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10화 〉 두 번째 결투 #2
* * *
“하...! 진짜 짜증나 죽겠어... 왜 이렇게 사람 속을 썩이는지 도저히 이해가 안 가.”
조수석에 타자마자 푸념을 늘어놓는 스텔라.
그녀에게 담요를 덮어준 내가 물었다.
“무슨 일인데?”
“아니... 알렉스가 아침에 돌아오길래 한마디 했더니, 피곤하다면서 그냥 방에 들어가 버리잖아.”
“너 데려다줬을 때도 없더니 아침까지 놀았던 거야?”
“어! 담배냄새 풀풀 풍기면서 오는데 짜증나 죽는 줄 알았어.”
격앙된 반응을 보아하니 조금만 더 달궈놓으면 될 듯싶다.
그런데 우리 덜렁이, 알렉스가 쳐 피워대는 대마초는 언제 발견할 거니?
내가 틈틈이 언질도 줬는데 혹시 까맣게 잊고 있는 건 아니겠지?
만약 그렇다면 내가 직접 손을 써야겠구나.
“곧 개학이라 학교도 가야하는데... 저래서 언제 철이 들려나 몰라. 미래 생각은 전혀 하지 않는 것 같아. 대학 보내고 싶은데 공부는 전혀 안 하고... 오빠가 알렉스 과외해주면 안 돼?”
“나더러 본부 일도 하고, 매니저 일도 하고, 과외선생님도 하란 소리야?”
“아... 그냥 홧김에 해본 말이었어... 오빠가 너무 의지돼서... 오빠도 알잖아.”
피식한 나는 스텔라가 덮은 담요 안으로 한손을 집어넣어, 허벅지 위에 올려놓았다.
그 상태에서 운전을 하며 허벅지 안쪽을 살살 주무르자, 스텔라가 헛기침을 몇 번 하더니 고개를 창밖으로 돌렸다.
알렉스에게 분개를 하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어지고, 얼굴이 빨개진 상태였다.
밴을 아예 자동운행모드로 설정해버린 나는, 스텔라의 다리를 내 무릎 위에 올려놓았다.
이후 마음 놓고 그녀의 다리를 만지작거리기 시작했다.
운동화와 양말을 벗기고 발가락을 하나하나씩 당기는 것부터 시작해 말캉말캉한 뒤쪽 허벅지살까지 더듬거리자, 스텔라의 다리가 미세하기 떨렸다.
“내, 내 말은 전혀 안 듣지...?”
“듣고 있어.”
“뭐라고 했는데...?”
“알렉스가 걱정되니까 잘 지켜봐달라고.”
“그런 얘긴 한 적도 없는데...”
“그런 의도로 말한 거 아니야?”
“.....”
심리를 정확하게 꿰뚫어보자 할 말이 없어졌는지, 스텔라가 입을 꾹 다물고 날 쳐다보았다.
한동안 내게 다리를 맡기고 있던 그녀가 물었다.
“오늘 스케줄 뭐야...?”
“토크쇼 촬영 리허설.”
“대표님은 왜 맨날 예능 위주로 날 돌려? 나 음방 나가고 싶어.”
왜긴, 예능이 돈이 되니까 그러지.
“아직까지도 1위를 하고 있는데 굳이 나갈 필요는 없다고 봐.”
“그 말이 아니잖아.”
“노래 부르고 싶다고? 대중들한테 보여주고 싶어?”
“응... 난 가수지 예능인이 아니야. 오늘 소속사 가면 대표님한테... 앗...!”
움찔하며 한쪽 다리를 접는 스텔라.
그녀의 종아리를 살살 긁고 있던 나는 히죽 웃었다.
“여기 만져주는 거 좋아?”
“.... 좋아... 아 오빠... 그거에만 집중하지 말고 나랑 대화하는데 집중해... 가수가 데뷔하고 음방을 한 번만 나가는 게 말이 돼?”
발가락을 꼬물꼬물 움직이며 따지는 모습이 무척 귀엽다.
스텔라는 맞는 말을 하긴 했다.
자신의 본질은 가수란 걸 잊으면 안 돼서 기특하기도 하다.
이참에 돈귀신이 들러붙은 최승환이 스텔라에게 미치는 영향력을 조금 줄여놔야겠다.
아주 유능한 우리 보영이에게 말하라고 해야지.
물론 공은 다 내 거다.
“스케줄 다녀와서 말해볼게. 됐어?”
“응... 아 좀...! 거기 만지지 마... 간지러워...”
스텔라의 칭얼거림을 무시한 나는, 개구쟁이 같은 얼굴로 그녀의 발바닥을 간지럽혔다.
그러자 요상한 추임새를 넣으며 콧바람을 내뱉은 스텔라가 돌연 내게 저돌적으로 돌진해왔다.
자신의 엉덩이를 내 허벅지 위에 붙여놓고, 팔로 목을 감싸며 얼굴을 들이민다.
그 후 자신의 혀를 내밀어 내 입술을 억지로 벌리고 이빨을 탐한다.
상당히 흥분한 듯한 얼굴로 열정적인 키스를 하는 스텔라.
나는 벌써부터 튀어나오기 시작한 스텔라의 욕구를 받아주면서, 그녀의 등허리를 툭툭 두드렸다.
이래서야 오늘 제대로 싸울 수나 있겠니? 걱정스럽다, 걱정스러워.
**
[스완입니다. 미래사령부 사령관의 집엔 이렇다 할 정보가 없었습니다. 계속 알아보겠습니다.]
모르는 번호로 온 문자.
매디슨이 보낸 보고였다.
조직의 보안을 철저하게 하는 만큼 서류 같은 건 따로 가지고 있지 않은 건가?
아니면 아예 모르는 건가?
뭐가 됐든 수확이 없다는 건 조금 아쉽지만, 그래도 참고 기다려보자.
그랬음에도 정보가 없다면 권속의 수를 늘리면 되지.
최후의 수단으로는 초고위층을 다이렉트로 권속화시키면 되지만, 이건 내 목적에 부합하지 않으니 지금은 지양하고 있자.
대기실 테이블 위로 눈을 돌려보니 스텔라의 팬들이 보내준 간식거리가 많았다.
스케줄까지 알아내서 먹거리를 보낼 정도라...
요즘 가수판에선 흔히 일어나는 일이긴 하지만, 마음에 들지는 않는다.
스텔라가 좋아하며 챙기는 팬들이니 다 죽이는 건 오버고, 사생팬이 생기려고 하면 그때 손을 써야겠다.
정성이 가득 담긴 포장지를 아무렇게나 뜯고 간식을 먹고 있는데, 대기실 문이 열리며 스텔라가 들어왔다.
진이 약간 빠진 표정으로 내 옆자리에 앉은 그녀가 묻는다.
“맛있어?”
“그럭저럭. 너도 먹어.”
“이거 팬들이 나한테 준 건데, 허락 받고 먹어야 되는 거 아니야? 팬들이 서운해 해.”
“내가 서운한 건 괜찮고?”
그 말에 스텔라가 가벼운 웃음을 터뜨렸다.
내 어깨를 툭 친 그녀가 말했다.
“고작 과자 가지고 이러는 거야? 어린애 같아...”
“하늘같은 팬들이 준 과자에 고작이라는 말을 붙인다고?”
“아 진짜...!”
눈썹을 내려뜨리고는 앙탈을 부리는 스텔라.
이래서 놀리는 걸 끊지 못하겠다.
실실 쪼갠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먹거리들을 챙겼다.
“이거 다 가져가야겠다. 집에서 알렉스 주던지 해.”
“아니, 오빠 집으로 가져가.”
“우리 집으로? 팬들이 준 건데 내가 다 먹어?”
“그 말이 아니야. 박사님한테 나도 조만간 이사하겠다고 말씀드리려구.”
벌써 그럴 결심을 했다는 말인가?
빠르게 올 것 같긴 했고, 기특하기도 하지만 약간 아쉽다.
스텔라의 집에서 할 여러 음흉한 짓들이 아직 남아있는데 말이다.
뭐, 그건 이사한 집에서 하면 되니까 딱히 큰 걱정거린 아니었다.
나는 놀란 척 눈을 동그랗게 떴다.
“진짜?”
“응.”
“그럼 나랑 같이 살려고 마음먹은 거야?”
저번에 같이 살자고 제의하긴 했지만, 아마도 알렉스와 함께 오려고 하겠지.
스텔라는 동생을 아직 보살펴야할 존재라고 생각하고 있으니까.
“그건 아니야. 알렉스랑 같이... 알렉스는 내가 눈앞에서 감시해야 돼. 걘 아직 정신을 못 차렸어. 혼자 두면 무슨 큰 사고를 칠지도 몰라.”
이것 보라. 내가 정확하게 예상한 대답이다.
“그래...?”
약간 아쉬운 듯 말끝을 흐리자, 스텔라가 황급히 내 손목을 잡아채듯 감쌌다.
“오빠도 알렉스 알잖아. 철없는 거... 팬사인회 할 때도 옆에서 욕하던 앤데 지켜봐야 되잖아. 대신 박사님한테 무조건 오빠 옆집으로 가고 싶다고 할게. 알렉스의 나쁜 버릇들이 고쳐지면... 그때 같이 살자. 괜찮지?”
덜렁아, 알렉스는 버릇을 고칠 기회가 없게 될 거란다.
네 손으로 죽여야 하거든.
스텔라는 과연 피가 이어진 사랑하는 혈육을 어떤 방식으로 처리할까?
사지를 갈기갈기 찢어놓을지, 아니면 그래도 동생이니 한 방에 고통 없이 보낼지,
이도 아니라면 나와 질펀하게 구르면서 동생을 조롱하다가 천천히 죽일지 너무 궁금하다.
나는 구구절절 핑계를 늘어놓는 스텔라를 향해 씨익 웃어보였다.
“난 괜찮아. 옆집에 사는 것만으로도 좋아.”
“그치? 오빠도 그렇게 생각하지?”
“응.”
어차피 그렇고 그런 일은 너희 집에서만 일어날 텐데 뭘.
내게 꼭 안겨오는 스텔라의 뒷머리를 살살 쓰다듬어준 나는, 박사에게 몰래 신호를 보냈다.
그리고는 스텔라의 엉덩이 아래쪽을 토닥이며 말했다.
“피곤하지? 슬슬 나갈 준비하자.”
“하나도 안 피곤한데...?”
“그럼 어디 가고 싶은 곳이라도 있어?”
“딱히 없는데...”
말은 저렇게 하면서 몸은 배배 꼬고 있다.
뭘 원하는지 티가 난다.
결투가 끝나면 곧장 집으로 가야겠다.
날 올려다보며 눈치를 보던 스텔라는,
삐빅! 삐빅!
자신의 손목에서 알람소리로 변형된 신호음을 듣고는 까무러칠 정도로 깜짝 놀랐다.
“무, 뭐야!?”
당황, 안정, 그리고 긴장.
여러 감정들이 순식간에 지나간 스텔라의 눈동자는 지진이라도 난 듯 떨리고 있었다.
정색을 한 내 표정을 본 스텔라가 말했다.
“오, 오빠...! 이거... 그거...!”
“맞아. 좌표는 찍혀있으니까, 변신하고 포탈타. 세화랑 다른 사람들도 있을 거야.”
“변신하라고? 여기서? 그, 그냥 출발하면 스탭들이 의심할 텐데...”
“내가 이야기 나누고 갈게. 빨리 가.”
“아, 알았어...”
덜덜 떨리는 손으로 디바이스를 두 번 터치한 스텔라.
그와 동시에 눈이 멀어버릴 듯한 백색 기운이 대기실 전체를 메우더니, 짧고 하늘하늘한 드레스를 입은 스텔라... 아니, 로제가 나타났다.
걱정스런 눈빛으로 날 한 차례 쳐다본 그녀는, 곧 포탈을 열고 순식간에 사라졌다.
텅 비어버린 대기실 안.
포탈이 닫힌 것을 확인한 나는, 손을 휘저어 마물 포탈을 열었다.
굳이 힘들게 들고 가야하나?
들키지만 않으면 되지.
@@
사방이 푸른 바다.
세화를 비롯한 동료들과 함께 태평양 한가운데의 하늘에서 징그러운 마물의 입을 바라보던 스텔라는,
쩌어억!
초록색의 찐덕한 타액을 줄줄 늘어뜨리며 입을 벌리는 포탈을 보고 인상을 찌푸렸다.
‘아... 진짜 싫다...’
마물들이 사용하는 포탈답게 못생기기 그지없다.
이빨도 군데군데가 시커먼 것이 비위가 상한다.
입을 벌리면서 매캐한 냄새를 사방팔방으로 뿜어내는 것도 싫었다.
속으로 투덜거린 스텔라는 자신의 옆을 바라보았다.
팔짱을 낀 채 늠름한 표정을 짓고 있는 아델,
날카로운 눈으로 활을 살피는 유리아와, 단검을 휘리릭 던지고 잡아채는 실비아,
그리고 무표정한 얼굴로 포탈을 주시하는 세화까지...
모두 여유롭다. 자신은 언제쯤 저렇게 될 수 있을까?
구오오오오오...!!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벌어진 마물의 입에서부터 괴이한 비명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에 움찔한 스텔라가 저도 모르게 채찍을 가슴께까지 들었다.
그런 그녀의 반응을 본 아델이 킥킥거렸다.
“우리 막내, 엄청 긴장했구나?”
“S, S급 마물인데 긴장이 안 될 리가 있나요...? 지혁이 오빠랑 박사님께서도 아직 안 오셨는데...”
그 푸념에 대답한 건 세화였다.
“금방 올 거야. 심호흡해.”
“아, 네...!”
긴장으로 인해 가빠진 호흡을 고르고 있던 스텔라.
그녀는 마물의 아가리에서 창백한 말이 튀어나오고, 뒤이어 푸른 갑주를 입은 마물이 나타나자 고개를 갸웃했다.
분명히 처음 보는 마물이지만, 어딘지 모르게 익숙했기 때문이다.
‘갑옷이 낯익어... 말도...’
저번에 싸워서 참패했던 붉은 기수도 저 푸른 기수와 비슷한 생김새의 갑옷을 입었고, 말을 타고 있었다.
아마도 그 붉은 기수의 동료인 듯했다.
“섣불리 움직이지 말고 경계만 해.”
귓가에 선명하게 파고드는 실비아의 경고.
침을 꼴깍 삼킨 스텔라가 채찍을 꼬나 쥐며, 청기수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했다.
등장하자마자 자연스럽게 허공에 원을 그리며 움직이던 청기수는, 비스트 슬레이어들을 살피는 듯하더니 스텔라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투구 안에 있는 푸른 안광이 왠지 섬뜩했기에, 스텔라가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때,
@#!&&@*.
청기수가 알 수 없는 말을 지껄이더니, 낫을 쭉 뻗으며 끄트머리로 스텔라를 겨누었다.
그 행동에 당황한 스텔라가 검지로 자신의 가슴팍을 가리켰다.
“나...?”
$&!@, #*%$!@@#.
도저히 이해가 불가능한 언어.
다만 행동만큼은 대충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마 저 마물은 적기수와 싸웠을 때처럼 결투를 원하는 것 같은 눈치였다.
아니, 눈치가 아니라 확실했다.
저놈은 자신에게 결투를 신청하고 있었다.
대체 저 마물들이 왜 자신에게 기사들이나 할 법한 결투를 신청하는 건지 전혀 모르겠다.
그냥 한 마리만 나온 김에 확실하게 잡아버리면 안 되나?
그러면 저번의 적기수처럼 막 발악을 하며 주변 자연환경을 해치려나?
솔직히 사방이 바다라서 발광을 해도 피해는 별로 없을 것 같은데...
어찌해야할 바를 몰랐던 스텔라가 당황해하고 있을 때,
!#$@&@*!.
청기수의 말투가 급변했다.
중후한 중저음에서, 톤이 약간 올라간 비웃는 투로.
그 소리를 들은 스텔라의 눈빛이 흉흉해졌다.
‘지금 날 깔본 거야...?’
마치 겁쟁이라고 말하는 것처럼 들리는데... 마물들이 사는 세상에 소문이라도 난 건가?
지구에 약하디 약한 호구 같은 전사가 한 명 있으니, 갖고 놀기 좋을 거라고?
라는 망상을 한 스텔라가 전의를 불태우며 세화를 쳐다보았다.
그러자 세화가 어이없는 표정으로 스텔라를 바라보더니,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했다.
“너 지금... 이상한 생각하는 거 아니지?”
“실전경험을 쌓을 수 있는 기회에요.”
“함정일지도 몰라.”
“저 시체 같은 마물은 저번에 나타난 그 붉은 마물과 동료라고 봐요. 기사도와 명예를 아는 마물이니 함정일 리는 없을 거라고 생각해요.”
“무슨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해? 마물한테 명예가 어디 있어?”
“저번에 나타났던 녀석도 저와 싸우고 바로 돌아갔잖아요. 허락해주세요.”
변신하고 나니 자신감이 생겼나보다.
정색한 세화에게 한 치의 물러섬도 없이 고집을 부리는 걸 보면.
이런 자신의 행동에 한 발 물러서기로 한 걸까?
얕은 한숨을 내쉰 세화가 긍정적인 답을 내놓았다.
“좋아, 대신 수상쩍은 움직임이 보이는 순간 바로 나설 거야.”
“감사합니다.”
흔들리지 않는 말투로 감사를 표한 스텔라가 오른손을 휘둘렀다.
철컹!
깔끔한 소리와 함께 검 형태로 변한 채찍.
믿음직한 자신의 무기를 붕붕 휘두른 그녀는, 한 발자국 앞으로 나서며 청기수를 마주보았다.
그러자 청기수가 만족스럽다는 듯 고개를 주억거리더니, 허공에 낫을 휘둘렀다.
후웅!
가볍게 한 번 휘둘렀을 뿐인데 세찬 풍압이 생성되어, 스텔라의 얼굴을 스쳐지나간다.
‘엄청 강할 것 같아...’
저 청기수는 적기수와 동등하거나 그 이상일지도 모른다.
두렵다. 하지만 승부욕이 두려움보다 더욱 컸다.
이번만큼은 저번처럼 무기력하게 패배하지 않으리라.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