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14화 〉 의도한 다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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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이 몇 시인지 도저히 모르겠다.
알고 싶지도 않고, 알 겨를마저도 없다.
머릿속을 가득 채운 행복감, 그리고 쾌락이 온몸을 장악하여 컨트롤을 할 수가 없게 만든다.
고개를 돌려보니 정사의 흔적이 가득하다.
우윳빛 액체가 흩뿌려져있는 소파와 카펫에서 끈적한 냄새가 올라와 코를 간질인다.
어떻게 사람의 몸에서 저리 많은... 그게 나올 수 있는 걸까?
자신의 몸도 마찬가지였다.
지혁이 몇 번 삽입을 하자마자 추잡하게 허리를 튕기며 애액을 쏟아냈었다.
심지어 한두 번도 아니다. 자신의 몸에 이토록 많은 물이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몸에 수분이 다 빠져나간 건 아닐까 걱정이 들 지경.
‘창피해...’
속으로 한숨을 푹 내쉰 스텔라는, 젖 먹던 힘을 다해 고개를 들었다.
거실등이 켜져있는 게 보인다.
그리고 그 아래에 지혁이 차가운 물을 컵에 따르고 있다.
저건 아마 자신을 위한 물이겠지.
침착하게 상황판단을 하던 스텔라는, 머릿속에서 흥분이 가시자 인상을 찌푸렸다.
‘아파...’
아래가 무척 쓰라렸기 때문이었다.
얼얼한 통증. 지혁의 성기가 수백 번 왔다 갔다 한 결과였다.
사랑을 나눈 적은 이번이 두 번째밖에는 안 됐지만...
지혁이 평소보다 훨씬 흥분했다는 것만큼은 바로 알 수 있었다.
자신의 안에 쏟아내서 그런 걸까?
아니면 깨끗한 아랫부분이 좋아서?
이도 아니라면 둘 다? 모르겠다.
“우응...”
저도 모르게 새어나온 신음소리.
그에 지혁이 빠르게 다가와 무릎을 굽혔다.
“많이 아파?”
“.....”
스텔라는 대답하지 않았다.
힘들어서가 아니라, 지혁에게 어리광을 부리고 싶어서였다.
그녀는 풀린 눈으로 사랑하는 남자를 올려다보며 흐느적한 양팔을 뻗었다.
그러자 지혁이 스텔라를 앞으로 번쩍 안아들더니, 땀으로 인해 뺨에 딱 달라붙은 연갈색 머리카락을 정리해주었다.
거의 열 번은 한 것 같은데 아직도 힘이 남아돌다니.
무섭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남자다워서 좋기도 했다.
“힘들지?”
“.....”
스텔라는 아까처럼 대답하지 않고 지혁의 어깨에 얼굴을 묻었다.
부끄러웠다. 사랑이 가득 담긴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지혁을 똑바로 볼 수가 없다.
듬직한 손길이 등을 툭툭 두드려준다.
간질간질한 느낌이 가슴속에서 피어나 전신으로 퍼진다.
이건 행복이라는 감정이었다.
여태껏 느껴보지 못할 정도로 거대한 행복.
오늘 자신과 지혁은 서로의 몸을 섞고, 체액을 교환하며 뜨거운 시간을 보냈다.
물론 자신의 입장에선 뭐가 지나간 건지도 모를 정도로 정신이 없는 시간이긴 했다.
그러나 제대로 된 사랑을 나누었다는 것만큼은 확실히 안다.
“좋아...♡”
무심코 자신의 속내를 드러낸 스텔라.
그 나른한 목소리를 들은 지혁이 낮게 웃더니 말했다.
“나도 좋았어.”
“히...”
대답을 듣고 헤픈 웃음소리를 터뜨린 스텔라는, 지혁이 자신을 식탁 위에 앉히자 걱정스러워했다.
지금까지 흘러내리고 있는 지혁의 씨앗이 식탁보에 묻었기 때문이었다.
청소를 해야 하는데... 알렉스가 오면 분명히 들킬 텐데...
이런저런 걱정을 하던 스텔라는, 자신의 입가에 빨대가 꽂힌 컵이 다가오자 그 잡생각을 날려버리고 말았다.
“마셔.”
아까부터 갈증이 느껴지고 있던 터라, 스텔라는 망설임 없이 빨대 끄트머리를 앙 물었다.
시원하기 그지없는 물을 급하게 쪽쪽 빨아먹고 있는데, 지혁이 명령조로 말했다.
“천천히.”
천천히? 지금 목이 말라서 죽을 것 같은데 천천히는 무슨.
괜한 반항심이 든 스텔라가 더욱 빠른 속도로 물을 넘겼다.
그러자 지혁이 황급히 빨대를 빼냈다.
투둑.
그러면서 빨대에 올라오고 있던 물 일부가 스텔라의 윗가슴에 떨어졌는데, 헛웃음을 켠 지혁은 그것을 엄지를 닦아내주었다.
그리고는 물기가 묻은 엄지를 스텔라의 아랫입술에 가져다대고, 약한 힘으로 밀었다.
“.....”
점점 입 안으로 들어오는 지혁의 손가락.
기다란 속눈썹을 빠르게 끔벅인 스텔라는, 엄지를 젖병마냥 쪽쪽 빨아댔다.
이후 칭찬을 바라는 강아지 같은 표정으로 지혁을 쳐다보았다.
“잘했어.”
스텔라의 눈이 노곤해졌다.
저 중저음의 목소리로 잘했다고 칭찬을 받으니 마음속이 녹아내린다.
왜 지혁의 앞에만 있으면 응석을 부리고 싶어질까?
화끈하게 사랑을 나눈 직후라 그런지 그 마음이 더욱 강해진다.
게다가 자신의 진면목이 드러나는 것만 같다.
지혁에게 모든 것을 맡기고 싶은 기분이다.
알렉스가 자신의 이런 모습을 봤다면 누나가 맞냐면서 기절초풍하겠지.
그리 생각하며 입 안에서 지혁의 손가락을 빨아대길 한참,
삑! 삑, 삑, 삑!
현관문에서 도어락 비밀번호가 입력되는 소리가 났다.
알렉스가 돌아온 것이다.
지금까지 까맣게 잊고 있었는데... 큰일이다.
까무러칠 정도로 놀란 스텔라가 지혁을 쳐다보았다.
손가락은 여전히 입에 문 채였다.
삐비빅!
철컥! 철컥철컥!
문고리가 빠르게 돌아가고 있다.
비밀번호를 입력했음에도 문이 열리지 않자 알렉스가 이상함을 느낀 모양이었다.
스텔라의 가슴이 긴장으로 빠르게 뛰기 시작할 때쯤, 현관 쪽을 주시하고 있던 지혁이 스텔라를 돌아보며 말했다.
“그냥 오늘은 나랑 단둘이 있자.”
“.....”
자신의 이빨을 쓰윽 훑는 지혁의 손가락을 혀로 굴리던 스텔라의 얼굴에 고민이 깊어졌다.
사실 고민이라 할 것도 없었다.
옷도 갈아입지 않은 상태에, 온 거실이 난장판.
심지어 집 전체를 가득 메운 끈적한 냄새까지...
이 상태에서 알렉스가 들어온다면 사달이 날 것은 불 보듯 뻔했다.
“어차피 지금 못 열어주잖아. 청소도 안 했고. 그치?”
이어지는 지혁의 말에, 스텔라의 눈이 걱정으로 가라앉았다.
그녀의 마음속엔 친동생을 밖에 놔둬야한다는 죄책감이 크게 응어리져있었다.
그래서 갈팡질팡하고 있었다. 어떤 결정을 내려야할지 잘 알고 있음에도.
“알렉스한테 미안하긴 하지만 어쩔 수 없어.”
“.....”
“곧 알렉스한테 전화가 올 텐데, 왜 문이 안 열리냐고 물어보면 모른 척 얼버무렸다가, 지금 보영이 누나네 집에서 연습하고 있는데 수리공 불러주겠다고 해. 그럼 알렉스가 됐다고, 오늘은 외박하겠다고 할 걸? 걔 노는 거 좋아하잖아.”
그럴 것 같긴 했다.
아니, 확실히 저 대답이 나올 것이다.
“알렉스부터 보내고 같이 정리하자. 그렇게 할 거지?”
스텔라에겐 죄책감을 덜어줄 수 있는 손이 필요했다.
그리고 지혁은 핑계거리를 말해줌으로서 그 손을 내밀어주고 있었다.
점점 마음이 기우는 것을 느낀 스텔라는, 결국 동의한다는 뜻으로 지혁의 엄지 첫 마디를 약하게 씹었다.
우우웅!
결정을 내림과 동시에 소파에 있던 스텔라의 휴대폰이 진동을 발했다.
엄지를 스텔라의 입 안에서 뺀 지혁은, 소파로 가서 그 휴대폰을 들고 다시 돌아왔다.
손가락이 빠져나간 아쉬움에 입맛을 찹찹 다시고 있던 스텔라.
그녀는 지혁이 내민 휴대폰을 받아들고 얕은 한숨을 내쉬었다.
‘미안해...’
속으로 알렉스에게 백 번 사죄한 그녀가 통화버튼을 눌렀다.
“응... 왜?”
누나! 왜 문이 안 열려?
현관문 너머에서 알렉스의 상기된 목소리가 들려왔다.
울상을 지은 스텔라가 애써 태연한 투로, 그리고 아주 조용히 반문했다.
“무... 슨 소리야? 문이 안 열리다니...?”
오늘, 자신은 동생이 아닌 남자친구를 선택했다.
죄스러워야할 일이다.
그러나,
‘어, 어차피 청소해야 하니까...’
어차피 알렉스는 밖에 나가서 놀길 좋아하니까,
어차피 지혁은 여기서 못 나가니까...
이러한 핑계들이 가지고 있던 죄책감을 점점 옅게 만들었고, 지혁과 더 오랜 시간을 단둘이 보낼 수 있다는 점이 자기 위안에 큰 축을 차지했다.
안에서 자동으로 잠긴 것 같은데? 뭐 잘못 만진 거 아니야?
“그런가...? 아예 안 열려...? 비밀번호 입력해도?”
어. 누나 지금 집 아니야?
“나... 지금 보영이 언니네 집에서 연습하고 있는데...”
지혁이 말해준 그대로 상황을 설명하는 스텔라.
레퍼토리대로 대사를 읊던 그녀는 오싹한 느낌이 찾아오는 것을 느꼈다.
이건 대체 어떠한 감정일까?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묘하게 흥분되는 것 같기도 하다.
**
스텔라는 물어보지도 않고 알렉스의 방에 들어가는 날 제지하지 않았다.
친동생의 개인적인 공간임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구석 서랍에 큰 옷이 있다고 말하기까지 했다.
내게 여벌의 옷이 없어 어쩔 수 없는 상황인 걸 감안해도 이러한 반응이라?
그만큼 날 믿고 의지한다는 방증이었다.
구석 서랍을 열어보니 한눈에 봐도 큰 무지 티셔츠와 반바지가 있었다.
현 알렉스의 사이즈와는 전혀 맞지 않았다.
아마 미국에서 입었던 것들인 듯했다.
그것들을 입고 밖으로 나가니, 스텔라가 총총걸음으로 다가와 손으로 티셔츠에 진 주름을 펴주었다.
그리고는 입가에 환한 미소를 띠우며 말했다.
“더 클 거라고 생각했는데... 오빠 덩치가 있어서 대충 맞는 것 같아.”
“편해서 좋네. 머리는 안 말려?”
“오빠가 말려줘야지...! 내 매니저잖아...”
이놈의 매니저방패는 언제쯤 그만 써먹으려나 모르겠다.
계속 써도 괜찮긴 하지만.
“매니저가 머리도 말려준다는 건 처음 들어보는데?”
“매, 매니저가 아니라... 남...”
뒷말을 흐리는 스텔라.
남자친구라고 말하기엔 쑥스러워하는 것 같다.
어쩔 땐 의젓하고, 어쩔 땐 응석쟁이, 어쩔 땐 말괄량이, 지금은 소심하기까지...
스텔라는 참 다양한 모습을 보여줘서 좋다.
“드라이기 있어?”
“응... 내 방에...”
머리야 뭐 한 판 더 하고 말리면 되지.
어깨를 으쓱인 나는 스텔라의 손목을 잡아끌어 알렉스의 방으로 끌고 왔다.
싱글 침대에 등을 대고 누워 스텔라를 내 위에 포개고 자연스레 옷을 벗기려고 하자, 그녀가 당황해하더니 말한다.
“오빠아...! 우리 샤워했잖아...”
“다시 하면 되지.”
“그, 그리고 여기 알렉스 방인데... 차라리 내 방에서...”
“여기서 할래.”
“더러워지면 안 돼...”
“내가 더러워?”
“그, 그 말이 아니잖아...! 알렉스가 분명히 눈치챌 거야...”
“같이 깨끗하게 치워놓자. 일찍 돌아와서 청소했다고 해.”
“.... 진짜 안 되는데에...”
지금 여긴 우리 둘밖에 없잖니.
욕망을 마구 뿜어내도 된단다.
스텔라의 지진이라도 난 듯 떨리는 눈동자를 보니, 넘어오고 있었다.
알렉스와 통화를 할 때 잠깐 동안 배덕감을 쾌락으로 승화시켜 느꼈던 것 같은데, 그게 지금 다시 찾아오고 있는 모양이었다.
“괜찮아. 내일 오후까지 스케줄도 없어.”
“후, 훈련... 해야...”
“오전 늦게 일어나서 하면 돼.”
“.....”
스텔라의 몸에 점점 힘이 빠졌다.
겉으론 고민을 하고 있는 것 같지만, 이미 그녀는 결정을 내렸다.
예상대로, 스텔라가 내 가슴팍에 자신의 상체를 묻다시피 하며 얼굴을 가까이 들이댔다.
이후 내 목에 따스한 숨결을 불어넣기 시작했다.
고삐가 제대로 풀리니 적극적으로 변했구나.
은은하게 올라오는 치약 냄새가 정말 좋다.
스텔라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어주자, 그녀가 더욱 과감하게 내 목을 애무했다.
“덜렁아.”
“.....”
애칭을 부르자 멈칫했다가, 다시 열심히 키스마크를 새기는 그녀.
의도적으로 날 무시하고 있다.
목의 살이 촉촉한 흡입력에 의해 빨아들여지는 감각을 느끼며, 난 다시 스텔라를 불렀다.
“덜렁아.”
“아 왜애...!”
이번엔 앙칼진 목소리로 따지듯 대답했다.
한창 뜨거워지는 분위기에 초를 쳐서 짜증이 났구나.
지금 자신이 친동생의 방을 더럽히고 있다는 생각은 머나먼 저편으로 날려버린 듯하다.
나는 그런 그녀의 엉덩이를 살살 토닥여주면서 알렉스의 책상을 흘깃거렸다.
내가 놓아둔 대마초가 키보드 바로 밑에 놓여있다.
알렉스가 자주 피우는 것이었다.
누가 봐도 수제로 만든 궐련인데, 분명히 눈치채겠지.
우리 덜렁이... 코는 둔하지만 눈은 예리하지?
나중에 이 방을 꼼꼼하게 청소하다가 잘 발견하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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