낸 내가 말했다.

“추운데 왜 나와 있어? 연구실에서 기다리면 되지.”

“바람 쐬고 싶어서... 일은 잘 끝냈어?”

“응. 대전 쪽에 있는 이블리언 탐색기에 문제가 생겨서, 원격으로 수리를 좀 했어.”

사실은 우리 본부의 정보를 호시탐탐 노리는 아주 악독한 세계연합의 음모를 막아냈단다.

천천히 고개를 주억거리는 스텔라를 바라본 내가 물었다.

“표정이 왜 그래?”

“뭐가?”

“별로 안 좋아 보이는데... 무슨 일 있었어?”

“그냥... 알렉스랑 싸웠어. 애가 정신을 못 차려서...”

치고 박고 싸운 게 아니라, 그냥 말다툼을 한 거겠지.

그렇다고는 해도 좋은 징조다.

자매의 우정에 금이 가면 갈수록, 스텔라의 안에 들어가 있는 악의가 쭉쭉 성장할 테니까.

“심하게 싸웠어?”

“음... 조금 심한 것 같아... 나중에 편지를 써서 식탁 위에 올려놓긴 했는데... 알렉스가 볼지 안 볼지는 모르겠어.”

“편지? 사과편지 같은 거?”

“비슷한 거... 창피하니까 내용은 얘기 안 할래.”

우리 덜렁이는 순해도 너무 순하다.

그런 건 왜 쓰고 난리니? 다시 우애 좋아지게시리...

“근데 오빠 안 피곤해?”

“괜찮아. 너는?”

“나도 별로...”

우울한 목소리. 마음이 싱숭생숭한 게 티가 났다.

이 상태에서 마물을 내보내면 어떨까?

비가 쏟아지고 있는 외딴 산에서 땀내 나는 결투를 펼치며 리프레쉬를 하는 스텔라...

패배하긴 했지만, 마물의 인정을 받고 환한 미소를 짓는 모습...

그러다가 적대해야할 마물의 칭찬을 받고 기뻐했던 자신을 탓하지만, 속으론 미운 정 비스무리한 감정이 생기는 그림...

이러한 생각이 머릿속에 새록새록 피어났다.

‘괜찮은데?’

마물의 입장에 공감하는 것도 악의의 성장에 도움이 될지도 모르고...

좋아, 쇠뿔도 단김에 빼랬다고, 실행에 옮겨보자.

이번 타자는 흑기수인가? 특이한 능력을 지닌 놈이니만큼 힘들 거다.

“무슨 생각해?”

스텔라의 의문 섞인 물음을 듣고 정신을 차린 나는, 그녀의 어깨에 팔을 둘렀다.

그리고는 내 품 안으로 당겼다.

가슴팍에 쏙 들어오는 스텔라의 가녀린 체구.

그녀의 팔을 부드럽게 쓸어내린 내가 말했다.

“집으로 갈까?”

“벌써...? 지금 집에 돌아가면 알렉스가 깰지도 모르는데...”

자신보단 동생을 위하는 저 마음... 빨리 물들이고 싶어서 미치겠다.

악의를 듬뿍 집어넣고 싶은 욕심이 생긴다.

하지만 참자. 스텔라의 마음이 충분히 물들 때까지.

“너희 집 말고, 우리 집.”

“아... 오빠 집...?”

뺨에 홍조를 띄우는 걸 보니 뭔가 야한 일이 벌어질 거라고 생각한 듯했다.

그런 그녀의 모습에, 나는 작게 헛웃음을 켰다.

“내일 보영이 누나랑 연습 있지 않아?”

“맞아... 있어.”

“입은 옷이 너무 얇아서 감기 걸리겠다. 목에 무리 가면 안 되니까 가자.”

“.....”

스텔라의 기다란 속눈썹이 아래로 내려갔다.

고민을 하고 있는 것 같지만, 그녀는 이미 내가 집으로 가자고 했을 때부터 결정을 내린 상태였다.

표정을 보면 안다. 그녀는 지금 우리 집으로 가는 걸 아주 크게 바라고 있었다.

“아침에 알렉스 밥 차려줘야...”

“알렉스가 애냐? 일어나면 알아서 먹을 거야. 사과편지도 썼다며. 내일은 네 정성을 본 알렉스가 혼자 생각하고, 반성할 수 있게 시간을 주는 편이 좋다고 생각해.”

“그... 런가...? 이런 적은 처음이라 잘 모르겠어...”

“괜찮을 거야. 네가 알렉스를 사랑하는 만큼, 알렉스도 널 사랑하니까.”

나만큼은 아니지만.

“.....”

격려의 말에 심리적인 안정이 되었는지, 스텔라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띄워졌다.

그것으로 대답은 나온 것과 같았다.

우산을 머리 위로 펼친 나는, 스텔라를 데리고 차로 향했다.

**

“오빠...”

화장실 문을 3분의 1쯤 열고 고개를 빼꼼 내미는 스텔라.

곤란해 하는 얼굴이었다.

침대에 누워 TV를 보고 있던 내가 말했다.

“왜?”

“혹시... 칫솔 여분 없어...?”

“편의점에서 속옷 살 때 안 샀어?”

“까, 깜박했어...”

수줍어하는 모습이 까무러칠 정도로 귀엽다.

옷을 벗지도 않았으면서 고개만 내밀고 있는 것도 웃기고.

침대에서 나온 나는 망설임 없이 화장실 문을 비집고 들어갔다.

“아 오빠...! 뭐해애...”

애교가 가득한 말투로 따지는데, 기가 찼다.

내가 들어오기 쉽도록 자리까지 비켜줬으면서, 말과 행동이 따로 놀고 있다.

여우같은 그녀의 행동에 코웃음을 친 나는, 거울을 밀어 수납장 구석에 잘 정돈되어있는 칫솔을 하나 꺼냈다.

“이거 쓰면 돼.”

“응...”

스텔라가 몸을 배배 꼬며 자신의 현 감정을 나타냈다.

그러고 보니 스텔라가 우리 집에서 자는 건 처음인가?

미처 생각지 못했었는데... 감회가 새롭다.

욕조엔 모락모락 김이 피어오르는 물이 가득 차있었다.

그것을 보고 장난스런 미소를 지은 내가 물었다.

“벌써 물 받아놨네? 같이 샤워할까?”

“무, 뭐...?”

뭘 새삼스럽게 놀라고 그래.

너희 집에서 많이 했잖아.

섹스 후 여운이 남아있을 때였긴 했지만.

나는 기겁을 하는 스텔라의 머리카락을 헝클어뜨렸다.

“농담이야. 욕조에 들어가기 전에 몸 씻는 거 잊지 말고.”

“그, 그런 건 내가 알아서 할게...!”

내 등을 떠밀며 나가라고 시위를 하는데, 더 놀리고 싶어진다.

그 마음을 간신히 참아낸 나는 순순히 침대로 돌아왔다.

이후 샤워기의 물소리가 들려오자 마르셀라에게 전화를 걸었다.

­네, 마왕님.

“레슬린 앨런은 어떻게 됐지?”

­폐기할지, 아니면 이용할지 고민해보고 있어요. 능력을 보고 결정할 생각이에요.

내가 실험실을 나오기 전, 몇 번의 고문을 더 받았던 레슬린은 몸의 자유를 얻었음에도, 마르셀라가 눈앞에 있음에도 덤빌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그저 온몸을 바닥에 엎드린 채, 자비를 베풀어준 마르셀라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했었다.

묻는 질문에도 꼬박꼬박, 막힘없이 대답했다.

심지어는 묻지도 않았는데 기밀사항을 술술 불었다.

압도적인 공포와 고통이 충정을 이긴 것이다.

정신이 완전히 붕괴된 건 아니었지만, 두려움으로 인해 이성적인 생각 따윈 하지 못했다.

“알았다. 이 건은 네게 맡기지. 그리고 흑기수를 내보낼 준비를 해주었으면 좋겠구나.”

­알겠습니다. 위치는요?

“비가 오는 산이되, 나무가 많아야한다. 한국이라면 좋겠지만 아니어도 상관은 없다.”

­네...? 꼭 비가 오는 산이어야만 하나요?

왜? 구체적인 장소라서 당황했니?

“성장 스토리는 살이 덕지덕지 붙는 게 좋잖으냐. 주변 환경이 열악할수록 임기응변이 생기겠지. 전투는 짧게 하라고 흑기수에게 전해둬라.”

­알겠습니다... 신호를 보내주시면 바로 내보낼게요.

“그래.”

마르셀라와의 통화를 마친 나는, 깍지를 낀 손을 뒤통수에 대고 느긋하게 스텔라를 기다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샤워기 소리가 멎더니, 찰박거리는 소리가 귀를 간지럽혔다.

욕조 안에 들어간 스텔라가 몸에 물을 끼얹는 것 같았다.

확 들어가서 다리를 벌려버리고 싶지만, 오늘 기분이 다운되어있을 테니 참는다.

제법 오랜 시간이 지나자, 화장실 문이 열리면서 스텔라가 나왔다.

사이즈가 어마어마하게 큰 흰색 무지 티셔츠를 입고 수줍게 나오는 그녀.

밑단이 헐렁헐렁한 반바지 때문인지, 안 그래도 얇은 다리가 더욱 얇아 보인다.

주먹을 쥐며 애꿎은 자신의 골반을 툭툭 때린 그녀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나 다 씻었는데...”

“그럼 옆으로 와.”

“.....”

“얼른.”

약간 엄하게 말을 하자, 스텔라가 그제야 주뼛주뼛, 조심스레 내 옆으로 왔다.

새로 가져다놓은 베개에 머리를 대고 누운 그녀.

두꺼운 이불을 덮으며 나른한 표정을 짓다가, 내 눈치를 보고는 티셔츠의 넥 부분을 끌어당겨 입을 가린다.

날 흘끗거리더니 젖은 자신의 머리카락을 눈가에 가져다대고 가린 건 덤.

‘내 집에서’ 한 침대에 누워있는 게 부끄럽기 그지없는 듯했다.

하는 짓이 너무 귀여웠기에, 나는 저도 모르게 낮은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자 스텔라가 뾰로통한 표정을 지으며 중얼거렸다.

“왜 웃는데에...”

“눈치 보지 않고 너랑 있을 수 있는 게 좋아서.”

“.....”

“너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

“난... 그냥... 뭐... 약간...?”

솔직하지 못하기는... 쯔쯔...

스텔라의 목 뒤로 팔을 집어넣은 나는, TV로 눈을 돌린 채 그녀의 매끄러운 피부를 살살 쓰다듬었다.

이마, 코, 입술을 지나 턱, 그리고 목까지...

이런 내 손길에 기분이 좋아졌을까? 스텔라가 더 만져달라는 듯 내게 바짝 붙어왔다.

아까부터 주의 깊게 체크하고 있었는데, 스텔라는 저번에 이곳에 왔을 때 느꼈던 익숙함을 느끼지 못한 것 같았다.

모두에게 마기 개방을 주의하라고 일러둬서 다행이었다.

닫힌 창문을 뚫고 들어오는 미세한 빗소리와, TV에서 나오는 연예인의 말소리만 들려오는 평화로운 분위기.

한동안 조용히 있던 스텔라가 말했다.

“선배님들께서는 주무시고 계시겠지...?”

“아마도. 왜? 인사하려고?”

“그러려고 했는데... 늦었으니까 내일 할래... 나 아침에 아델라인 선배님이랑 산책 다녀와도 돼?”

“아델은 늦잠 잘 걸? 실비아 씨는 일찍 일어나시니까 같이 조깅이라도 다녀와.”

“그런가...? 알았어.”

다시 이어진 침묵.

이번에도 그것을 깨뜨린 건 스텔라였다.

“오빠한테서 나랑 같은 냄새나...”

“그래서 좋아?”

“응... 너무 좋아...”

“동생보다 더?”

“아 뭐래... 유치하게...”

스텔라가 내 손을 가져와 자신의 입가를 가리면서 킥킥거렸다.

내가 장난을 치고 있는 줄 아는 듯했다.

그녀에게로 고개를 돌린 내가 재차 물었다.

“그 정도까지는 아니야?”

“왜 이렇게 집착해...? 그냥 뭐... 똑같이 좋아해... 아니다, 똑같이 사랑해... 됐어?”

나쁘지 않은 대답이지만, 만족스럽지는 않다.

가까운 시일 내로 동생보다 내가 훨씬 좋다고 말하게 만들어야지.

히죽 웃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한 나는 스텔라의 등허리까지 손을 내렸다.

“앗...!”

짤막한 감탄사를 터뜨리는 그녀.

예상치 못한 타이밍에 들어오니 놀란 게 분명했다.

그래도 이런 일이 벌어질 거라 미리 각오하고 있었는지, 리액션은 그것으로 끝이었다.

스텔라의 얌전한 반응을 본 나는, 그녀의 반바지 속으로 손을 들이밀었다.

팬티의 촉감이 엉덩이 밑 라인까지 이어져있다.

편의점에서 파는 흔한 햄팬티였다.

디자인이 밋밋한 종류긴 하지만, 스텔라가 가진 청초함이 더욱 부각되어서 마음에 들기는 하다.

“.....”

TV에서 나오는 빛으로 인해 스텔라의 얼굴색이 보였다.

붉은 기가 얼굴은 물론 귀마저도 덮고 있다.

오늘따라 유난히 더 부끄러워하는데... 너무 예쁘다.

오늘은 흑기수를 내보내지 말고 스텔라와 시간을 보낼까?

아니, 스텔라의 심리상태를 고려하면 지금이 딱 알맞은 때이긴 하다.

그냥 내보내고, 전투가 끝난 후 돌아와서 다시 마저 하자.

나는 몸을 돌려 스텔라를 마주보며, 자유로운 손으로 몰래 신호기를 눌렀다.

신호를 보낸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삐빅­! 삐빅­!

스텔라의 디바이스에서 귀를 찢어버릴 듯한 경고음이 발생했다.

“흐아아악!!”

그에 감전이라도 된 사람마냥 경기를 일으킨 스텔라가 상체를 일으켰다.

한창 집중하려는 상황에 경고음을 듣고 제대로 놀란 것 같았다.

멍하니 두 눈을 끔벅이던 그녀는, 방 안을 계속 울리는 경고음에 퍼뜩 정신을 차렸다.

그리고는 디바이스와 날 번갈아 쳐다보았다.

“오빠... 이거...”

그래, 네가 생각하는 그게 맞아.

침대에서 뛰쳐나온 내가 휴대폰을 체크하며 말했다.

“가까운 경기도라 다행이다. 지금 출발해. 난 박사님이랑 합류한 뒤에 뒤따라갈게.”

“나, 나 혼자...?”

“다른 사람들도 경고음을 듣고 깨어났을 거야. 세화는 지금쯤 이미 출발했을 걸?”

“아, 알았어... 포탈... 포탈... 경기도 쪽 포탈이 어디 있었더라...”

디바이스 버튼을 눌러대며 포탈 위치를 찾는 스텔라.

저 초보 티는 언제쯤 벗을지 걱정이다.

“자동설정 돼있어. 변신하고 누르기만 하면 돼.”

“아, 맞다... 그랬지...! 나 갈게...!”

굳은 표정으로 침을 꼴깍 삼킨 스텔라가 디바이스 화면을 두 번 터치했다.

화아악­!

새하얀 백색 빛이 방 안을 가득 메운다.

이 색깔은 본능적으로 거북한 느낌이 든단 말이지.

그리 생각한 내가 찌푸린 눈을 떴을 땐, 스텔라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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