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20화 〉 마르셀라의 음습한 선물 #2
* * *
“읍! 으으으읍!! 읍!”
어떻게든 몸을 움직이려 끙끙거리는 요원.
안쓰럽기 짝이 없는 모습이었지만, 기계는 잔인하게도 요원의 머리에 씌워져 그녀의 시야를 가렸다.
기계가 의외로 깊다. 콧등 중간까지 가릴 정도로.
준비를 마친 마르셀라가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첫 심문은 기계를 작동하고 난 뒤에 할게요.”
특무대 소속이라면 방첩, 첩보활동을 하다 잡힐 우려가 있어서, 각종 고문에 관한 내성을 키워놨을 터였다.
정신력이 범인을 아득히 초월할 테고, 그에 따라 질문에 순순히 대답하지 않을 가능성이 컸다.
그나저나 첫 심문이라? 그렇다면 두 번째, 세 번째도 있나보지?
저 기계가 정확히 어떠한 역할을 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마도 처음은 가볍게 시작하려는 것 같았다.
“알았다.”
“네.”
허락을 받은 마르셀라가 상단에 있는 여러 개의 모니터에 무언가를 띄웠다.
그건 요원의 바이오리듬 정보였다.
신체정보부터 시작해서 정신상태까지 전부 그래프와 수치, 그림으로 나와 있었다.
묵묵히 정보를 살펴보니, 감정을 나타내는 그래프가 곡선을 그리고 있다.
하지만 파도를 치는 정도까진 아니었다.
현재 요원의 정신상태가 제법 안정적이라는 뜻.
과연 잘 훈련된 요원다웠다.
“흐욱... 흐웁...”
묶여있는 요원을 보니 호흡을 고르고 있었다.
심상찮은 일이 일어날 거라 확신하고는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이다.
속으로 감탄한 나는 잠자코 마르셀라를 지켜보았다.
잔뜩 기대하고 있다는 표정을 지은 그녀는 능숙한 솜씨로 키보드를 두드렸다.
그러자 얼마 후,
스르르륵! 스르르륵...!
기계의 양끝에 있던 수많은 촉수가 다소 징그럽게 꿈틀거렸다.
그것은 마치 숙주를 찾은 기생충처럼 스멀스멀, 요원의 양쪽 귓구멍을 향해 움직였다.
“흡! 으후븝...!”
요원의 고정된 머리가 부들부들 떨려왔다.
실지렁이 같은 것들이 귀에 닿자 소름끼치는 감촉을 느낀 듯했다.
살아있는 생명체마냥 꿈틀거린 촉수는 곧,
퓻!
요원의 고막에 미세한 구멍을 내고 귓속으로 침입했다.
“으브브브븝! 으붑!”
거의 발악을 하려는 그녀.
모니터를 보니 감정 그래프가 널뛰기를 하고 있었다.
심리적인 불안감이 심하다는 방증. 다만 고통은 전혀 없는 듯했다.
“상처가 전혀 나질 않는구나.”
“폴리머스의 좋은 점이죠. 의료기기에 사용하는 자원과 섞어서 그런 것도 있어요.”
언제 헉헉거렸냐는 듯 냉철한 눈으로 요원을 흘겨본 마르셀라는 작업을 계속했다.
기관에 손상이 가지 않을 정도로 천천히, 그리고 크기를 자유자재로 바꿔가며 달팽이관에 침입한 촉수.
그것은 곧 신경을 지나 뇌동맥을 침범했다.
이후 뇌 곳곳에 자리를 잡고, 애초에 요원의 신체기관이었던 듯이 자연스럽게 안착하여 융합했다.
모니터에 나타난 요원의 뇌는, 마치 외계의 기생물에 감염이라도 된 듯한 모습이었다.
남들이 보기엔 징그러워하겠지만, 내 눈엔 한 폭의 아름다운 그림 같기만 했다.
마르셀라의 걸작. 이 외엔 표현할만한 말이 없다.
“읍...! 으훕...!”
당혹스런 신음을 터뜨리는 요원의 상태는 양호했다.
뇌가 전부 장악당한 것만 빼면 말이다.
간단하게 기계를 조작한 마르셀라는, 좌측 측두엽 부근에 자리한 촉수가 빨간 빛을 발하는 것을 보고는 요원의 입에 단단하게 걸려있는 재갈을 풀었다.
천천히 내려가며 요원의 목에 걸쳐진 재갈.
비명이라든지, 아니면 협상이라든지...
그런 격한 반응들이 튀어나올 거라고 예상한 나는, 이어지는 요원의 행동에 눈을 크게 떴다.
“아... 오... 아...!”
그녀는 금붕어마냥 입을 뻐끔거리기만 하고 있었다.
말을 할 줄 모르는 아이처럼.
흥미가 완전히 돋은 나는 마르셀라의 바로 옆까지 움직였다.
“언어능력을 상실한 건가?”
“아뇨. 그럴 수 있다면 좋겠지만... 아직은 할 수 있는 게 한정적이에요. 인간의 뇌는 정말 신비하고 복잡하니까요. 지금은 뇌에 자극을 줘서 정신을 차리지 못하게 만든 것뿐이에요.”
‘아직은’이라고 말했다.
이는 곧 발전할 여지가 충분하다는 소리였다.
고개를 주억거린 내가 말했다.
“저것으로 끝은 아니겠지?”
“네, 지금부터 저 요원에게 자각몽을 꾸도록 한 뒤, 뇌의 각 분야를 담당하는 영역에 자극을 줘서 실제로 고문을 받는 것처럼 느끼게 할 거예요.”
“유리아 때처럼 말이로군.”
“그것보다 훨씬 생생하죠. 자, 상황까지 설정을 완료했으니 이제 시작할게요.”
말을 마친 마르셀라의 손이 빠르게 움직였다.
그녀의 가느다란 손가락이 키 캡에 닿을 때마다, 요원의 머리에 들어간 촉수에서 전류가 자그마하게 흘렀다.
“읏! 욱...!”
그럴 때마다 짤막한 비명을 끊어서 터뜨리던 요원은, 얼마 지나지 않아 악몽을 꾸듯 엑엑거리더니 곧 가래 끓는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끄르륵...! 끄륵...!”
고통스러워하는 요원.
전신은 숨통이 꽉 막힌 것처럼 아주 시뻘겋게 변하고 있다.
이에 그치지 않고, 마르셀라는 요원을 결박한 구속구를 약간 헐렁하게 했다.
그러자,
덜컹! 덜컹덜컹!
요원의 몸이 간헐적으로 꿈틀거리며 수술대를 마구 흔들어댔다.
모니터에 나타난 요원의 생체정보 수치는 오류라도 난 양 계속 뒤바뀌고 있었다.
고통 수치가 꽤나 높다. 물고문의 정도가 아주 심한 모양.
거의 2분이 다 되어갈 때까지 요원에게 고통을 주던 마르셀라는 고문을 멈췄다.
“푸하아악! 우웨엑!”
요원이 구역질을 하며 위산을 토해낸다.
뇌가 저걸 자신이 마셨던 물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청소용 기계를 조작해 실험실 여기저기에 널브러진 토사물을 청소한 마르셀라가 손가락으로 탁상을 톡톡 두드렸다.
요원의 반응을 살피는 것이다.
“허어억...! 허억...! 개새끼들...”
여전히 꿈을 꾸고 있는지 낮게 욕지거리를 내뱉는 요원의 상태는 빠르게 안정되어가고 있었다.
회복탄력성이 뛰어난 아이로구나. 인재는 인재다.
냉소적인 미소를 지은 마르셀라가 요원의 머리에서 기계를 떼어냈다.
허나 촉수는 여전히 요원의 뇌를 장악한 상태였다.
“하아... 하아... 응...?”
요원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그리고는 현 상황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내, 내가 왜 여기에... 난 분명...”
그런 요원을 지켜보던 마르셀라가 마이크를 켰다.
“이름과 소속을 말씀하세요.”
“핫!?”
깜짝 놀란 요원의 고개가 치켜세워졌다.
사정없이 떨리는 눈동자. 갑작스레 나긋나긋한 목소리가 들려오니 혼란에 빠진 모양이었다.
하긴, 아무리 훈련을 잘 받았다고 해도 이런 미친 일을 겪는데 당황스럽지 않을 수가 없지.
수 초간 요원의 대답을 기다리던 마르셀라가 말을 이었다.
“대답할 생각이 없으시군요. 훈육 후에 다시 묻겠습니다.”
그리고는 일말의 자비조차 베풀지 않겠다는 듯, 요원에게 다시 기계를 씌웠다.
그에 자신에게 좋지 않은 일이 또 일어날 거라고 직감한 듯한 요원이 입술을 꽉 깨물었다.
“익...!”
언제쯤 정신이 붕괴되나 보는 것도 재미있겠군.
그리 생각한 나는 사랑스런 눈으로 마르셀라를 내려다보았다.
마르셀라는 요원을 제대로 갖고 놀고 있었다.
아주 악취미적으로 말이다.
**
“그만해...! 그만...! 흐으윽...! 그만...”
요원의 멘탈이 나가는 데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박피, 낙형, 전기고문 등... 신체적인 고문은 아주 잘 버텼다.
그러나 자신의 눈앞에서 부모를 비롯한 가족들이 갈기갈기 찢어지는 장면을 볼 때부터, 요원의 멘탈은 깨져갔다.
화룡점정은 그 다음이었다.
거동하기 불가능할 정도로 좁은 곳에 요원을 가두어놓고, 2주일간 감금해놓는 것.
허기, 갈증은 느끼지만 죽지도 않고, 볼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요원이 체감한 시간은 2주지만, 그러나 실제로는 1시간도 채 지나지 않은... 아주 짧은 시간이었다.
물론 실제로는 일어나지 않은 일이다.
그저 자각몽 안에서 경험했을 뿐.
그러나 실제라고 생각될 정도로 생생한 꿈은, 요원의 정신을 빠르게 무너뜨렸다.
깨어나면 멀쩡한 자신의 몸 상태는 덤.
일개 인간이 이런 상황을 버틴다면, 그게 더 부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어쨌거나 그 고문이 끝났을 때, 마르셀라의 목소리를 듣고 상황을 대충이나마 파악한 요원의 표정은 정말 가관이었다.
끝없는 절망의 수렁에 빠진... 꿈도 희망도 없는 자의 자포자기한 얼굴.
다시 보고 싶으면 정상인가?
“이름과 소속을 말하세요.”
무미건조한 마르셀라의 명령을 들은 요원의 고개가 아까와는 정반대로 아주 천천히 들렸다.
풀린 눈으로 스피커 쪽을 바라본 그녀의 눈빛에 근심이 서렸다.
하지만 그건 아주 잠시뿐이었다.
마르셀라가 다시 기계를 내리기 시작하자 닭똥 같은 눈물을 줄줄 흘리며 소리를 질러댔다.
“안 돼...! 안 돼!! 싫어어!!! 레, 레슬린 앨런입니다...! 세계연합 한국지부 소속이에요...! 흐으윽... 제발... 그만해주세요...”
“세계연합 한국지부의 어느 부서죠?”
“수색...”
말을 하던 레슬린의 입이 앙다물어졌다.
‘수색’이라는 말을 했던 것으로 보아, 수색팀 소속이라고 거짓말을 하려 한 듯했다.
주판을 두드려보는지 잠깐 침묵하던 레슬린이 결국 자신의 정체를 순순히 실토했다.
“트, 특무대... 소속입니다...”
“특무대에서 받은 임무가 뭐죠?”
“그건...”
망설이는 레슬린에게 한 차례 혀를 찬 마르셀라가 말했다.
“훈육을 재개하겠습니다. 이번엔 그 지친 정신이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군요.”
지나가는 말로 최후를 예고하자, 레슬린이 다급한 표정을 지으며 모든 사실을 털어놓았다.
“히이익...! 자, 잠깐만요...! 말할게요...! 말씀드리겠습니다! 비스트 슬레이어 본부의 여러 탐색기 중에서, 보안이 허술한 한 탐색기에 장치를 하나 부착하라고 했습니다!”
“어떤 장치인가요?”
“거기까진 저도 잘 모릅니다! 진심이에요! 솔직하게 말씀드린 거예요... 흐아아앙...!”
대성통곡을 터뜨리기 시작하는 그녀.
이 정도 효과라면 실험은 대성공이라고 할 수 있었다.
아니, 실험이 아니라 선물이었지.
마르셀라가 날 위해서 만든 최고의 선물.
마르셀라의 어깨에 손을 올린 나는, 그녀의 공을 치하했다.
“수고 많았다. 정말 마음에 드는구나.”
그에 뺨에 홍조를 띤 마르셀라가 수줍게 말했다.
“복제 아이테르의 적합자에게 사용할 수 있도록 더욱 개량해놓겠습니다.”
지금도 대단한데, 여기서 더욱 발전하면 활용도가 얼마나 무궁무진하게 될지...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다.
하고 싶은 것들은 아주 많았다.
복제 아이테르 적합자의 자아를 붕괴시켜놓고, 그 심층 안에 내 존재를 각인시킨 후에, 내 손길이 닿지 않으면 끝없는 고통을 느끼게 만든다든가...
아니면 증오하는 마왕의 자지 맛을 좋아하게 될 때까지 꿈속에서 훈육하고, 실제로 날 만나게 만든 후에 반응을 지켜본다든가...
내 악의를 주입받지 않으면 일상생활이 불가능할 정도의 어마어마한 두통을 시도 때도 없이 느끼게 한다든가...
다양한 조교방법이 계속 생각나고 있어서 머리가 터질 정도다.
우우웅!
행복한 고민을 하던 나는, 진동이 울리자 휴대폰을 꺼냈다.
[오빠, 자?]
스텔라의 톡이 와있다.
늦은 밤인데 자지 않고 연락하는 걸 보니 알렉스와 또 일이 있었나보다.
마무리만 짓고 위로해주러 가야겠다.
그리 생각한 나는 답장을 보냈다.
[나 잠깐 급한 일 때문에 본부에 와있거든? 금방 끝나니까 다시 연락할게.]
[아 진짜? 이 시간에? 엄청 성실하네... 알았어.]
당연히 성실해야지.
목적지가 눈앞에 보이는데, 고생하고 푹 쉬는 게 낫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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