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09화 〉 두 번째 결투
* * *
전화가 안 와도 너무 안 온다.
슬슬 화가 날 정도.
집착의 주체가 뒤바뀐 듯싶지만 짜증이 나는데 어쩌란 말인가.
집으로 돌아와 샤워까지 마친 나는 스텔라에게 전화를 걸었다.
뚜루루 거리는 신호음이 오랫동안 지나간 끝에,
여보셔요?
스텔라가 아닌 다른 사람이 전화를 받았다.
우아한 척하지만 철이 없는 게 느껴지는 말투.
분명히 아델이었다.
“아델이 왜 스텔라의 휴대폰을 갖고 있죠?”
지혁 씨인가요?
“알면서 왜 물어보세요.”
절 쏘아붙이시는군요. 현재 상당히 짜증이 많이 난 상태셔요.
“그럴 의도는 없었습니다. 사과할게요.”
흠... 좋아요. 지혁 씨의 마음도 어느 정도는 이해하니, 너그러운 제가 넘어가지요. 막내는 지금 궁상맞게 훌쩍거리면서 자고 있어요.
스텔라가 왜 훌쩍거리고 있다는 말인가?
모임 자리에서 선배들에게 한소리를 들은 건가?
아니면 아델이 괴롭혔나?
이해할 수 없는 설명에 벙 쪄있는데, 아델이 말을 이었다.
브라질리언 왁싱을 했는데, 아프다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어요. 어여쁜 입에서 지혁 씨의 이름이 수십 번이나 나왔지요. 지금은 조금 진정이 된 상태에요.
“왁싱...?”
지혁 씨에게 더 큰 예쁨을 받을 수 있다고 하니 좋다고 승낙하던 걸요?
잠자코 이야기를 듣던 내가 말했다.
“딱 보니까 취해선 네 네 거리는 스텔라를 갖고 놀았군요.”
갖고 놀다니요...! 어쩜 그리 말을 험하게...! 저는 막내가 지혁 씨에게 큰 사랑을 받았으면 좋겠다는 신성한 마음가짐으로...
“제 말이 틀렸나요?”
틀렸어요.
스텔라에게 질투 같은 마음을 품고 있었다면 이 질문에 고민이라도 할 텐데 그러지 않았다.
그렇다는 건... 아델의 저 설명은 진짜라는 뜻.
진심으로 스텔라를 좋아하고 있구나.
그나저나 거의 반강제로 왁싱을 해버렸다는 건데... 기가 차서 헛웃음이 튀어나온다.
나야 좋긴 하지만.
“어디서, 누구에게 받았습니까?”
임시신전에서, 저희의 충실한 신도에게 받았어요. 전문적인 기술을 배운 신도이니 걱정하지 마셔요. 최신식 기계를 사용해서 영구적인 제모를 시켰는데, 어때요? 아주 좋으시지요?
“그런 얘긴 하지 않아도 됩니다. 헌데 들킨 건 아니겠죠?”
신전 지하를 샵처럼 꾸며놓았으니, 의심일랑 거둬들이고 어서 막내를 데리러 오셔요. 참고로 막내의 음부는 지금 자극을 받아서 핑크빛으로 빛나고 있답니다. 보는 순간 지혁 씨의 그 음탕하고 거대한 물건이 순식간에 빳빳해질 거예요.
오늘따라 너무 노골적으로 말을 하는데, 요즘 사랑을 주지 않아 삐쳐서 내게 항의하는 건가 싶다.
힘없는 웃음을 터뜨린 내가 대답했다.
“금방 가겠습니다.”
예기치 못한 상황이 발생하였음에도 화가 풀리는 건 왜일까?
날 생각하는 아델의 마음이 전해져 와서임이 틀림없다.
**
“쉿... 조용히...!”
오버를 하는 아델을 향해 고개를 주억거리자, 그녀가 지하에 있는 어떤 방의 문을 열었다.
소리조차 나지 않는 경첩이 밀리면서 분홍빛 조명이 틈 사이로 새어나온다.
어디 매춘업소라도 온 것 같은 느낌.
작게 혀를 찬 나는, 가운데에 놓인 침대에 스텔라가 곤히 자고 있자 그쪽으로 다가갔다.
띵띵 부은 눈을 그대로 감고 있는 스텔라.
눈물을 많이 흘렸다는 증거였다.
상당히 아팠던 듯한데... 토실토실해 보이는 뺨을 콕 찔러보고 싶다.
말라붙은 눈물자국을 손톱으로 살살 긁자, 스텔라가 입술을 삐죽 내밀더니 무어라고 웅얼거렸다.
“아파아... 오빠아...”
내가 온 것을 알기라도 한 것처럼 울먹거리며 잠꼬대를 하는데, 그 모습이 어찌나 예쁜지.
당장 깨워서 다리를 벌려, 그 안에 내 것을 삽입하고 싶을 정도다.
이런 내 마음을 알아차렸을까?
아델이 조심조심 다가오더니 내 귀에 속삭였다.
“이불을 걷고 싶으시지요? 막내의 음란한 몸을 감상하고 싶으시지요?”
“아뇨.”
“거짓말을 하시네요. 현재 막내의 가랑이엔 박사님께서 만드신 수딩젤이 발라져 있어요. 샤워는 바로 해도 되지만, 관계는 하루 정도 참으셔야 해요. 이거 아쉬워서 어떡하지요?”
은근슬쩍 약을 올리는 아델의 모습도 귀엽다.
두 사람과 동시에 하고 싶은 마음이 돌연 확 든다.
타락하기 전엔 무리인가? 아니, 아델과 내가 스토리를 잘 짜내면 가능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아델의 연기력이 관건이겠지만.
“어차피 그럴 여력도 없습니다. 스텔라는 내일 스케줄이 끝난 후에 전투가 예정되어있어요.”
“스케줄이라니... 과음했는데 하루 정도는 쉬게 해주는 것이 좋지 않을까 싶은데요? 최소한 마물과의 전투는 뒤로 미루는 게 낫다고 보아요.”
“스텔라는 자신이 조절해서 마실 수 있었어요.”
스텔라가 직접 선택한 과음이니, 불만을 제기해도 들어주지 않을 거라는 뜻이었다.
내 말을 이해한 아델이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각박하고 보수적이시네요. 그런 지혁 씨도 좋답니다. 그러면 눈으로 보기만 해보시겠어요?”
“본다니요?”
“매끈한 막내의 가랑이를 보고 싶지 않으셔요?”
보고 싶다.
근데 네 앞에서는 안 봐.
네가 생색을 낼 여지 같은 건 절대 주지 않을 거란다.
시큰둥한 표정을 지은 나는, 스텔라를 아주 조심스럽게 안아들려고 했다.
그러자 아델이 내 앞을 가로막더니, 혓바닥을 빼꼼 내민 개구쟁이 같은 얼굴로 이불 안에 손을 집어넣었다.
“음... 음음...”
만족스런 감탄사를 여러 번 터뜨리는 아델.
내가 뭐하냐는 눈빛으로 아델을 바라보자, 그녀가 조용히 대답했다.
“얼마나 진정이 됐는지 확인해보려는 거예요.”
“그러다 깨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그러십니까. 그만두세요.”
“술을 아주 많이 마신데다 정신적인 피로감도 호소했으니 이 정도로 깨진 않아요. 참고로 왁싱을 할 때, 막내가 제게 손을 꼭 잡아달라고 간청했답니다. 절 의지하고 있다는 증거였지요.”
“그래서, 좋았어요?”
“물론이지요. 음음...! 아주 말랑말랑하군요.”
“어디가요?”
“잘 알면서 물으시는군요. 음흉해요.”
그리 말하며 손을 뗀 아델의 손가락은 반짝반짝했다.
스텔라에게 발라두었던 젤이 일부 묻은 것이다.
시간이 꽤 오래 지났을 텐데 아직도 마르지 않은 걸 보면 박사가 신경을 써서 만들었나보다.
분명히 아델이 징징거렸을 텐데, 그 철없는 부탁을 들어준 것도 의외고 말이다.
“자, 이제 데리고 가셔도 좋아요.”
만족스런 미소를 흘리며 물티슈로 손을 닦는 아델의 모습은 어딘지 모르게 요망했다.
아이라인을 살짝 올려 그려서 그런지 눈매도 날카롭고... 답지 않게 섹시하다.
엄청난 흉계를 꾸미고 자신만만해하는 대악당 같다.
나보다도 더 사악해 보이는데, 순진무구하고 착하디 착한 성녀였던 모습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었다.
그래서 오늘따라 더욱 꼴린다.
스텔라를 안아들고 문 앞으로 간 내가 아델에게 말했다.
“여기서 대기하고 있으세요. 금방 올 테니까.”
“그렇다면 신도들에게 시중을 들라고 해야겠군요.”
저리 말한 아델이 내 대신 문을 열어주었다.
방글방글 웃고 있는 얼굴은 덤.
내 의중도 정확히 알아차리고... 눈치가 빨라졌구나.
한쪽 입꼬리를 올린 나는, 말없이 아델을 한 차례 쳐다보고는 신전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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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응...”
푹신하기 그지없는 침대에서, 스텔라는 몸을 뒤척였다.
얼마나 잔 걸까? 눈이 제대로 떠지질 않는 걸 보면 오랜 시간동안 깊은 잠에 빠져있었던 것 같다.
버릇대로 이불을 끌어당겨 얼굴을 덮은 스텔라는, 이불에서 풍겨오는 익숙한 냄새에 저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오빠 냄새...’
빨래방에서 이불을 빨 때, 자동으로 투여되었던 섬유유연제 냄새였다.
그렇다는 건, 여긴 자신의 집이라는 뜻이었다.
대체 언제 돌아온 걸까? 기억이 전혀 나질 않는다.
변태마냥 이불에 코를 박고 킁킁거리던 스텔라는, 자신의 하복부가 축축하자 흠칫했다.
“핫!”
자신이 무슨 일을 했는지 정확하게 기억이 났던 것이다.
침대에서 벌떡 일어난 스텔라는 방의 불을 켜고 자신의 배꼽 밑을 만지작거렸다.
모임을 갈 때 입었던 치마가 그대로 입혀져 있다.
헌데 입고 있어야할 속옷은 온데간데없고, 안에 비닐 같은 것이 피부를 누르고 있었다.
‘이, 이게 뭐였더라...?’
기억을 열심히 더듬어보니, 굉장히 아픈 고통을 느끼며 훌쩍이고 있는데 왁싱샵 직원이 어떤 기계를 갖고 온 것이 생각났다.
그 후 끝나고 수딩젤을 바를 테니 하루 동안 그대로 두라고 했던 것도 기억이 난다.
당시 상황을 전부 복기해낸 그녀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인상을 찌푸렸다.
머리가 굉장히 아팠기 때문이었다.
양 관자놀이를 볼트로 꽉꽉 조이는 느낌.
심지어 뇌 한부분에서 찌릿한 통증까지 일었다.
이게 숙취라는 것인가? 아무래도 자신은 술과 맞지 않나보다.
그래도 맛은 있었다. 소중한 동료들과 함께여서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근데 내가 왜 여기 있는 거지...?’
술을 먹고 인사불성이 되었을 텐데... 심지어 왁싱을 한 후엔 너무 아파서 그냥 자버렸다.
그런 상태였는데 어떻게 돌아온 걸까?
몽유병에 걸린 사람처럼 흐느적거리며 왔을 수도 있고,
아니면 지혁이 데리고 와줬을 수도 있다.
하복부에서 이는 찐덕거리는 감촉이 싫었던 스텔라는, 침대에 불편하게 걸터앉아 휴대폰을 찾아보았다.
톡이 한 통 와있다. 발신자는 지혁이었다.
[일어나면 전화해.]
역시 지혁이 데리고 와줬구나.
저도 모르게 헤실헤실 웃은 스텔라는 곧바로 통화 버튼을 눌렀다.
지금이 몇 시인지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왜? 지혁이 전화하라고 했으니까.
일어났어?
신호음이 몇 번 가기도 전에 전화를 받는 그.
약간 피곤한 듯 목소리가 잠겨있었다.
“응... 오빠가 나 집에 데리고 와준 거지?”
맞아. 숙취해소제 놔뒀으니까 마셔.
“어디에...?”
협탁 위에.
협탁으로 눈을 돌려보니, 지혁의 말마따나 유명한 숙취해소제가 떡하니 있었다.
자신의 상태를 알아주고 챙겨주는 지혁을 향한 사랑이 더욱 커진다.
그를 향해 사랑을 고백하려던 스텔라는, 머릿속을 스쳐지나가는 한 생각에 움찔했다.
“오빠 혹시... 아델라인 선배님이랑 만났어?”
당연히 만났지. 하도 연락을 안 해서 전화했더니 아델이 받더라.
“아... 만났구나... 그, 그럼...”
뭐했는지 아냐고?
“.....”
알아. 네가 가고 싶다고 했다며?
스텔라의 얼굴이 순식간에 붉어졌다.
엄청나게 창피했다.
기쁘게 해주려고 했는데 걸린 부분에 대한 아쉬움도 조금 있었다.
혹시 지혁은 자신의 은밀한 부위를 봤을까?
볼 건 다 보여준 사이라 상관은 없긴 한데... 그래도 쪽팔려 죽겠다.
“그, 그렇게 말한 기억은 없긴 한데...”
그러니까 적당히 마셨어야지. 다음부턴 제대로 조절해. 알았어?
“응...”
5시간 뒤에 스케줄 가려면 힘들 테니까, 숙취해소제 마시고 다시 자. 3시간 뒤에 데리러 갈게.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다는 말인가?
앞으로 술은 적당히 마셔야겠다.
아니지, 아예 지혁에게 허락을 받고 마시자.
알겠다고 대답한 뒤 전화를 끊은 스텔라가 자신의 하복부를 만졌다.
샤워를 하고 싶은데 해도 될지 모르겠다.
이런 적은 처음이라 전혀 감이 안 잡힌다.
휴대폰으로 검색을 해보니 당일 물샤워는 가능하다고 나와 있었다.
이에 안심한 스텔라는 숙취해소제를 벌컥벌컥 들이켜고는 거실로 나왔다.
알렉스는 아직 돌아오지 않았구나. 지금이 몇 시인데 아직까지...
날을 잡고 또 따끔하게 훈계를 해야겠다.
냉장고가 돌아가는 소리만 미세하게 들려오는 고요하고 어두컴컴한 거실.
갑작스레 엄청난 외로움이 찾아온다.
여태까지 이렇게나 쓸쓸한 감정을 느낀 적이 있었나?
지혁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
이참에 이사를 가겠다고 말해보자.
더 좋은 집, 소중한 사람들이 있는 곳에 안 갈 이유가 있으랴?
여기 홀로 덩그러니 있다 보니 동료들, 연인과 함께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그런데 알렉스는 어쩌지? 가려고 할까?
“아 몰라...”
이와 관련된 주제를 생각할 때마다 알렉스에 대한 고민을 해야 하는 것이 거슬린다.
이번만큼은 자신의 의견을 밀어붙이는 편이 좋다고 본다.
이제까지 충분히 양보하면서 살아왔잖은가.
알렉스도 이해해줄 거다.
동생에게 댈 핑계는... 모르겠다. 지혁이 알아서 생각해주겠지.
라고 생각한 스텔라는, 옷을 훌러덩 벗어던지고는 화장실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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