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19화 〉 마르셀라의 음습한 선물
* * *
하늘에선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다.
어두컴컴한 밤, 그리고 빗줄기.
새로이 얻은 힘을 축복하기 딱 좋은 날이었다.
나는 음침하기 짝이 없는 어느 폐건물에서 마르셀라를 만났다.
이곳을 장소로 정한 이유는 간단했다.
마침 비도 오겠다, 습한 공기를 마시고 쿰쿰한 냄새를 맡으며 대화를 나누고 싶었기 때문이다.
“저, 정말이세요...? 그럼 제 몸에 감도는 이 힘이...”
내 설명을 들은 마르셀라의 빨간 동공이 크게 확장됐다.
한쪽 입꼬리를 비뚤어뜨린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네가 생각하는 그게 맞다.”
“와...! 와아아...! 겨, 경하드리옵니다, 마왕님!”
입이 서서히 벌어지더니 탄성의 탄성을 거듭하는 마르셀라.
심지어는 까치발을 들었다 말았다 하며 살살 뛰기까지 한다.
이러다가 물개박수까지 칠 기세. 지금까지 보여주었던 반응 중에서 가장 격한 것 같다.
내 곁에 오래 있었던 최측근인 만큼 감격이 컸나보다.
한참동안 흥분을 감추지 못하는 마르셀라를 지켜본 나는, 그녀를 그윽하게 쳐다보았다.
“이제 마왕님께서도 어엿한...”
재잘재잘 떠들기 시작하려던 마르셀라의 입이 꾹 다물렸다.
몸은 감전이라도 된 사람마냥 꼿꼿이 선 상태.
귀여운 꼬리 또한 바짝 날이 선 채로, 가운을 걷어내며 뒤통수까지 슬며시 올라오고 있다.
이젠 입에서 후끈한 숨결을 내뱉겠지.
“후... 후아...”
거 봐라.
여기서 더 있다간 흥분에 휩싸여선 즙을 흘려댈 것이다.
그렇게 되기 전에, 나는 다리를 후들후들 떨기 시작하는 마르셀라를 부축해 건물 난간에 앉도록 했다.
그리고는 그녀에게 가져온 물을 내밀었다.
“마셔라.”
“후으우... 후으... 감사합니다...”
흥분을 빠르게 식히려는 듯 물을 벌컥벌컥 들이켜는 모습을 보니, 조금만 더 시간이 지났다면 한 번 절정했을 것 같다.
원래부터 허접했는데, 오랫동안 만져주지 않아서 쌓여있었겠지.
손수건을 꺼내 다소곳하게 입을 닦는 마르셀라를 지켜보던 내가 장난스레 말했다.
“네 몸은 여전하구나.”
“그, 그게... 어쩔 수 없어요... 저는 마왕님의...”
“변치 말라는 뜻이었다.”
“아... 네...!”
“새로운 힘에 대해 궁금한 게 있느냐?”
마르셀라의 고개가 천천히 끄덕여졌다.
가슴에 손을 얹고 심호흡을 한 그녀가 물었다.
“혹시... 다른 권속들에게 영향은 없었나요...? 송혜윤과 유세라, 그리고 채보영 같은 인간들 말이에요.”
“널 만나러 오기 전에 송혜윤과 유세라를 확인해보았다. 딱히 유의미한 변화는 없더군. 채보영은 아직 모르겠구나. 그건 왜 묻지?”
“그녀들은 마왕님의 마력이 섞인 피를 받은 권속이에요. 저처럼 직속이라고 할 수 있죠. 그래서 한 번 체크해보고 싶었어요. 일단은 아직 초반이니만큼 상황을 지켜봐야겠군요.”
역시 우리 마르셀라는 꼼꼼하다.
그녀의 은발 머리카락을 쓰다듬은 내가 말했다.
“이상이 있다면 네게 바로 보고하도록 하지.”
“보, 보고라니요... 당연히 제가 해야 할 일이니 마왕님께서는 스텔라 님에게 집중하시는 것이...”
“겸사겸사 체크하마. 이러면 되겠지?”
“무리는 하지 않으시는 게... 저번에도 저와 박사님 몰래 권속을 하나 만드시더니...”
매디슨 스완을 말함이었다.
박사에게 들은 모양.
그런데 무리하다니... 전혀 그렇지 않은데 마르셀라는 걱정이 너무 많아서 탈이다.
“알아서 잘 조절하겠다.”
“.... 네...”
“이 주제는 이쯤하고... 알렉스는 어떻지?”
“당분간 저희와 어울리기 힘들다고, 죄송하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좋은 말로 잘 달래줬어요. 위로금 명목으로 돈도 보냈고요.”
“그랬더니?”
“정말 감사하다고, 사정이 나아지면 바로 일하겠다고 하더군요. 알렉산더 헤일리는 조직에 깊게 발을 들였어요.”
마르셀라가 있는 이상, 빠져나가기 불가능하겠지.
뭐, 알렉스는 빠져나갈 생각도 없겠지만.
묵묵히 고개를 주억거린 나는 살랑살랑 흔들리고 있는 마르셀라의 꼬리를 홱 낚아챘다.
“히약!”
깜찍한 비명을 터뜨리는 그녀.
그런 그녀의 꼬리 끄트머리를 문지르기 시작하니, 눈빛이 몽롱해지면서 온몸이 파리하게 떨리기 시작한다.
“아아...♡ 하아아악...!”
“요새 자주 보지 못해서 미안하구나.”
“아... 니입... 니... 다흐아...♡ 읏! 응...!”
콕콕 찌를 땐 움찔움찔 떨고, 살살 쓰다듬을 땐 바들바들...
다양한 리액션을 보여주는 마르셀라가 무척 귀엽다.
슬쩍 아래를 보니 벌써부터 조수가 질질 흐르고 있었다.
폐건물의 먼지가 묻어있는 가운의 밑자락이 적셔지면서, 물기가 스멀스멀 올라오는 게 보였다.
킥킥거린 나는 마르셀라를 옆으로 쓰러뜨리고, 그녀의 위에 올라탔다.
투명한 눈물이 찔끔 맺힌 마르셀라의 큼지막한 눈이 어둠속을 뚫고 시야에 잡힌다.
오똑한 콧날, 새빨간 광택이 이는 도톰한 입술, 갸름한 턱선...
뭐 하나 마음에 들지 않는 게 없다.
왜 초창기 때 건드리지 않으려 했을까?
이렇게나 아름답고 충성스런 권속을.
나는 서로의 코가 맞닿을 정도로, 마르셀라의 얼굴을 향해 내 얼굴을 내렸다.
“흐으윽... 흐윽...♡”
거의 울다시피 하며 헥헥거리고 있는 모습이 예쁘다.
마르셀라와의 시간은 다른 아내들과 다른 톡 쏘는 맛이 느껴진다고 해야 할까?
하고 나면 기운이 쏙 빨리는 듯한, 그런 격렬한 느낌이 있었다.
그리고 그건 마르셀라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오늘은 마르셀라에게 포근함을 주는 게 목적이니까, 새로운 걸 해보기보단 평소대로가 좋겠다.
그리 생각한 나는 뱀 마냥 혀를 길게 내뺐다.
이후 마르셀라의 뾰족하기 그지없는 송곳니를 슬며시 핥았다.
“히윽!?”
하이톤의 신음소리가 귀를 간지럽힌다.
나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혓바닥 정중앙을 송곳니에 대고 꾸욱 눌렀다.
푸욱...!
따끔하고 후끈한 느낌이 일며, 제대로 관통된 혀에서 진득한 핏물이 줄줄 새어나온다.
그리고는 혀끝을 따라 내려가더니, 마르셀라의 입을 향해 폭포수처럼 떨어졌다.
“후오오옥...♡”
순식간에 눈을 까뒤집는 마르셀라.
그녀의 가랑이 사이로 손을 집어넣어보니, 완전히 젖은 것도 모자라 애액이 질질 새고 있었다.
언제나처럼 한결같은 반응. 역시나 아래만큼은 허접한 마르셀라다웠다.
정신이 없는 와중일 텐데도 내 피만큼은 한 방울도 놓치지 않고 마시려하고 있다.
새하얀 목이 꿀떡거리는 모습이 무척 섹시하다.
머리끝까지 흥분감이 찾아온 나는, 마르셀라의 가운을 확 찢었다.
후두둑! 하고 뜯어지는 합성섬유.
당기는 힘에 의해 들렸다가 풀썩 쓰러진 마르셀라의 입에서 간드러지는 소리가 튀어나왔다.
“꺄아앙...!”
잔뜩 올라간 톤. 기대감이 상당한 듯했다.
격한 움직임으로 인해 새하얀 얼굴에 튄 피를 보니 더 이상 참을 수가 없다.
웃통을 확 벗어던진 나는 마르셀라의 다리를 활짝 열었다.
그러자 마르셀라가 양손을 자신의 가랑이 사이로 쭉 내리더니 말한다.
“마, 마왕님...! 잠깐만... 후아...♡ 잠깐만요오... 미처 말씀... 드리지 못한 게 하나... 있어요...”
“뭐지?”
“마왕님께... 드릴 선물이... 있는데...”
“있는데?”
“.... 끝나면... 보여드릴게요...♡”
말은 언제든 보여줄 것처럼 하고 있었지만 실상은 달랐다.
마르셀라는 지금 선물을 담보로 거래를 요구하고 있었다.
자신과의 정사에 집중하라고, 자신을 만족시켜달라고 말이다.
피로 덧칠된 이빨을 드러내며 콧방귀를 낀 나는, 마르셀라의 다리 사이로 위치를 옮기며 말했다.
“많이 컸군.”
“.... 죄송... 합니다아...”
죄송할 것까지야 있나.
이 정도는 버릇없다고도 할 수 없을 만큼 가벼운 도발인데.
그래도 몸으로 갚긴 갚아라.
**
남극에 있는 비밀기지는 정말 오랜만이었다.
나는 아랫배를 감싸 쥔 채 상체를 수그리고 있는 마르셀라를 데리고 실험실로 향했다.
그리고는 그녀를 의자에 앉혔다.
“허억... 허억...”
이마를 탁상에 대고 거친 숨을 토해내는 그녀.
고개를 옆으로 돌리고는 그렁그렁한 눈으로 날 올려다보는 모습이 묘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힘없이 축 쳐진 꼬리는 현재 마르셀라의 상태를 단적으로 알 수 있게 해준다.
그녀의 얇은 목덜미를 손으로 감싸고 약한 힘으로 주물거린 내가 말했다.
“힘들면 조금 쉬었다가 해라.”
“.... 아, 아니에요... 익...!”
끙끙거리며 상체를 일으킨 마르셀라가 열심히 키보드를 조작했다.
그러자 전방의 거대한 창 너머에서 위이잉 하는 기계음이 들리더니, 바닥이 좌우로 열리며 기다란 수술대가 올라왔다.
그리고 그 수술대 위에는, 20대 중반 정도로 보이는 젊은 여성이 누워있었다.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도 못할 만큼 단단히 결박된 채로 말이다.
눈을 뜬 상태의 그녀는 재갈을 뱉으려 노력하다가,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알아내보려는 듯 눈동자를 데굴 굴렸다.
하지만 그녀가 볼 수 있는 건, 남색 빛으로 내리쬐는 조명과 군청색의 벽, 그리고 바닥뿐이었다.
나와 마르셀라를 발견하지도 못했다.
우리가 있는 상황실엔 반사필름이 붙여져 있었기 때문이다.
덕분에 나는 마음 놓고 여자의 움직임을 관찰할 수 있었다.
움직임이라고 해봐야 눈이 끝이었지만.
어쨌거나 혼란스러운 상황일 텐데 상당히 침착해 보인다.
팔짱을 낀 상태로 그녀를 지켜보던 내가 물었다.
“흰 피부에 적발이라... 아일랜드인인가?”
그에 호흡을 잘 고른 마르셀라가 대답했다.
“한국과 아일랜드의 혼혈이에요... 부친의 유전자를 강하게 물려받은 아이죠. 세계연합 한국지부에서 활동하고 있어요.”
“세계연합 한국지부? 그쪽 요원인가?”
“특무대 소속 방첩, 첩보요원이에요. 이틀 전에 대전 쪽 이블리언 탐색기 근처를 서성거리고 있길래 잡아왔죠.”
“호... 정보를 빼내기 위함인가?”
“그건 아직 확실치 않아요. 이제부터 알아볼 생각이에요.”
이제부터 알아본다? 자백제라도 투입할 생각인 건가?
일단 잠자코 있어보자. 마르셀라에게 무언가 생각이 있을 테니까.
“요원이 사라진지 이틀이나 지났으니 세계연합에서 수상쩍게 생각하겠구나.”
“아뇨. 안전해요. 제가 보장할게요.”
마르셀라의 일처리는 믿음직스럽다.
저렇게 자신할 정도면 완전히 안심해도 된다는 뜻.
고개를 천천히 주억거린 내가 물었다.
“저게 날 위한 선물이냐?”
“그럴 리가요. 저 아이는 그저 정신력이 강해서 사용하는 실험체일 뿐, 마왕님에게 드릴 선물은 따로 있어요. 잠시만요...”
키보드를 따닥거린 마르셀라가 옆에 놓인 수많은 버튼 중 하나를 눌렀다.
위이이잉...!
그러자 여자가 있는 천장 타일 하나가 불길한 소리를 내며 위로 올라가더니, 거기서부터 기이한 기계가 하나 내려왔다.
전체적으로 묵빛을 띠고 있는 그것의 크기는 사람 머리통 두 개를 합친 정도였고, 중앙이 움푹 패여 있었다.
사람의 머리에 씌우는 물건이라는 듯 말이다.
그리고 양쪽 가장자리에 아주 얇고 긴 촉수가 수두룩했다.
“저건 뭐지?”
“저게 제가 마왕님께 드리는 선물이에요. 유리아 왕비님을 함락시키실 때 사용했던 기계에서 아이디어를 얻고, 새로 고안한 물건에요. 힘들게 만들었어요.”
유리아를 함락시킬 때 사용했던 기계라면 딱 하나밖에는 없었다.
바로 자각몽을 꾸게 하는 가상현실기기였다.
그럼 저건 그 기기를 개량한 걸까?
아니, 새로 고안했다고 했으니까 기존 것과는 다르겠지.
만들기 힘들었다고 생색까지 낼 정도면... 기대해 봐도 좋을 듯싶다.
“용도는?”
“폴리머스로 만든 촉수가 인간의 머리... 음... 직접 보여드리는 게 나을 것 같아요.”
그리 말한 마르셀라가 다시 키보드를 조작했다.
그러자,
스르륵...! 스르르르륵...!
촉수가 마치 기생충마냥 격렬한 움직임을 발했다.
그리고 그것을 지켜보고 있던 세계연합 소속 첩보요원은,
“으으읍...! 읍!”
본능적으로 불길함을 느낀 듯 비명을 질러대기 시작했다.
천천히 요원의 정수리를 향해 내려가는 기계.
뭔가 음습한 일이 벌어질 것 같다는 확신이 선 나는, 저도 모르게 입꼬리를 씰룩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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