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17화 〉 마지막 퍼즐 #2
* * *
“짐 다 쌌어? 응...? 컴퓨터는 왜? 아... 그래, 이사하는 당일 날 싸도 되지 그건. 난 집 보러 가고 있어. 조금 늦으니까 얌전히 집에 있어. 배고프면 차려둔 거 있으니까 그거 먹거나, 아니면 시켜먹어.”
알렉스와의 전화통화를 마친 스텔라는 휴대폰을 조심스레 집어넣었다.
그리고는 걱정스런 얼굴로 운전을 하고 있는 날 돌아보았다.
“집에 계속 있었다고 하는데 사실일까?”
“글쎄. 네 생각은 어떤데?”
“믿어야하는데 자꾸 의심이 가. 여태까지 사고 친 게 있잖아.”
당연히 그래야지.
그건 정상적인 반응이란다.
핸들을 손가락으로 톡톡 두드린 내가 물었다.
“걱정이긴 하다. 알렉스 휴대폰에 위치추적 앱이라도 설치해줄까?”
“커플 위치추적 어플 같은 거?”
“맞아.”
“안 들키게 설치할 수 있어?”
“응.”
“그래...?”
룸미러로 스텔라를 보니 진심으로 혹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내 몹쓸 짓이라는 듯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냐... 됐어.”
“알렉스는 어플이 설치된 줄도 모르는데?”
“알렉스 문제가 아니라 내 문제야. 그렇게 하면 진짜 감시하는 거잖아. 알렉스가 심각한 잘못을 저지른 건 맞지만... 그렇게까지 하면서 동생을 옥죄고 싶지는 않아. 근데...”
말끝을 흐리고 입맛을 다시는 스텔라.
눈빛이 초롱초롱한 것이, 무슨 음모를 꾸미는 것 같았다.
“왜 그래?”
“조금 궁금하긴 한데... 오빠 휴대폰에 한 번 깔아서 실험해보면 안 돼?”
역시 저럴 줄 알았다.
나는 스텔라의 제안을 단칼에 거절했다.
“안 돼.”
“아 왜애...!”
“동생을 감시하는 건 싫고, 날 감시하는 건 좋냐? 난 아무런 잘못도 안 했는데?”
“아니이...! 그냥 어떻게 작동하는지 궁금하니까 그런 거지... 다른 의도는 없어...”
딱 봐도 음흉한 속내가 드러나는데 다른 의도가 없기는 무슨.
혀를 끌끌 찬 나는 화제를 돌렸다.
“집은 내 옆집으로 한다?”
“아, 응...”
스텔라의 얼굴이 뻘겋게 변했다.
옆집이라는 단어가 왠지 묘하게 들리는 모양.
픽 하는 실소를 터뜨린 나는 핸들을 잡고 있는 손의 검지를 뻗어 전방을 가리켰다.
“도착했어. 봐봐.”
내가 가리킨 오피스텔을 바라본 스텔라가 입을 살짝 벌렸다.
“와... 크다...”
“최상층이 25층인데, 세화를 비롯한 모든 사람들은 같은 층에 살아. 박사님은 따로 단독주택에 계시지만, 세화네 집에 자주 놀러 와서 주무셔.”
“진짜...? 오늘도 계셔?”
“아마도.”
두런두런 대화를 나누며 주차장에 들어선 나는, 텅텅 빈 라인 아무 곳에 차를 대었다.
그러자 스텔라가 안전벨트를 풀며 묻는다.
“주차장이 휑해. 입주를 많이 안 하나보네? 비싸서 그런가?”
“아니. 여긴 본부 사람들만 댈 수 있는 전용 주차장이야.”
“응...?”
입을 살짝 벌리는 스텔라.
벌써부터 놀라는 모습을 보여주니 웃기다.
원래는 공용으로 사용할 수 있는 것들이지만, 널 위해서 우리가 힘 좀 썼어.
마음 편히 사는 것으로 사라진 관계자들에게 보답하면 돼.
히죽 웃은 나는 차에서 내려, 스텔라를 데리고 현관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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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금 주차장도 그렇고, 지금 이 엘리베이터도 그렇고...
본부 사람들만 따로 사용할 수 있는 것들이 건물 안에 마련되어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따로 건설사와 협업이라도 한 건 아닐 텐데, 놀랄 노 자였다.
이 외에도 헬스장, 수영장, 널찍한 공원 등의 압도적인 편의시설까지...
오피스텔이 아니라 그냥 최고급 아파트 같았다.
지금 살고 있는 집의 시설도 좋긴 했지만, 이 정도로 입이 떡 벌어지는 수준까진 절대 아니었다.
알렉스가 이곳에 오면 여길 어떻게 입주했느냐고 물어볼 텐데, 설명해주기가 곤란할 것 같다.
자신이 이런 곳에서 살아도 되나 고민하던 스텔라는,
띵!
[25층입니다.]
잡음 하나 들리지 않는 명쾌한 기계음에 퍼뜩 정신을 차렸다.
부드럽게 열리는 문에서 내린 그녀는, 좌우 끝이 아주아주 긴 복도를 보고 탄성을 터뜨렸다.
“와...”
문이 대체 몇 개인지... 셀 수조차 없을 정도다.
이 층 전체를 본부 사람들만 쓴다니... 아무래도 본부는 돈이 썩어 넘치나보다.
스텔라는 본부가 대체 어떻게 자금을 유통하는 건지 문득 궁금해졌지만, 중간 복도에 활짝 열려있는 현관문에서 기이한 무언가가 보이자 고개를 갸웃했다.
‘저게 뭐야...? 꼬리...?’
살랑거리는 움직임을 보인 복실한 무언가가 몇 개 나타났다가 쏙 사라졌다.
눈을 빠르게 끔벅거린 스텔라는 저게 뭐였는지 진지하게 고민해보다가, 답이 나오지 않자 지혁을 올려다보았다.
“오빠도 봤어...?”
“뭘?”
“여우 꼬리 같은 게... 있었다가 사라졌는데... 저기서...”
“아... 그거?”
어찌 말해줘야 할지 고민이라도 하는 듯 턱을 긁적이는 지혁.
저러니까 더 궁금해진 스텔라가 지혁을 재촉했다.
“아 뭔데...? 뭔데?”
“음... 유리아의 동생인데, 아델이 봐주고 있어.”
반려동물을 직접 키우는 사람들은, 그 아이들을 동생이나 딸이라고 칭한다.
지극히 평범하게 지혁의 설명을 이해한 스텔라가 다시 물었다.
“유리아 선배님의 동생...? 유리아 선배님께서 여우도 키우셔?”
“뭐... 그렇다면 그렇지.”
“답이 왜 그렇게 애매해? 그럼 저긴 아델라인 선배님의 댁이야?”
“맞아. 일단 그 동생은 나중에 보자. 충분한 설명을 듣고 나면, 너도 이해하게 될 거야.”
지혁의 미적지근한 반응에, 스텔라의 미간이 좁혀졌다.
저번에 아델이 말했던 것이 하나 생각났기 때문이다.
‘분명 다른 세계에서 온 동생이 하나 있다고... 하신 것 같았는데... 그땐 아델라인 선배님의 동생이라고 하지 않으셨나...?’
그건 그렇고 기분이 약간 오묘했다.
본질적으로 거부감이 드는 것 같은데, 어딘지 모르게 편안하기도 한 것 같았다.
굉장히 모순적인 느낌.
여우 꼬리를 본 순간부터... 아니, 이 층에 들어선 순간부터인 듯했는데...
‘기분 탓인가...?’
왠지 모르게 오감이 민감해진 것 같은데, 정신력을 많이 써서 그런가 싶다.
자신의 가슴속을 희미하게 맴도는 위화감을 파악해보려 하던 스텔라는, 열린 문에서부터 아델이 신발도 신지 않고 나오자 상념을 날려버렸다.
“막내야!”
활짝 웃은 스텔라가 다소 큰 목소리로 화답했다.
“선배님!”
이모를 만난 조카마냥 우다다다 달려오는 아델의 뒤로, 세화를 비롯한 모두가 만면에 미소를 띤 채로 스텔라 자신을 보고 있었다.
저들을 보니 마음이 따뜻해진다.
동료가 가까운 곳에 있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이럴 정도라니.
이사를 한다고는 했지만 아주 조금의 망설임이 있었는데, 그마저도 확 사라진다.
이 결정은 잘한 거다.
그리 확신한 스텔라가 달려온 아델을 꼭 껴안았다.
**
아델이 스텔라가 살 집을 소개해주고 있는 사이, 나는 유리아의 집에서 박사와 대화를 나누었다.
주제는 이번에 매디슨 스완이 보고했던 안건이었다.
“세계연합 직인이 찍혀있는 공문이 퍼지고 있어...? 난 왜 몰랐지?”
“아날로그 식으로 일처리를 하니까 그래. 누나는 모를 수밖에 없지.”
“확실히 그렇긴 하네... 그나저나 나 몰래 스파이를 심었어? 마르셀라는 알아?”
“마르셀라도 몰라. 누나가 설명해줘.”
“알았어요. 마르셀라가 좋아하겠다.”
기뻐하는 박사에게 가까이 다가간 나는, 그녀의 배를 천천히 쓰다듬었다.
아이를 향한 내 사랑이 전해져서였을까?
“읏...!”
참았던 신음을 짧게 토해낸 박사의 윗입술 양쪽 끝에서 뾰족한 이빨이 튀어나오면서, 피부가 창백하게 변해갔다.
눈 또한 마찬가지. 파란색 홍채가 피에 물든 것처럼 시뻘겋게 변하면서, 동공이 세로로 쭉 찢어지려고 했다.
흥분을 감추지 못해 마력이 흐트러지면서, 위장이 풀리려고 하는 것이다.
감춘 날개마저도 등을 뚫어버릴 듯 살을 찢는 소리를 내고 있었다.
박사의 반응을 확인한 내가 침착하게 말했다.
“진정해.”
“흡...!”
기를 쓰며 집중을 하는 박사.
간신히 본모습으로 돌아온 그녀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사과했다.
“미안해요... 아직도 마력을 다루는 게 서툴러서...”
“당분간은 조심하자. 조금만 참으면 번거롭게 위장할 필요도 없을 거야.”
내 말을 찰떡같이 이해한 박사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설마... 스텔라의 아이테르에 악의를 집어넣었어?”
“맞아.”
“반응은 어때? 변화가 있어?”
“감각만 약간 예민해진 상태인 것 같아.”
“그래...? 우리가 풍기는 마기를 감지할 정도야?”
“그냥 컨디션이 이상하다고 느낄 정도겠지. 아이테르가 이상을 감지하지도 못할 정도로 아주 극소량을 넣었으니까 며칠 지나면 정상적으로 돌아올 거야.”
“그러면 다행이지만... 알았어. 조심할게요.”
박사가 자신의 손을 어깨 뒤로 넘겼다.
의지와는 상관없이 튀어나오려 했던 날개 때문에 얼얼한 통증을 느낀 것 같았다.
그런 그녀의 날개뼈 부근을 가볍게 마사지해준 내가 말했다.
“그렇다고 해서 스텔라를 피하거나 할 필요는 없어. 그냥 집중만 잘하면 돼.”
“응. 아, 마르셀라가 그러는데...”
이후로도 박사와 업무 이야기를 나눈 나는 밖으로 나왔다.
복도에서 잠깐 기다리고 있으니, 스텔라가 살게 될 집의 현관문이 열렸다.
신나게 아델과 재잘거리는 그녀를 보니 고민 따윈 전혀 없어 보인다.
좋은 징조였다. 동료들과 있으면 마음이 아주 편하다는 방증이었으니까.
이내 날 발견한 그녀가 아델에게 고개를 꾸벅 숙였다.
“그럼 선배님, 조만간 뵙겠습니다...!”
“다 같이 파티할 거니까 최대한 빨리 오도록 하렴.”
“네, 선배님.”
손을 마구 흔들며 아델과 헤어진 스텔라가 내게 다가왔다.
그러다가 고개를 15도 각도로 틀더니 표정이 싸악 굳었다.
“왜 그래?”
질문에도 대답하지 않은 스텔라는, 내 옷자락을 당겨 빳빳하게 만들더니 거기 코를 묻고 킁킁거렸다.
그리고는 낮아진 목소리로 말했다.
“오빠 옷에서 여자 냄새나. 박사님 냄새.”
박사 냄새는 또 언제 맡았대? 아까 인사할 때 파악했나?
등줄기에 살짝 오한이 찾아온다.
몰래 침을 삼킨 내가 태연스레 말했다.
“박사님이랑 잠깐 단둘이 얘기 나눠서 그래.”
“무슨 얘기?”
“본부 운영 관련해서.”
“아... 그렇구나...”
납득했는지 다시금 밝아진 표정으로 돌아오는 스텔라였다.
속으로 가슴을 쓸어내린 내가 물었다.
“집은 어때?”
“엄청 좋아. 넓고, 방도 많고... 화장실도... 각 방마다 하나씩 있고... 욕실도...”
화장실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 스텔라가 쑥스러운 듯 애꿎은 바닥을 찼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눈에 보인다.
우리 덜렁이는 변태가 다 됐구나. 마왕님은 기쁘단다.
“이사 날짜는 언제가 좋아?”
“최대한 빨리 할래. 근데 오빠, 알렉스한테는 뭐라고 말하지? 정산 받았다고 하기엔 너무... 그렇지 않아?”
“보영이 누나한테 말해놨어. 도와준다니까 알렉스한테는 보영이 누나가 구해줬다고 해.”
“아니... 오빠, 왜 그걸 나랑 상의도 없이 말해? 그리고 맨날 보영이 언니가 해줬다 하면 너무 이상하지 않아? 언니한테 뭐라고 말씀도 드려야할지도 걱정이고...”
전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단다.
보영이는 내가 바라는 모든 것들을 흔쾌히 하는 충실한 하인이니까.
우리 덜렁이는 마음씨가 아주 고와서 탈이다.
“상의 없이 말한 건 미안해.”
“앞으로는 그러지 마... 언니가 뭐라셔? 왜 이사하려 하는지 안 물어보셨어?”
“물어보긴 하더라.”
“그래서 뭐라고 했어? 솔직하게 말했어?”
“아니, 그냥 얼버무렸어.”
“그래...? 오빠가 대신 말해줘도 됐었는데...”
“보영이 누나는 우리가 이런 관계인 걸 모르잖아. 네 사정을 너무 자세하게 알면 의심할 거야. 그리고 이런 사안은 네가 직접 말하는 게 좋아.”
“혼날 것 같은데에...”
“혼나는 게 무서워서 네 스승한테 숨기고 있을래? 보영이 누나는 마음씨가 넓은 사람이니까 네 입장을 충분히 이해해줄 거야. 내 말 믿고 얘기해봐.”
“아, 알았어...”
스텔라가 자신의 엄지를 입으로 가져가 잘근잘근 물어뜯었다.
보영의 반응을 상상해보고는 두려워진 모양이었다.
고개를 절레절레 저은 내가 말했다.
“손 똑바로.”
“아, 응...”
“이건 그렇게 말해도 고쳐지지가 않네.”
배시시 웃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한 스텔라가 내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지금 그녀의 발목엔 행복한 족쇄가 채워져 있었다.
악의까지 집어넣은 마당이라 이젠 영원히 날 떠날 수 없다.
그녀 또한 우리와 평생토록 함께 있는 것을 바랄 것이다.
스텔라의 뒷목을 살살 주물러준 나는, 손을 뻗어 엘리베이터를 잡았다.
집으로 돌아가서 속 터지는 알렉스를 보며 증오를 쌓아두려무나.
그래야 나중에 기분 좋게 동생의 모가지를 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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