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15화 〉 의도한 다툼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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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송보송해진 커버와 이불, 그리고 베개.
그것들을 잘 정리한 지혁이 옆에서 구경을 하고 있던 스텔라의 어깨를 감싸안았다.
“이사하면 건조기부터 놔야겠다. 계속 빨래방만 갈 순 없으니까.”
이사를 하고 나서도 자신과 질펀한 행위를 벌일 거라고 돌려 말하고 있다.
집에서 하는 섹스는 자제를 해야 함에도, 이젠 그럴 수가 없게 됐다.
너무 중독적이었다.
남들의 눈치를 보지 않고 지혁과 물고 빨고 하는 것이.
부끄러워선 고개만 푹 수그리고 있던 스텔라가 물었다.
“내일 데리러 올 거지...?”
“응. 10시에 데리러 올게.”
“10시...? 훈련은 9시인데...”
“내가 말해놓을 테니까 조금이라도 더 자둬.”
수면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니 급속도로 졸렸다.
긴장이 확 풀리면서 지금까지 쌓아놓았던 피로가 확 몰려왔다.
힘없이 고개를 끄덕인 스텔라가 휴대폰 화면에 나타나있는 시간을 보았다.
[04:15]
‘벌써 네 시야...?’
시간이 어떻게 흘러갔는지도 모르는데 네 시라니.
속으로 한숨을 내쉬던 스텔라가 자신의 아랫배를 부여잡았다.
아래가 굉장히 아려왔다.
제대로 움직이기도 힘들 정도로.
그런 스텔라의 반응을 본 지혁이 걱정스런 투로 말했다.
“정리는 대부분 해놨으니까, 나 돌아가고 나면 바로 자.”
그러고 싶지만 아직 할 게 남아있었다.
아직 알렉스의 방 정리가 덜 끝났다.
처음 들어왔을 때처럼 되돌려놓아야 한다.
자는 건 그 후에.
그리고 일어나서 훈련에 가기 전에, 약국에 들러 피임약도 사야했다.
혹시라도 임신하면 큰일이 나잖은가.
지혁에게 사달라고 부탁을 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말하기가 부끄러웠다.
이런 건 자신이 해야 했다.
“알았어... 근데 오빠는 여기서 안 자?”
“집에 들어가서 옷 갈아입어야지. 지금 입고 있는 옷은 너 데리러 올 때 같이 가져올게. 이제 간다?”
“응... 조심히 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에, 지혁이 피식 웃더니 스텔라의 이마에 진한 키스를 해주었다.
행복했다. 빨리 정리하고 자서 지혁을 다시 만나야지.
그리 생각한 스텔라는 지혁을 배웅했다.
철컥! 하고 문이 닫히자마자 발소리가 멀어져간다.
왠지 모를 외로움을 느낀 스텔라가 몸을 부르르 떨었다.
가슴이 순식간에 먹먹해져왔다.
지혁이 보이지 않게 되어 그런 모양이었다.
자신이 이토록 그를 사랑할 줄이야... 한국으로 오기 전엔 꿈도 꾸지 못했다.
알렉스의 방으로 걸음을 옮긴 스텔라는 자신의 이마를 만지작거렸다.
방금 지혁이 해주었던 키스로 이 공허함을 약간이나마 달랠 수 있을 것 같다.
덜컥.
동생의 방 문을 연 스텔라가 가장 먼저 한 일은 냄새를 맡는 것이었다.
혹시나 정사의 흔적이 남아있을까 우려했지만, 끝나자마자 창문을 활짝 열어놓았기에 천만다행히도 냄새는 없었다.
새로이 덮어씌운 커버를 손으로 편 그녀는 시트를 다시 한 번 확인했다.
‘괜찮아... 괜찮은 것 같아...’
변태마냥 코를 박고 킁킁거린 스텔라가 만족스런 미소를 흘렸다.
이 정도면 알렉스는 절대 눈치채지 못하리라.
이젠 책상만 정리해두고, 알렉스가 돌아왔을 때 방 청소를 했다고 하면 완전범죄는 끝.
평소대로 생활하면 된다.
‘히히...’
속으로 헤프게 웃은 스텔라는 알렉스의 책상으로 눈길을 돌렸다.
여기저기 널브러져있는 과자봉지와 다 마신 음료수 캔이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뭐 이렇게 정리정돈을 안 하는지... 나중에 혼자 살 땐 어떡하려고.
그런 생각을 하던 스텔라는 흠칫 놀랐다.
자신과 지혁, 단둘이 동거를 하는 상황을 가정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동생과 헤어질 거라는 생각 따윈 추호도 하지 않았었는데... 이상했다.
물론 알렉스는 언제고 독립을 해야 하긴 한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아직 그는 옆에서 케어해줄 사람이 있어야한다.
낯선 땅에 온 자신을 보듬어주고, 아낌없는 사랑을 보여준 지혁과 스승인 보영처럼.
머리를 털어내 잡념을 날려버린 스텔라는, 분리수거함을 가져와 꼼꼼하게 책상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모니터도 닦고, 마우스 사이사이에 낀 때도 세심하게 없애길 한참,
키보드를 청소하려던 그녀는, 아래에 무슨 재 같은 것들이 떨어져있는 걸 발견했다.
“응?”
키보드 밑에 담뱃재 같은 게 흩뿌려져있다.
밑을 들춰보니 기다란 갈색 꽁초가 하나 보였다.
이게 대체 왜 여기 있는 거지? 숨기려다 떨어뜨렸나?
그렇게 피우지 말라고 혼을 냈는데도 또...
표정이 싹 굳은 스텔라는 꽁초를 집어 들었다.
그러다가 고개를 갸웃했다.
흔히 볼 수 있는 담배꽁초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완전한 갈색을 띠는 담뱃재와는 달리, 재가 진한 초록색이었다.
갈색이 조금 있긴 했지만 초록이 대부분.
결정적으로 필터가 없이 모조리 궐련부로 되어있었는데, 한쪽 끝부분이 돌돌 말려있었다.
이러한 형태의 궐련은 예전에 진득하게 본 적이 있었다.
이게 뭔지 정확하게 알아차린 스텔라의 얼굴이 완전히 일그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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삐비빅! 철컥!
시끄럽게 집 안으로 들어온 알렉스는 목을 이리저리 꺾으며 냉장고로 향했다.
조직이 운영하는 유흥주점에서 밤새도록 놀았더니 너무 피곤했다.
물만 마시고 바로 방에 들어가서 잠을 자야겠다고 생각한 그는, 식탁에 팔짱을 낀 채 앉아있는 스텔라를 발견하고 기겁을 했다.
“으헉!!”
불도 안 키고 대체 뭘 하는지...
가슴에 손을 올려 두근거리는 심장을 진정시킨 알렉스가 물었다.
“누나잖아...? 지금 들어온 거야? 문은 고쳤어?”
“술 냄새가 좀 나는데... 뭐했어?”
스텔라의 반문에 찔끔한 알렉스가 태연스레 대답했다.
“그냥 친구들이랑 맥주 몇 잔 마시고 왔어. 또 잔소리할 거면 하지 마. 나 성인이라고 분명히 말...”
“앉아봐.”
싸해진 목소리로 말을 끊는 스텔라.
뭔가 기분이 좋지 않아보인다.
술을 마셔서 그런가? 잔소리 하지 말라고 괜히 말했나?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꼬리를 내린 알렉스가 불을 켠 뒤 의자를 아주 조심스레 빼고 스텔라의 맞은편에 앉았다.
그러자 스텔라가 식탁 가운데에 놓인 휴지를 들추며 말했다.
“네 방에 있었는데, 설명해.”
스텔라가 가리킨 것으로 시선을 내린 알렉스는, 그 물건을 보자마자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저건...’
대마초였다. 그것도 자신이 피우는 색깔과 궐련의 형태를 하고 있는.
알렉스는 저게 왜 자신의 방에 있었던 건지 정말 이해할 수가 없었다.
저번에 누나에게 혼쭐이 난 뒤로, 스텔라의 심기에 거슬릴만한 것들은 집에 들이지 않았다.
대마초 또한 마찬가지. 걸리면 혼이 나는 정도로 끝나지 않았기에 절대 들키지 않으려 노력했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 투성이였지만, 지금은 그딴 걸 고민할 때가 아니었다.
저게 뭐냐고 되묻는 건 말이 안 됐다.
미국에서 자신과 누나가 지독히도 많이 봤던 물건이기 때문.
애써 표정관리를 하며 머리를 쥐어짜낸 알렉스가 더듬더듬 설명했다.
“아... 이거? 이건 그... 친구 한 명이 숨겨달라고 해가지고... 마약 때문에 경찰조사 받는 친구가 한 명 있는데, 뭐 집을 수색하나봐... 그것 때문에...”
그렇게 말을 하면서도, 알렉스는 이 핑계가 전혀 통하지 않을 거라고 확신했다.
자신이 생각해도 말이 안 되는 변명이었으니까.
예상대로, 스텔라가 눈에 쌍심지를 켰다.
“말 같지도 않은 소리 하지 마. 장난해 지금?”
“.....”
“네가 피우는 거지?”
“.....”
“말해. 네가 피우는 거지...?”
울먹이는 목소리.
누나의 눈에 눈물이 맺히기 시작하는 것을 본 알렉스는, 죄스런 마음이 들었다.
솔직하게 말하지 않으면 진짜로 큰일이 날 것 같은 기분.
결국 알렉스는 순순히 실토를 할 수밖에 없었다.
“어... 내가 피우긴 했어... 근데...”
“언제부터?”
“응?”
“언제부터 피웠냐고.”
“그게... 한 몇 달 전부터 가끔... 심란할 때 아주 가끔씩 해...”
오늘도 유흥주점에서 아가씨들과 대놓고 피웠고, 모텔에서 이를 박박 닦고 들어왔다.
말하자면 거짓말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스텔라는 알렉스의 말에서 진위여부를 아주 잘 캐치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감정상태가 요동치는 지금의 알렉스에게선 더더욱.
“똑바로 말해. 거짓말하지 마.”
“.... 자주 해.”
그 말이 도화선이었다.
“야!!! 왜 마약 같은 걸 하고 난리인데!! 왜애!!”
집 안이 떠나가라 소리를 지르는 스텔라.
알렉스는 거실을 쩌렁쩌렁 울리는 누나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오늘 진짜 좆 됐다고 생각했다.
여기서 괜히 개 같은 변명을 늘어놓으며 화를 돋우지 말자.
그리 생각한 알렉스는 고개를 푹 숙이고, 누나가 쏟아내는 분노를 마주했다.
“미국에서 마약하는 사람들이 어떤 꼴을 당하는지 못 봤어!?”
“.....”
그나마 다행인 건, 누나의 성격이 너무 순해서 험한 말이 튀어나오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가장 심한 단어가 ‘나쁜 놈’이 끝.
저 예쁜 입에서 새끼라거나 하는 단어들이 나왔다면 가슴이 얼마나 아팠을지 상상도 하기 싫었다.
“엄마랑 아빠도 한 번 제대로 엮였다가 큰일 날 뻔했던 거 몰라!? 모르냐고! 게다가 나는? 넌 나는 안중에도 없어!? 넌 성인이라지만 지금은 학생이야...! 마약하는 걸 들키면 나도 조사를 받게 되는데, 넌 내가 무슨 일을 하는지 몰라!?”
마약은 한국에서 굉장히 민감하게 다뤄진다.
물론 스텔라가 직접 마약을 한 건 아니지만, 가족이 했다는 게 알려지면 이미지에 치명타를 입는 건 안 봐도 뻔한 일이었다.
하나밖에 없는 친동생이 마약을 한다는 것이 기자들의 귀에 들어가기라도 하면...
한창 데뷔하여 주가를 높여가고 있는데 순식간에 나락을 갈 수도 있었다.
지금의 알렉스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사과뿐이었다.
진심을 담은 사과 말이다.
“미안해...”
“저번에도 미안하다고 해놓고 지금 또 사고를 쳤잖아! 이러는데 앞으로 널 믿을 수 있겠어!? 어?”
“.... 아니...”
“대체 왜 이렇게 양아치처럼 변한 건데! 아예 미국으로 돌아가? 그러면 다시 돌아올래!?”
괴롭힘을 당했던 과거.
그 트라우마를 건드리는 스텔라에게 욱한 알렉스가 벌떡 일어났지만, 따지고 들지는 못했다.
진심으로 화를 내는 누나가 너무 무서웠기 때문이기도 하거니와, 이번 일은 자신이 쳤던 사고 중에서도 아주 컸으니까.
“뭘 잘했다고 일어나는데! 다시 안 앉지!? 너 이대로 방에 들어가면 진짜 죽을 줄 알아!”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있었다.
정신을 차린 알렉스는 화를 최대한 가라앉히고 다시 자리에 앉았다.
그러자 스텔라가 입을 꾹 다물더니, 손으로 자신의 얼굴을 감쌌다.
그 상태로 한참을 있더니 푸념하듯 말했다.
“내가 널 더 챙겼어야 하는 건데... 미치겠다 정말... 내 죄가 너무 커... 흐윽...!”
본격적으로 울기 시작하는 스텔라를 본 알렉스가 방금 했던 행동을 후회했다.
잘못을 저지른 건 자신인데 적반하장으로 화를 내다니.
누나가 힘들어하는 걸 보니 죄책감이 장난이 아니었다.
자신이 왜 일어났을까. 그냥 얌전히 혼이나 날 걸...
속으로 스스로를 욕한 알렉스가 입을 꾹 다물었다.
한참을 훌쩍이던 스텔라는 자신의 눈가를 훔쳤다.
동생의 비행에 울고만 있을 때가 아니었다.
해결책을 짜내야 했다.
지혁이라면 어떻게 하자고 했을까?
오랜 시간동안 말없이 고민하던 스텔라가 띵띵 부어가는 눈으로 알렉스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통보하듯 말했다.
“네 친구들 전화번호 다 나한테 내놓고 삭제해. 네 주변에 양아치 같은 사람들만 있어서 안 되겠어. 그리고 며칠 뒤에 이사할 거니까 그렇게 알아.”
“어...? 어?”
“오늘부터 통금시간은 저녁 일곱 시야. 그리고 집에 들어오기 두 시간 전에 영상통화 걸어. 알바도 그만둬. 사장님 전화번호는 지금 나한테 알려주고. 내가 직접 전화해서 못 나가게 됐다고 말할 거야.”
“누나... 갑자기 그게 무슨...”
“한 달 동안 이렇게 생활해. 지켜볼 거니까. 억압한다고 생각하지 마. 난 이미 너한테 수많은 기회를 줬어. 오늘부로 한 번만 더 사고 치면 그냥 미국으로 돌아갈 거야.”
알렉스가 입을 뻐끔거렸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데, 상황이 상황이라 참고 있는 모습이었다.
그런 동생의 반응을 본 스텔라는 남몰래 주먹을 꽉 쥐었다.
동생의 교화를 핑계 삼아 냅다 이사를 하자고 한 자신이 기회주의자, 속물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번복할 생각은 전혀 없었다.
마음을 굳게 먹은 스텔라가 말을 이었다.
“알아들었으면 방으로 들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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